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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다음의 전장(戰場)은 한반도일 수도 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살펴보는 데에는 두 개의 분석틀이 있다. 하나는 ‘닭과 계란’의 관계처럼 얽힌 양자 간 민족·종교·영토 갈등이라는 전통적인 분석틀이며, 다른 하나는 ‘글로벌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분석틀이다. 과거에는 전통적 분석틀이 유용했지만, 지금은 두 번째 분석틀도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원하는 ‘전체주의 국가들(axis of tyrannies)’이 새로운 ‘악의 축(new axis of evil)’을 구축하여 서방 주도 세계 질서에 도전함으로써 야기된 ‘신냉전 대결’ 시대에 진입한지 오래인데다 중동도 이 대결구도와 무관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냉전’ 구도에서 본다면 동유럽, 중동, 대만해협 그리고 한반도가 ‘4대 화약고(flashpoints)’다. 현상 변경을 원하는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며, 중동에는 이슬람 혁명의 확산을 통해 범이슬람주의의 부상을 재점화시켜 서방의 양향력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의 건재’라는 현상을 무너뜨리려는 이슬람 세력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외치고 있는 중에 대만 해협에 전운(戰雲)이 드리워져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핵무력을 통해 한국을 제압하고 주체 통일의 최대 걸림돌인 한미동맹을 무력화하기 위해 현란한 핵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이 쓴 각본에 따라 하마스가 연출한 ‘계산된 모험’
‘신냉전’ 분석틀로 보면 10월 7일 하마스(Hamas)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은 이란이 쓴 각본에 따라 ‘악의 축’이 후원하고 하마스가 연출한 ‘계산된 모험’이었다. 하마스는 이번 작전에서 외부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수준의 치밀성과 치명성을 과시했는데, 현지에서 북한제 무기들이 발견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을 들고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이미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돌아가는 상황은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이 ‘피의 보복’을 다짐하고 미국이 두 개의 항모전단을 지중해로 파견한 상태에서 이란과 친이란 극단주의 세력들이 개입을 경고하고 있어 제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쩌면 이슬람 세계가 다시 뭉쳐 ‘악의 축’과 손잡고 미·이스라엘 연합군에 대항함으로써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예고했던 ’문명 충돌‘이 실현될 지도 모른다.
물론, 당사국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발본색원하기를 원하지만 보복응징의 강도가 셀수록 이슬람의 단결을 촉발하여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생존 입지를 넓히고자 했던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생존, 확전 방지, 인질 보호 등을 위해 군사력을 보냈지만, 확전을 막지 못하는 순간 중동 전략은 원점으로 후퇴하고, 신냉전 대결 구도에서 미국의 위상은 흔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전으로 확대되기를 원하는 쪽은 하마스와 ‘악의 축’ 국가들일 것이다. 확전의 수혜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수행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고, 중국은 세계의 전략균형을 자국 쪽으로 기울게 할 기회를 가지며, 이란은 이슬람의 맹주로 부상할 기회를 맞을 것이다.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에게는 ’상처뿐인 승리‘가 되겠지만, 그래도 56년 간의 숨막히는 탄압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신형 발사체와 김정은.>
지금은 북한의 오판 억제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신냉전 대결 구도 하에서는 중동의 확전이 지구의 다른 편에 있는 나라들에게 ‘날벼락‘을 날려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의 통일 야심으로부터 생존해야 하는 대만의 고심은 깊어질 것이며, 한국의 핵불안도 심화될 것이다.
평양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원자탄, 수소탄, 증폭분열탄 등과 함께 단중거리 및 대륙간 미사일, 변칙기동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핵어뢰, 전술핵탑재 잠수함 등을 갖춘 을 가진 세계 아홉 번째 핵보유국이며, 2013년 ’자위적 핵보유법,‘ ’2022년 ‘핵무력 정책법’ 등의 제정과 각종 선언을 통해 스스로 핵강국 지위를 선포하고 남쪽을 향해 ‘한미동맹 작동시 선제 핵사용 불사’를 천명하고 있다.
그런 북한이라면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에서 또 다시 발목을 잡히는 경우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여력은 부재할 것으로 오판할 수 있으며, 그 순간부터 한반도는 전쟁의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한국이 북한의 오판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차원과 독자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을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일 수도 있다. 미국에게는 이스라엘의 생존, 가지 지구에서의 인도적 참사 최소화, 미국인 인질 석방, 이란의 개입 억제 등이 화급한 과제이겠지만, 지구의 다른 편의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타파해야 하는 ‘나쁜 현상’들이 있음도 기억해야 하며, 한국은 끊임없이 이를 상기시켜야 한다.
유엔 제재를 무시하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및 미사일 발사와 불법적 무기 거래, 북핵을 비호하기 위한 중·러의 거부권 남용으로 인한 안보리 무력화 등은 반드시 타파되어야 하는 나쁜 현상들이다.
실기(失機)하면 망국을 맞아야 할지도
한국은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식별·수행함에사도 실기하지 않아야 한다. 우선은 국민과 정부 그리고 군은 한반도가 다음 전장에 될 수 있음을 공감해야 하고 군은 그 공감대를 토대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하마스는 불도저로 장벽을 뚫었고, 드론으로 이스라엘의 첨단 지휘통신 시설들을 파괴했으며, 패드글라이드로 전자경비 시스템과 고압선을 뛰어 넘었다. 방어 용량을 초과하는 수천 기의 로켓들을 단시간에 발사하여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을 유린했다.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한다면 이보다 수십 배 더 엄중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국지도발을 결심한다면 백령도와 서해 도서들을 기습 점령한 후 핵위협을 앞세워 점령을 기정사실화하려 할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하마스의 공격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의 피해가 컸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간첩을 잡지 못하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국정원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며, 한미군의 대북 감시정찰 역량을 축소하여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용이하게 해준 ‘9·19 남북군사합의’를 무한정 끌어안고 갈 수도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평화’라는 미명 하에 북한의 눈치를 살피면서 군사력의 양적 축소를 강행하고 군의 사기와 기강을 허문 전임 정부의 국방개혁을 청산하고 강군 건설에 나서는 일도 막중한 과제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치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자고로 선진국일수록 국민은 안보 앞에서 하나가 되고, 튼튼한 안보는 주권국이 추구해야 하는 기본이다. 대북정책은 그 기본 위에서 유화든 접촉 유지든 또는 봉쇄든 상황과 필요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본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평화 파괴 세력’으로 매도하고 윽박지르는 정치인들이 건재하는 한 안보 앞에 하나가 되는 국민도 없다.
2023-11-01
김태우 칼럼니스트.
전 통일연구원장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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