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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뉴스 안창해 칼럼 자력강생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상회담 중에 고성을 지르며 오만상을 찡그리고 대화하다가 화가 난 손동작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생중계되었다. 본래 녹화 방영할 예정이었으나 회담 몇 시간 남겨두고 생중계하기로 했다고 한다. 회담은 결렬되었고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 곧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TV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교 이전에 개인적인 만남이라 할지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시중 언론들은 도움을 청하러 와서 고개를 바짝 치켜든 젤렌스키 잘못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언론은 오만한 트럼프 대통령, 대화 중에 끼어든 JD 밴스 부통령의 잘못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필자는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엄청난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지원을 했고, 유럽연합의 방위비를 부담해온 미국 대통령으로서 대가 없는 지원을 계속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트럼프 대통령은 평생을 돈 버는 일을 했던 사업가였다. 그 누구보다도 손익계산에 철저한 사람이다. 체면이나 겉치레보다는 실리를 우선해왔다. 대통령으로서 폼이나 잡고 적당히 4년 임기나 채우다 내려올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막대한 재정 적자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를 마음껏 누리며 즐기고 있는 듯하다.
또 젤렌스키는 원조를 구하러온 약소국 대표라고 해서 주눅 들지 않았다. 젤렌스키는 자국의 입장과 2014년 러시아의 침략과 휴전, 2022년 침공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통해 느꼈던 러시아의 공격성을 지적했다. 러시아를 달래다 보면 미국도 미래에 그 위협이 닥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격분한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3,500억 달러를 지원했다면서 이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고 있는가 물었고 회담은 파행되었다.
필자는 이 파행이 어떤 한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보기 흉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감추지 않고 온 세상에 드러내 보임으로서 얻으려 했던 것이 따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려는 유럽연합(EU)에 퍼붓는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더 이상 감수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한 셈이 되었다. 또 젤렌스키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트럼프와의 회담장을 빠져나와 곧바로 유럽연합 회의장으로 달려가 유럽 정상들로부터 자신이 백악관에서 당했던 수모에 대한 위로를 받으면서 막대한 지원을 약속 받았기 때문이다. 친 러시아 경향의 헝가리 대통령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약속했고, 구체적으로 그 규모까지 약속 받는 성과를 얻었다. 단지 유럽연합 국가들이 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지 걱정되기는 한다. 각국이 저마다 처한 국내외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약속은 했지만 제대로 수행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번 회담의 파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스스로 힘을 키워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자력갱생은 자신의 힘만으로 생존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도전을 극복하려는 행동 또는 정신을 뜻한다. 오늘의 우리에게 딱 맞는 시기적절한 구호이다. 자력갱생!
유럽연합 국가들과 대만, 일본, 한국, 필리핀 등을 비롯해 미국의 지원 없이 자력으로 방위가 어려운 수많은 국가들은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우방이나 동맹이라는 사실만 믿고 의지하고 기대려 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음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자력갱생을 통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주국방, 외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자립경제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회담 파행'에 대해 유감을 표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양국 간 광물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어서 3월 중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각료들이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기로 했다. 설전 끝에 성과 없이 결렬된 지 2주 만에 회담을 다시 한다 하니 험악했던 양국 관계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성사되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이 중동의 평화, 극동아시아의 평화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본래 ‘자력갱생’이란 표어는 1930년대 초반에 일본의 사이토 마코토 내각이 내걸었던 정치적 슬로건이었다. 그 후 1945년 8월 모택동이 연안에서 공산당 간부회의를 할 때 들고 나와 중국 공산당 정부의 슬로건으로 사용되었다. 북한에서는 1960년대 들어서서 자력갱생의 구호를 수용하여 주체사상의 지도적 지침인 ‘경제에서의 자립’을 제시하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 소련이나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북한은 정치적 구호로 이용해왔다. 즉, 소련과 중국 등의 경제지원을 받으면서도 그 지원으로 인해 정치적인 독자성을 훼손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운뉴스 칼럼 2025.3.10 1567 호 발행인 안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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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