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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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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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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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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거듭 난’ 세상

오래전 팝송 전문 잡지사에서 알바한 적이 있었다. 출입처가 없는 내근 기자가 부수입을 올리기에 딱 맞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주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 등에서 기사를 골라 번역을 했다.

밥 딜런도 그때 알았다. 그의 ‘더 프리휠링 밥 딜런(The Freewheeling Bob Dylan)’이 팝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앨범이란 사실도. 불후의 명곡 ‘블로윙 인 더 윈드’도 이 음반에 수록돼 있다. 노래들도 앨범 제목대로 자유분방해 가사를 우리말로 옮기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세상의 모순을 거침없는 풍자로 비판한 밥 딜런. 그런데 앨범의 커버 사진은 로맨틱하기 그지없어 의아스럽다. 배경은 한겨울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예술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어 요즘 말로 ‘힙’한 곳이다. 앳된 얼굴의 딜런은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고 한 여인이 딜런의 팔짱을 꽉 낀 채 미소를 흘려보내는 사진이다.

여인의 이름은 수지 로톨로. 갓 스물둘을 넘긴 딜런에 저항과 반문화의 거친 숨결을 불어 넣어 준 장본인이다. 그녀가 딜런과 함께한 세월은 4년 남짓. 그러고는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난다. 그를 ‘독점’하면 천재의 예술혼에 흠집을 남길까 두렵다는 말을 남긴 채.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꼽으라면 단연 ‘더 프리휠링~’일 터.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랫말은 거의 모두 로톨로의 감수를 받았다. 최소한 상금만큼은 절반씩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로톨로는 이미 15년 전 세상을 떠났으니 어쩌랴.

로톨로는 출신이 ‘레드 다이어퍼 베이비(red diaper baby)’다. ‘붉은 기저귀’를 차고 태어났다고 할까. 급진 좌파 또는 공산당원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 말하자면 골수분자를 일컫는 조어다.

당시 ‘붉은 기저귀’의 슬로건이 ‘사람 위에 사람 없다’였다니 이들이 누구인가를 짐작할 만하겠다. 그래서 로톨로는 이층 버스 탑승을 거부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 온다. 연방수사국(FBI) 기록에 따르면 딜런도 ‘붉은 기저귀’에 속한다.

그런 딜런이 10여년 전 생애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지나가야 평화가 찾아올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반세기 전 ‘블로윙 인 더 윈드’를 부르며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딜런, 그 현장을 찾았으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콘서트는 호찌민(옛 사이공)시에서 열렸다. 공연장 규모는 7천석. 어찌 된 영문인지 티켓이 절반도 팔리지 않았다. 그나마 현지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이 표를 사줬길래 망정이지 자칫 망신당할 뻔했다. 베트남 팬이래 봤자 대부분 60~70대. 미국과 전쟁을 치렀던 세대다.

처음엔 민주화 소요를 우려해 베트남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했으나 천만에. 영국의 B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딜런을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드물어 표가 안 팔렸다. 대부분 자기네 나라가 미국과 전쟁을 치렀는지도 모르는데 딜런이 누구인지 알 턱이 있을까. 

알고 보면 작금의 베트남은 한국보다 훨씬 친미적이다. 전 세계 미국대사관 가운데 경비가 필요 없는 유일한 곳이 베트남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딜런의 또 다른 히트곡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The Times They Are A Changing’)의 세상이 온 듯한 느낌이다. 공산 베트남이 미국의 우방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가수가 노벨상을 받는 세상은 또 어떻고. 그 뿐 아니다. 유대계 무신론자인 딜런이 “예수가 (삶의) 답이다”며 ‘본 어게인’ 크리스천을 선언하고.

“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시각을 지니면 세상이 바뀐다. 시대는 변하고 있으니까.” 인공지능(AI)이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밥 딜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미주동창회보 370호 2025.3월호          박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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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문병길

 
Posted : 07/03/2025 7:54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