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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서울대 미주동창회보 369호 2025.2.
왜 ‘반란의 우두머리’인가?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지 올해 꼭 160주년을 맞는다. 원래 명칭은 ‘아메리칸 시빌 워’(American Civil War)’, 우리말로 직역하면 ‘미국의 내전’이 되겠다. 우리가 남북전쟁이라 부르게 된 건 아마 6·25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반도의 동족상잔도 따지고 보면 남북간의 전쟁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두 나라의 ‘내전’은 공통점이 적지 않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은 총성이 멈춘지 한 세기하고도 반백 년이 넘었는데도 상처가 봉합되지 않아 종종 갈등이 분출되고 있다.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지지한 남부의 11개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며 링컨 대통령의 북군을 공격해 벌어졌다. 교과서엔 사상자가 무려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미국 인구의 10%가 넘는 숫자다. 동족 간에, 그것도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병사들이 남과 북으로 갈려 총부리를 들이댔으니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상상조차 어렵다.
전쟁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은 로버트 리, 다름아닌 남군 총사령관이다. 링컨의 입장에선 반란군의 우두머리나 다름없겠다.
전쟁이 끝난 뒤 로버트 리는 어찌 됐을까. 당연히 처형됐을 것으로 짐작하겠지만 천만에. 제 발로 걸어서 고향 버지니아로 갔다. 거리마다 환영인파가 넘쳐났다. 패장이 개선장군으로 둔갑한 것이다. 워싱턴 대학(훗날 그의 업적을 기려 워싱턴 &리로 개명)은 그를 총장으로 모셨다. 세상의 온갖 영예와 영광을 한 몸에 받으며 여생을 마쳤다.
그렇다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링컨이 암살당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은 ‘정의를 곧추세우겠다’며 로버트 리를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를 반란군의 수괴로 처형해 순국한 북군 병사의 제단에 희생제물로 바치겠다고 별렀다.
그가 목숨을 부지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율리시즈 그랜트(나중에 13대 대통령)의 구명운동 덕분이다. 북군 총사령관으로 로버트 리의 적수다. 그랜트는 리에게 반역의 올가미를 씌운다면 사령관직을 사퇴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항복문서엔 남군 병사들의 안전한 귀향과 사면 조건이 포함돼 있다며 이 조항의 준수를 강력히 요구한 것.
그랜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대통령에 지워진 가장 큰 책무는 국민 대통합이다. 로버트 리를 처벌하면 남과 북의 깊게 팬 골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수정헌법 제2조에 의거, 로버트 리를 포함한 남부 쪽 지도자들을 사법처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편다. 이 조항은 민병대의 무장과 함께 개인의 총기 소유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민병대는 나중에 주 방위군으로 확대 편성된다.
이 조항을 헌법에 명시한 건 다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독재할 경우에는 주 정부가 군대를 동원,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낼 수 있게 법적인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남부 쪽 시각으로는 링컨이 일방적으로 노예를 해방하는 등 독재자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로버트 리는 지금도 일부 남부인들 사이에서 영웅 취급을 받는다. 왜 그럴까. 당시 널리 회자했던 키워드 ‘로스트 코즈’(Lost Cause)에 답이 있다. ‘잃어버린 대의’라고 할까. 비록 전쟁에선 졌지만 ‘대의’에서만큼은 패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부의 추구와 기독교 복음주의, 그리고 백인우월주의가 그들에겐 ‘대의’였던 것. 극우성향의 백인들이 리의 동상을 신주 모시듯 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로버트 리도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섬뜩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도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다뤘다. 비록 노예 신분일 망정 아프리카에서 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낫지 않느냐는 둥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흑인에 관한 한 죄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몇해 전엔 버지니아대학 풋볼 경기에서 ESPN이 아시아계 스포츠캐스터에 중계를 맡길 예정이었으나 캠퍼스에서 인종 소요 사태가 벌어지자 그를 뺏다. 남군 사령관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에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로버트 리,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겐 영웅으로 보이겠으나 소수계에겐 인종 화합의 ‘대의’를 거스린 ‘반역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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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문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