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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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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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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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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뉴스 칼럼

 

                                                                          석양에 서서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한 노인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낯설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친숙한 얼굴도 아니다. 세월의 풍파가 가 득 담긴 얼굴을 살펴본다. 초점이 없는 희미한 눈동자, 축 처진 눈 밑의 살, 눈에는 눈곱도 껴있다. 움푹 파인 양 눈, 그 가장자리의 까마귀 발자국, 하얗게 서리 내린 귀밑 머리카락, 삐죽삐죽 자라난 뻣뻣한 수염,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 까맣고 하얀 것들이 뒤섞여 있다. 오늘도 거울 속의 아버지는 거울 밖의 내게 한 말씀하셨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저녁 무렵 공원을 찾았다. 거의 매일 아침 걷는 공원이지만 해질녘에 찾기는 처음이었다. 한낮의 더위는 식어가고 있었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하늘 저편이 점차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태양이 점점 내려앉으면서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그 어느 한 곳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해가 지는 서쪽은 서쪽대로, 정 반대 방향인 동쪽은 동쪽대로 동 서남북 모두 아름다웠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오래 두고 보고 싶었다.

한국 사는 친구들이 대다수인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니 일출 사진이 참 보기 좋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또 다 른 친구들도 비슷한 표현을 했다. 해 뜨는 광경이 아니고 해질 때 찍은 것이라고 밝혀야 했다.

 사실 일출과 일몰은 구별이 어렵다. 30여 년 전에 하와이에서 한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하와이 해변이 그려진 풍경화 앞에서 감상하고 있는데 갤러리 직원이 다가와 조명 등을 서서히 밝히면서 이렇게 보면 일출이라고 했 다. 이어서 불빛을 서서히 약하게 하면서 해변의 석양이 아름답지 않냐고 물었다. 몇 번을 서서히 밝혔다가 서서 히 낮추면서 그 화가와 그림에 대해서 과장스럽게 설명을 반복했다. 결국 그 그림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흡사하다. 젊어서는 서서히 밝아 오는 일출이고, 노년으로 가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석양이라 할 수 있겠다.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활기차고 기 운이 넘치는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 만 어딘지 어설프고 안정감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젊음이 마냥 좋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노년의 인생은 다소 기력은 부족해 보이지만 아름답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모든 노인들이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나름대로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하곤 했다. 나의 과거나 나의 지난날에 대해서 남들에게 얘기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한다. 내가 찬란하고 아름다운 과거를 가졌다고 힘주어 얘기하는 것도 삼가야 하지만 반대로 내가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도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 다는 말이다. 자칫하면 자랑이 되기 쉽고, 내가 역경을 딛고 운명을 개척한 성공의 주인공이 되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다. 다들 자기 얘기하고 싶어 할 뿐이다. 남의 얘기는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하거나 가르치듯이 얘기해서도 안 된다. 나이 많다고 대접받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나이가 많다고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가깝고 친하더라도 서로 높임 말을 쓰고 예의를 갖추어서 해야 한다.

 선친께서 내게 보여준 모습이 그러했다. 해군으로 입대해 해병대 1기생이 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고, 공무원으로 재직 중에 5.16을 맞아 직장을 잃고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치셨고, 4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두 명의 아들이 군인이 되어 그 중에 하나는 장군이 되었다. 두 명의 자식들은 교사로 근무했다. 어렵게는 사셨지만 그 누구 부럽지 않게 사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자랑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셨다.

 60대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다른 분들께 도움을 주 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수지침과 쑥뜸을 익혀 몸이 불편한 많은 분들을 도왔다. 70대에 들어서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로는 나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침을 놓아주고 쑥뜸을 떠주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오면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침과 쑥뜸을 뜨기 위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께 집에서 사람들에게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그만 두라고 말씀드리자 그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시면서 그 일을 계속하셨다.

 아버지는 아들이나 며느리, 손자 손녀들에게 짜증내는 법이 없으셨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이 해병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사셨다.

 오늘도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짐한다. 언제나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chahn@townnews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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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지내는 주간 '타운뉴스'의 발행인 안창해 칼럼을 올립니다.   문병길 

 
Posted : 10/07/2024 5:2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