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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자격 - 청문회에 선 동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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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자격 - 청문회에 선 동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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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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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자격 - 청문회에 선 동창생
연륜이 깊어질수록 이름 하나에도 오래된 추억이 묻어난다. 세월이란 강을 건너오며 수많은 얼굴과 인연들이 스쳐 갔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에 유난히 빛이 배어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호명(呼名)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웃음, 그리고 그 시대가 지닌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 교정을 밟으며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 모두 가깝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언론을 통해 동창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무언지 모를 감정이 밀려온다. 이름 하나가 건네는 울림은 때때로 기억보다 더 강렬하다.

얼마 전, 내게는 잊힌 듯했던 한 동창생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장관 지명을 받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모습이었다. 세상의 시선은 가혹했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비판과 논란은 그가 걸어온 길의 한 단면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동창생으로 측은함이 앞섰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누군가는 학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기업가. 또 다른 이는 교단에서, 혹은 사회 운동의 한복판에서 삶을 이어왔다. 나 역시 이국땅에서 또 다른 여정을 살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표를 살다가 불현듯 이름 하나로 다시 마중한 것이다.

세상은 장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것은 당연하다. 공직자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이다.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묻는다. 장관의 자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학벌과 경력의 화려함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사람이 삶 속에서 보여준 철학과 실천이 더 중요한가?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는 교육 현장에서 ‘정의’와 ‘양심’을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체제와 충돌하며 감옥을 드나들었고, 교사라는 명확한 직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단을 떠나지 않았다. ‘교육은 사회를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때로는 투박하고 고집스러워 보였을지 몰라도, 그는 적어도 교육을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해방의 길로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을 장관으로 세울 만한 철학이 아니겠는가.

물론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청문회 자리에서 드러난 여러 의혹과 논란이 사실이라면 그 역시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 동창이라 하여 감싸고도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를 향한 무차별적으로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장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깨끗한 이력만을 요구하는가, 아니면 흔들림 없는 가치와 철학을 요구하는가.

동창회 단톡방도 그의 지명을 두고 요란했다. 어떤 이는 부끄럽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자랑이라고 했다. 심지어 동창생인 그가 장관 후보가 된 것 자체가 ‘치욕’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 사건이나 편견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생의 궤적은 늘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진정한 검증은 그가 어떤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그 철학이 교육이라는 공적 영역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따져 묻는 일이어야 한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다. 한 사회가 어떤 교육자를 장관으로 세우느냐에 따라 미래 세대의 가치가 달라진다. 시험 성적만 중시하는 관료형 장관을 원하는가, 아니면 인간다운 삶을 가르치려는 교육 철학자를 필요로 하는가. 그 선택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돌아보면 청춘의 시간은 짧고 눈부셨다. 교실 창가에 스며들던 햇살, 난로 위에서 데워지던 도시락, 운동장에서 함께 뛰던 모습.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순간들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 친구의 이름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섰다. 청춘의 뜨거움으로 외쳤던 교육 철학이 세월을 지나 지금도 살아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장관의 자격이 아닐까.

청문회를 마치고 나오는 그의 뒷모습을 화면으로 보았다. 작은 가방 하나가 그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내 눈에는 그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철학, 그리고 교육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의 무게였다. 국민은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 무게를 짊어진 자의 진정성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나는 오래된 이름 하나를 다시 불러보며, 삶과 사회, 그리고 교육의 의미를 되새긴다. 인연은 우리를 다시 불러내고, 이름은 세월을 관통해 우리를 이어준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씩 이름을 되찾아가며,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성찰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오늘 친구의 이름 앞에서 묻는다. 장관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의 힘이 아니라, 교육의 철학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 속에 우리의 청춘이 있고, 시대가 있고, 미래 세대가 담겨 있지 않은가.

타운뉴스 2025.9.

안창해 칼럼.         안창해 발행인

 
Posted : 12/09/2025 8:3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