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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질서, 침묵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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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질서, 침묵하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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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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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질서, 침묵하는 자유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에서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불법 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채 식기도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000명의 주 방위군에 이어 해병대 병력까지 약 700명을 시내에 배치했다. 이는 단순한 ‘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의 군사적 움직임이었다.

이에 대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캐런 배스 LA 시장은 강력히 반발했다. 그들은 이번 군 투입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군사력이 평화적인 시민 집회에 동원되는 상황, 이것이 지금 21세기 미국 대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상황은 1878년 제정된 ‘포스 커미타투스법(Posse Comitatus Act)’을 정면으로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 해당 법은 군대가 국내 치안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단, 내전이나 국가적 비상사태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데, 현재의 시위가 과연 내전 수준의 위협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연방 정부는 일부 시위 현장에서의 약탈과 폭력을 근거로 군 투입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현지 정부와 다수 시민들은 대부분의 시위가 평화적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단지 군사력의 과잉 사용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는 ‘국가의 안전’과 ‘시민의 자유’ 사이의 본질적인 균형, 그 경계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정부는 ‘질서’를 이유로 물리력(군대 투입)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묻는다. “우리가 지금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시민의 ‘평화적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명확히 보장한다. 그러나 법의 문구는 무력 앞에서 쉽게 침묵한다. 시위대는 ‘동물’로 비유되고, 도시의 거리는 군화로 가득 차며,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는 불온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그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가 단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감수성과 태도의 문제임을 실감하게 된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불법이민자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시위자들 역시 표현의 자유를 통해 공동체의 도덕적 방향을 모색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을 단속 대상이거나 질서 위반자로만 규정하고 억압하는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강압적 단속은 일시적인 효과를 낼 수는 있으나, 사회 전체의 긴장과 분열을 키워 장기적으로 더 큰 고통을 초래한다. 반면,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은 공동체의 신뢰와 통합을 유지하는 데 더 유익하다.

역사는 이와 비슷한 순간을 기억한다. 1970년 켄트 주립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1992년 LA 폭동 당시 군 병력 투입이 가져온 혼란과 상처를 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물리력이 통제를 넘어섰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당시에도 질서는 내세워졌지만, 결과는 시민의 희생이었다.

이번 LA 사태는 단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국 전체,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존재인가, 아니면 자유를 억압하는 힘인가?” 물론 국가는 공공의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이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이행될 때, 그것은 보호가 아닌 통제이고, 안전이 아닌 공포가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 표현했지만, 캘리포니아와 LA시는 이를 ‘민주주의의 심장을 공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이 완전히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이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군대가 시민의 자유 앞에 설 때, 진짜 위협 받는 대상은 누구인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권력의 균형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과 자유가 만나는 지점에서만 살아 숨 쉰다. 시민의 목소리를 군화로 짓누를 때, 국가는 결국 스스로 그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셈이다. 국가의 힘은 무기가 아닌, 시민의 신뢰에서 나와야 한다.

​ 지금 LA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순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되었다. 우리는 이 시험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시민의 자유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편의와 통제를 이유로 그것을 포기할 것인가. 국가는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 기본 전제를 잊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 정당성을 잃는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무력의 저편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우리 모두의 응답 속에 있다.

                                                                                                                             타운뉴스 2025.6.16. 1581호  안창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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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문병길

이상의 내용은 문리대 웹의 생각과 무관합니다

 
Posted : 16/06/2025 7:2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