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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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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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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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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연산군 즉위 10년이 되던 해, 나라의 언론과 감찰 기능을 담당하던 사헌부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이어 폐지되기까지의 과정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다.

​ 사헌부는 비리를 저지른 관리를 적발하거나 백성의 억울함을 들어 왕에게 직언하던 기관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감사원과 검찰의 일부 기능을 합친 일을 하는 기관으로 국가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축 중 하나였다.

​ 그러나 연산군은 이러한 견제를 더 이상 원치 않았다. 그는 1504년 7월 ‘사헌부가 민간의 계약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이유를 들어 대사헌 김처경 등 10여 명을 체포하고 투옥하는 등 사헌부의 직무를 크게 축소했다. 이어 8월에는 사헌부의 언론·감찰권을 금지시켰으며, 9월에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삼사를 통폐합해  대간(臺諫)*의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제도가 무너진 자리를 채운 것은 견제가 사라진 권력의 폭주였다. 연산군 말기의 폭정은 사치와 향락, 관료 숙청, 민가 철거 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연산군은 1506년 9월 중종반정에 의해 즉위 12년 만에 폐위되고 말았다.

이 오래된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권력의 분산과 견제, 그리고 국민의 감시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약해지면 체제는 균형을 잃는다. 견제 장치가 무력화되는 순간 권력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만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제도 개편, 검찰권 조정, 기관들 간의 권한 재배분과 같은 굵직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어떤 제도의 개혁이든 그 자체로 옳다거나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역사에서 이미 확인된 원칙은 있다. 권력기관이든 행정부든 사법부든, 특정 주체의 힘이 과도하게 집중되거나, 기존의 견제 장치가 약화될 때 그 여파는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연산군이 사헌부를 무력화했던 사례가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도 개편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그 변화가 권력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인가, 혹은 일정 세력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부여하려는 것은 아닌가. 국민들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과연 국민을 위한 개편인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권력은 스스로를 감시하지 않는다. 감시는 제도와 국민의 몫이다.

그렇다고 해서 ‘낡은 제도를 무조건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제도의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왜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제도는 국민을 위해 존재함에도 이따금 권력을 위한 장치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제도 개편이 논의될 때일수록 시민사회, 언론, 사법이 함께 균형 있게 역할을 수행해야 안정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타락한 권력은 민심을 잃는다. 민심을 잃은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연산군의 몰락은 한 개인의 성정(性情) 때문만이 아니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결과였다.

​ 대한민국이 동일한 길을 걷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복잡한 정치적 논쟁이 아니다. 제도가 누구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를 세심하게 확인하고, 그 변화 속에 국민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피는 일이다. 국민들이 외면하는 제도나 그 바탕 위에 건강한 민주주의가 세워진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국민들의 몫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권력자만이 아니다. 그 권력을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따졌던 시민들 역시 역사의 중요한 주인공이다.

*대간: 사헌부, 사간원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타운뉴스 2025.11.17 발행                                       안창해 칼럼


 
Posted : 17/11/2025 7:3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