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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어려운 사람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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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어려운 사람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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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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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어려운 사람 공부

얼마 전 선배가 다른 선배 한 분을 모시고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약속한 식당에 갔더니 선배가 세 분을 더 모셔와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가운데 두 분은 예전에 뵌 적이 있었지만, 한 분은 처음 보는 분이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선배가 양주 한 병을 꺼냈다. 프랑스산 브랜디, 흔히 말하는 꼬냑이었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있던 음식과는 썩 어울리는 술은 아니었다. 한식당에서 해물탕과 생선찜, 갈비를 시켜 놓고 꼬냑을 마신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풍경이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잔을 비워둘 수밖에 없었고, 세 분만 술을 마셨다.

술이라는 것은 참 묘한 물건이다. 병 속에 있을 때는 단순한 액체일 뿐이지만 사람이 마시는 순간 전혀 다른 무엇으로 변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약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억눌렸던 감정을 풀어내는 도구가 된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말의 홍수를 터뜨리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날 내 맞은편에 앉았던 80대 중반의 어르신이 바로 그랬다. 오렌지카운티 한인회를 누구와 함께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각종 한인 단체의 장을 지냈다는 이야기, 이미 세상을 떠난 한국의 대통령 한 분과 얼마나 가까웠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한 그분의 이야기는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임을 주선한 선배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슬쩍 화제를 바꾸려는 표정과 말투를 여러 번 보였다. 하지만 이미 속도를 낸 기관차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긴 채 식사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내 앞에 놓인 잔에 술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본 그 어르신이 괘씸하다는 듯 말했다. “잔을 비워야지요.” 나는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못 마신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술을 남기면 안 된다면서 내 잔의 술을 자기 잔에 부으라며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잔을 잡고 그분의 잔에 술을 부어 드렸다. 그분은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스스로 꽤 멋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저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려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모임을 주선했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 미안했다며 다시 한 번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선배가 그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와 여러 가지 배려를 보며 마음공부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실 그날의 진짜 배움은 따로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품격이란 목소리의 크기나 경력의 화려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어르신 몇 분이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해서 어떤 자리에 나갔다. 내가 대접하려고 커피와 파이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약속했던 분들 외에 다른 한 분이 더 와 있었다. 그는 내 옆에 앉자마자 갑자기 물었다. “너 몇 살이야?” 대답하기 싫어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몇 년생이야?”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왜 반말을 하십니까?” 그러자 그분은 주먹을 내 뺨에 갖다 대며 말했다. “난 누구에게나 반말이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XX놈이 어디다 손을 대? 돌았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주변의 어르신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잠시 후 그분이 말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먼.” 내가 말했다. “네가 있어 내가 갈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조금 더 참았어야 했나.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조건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또 노자는 도덕경에서 故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라고 말했다. 강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편에 속하고,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삶의 편에 속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가르침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야 하는가이다. 무례함을 참고 넘기는 것이 덕일까, 아니면 부당함에 선을 긋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살다 보면 정답을 찾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그런 질문들 속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완전히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사람을 통해 배우는 공부는 끝이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존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거울처럼 보여 준다.

맹자는 “반구저기(反求諸己)”라고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으라는 뜻이다. 요즘 나는 그날 일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아마도 인생의 수양이란 바로 그런 질문을 계속 붙잡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타운뉴스 2026.4.6   안창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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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 옮김 

 


 
Posted : 09/04/2026 11:26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