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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opic: 한국의 재벌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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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한국의 재벌
on: February 13, 20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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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 말하면 ‘재벌’의 덕을 단단히 본 사람입니다.

88올림픽이 막 끝날 무렵 20년 가까운 미국생활에서 소위 ‘스카우트’ 되어 여의도 쌍둥이 빌딩 한강 쪽 17층 LG 상사 사무실에 앉아 한강대교를 바라보며 석유개발 부서를 맡게 되었으니까요.

LG 답게 ‘인화’를 중요시 하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 회사가 온통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회사이며 그 안에 있는 수천의 직원들이 전부 구씨와 허씨를 인식하고 사는 머슴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느 부서건 최종 결재 자는 그들이며 설령 사장이 큰소리를 땅땅 쳐도 그 사장은 오너 일가 앞에서 혀를 길게 빼고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 애완견 비슷한 존재에 불과 한 고급 머슴에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사장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구씨와 허씨 계열 친인척들은 진급 속도가 평 직원보다 두 배 내지 세 배 빠른 것이 공인된 사실이어서 어제의 내 밑 부하가 내일 나의 상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조그만 구멍가게이거나 직원 몇 십의 소 기업이면 오히려 당연하다 하겠으나 문제는 수천 수만의 인력을 포용하는 대기업인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난센스였던 것입니다.

물론 구씨 허씨 가문이라도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 수준 이하의 치래기는 도태 된다지만 그런 꼴로 도태되려면 정말 보기 힘든 얼간이 구씨 허씨 라야 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오너 체제하의 세습적 주지-머슴 구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 밑에 착 달라붙어 마치 발바닥이라도 핥을 정도의 ‘충성’을 보이는 무리들이 있게 미련이며, 이들은 임금님 행차하는 말의 고삐를 잡고 가는 속 빈 마부가 되어 모든 머슴들을 쩔쩔 매게 하는 행태가 심하다는 얘기 입니다. 높기만 한 사장머슴도 이들에게는 은근히 쩔쩔 매는 형상입니다. 이것은 공적인 존재이면서도 세습의 고리를 틀켜쥐고 결속되어 어느 일가의 소유물이 되어 있는 '재벌'에서만 나타나는 행태 입니다.

미국이 본거지이고, 언제라도 미국 집으로 돌아 올 마음이었기에 구씨 허씨 줄 서기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숨막히는 조직의 울 안에서 살아야 했으므로 피곤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원 개발’ 하러 왔지 ‘재벌 계발’하러 온 것이 아니다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때때로 느끼는 좌절과 마음의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좁혀진 시야속에서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허걱대는 젊은이들이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십 년 가까이 버틴 저에게 사람들이 미국 살다 온 사람치고는 꽤 용하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재벌 덕을 많이 본 사람입니다. 안 그랬으면 평생 미국에 살면서 고국에 한 번 가 근무 했으면 아쉬움으로 생을 마감 했을 수도 있었는데 세계에서 우뚝 자리잡은 대 기업에 임원으로 가 시원한 업무를 하였으니 이런 기회를 준 재벌’에 감사 합니다. 이러한 저의 고마움은 LG 에 이어 3 년여 자원개발 부서를 담당하며 머문 (주)대우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늘 제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것은 재벌에 관한 부정적 견해였습니다.

기회 균등이라는 것은 재벌 조직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특출한 직원이나 간부라도 성씨는 바뀌지 않는 것이며 사장이 되었건 회장이 되었건 그것은 재벌이라는 조직의 상머슴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호의호식하고, 거드름도 피며 ‘군림’하는 호강도 부려 보지만 결국 머슴일 뿐입니다.

미국에서 소위 메이저 석유회사에 오랫동안 근무 했었습니다만 내가 어느 개인의 머슴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회사면 회사, 주주면 주주들의 머슴이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회사의 소속 원들은 어쩔 수 없이 오너의 머슴 밖을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재벌 회사의 주식 거의 절반이 외국 투자자들 손에 있으니 이 머슴들은 정말 빛 좋은 개살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재벌 이라는 시스템이 존재 하는 한 지구상에서 경제 대국에 한참 들어 가 있어도 존경 받는 국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이 지주-머슴의 개념에 바탕을 둔 전근대적 ‘흘러간 세월’의 유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그나마 재벌이 있었기에 한국이 굶음을 벗어나 경제 대국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전쟁 통에 뼛속에 박힌 파편은 언젠가 빼 내야지 제대로 걸을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재벌이라는 파편은 이제 빼 내어도, 잠시 쩔뚝거릴지는 몰라도 더 오래 걸을 수 있을것입니다.

지리멸멸한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는 이러한 폐기 처분해야 할 시스템 안에 스스로를 묶어 놓고, 봉건적 왕권체제도 아니면서 세습 독재의 아성인 북한 못지 않은 또 하나의 재벌 세습 아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 경제의 위상이 높아 지면서 재벌이라는 어원은 이제 영자 신문에 'Jae-Bol'로 고유 명사화 되어 표기되기도 합니다. 한반도는 남북 분단에 재벌이 군림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문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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