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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 무역·관세 협상이 10월 29일 최종 타결됐다. 대통령실은 “관세 인하와 대규모 투자, 산업 협력의 세부 내용이 합의됐다”고 밝히며 성과를 강조했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외교적 성과를 넘어, 향후 한국 경제에 깊은 영향을 미칠 중대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경주 국제미디어센터 브리핑에서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상호관세는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반도체 관세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조정하고, 일부 의약품·목재에는 최혜국 대우를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부품과 일부 의약품은 무관세로 전환된다.
가장 큰 쟁점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였다. 김 실장은 “투자액은 유지하되 연간 상한선을 설정해 외환시장의 충격을 방어하기로 했다”며 “현금 투자 2,000억 달러,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연간 투자 한도는 200억 달러로 제한되며, 외환시장 불안 시 납입 시기나 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마스가(MASGA) 조선·에너지 협력펀드’다.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조성하되 한국 기업이 주도권을 갖는 형태로, 관련 자금 1,500억 달러는 협력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를 총괄할 ‘조선협력 협의체’가 국가안보회의(NSC) 산하에 신설된다.
관세 인하와 투자유치 틀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 요소다. 자동차·부품 관세 인하는 수출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반도체 관세 조정은 대만과의 경쟁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또 ‘상업적 합리성’ 원칙을 명시한 점은 무리한 투자를 피하고 수익성을 고려한 현실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연간 투자 상한 200억 달러 설정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무제한 투자로 인한 자본 유출 위험을 완화하며,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3,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투자 약속은 민간 주도라 해도 기업 자금 흐름과 외화 수급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투자에 비해 관세 인하 폭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FTA 이후 다수 품목이 무관세인 만큼 실질적 혜택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번 합의가 미국 의회의 공식 비준을 거치지 않은 만큼 법적 구속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일부 외신은 “양해각서 수준의 합의에 그칠 가능성”을 지적했다. 협상 내용이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수정되거나 이행이 지연될 위험도 존재한다. 대미 의존도 심화 역시 우려 요인이다. 조선·에너지·반도체 등 핵심 산업이 미국 중심 공급망에 편입될 경우, 한국 산업정책의 자율성이 제약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정책 변화가 곧 한국 산업 구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외환시장 안정 장치 역시 한계가 있다. 연간 200억 달러의 상한이 실제 충격을 완화하기에 충분할지 불확실하다. 대규모 해외 투자로 외화 유출이 가속화되면, 원화 약세와 금리 불안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투자 집행 속도와 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
또한 해외투자가 확대되면 국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드는 ‘산업 공동화’ 우려가 있다. 정부는 미국 투자에 상응하는 국내 산업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 조선업 협력펀드가 미국 내 프로젝트에 집중된다면 국내 조선산업의 회복세가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협상이 산업 협력과 함께 안보 협력으로 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추진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원자력 및 전략산업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한 발언도 양국 정상 간 신뢰 구축의 신호로 해석된다. 결국 이번 한미 협상 타결은 그 자체로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실질적 성과는 실행과 관리에 달려 있다. 외환시장 안정과 산업 균형, 법적 이행 력 확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이번 합의는 단순한 경제협의가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거대한 기회이자, 동시에 거대한 도전이다. ‘타결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지금 대한민국 경제 현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타운뉴스 2025년 11월 3일 발행 안창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