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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계시판 - Mulidae Forum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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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Mulidae Discussion Board</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lastBuildDate>Tue, 30 Jun 2026 20:33:18 +0000</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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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 김 의원 본선 진출과 한인 정치력 신장</title>
                        <link>https://mulidae.com/community/jayoo/%ec%98%81-%ea%b9%80-%ec%9d%98%ec%9b%90-%eb%b3%b8%ec%84%a0-%ec%a7%84%ec%b6%9c%ea%b3%bc-%ed%95%9c%ec%9d%b8-%ec%a0%95%ec%b9%98%eb%a0%a5-%ec%8b%a0%ec%9e%a5/</link>
                        <pubDate>Tue, 16 Jun 2026 05:00:36 +0000</pubDate>
                        <description><![CDATA[영 김 의원 본선 진출과 한인 정치력 신장
지난 6월 2일 예비선거 개표 현황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몇몇 어르신들이 필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 김 후보가 2등 했으니 떨어진 것 아닌가요?” 캘리포니아의 Top-Two 제도에서는 정당과 관계없이 많은 표를 얻은 상위 두 후보가 본선에 진출한다는 설명을 드리자,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돌...]]></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span>영 김 의원 본선 진출과 한인 정치력 신장</span></div>
<p><span>지난 6월 2일 예비선거 개표 현황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몇몇 어르신들이 필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 김 후보가 2등 했으니 떨어진 것 아닌가요?” 캘리포니아의 Top-Two 제도에서는 정당과 관계없이 많은 표를 얻은 상위 두 후보가 본선에 진출한다는 설명을 드리자,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짧은 대화였지만, 그 질문 속에는 한인 사회가 미국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span></p>
<p><span>개표 결과에 의하면 CA-40 선거구 본선은 같은 공화당 소속 켄 칼버트 의원 과의 대결로 치러진다. 새롭게 재획정된 선거구는 영 김 의원이 활동해온 오렌지카운티뿐 아니라 켄 칼버트 의원이 1992년 첫 당선 이후, 17선을 하고 있는 리버사이드카운티 지역이 넓게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당 대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 기반과 정치적 네트워크를 가진 두 공화당 현역 의원들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span></p>
<p><span>영 김 의원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접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며 경쟁력을 입증해 왔지만, 이번에는 선거구 조정에 의해 새로운 유권자 지형 속에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 특히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비(非)한인인 만큼, 선거의 성패는 특정 민족 커뮤니티의 지지 여부보다는 ‘공화당 내부 당심 및 중도 표심’을 누가 잡느냐‘와 ‘누가 더 지역 주민들과 밀착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span></p>
<p><span>영 김 의원의 강점은 비교적 온건한 보수 성향이며, 이민자 출신이라는 배경, 그리고 소상공인과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계층과 소통해 왔다는 점이다. 반면 상대 후보는 연방하원의원 17선 관록의 정치 경험을 통해 단단한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어 결코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이번 선거는 어느 후보가 더 넓게 유권자 연합을 구축하느냐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span></p>
<p><span>그러나 이번 선거의 의미를 특정 후보 개인의 당락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인 사회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어떤 정치적 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느냐’이다. 정치권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인구 규모가 아니다. 등록 유권자가 얼마나 되는지, 실제 투표 참여율은 어떤지, 선거 때마다 얼마나 많이 참여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 다시 말해 정치적 영향력은 인구수가 아니라 참여율에 의해서 결정된다.</span></p>
<p><span>바로 이번 선거를 통해 한인 사회가 잘 짜인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유권자 공동체임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권을 취득했으나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은 주민들에게 등록을 독려하고, 20~30대 유권자들의 참여를 확대하며, 우편투표와 조기투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떠나 한인 사회 전체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span></p>
<p><span>또한 정치 참여는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사회 공청회 참석, 시의회와 교육위원회 회의 방청, 주민 의견 제출, 자원봉사 활동 등 일상적인 시민 참여 역시 중요한 정치 활동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선거철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지역사회에 얼마나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참여하느냐에 의해 유지된다.</span></p>
<p><span>특히 한인 사회는 이제 연방의원 한두 명을 배출하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차세대 정치인과 공공 지도자를 육성하는 장기적인 비전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시의원, 교육위원, 각종 위원회 위원, 비영리단체 지도자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이 꾸준히 성장할 때 정치적 영향력도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span></p>
<p><span>아울러 우리는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물론 다양한 인종·민족 공동체와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커뮤니티들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에 머물지 않고 지역 전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연대를 구축해 왔다. 치안, 교육, 교통, 소상공인 지원, 주거 문제 등 지역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신뢰와 영향력이 형성된다.</span></p>
<p><span>따라서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 영 김 의원의 본선 진출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한인 사회가 얼마나 높은 투표 참여율과 시민 의식을 보여주고, 얼마나 조직적이고 책임 있는 공동체로 성장하느냐에 있다. 선거는 하루로 끝나지만 정치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꾸준한 참여와 책임 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장기적 투자 속에서 비로소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형성된다.</span></p>
<p><span>이번 11월 3일 선거를 향한 적극적인 참여가 특정 후보의 승패를 넘어, 한인 커뮤니티와 우리 지역 사회가 하나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발판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과 참여 문화야말로 앞으로 한인 정치력 신장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span></p>
<p>           타운 뉴스   2026.6.5. Vol 1633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옮긴이 문병길           </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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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창해 칼럼 : 팔전구기(八顚九起) 산정무한(山頂無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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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Jun 2026 05:34:50 +0000</pubDate>
                        <description><![CDATA[팔전구기(八顚九起) 산정무한(山頂無限)
2010년 12월, ‘타운 뉴스’ 발행인 칼럼(제 823호)에 미국에 찾아온 중학교 동창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친구는 사업 실패를 겪었고, 병으로 인해 한동안 휠체어 생활을 했으며, 재활 치료 끝에 겨우 걸을 수 있게 된 상태였다. 함께 눈 덮인 마운틴 발디의 아이스하우스 캐넌 트레일을 걸어 새...]]></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span>팔전구기(八顚九起) 산정무한(山頂無限)</span></div>
<p>2010년 12월, ‘타운 뉴스’ 발행인 칼럼(제 823호)에 미국에 찾아온 중학교 동창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친구는 사업 실패를 겪었고, 병으로 인해 한동안 휠체어 생활을 했으며, 재활 치료 끝에 겨우 걸을 수 있게 된 상태였다. 함께 눈 덮인 마운틴 발디의 아이스하우스 캐넌 트레일을 걸어 새들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길은 빙판이었다. 친구는 넘어졌다. 또 넘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여덟 번이나 넘어졌다. 그는 넘어질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 친구는 어디서든 살아남을 사람이다.”</p>
<div>
<p><span>산길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친구가 말했다. “한국에서 실패했고 중국에서도 실패했지만 미국에서는 성공할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물론이다. 너는 할 수 있다.”</span></p>
<p><span>그날 이야기를 칼럼으로 썼던 것이 벌써 15년 6개월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은 그 친구의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독자 여러분께 그 후일담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span></p>
<p><span>칼럼 속 주인공은 지금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미국 정착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LA에서 그의 삶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값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시민권을 취득했고, 오랫동안 트레일러 운전사로 일하며 성실하게 삶을 일구었다. 은퇴한 뒤에도 한동안 우버 운전을 하며 부지런히 생활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은퇴하여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있다. 은퇴 후에 그가 보여준 학구적인 탐구 정신과 삶의 태도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span></p>
<p><span>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삶의 마침표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친구에게 은퇴는 또 다른 출발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들을 하나씩 꺼내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친구들과 이웃에게 선물했다. 정성껏 만든 십자가에는 손재주뿐 아니라 그의 따뜻한 마음도 담겨 있었다. 우리 집에도 그가 만든 십자가가 여러 개 있다.</span></p>
<p><span>주변 사람들에게 십자가 선물을 다 나누어준 뒤에도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하모니카였다. 처음에는 만날 때마다 취미 삼아 시작했다며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 눈에 띄게 늘었다. 급기야 그가 속한 하모니카 팀이 LA의 프로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연주하는 기회까지 갖게 되었다. 그와 그의 팀이 작은 악기 하나로 수많은 관중 앞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 보며 나 또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span></p>
<p><span>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친구가 요즘 가장 열중하는 분야는 그림이다. 그림이라고 하면 흔히 타고난 재능을 먼저 떠올리지만, 친구는 정식으로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연필 잡는 법부터 차근차근 익혔고, 지금은 수채화에 깊이 빠져 있다. 얼마 전 내가 공원에서 촬영한 짧은 동영상을 친구에게 보내준 적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지저귀는 평범한 장면이었다. 며칠 뒤 친구가 카카오톡에 그림 한 점을 올렸다. 동영상 속 한 순간이 수채화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span></p>
<p><span>푸른 하늘과 늘어진 가지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작은 새 한 마리. 단순히 풍경을 옮겨 놓은 그림이 아니었다.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평온한 마음이 그림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정말 잘 그렸구나.’</span></p>
<p><span>15년 전 눈길에서 여덟 번이나 넘어지던 그 친구가 이제는 붓을 들고 또 다른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인생은 빼어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삶에 임하는 특별한 자세로 인해 더 아름답게 우리에게 다가온다.</span></p>
<p><span>사업에 실패해도 다시 시작했고, 병으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새로운 나라에 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고, 은퇴 후에는 또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남들이 마침표를 찍는 나이에 그는 여전히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며 계속해서 쉼표를 찍고 있다.</span></p>
<p><span>나는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15년 전 눈 덮인 산길이 떠오른다. 그때 친구는 여덟 번 넘어졌다. 그러나 여덟 번 넘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이다.</span></p>
<p><span>어쩌면 내가 15년 전 칼럼 제목으로 썼던 ‘산정무한(山頂無限) 팔전구기(八顚九起)’는 그날 산길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의 인생을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산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산이 보인다. 인생도 그렇다.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친구는 지금 새로운 산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고 있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15년 전 내가 했던 말을 오늘도 그대로 전한다. “물론이다. 너는 할 수 있다.”</span></p>
</div>
<p>             타운뉴스 2026.6. 1632호  안창해 칼럼           발행인 안창해</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옮긴이 문병길</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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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공한 나라, 불안한 미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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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Jun 2026 05:09:52 +0000</pubDate>
                        <description><![CDATA[한국에 다 녀온 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한국은 어떠냐?”, “불편한 점은 없었냐?” “지난번 갔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있느냐?”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느낀 한국의 발전상과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하면 미국 친구들은 조용히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한인 어르신과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한국에 다 </span>녀온 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한국은 어떠냐?”, “불편한 점은 없었냐?” “지난번 갔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있느냐?”</p>
<p><span>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느낀 한국의 발전상과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하면 미국 친구들은 조용히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한인 어르신과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고, 정치 이야기나 자신의 관심사로 화제를 돌리려 했다. 어쩌면 그만큼 모두가 고국을 걱정하며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타국에 살고 있어도 조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만큼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모양이다.</span></p>
<p><span>​ 오는 6월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고, 반도체·배터리·조선·자동차·AI 산업에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K-팝과 드라마, 영화가 이끄는 문화적 영향력 역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span></p>
<p><span>​ 불과 70여 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했던 나라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쳐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 놀라운 역사다. 대한민국 국민이 보여준 근면함과 교육열,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저력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span></p>
<p><span>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이 깊은 구조적 위기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초저출산과 고령화, 청년세대의 불안, 부동산 문제, 지방 소멸, 정치적 양극화가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span></p>
<p><span>수치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화려한 선진국이지만 국민 다수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특히 높은 집값과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린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지방은 빠른 속도로 소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span></p>
<p><span>외교·안보 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다. 미국과의 동맹은 여전히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축이다. 북한의 핵 위협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최대 교역국 중 하나다. 미국 없이는 안보를 지키기 어렵고, 중국 없이는 경제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span></p>
<p><span>일본과의 협력 기조가 강화되고 있지만 역사적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러시아·중국과 밀착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시험대 위에 서 있다.</span></p>
<p><span>​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 정부는 실용주의와 위기관리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으며, AI와 첨단산업 육성, 자본시장 활성화 등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 강화 노력과 사회안전망 확대 정책 역시 일정 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span></p>
<p><span>​ 그러나 한계 또한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과제인 저출산, 연금, 교육, 노동시장 개혁에서는 아직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세대·성별·진영 간의 갈등은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협치보다 대립에 더 익숙해져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정책의 방향이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국민의 피로감 또한 커지고 있다.</span></p>
<p><span>대한민국의 미래는 이제 정치권이나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저출산, 지방 소멸, 연금 개혁 같은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려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정파를 넘어선 장기 전략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span></p>
<p><span>​ 우리는 지금 단순한 선진국을 넘어 ‘성숙한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높은 교육 수준과 강한 적응력,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 등의 큰 저력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영논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적 통찰과 실천이다.</span></p>
<p><span>​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드는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살리고,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준엄한 선택에서 시작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국민의 현명한 선택에 달려 있다.</span></p>
<p>           타운뉴스 2026.6 제  1637 호     안창해 칼럼                                      안창해</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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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투키디데스의 함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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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May 2026 18:33:45 +0000</pubDate>
                        <description><![CDATA[투키디데스의 함정

국제정치학의 오래된 유령이 다시 미·중 정상회담 테이블 위를 헤집고 다녔다. 지난 5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에서 시진핑이 꺼내든 화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었다. 이 표현은 이제 단순한 역사 인용이나 외교적 수사를 넘어섰다. 시진핑이 국제무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dir="auto">
<div>투키디데스의 함정</div>
</div>
<div dir="auto">국제정치학의 오래된 유령이 다시 미·중 정상회담 테이블 위를 헤집고 다녔다. 지난 5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에서 시진핑이 꺼내든 화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었다. 이 표현은 이제 단순한 역사 인용이나 외교적 수사를 넘어섰다. 시진핑이 국제무대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집요하게 반복하는 속내에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거대한 구상이 담겨 있다.<br /><br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과 그것이 스파르타에 준 두려움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훗날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 개념을 현대 국제정치에 적용해,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충돌한 역사적 사례 16건 중 12건이 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짚어냈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학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어쨌든 이 개념은 오늘날 미·중 전략 경쟁을 설명하는 대표적 프레임이 되었다.<br /><br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 자체가 아니라 시진핑이 왜 이 프레임을 반복하느냐에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자국을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이라 부르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르다. 경제·기술·군사·외교 모든 영역에서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시진핑이 트럼프 앞에서 이 함정을 언급하는 순간, 중국은 미국의 질서 아래 속한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세계를 양분할 수 있는 경쟁국가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셈이 된다.<br /><br />따라서 시진핑이 말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는 발언은 평화를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 미국을 향한 강력한 경고다. 베이징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첨단기술 제재, 공급망 재편, 인도·태평양 동맹 강화 등을 중국의 부상을 가로막는 전략적 봉쇄로 인식한다 즉, 향후 충돌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중국의 팽창이 아니라 미국의 두려움과 견제에 있다는 명분을 국제사회에 선제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이다.<br /><br />겉으로는 “전쟁을 피하자”는 책임 있는 언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라”는 압박이다. 국제사회 일부에서 미국을 기득권에 집착하는 불안한 패권국으로 보고, 중국을 충돌을 피하려는 이성적 도덕국가로 오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프레임은 중국 내부 정치와도 맞물린다. 미국과의 갈등을 “서구 패권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서사 아래 인민의 민족주의 결집은 강화되고 내부 불만은 외부로 흡수된다.<br /><br />그러나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중은 군사적으로 경쟁하면서도 반도체·무역·금융·인공지능 등 글로벌 공급망으로 깊게 얽혀 있다. 완전한 디커플링(분리)은 양국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대만이다. 중국은 대만 통일을 민족적 과업이자 주권 문제로 보지만, 미국은 대만을 인도·태평양 질서와 첨단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여긴다.<br /><br />보다 더 큰 문제는 양국 모두 자신을 ‘방어자’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베이징은 중국의 부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믿는다. 서로를 도발자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오판으로 언제든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br /><br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부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니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진핑이 던진 프레임의 기만성을 냉정하게 분리해내야 한다. 미·중 경쟁은 단순한 강대국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규범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힘의 우위에 기반한 권위주의 체제 중 미래 세대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거대한 가치 체계의 충돌이자 문명적 분기점이다. 시진핑이 말하는 '함정의 회피'는 결국 인류의 보편적 규칙을 중국식 권위주의 앞에 양보하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br /><br />세계는 더 이상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리바이던(Leviathan)의 장기판이나 체스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안이한 이분법은 이미 유효기한이 끝났다. 기술이 곧 주권이 된 지금, 전략적 모호성은 기회주의라는 오명과 함께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는 독약이 될 뿐이다.<br /><br />이제 한국을 비롯한 가치 공유국들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패권 논리에 종속되는 대신 규범과 규칙을 중시하는 다자간 연대를 견고히 구축해야 한다. 특정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다변화 전략과 대체 불가능한 '독자적 핵심 기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어야만 고래들의 싸움터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br /><br />시진핑이 던진 질문, "미국은 중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진짜 답은 미국 혼자 내리는 것이 아니다. 패권의 성벽을 무너뜨리려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세계 중견국들이 자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단단한 연대의 방파제를 세울 수 있느냐에 21세기 세계질서의 진정한 명운이 달려 있다.</div>
<div dir="auto"> </div>
<div dir="auto">타운 뉴스    1926년 5/25 1630 호 안창해 칼럼                                                                     발행인 안창해</div>]]></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Mulidae Admi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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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권봉성의 고국명산 순례 소식</title>
                        <link>https://mulidae.com/community/jayoo/%ea%b6%8c%eb%b4%89%ec%84%b1%ec%9d%98-%ea%b3%a0%ea%b5%ad%eb%aa%85%ec%82%b0-%ec%88%9c%eb%a1%80-%ec%86%8c%ec%8b%9d/</link>
                        <pubDate>Fri, 22 May 2026 05:30:24 +0000</pubDate>
                        <description><![CDATA[지리산,덕유산,대륜산,계룡산,속리산,월악산에 이어 고국 명산 순례 7 번째,소백산에 올랐다!만발한 철쭉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옮긴이 문병길]]></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right">지리산,덕유산,대륜산,계룡산,속리산,월악산에 이어 고국 명산 순례 7 번째,소백산에 올랐다!<br />만발한 철쭉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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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옮긴이 문병길</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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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Where the self is not, love is</title>
                        <link>https://mulidae.com/community/jayoo/where-the-self-is-not-love-is/</link>
                        <pubDate>Sun, 17 May 2026 04:33:23 +0000</pubDate>
                        <description><![CDATA[Where the self is not, love is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연인이나 가족에게는 물론, 친구와 공동체, 심지어 국가와 어떤 신념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사랑을 운운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한 자리에는 종종 상처와 실망, 소유와 갈등이 뒤따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왜 두려움도 함께 커지는가. 어쩌면 우...]]></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span>Where the self is not, love is</span></div>
<p><span>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연인이나 가족에게는 물론, 친구와 공동체, 심지어 국가와 어떤 신념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사랑을 운운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한 자리에는 종종 상처와 실망, 소유와 갈등이 뒤따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왜 두려움도 함께 커지는가.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span></p>
<p>&nbsp;</p>
<p><span>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평생 이 문제를 탐구한 사상가였다. 그는 사랑을 감정의 고양이나 관계의 기술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자아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의외로 현실적인 질문이 된다.</span></p>
<p><span>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기대와 기억, 비교가 숨어 있는가.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나의 경험과 상처, 욕망 등을 통해 해석한다. 상대의 말보다 내가 가진 이미지가 먼저 반응하고, 현재의 관계보다 과거의 기억이 더 크게 작동한다. 사랑의 이름 아래 관계가 점점 피로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 자체보다 ‘나’라는 중심이 관계를 지배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span></p>
<p><span>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의 갈등이 바로 이 자아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자아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다. 기억과 경험, 인정받고 싶은 욕구,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심리적 구조다. 이 구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비교하며, 판단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와 긴장이 생겨난다.</span></p>
<p><span>흥미로운 점은 그가 자아를 억누르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애쓰는 방식 속에 또 다른 자아의 욕망이 숨어 있다고 보았다. 질투를 없애려는 노력조차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결보다 ‘관찰’을 강조했다.</span></p>
<p><span>예를 들어 질투가 일어나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대개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는 내 감정을 서둘러 고치려 하지 말고, 조용히 바라보라고 말한다. 왜 불안이 생겼는지, 무엇이 상처받았는지, 어떤 기억이 현재를 왜곡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라는 것이다. 판단 없이 바라보는 순간, 감정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억압할 때는 더 격해지던 감정이, 깊이 이해될 때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span></p>
<p><span>그가 말한 사랑은 바로 이런 이해의 고요함 속에서 나타난다. 두려움과 소유의 욕망이 약해질수록, 인간은 상대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게 된다. 그때 비로소 관계는 지배와 의존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진다. 사랑은 상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존재하도록 허용할 때 형성된다.</span></p>
<p><span>이 통찰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타인의 삶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 이미지 속 행복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한다. 관계조차 효율과 만족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얼마나 나를 충족시키는지가 우선이 되고, 기대가 무너지면 관계도 쉽게 흔들린다. 사랑이 점점 교환과 소비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span></p>
<p><span>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상대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만든 해석을 보고 있는가. 관계의 많은 갈등은 실제 상대보다,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대화는 닫히고, 이해보다 판단이 우선한다. 그러나 자기 생각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관계는 다시 자유를 얻는다.</span></p>
<p><span>결국 사랑은 어떤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비교, 소유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깊이 이해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삶의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사랑은 획득의 문제가 아니라 비움의 문제다. 무엇을 더 가지느냐보다 무엇을 내려놓느냐에 의해 결정된다.</span></p>
<p><span>“Where the self is not, love is.”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이상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만큼만 사랑할 수 있다는 통찰에 가깝다. 사랑은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깨어 있음이 널리 퍼지고 깊어질수록, 개인의 관계를 넘어 가족, 공동체와 사회 역시 사랑이 넘치는 밝고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span></p>
<p>                                                       타운뉴스 칼럼   2026.5 안창해 발행인</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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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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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징을 넘어 전략으로 - 미셀 스틸 대사 지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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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8 Apr 2026 20:16:00 +0000</pubDate>
                        <description><![CDATA[상징을 넘어 전략으로 - 미셀 스틸 대사 지명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셸 스틸 전 연방하원의원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했다는 소식은 한미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년 3개월 이상 공석이던 자리에 정치인 출신, 그것도 한국계 인사가 낙점됐다는 점에서 상징성과 기대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감정...]]></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span>상징을 넘어 전략으로 - 미셀 스틸 대사 지명</span></div>
<p><span>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셸 스틸 전 연방하원의원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했다는 소식은 한미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년 3개월 이상 공석이던 자리에 정치인 출신, 그것도 한국계 인사가 낙점됐다는 점에서 상징성과 기대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감정적 환영과는 별개로 이 인사가 갖는 실제적 의미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span></p>
<p>&nbsp;</p>
<p><span>미셸 스틸 지명의 1차적 의미는 ‘상징성’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실향민의 딸로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하고,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주해 정치권에서 커리어를 쌓은 그의 이력은 한미 양국을 잇는 문화적 가교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한국어·일본어·영어 3개 국어 구사 능력과 정서적 이해는 외교 현장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California State Board of Equalization 위원으로서의 경력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재정·세무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span></p>
<p><span>하지만 이번 인사를 단순히 ‘우호적 신호’로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의 대사 임명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정치적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미셸 스틸은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진영과 정치적 코드가 맞는 인물로 평가받아 왔으며, 이는 곧 이번 지명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즉, 한국을 배려한 인사라기보다 미국의 정책 방향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카드라는 말이다.</span></p>
<p><span>그렇다면 실제 한미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먼저 안보 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이미 구조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주한미군과 확장억제 체계는 특정 인물에 따라 흔들릴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와 같은 이슈는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스틸의 개인적 관심사이자 공화당 외교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span></p>
<p><span>실제로 스틸 전 의원은 의회 활동 기간 내내 북한 인권 문제의 강경한 옹호자였다. 그녀는 “나의 부모는 북한에서 사회주의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일구었다. 나는 사회주의의 위협을 잘 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중국 내 탈북민 보호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법안을 주도했다. 2024년에는 탈북민 망명 보호 강화와 중국 내 탈북민 인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을 거듭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은 앞으로 주한대사로서 북한 인권 문제를 한미 협의 테이블에 보다 구체적으로 올릴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span></p>
<p><span>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경제다. 향후 한미 관계는 안보보다 경제에서 더 많은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배터리, 공급망 재편 등 핵심 산업에서 미국은 이미 ‘자국 중심 재편’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무·재정 전문가 출신 대사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역 불균형, 투자 조건, 산업 정책 등에서 한국에 대한 요구와 압박이 보다 구체적이고 정교해질 가능성이 높다. 스틸의 재정 전문성은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한국 산업 현장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span></p>
<p><span>대중국 정책 역시 가장 큰 변수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중국 견제에 대한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그 선택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셸 스틸 체제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보다 직설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그녀는 의회에서 중국 관련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다. 캘리포니아 항구와 대학,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 잠재적 영향력을 폭로하고, 대만 민주주의 지원 법안과 중국 연계 대학에 대한 연방 자금 제한 조치를 주도했으며, “아시아 국가들의 자유를 위해 중국에 맞서 싸우자”고 공개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과 입법 행보는 앞으로 주한대사로서 한국 정부에 중국 견제 동참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한국 외교의 전략적 유연성을 시험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span></p>
<p><span>외교 스타일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직업 외교관이 조율과 균형을 중시한다면, 정치인 출신 대사는 메시지와 속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과 압박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때로는 협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되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마찰을 키울 가능성도 내포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적 외교’ 스타일과 맞물리면 한미 간 소통 속도는 빨라지되, 한국 측의 사전 조율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span></p>
<p><span>이번 인사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도전’이다. 한국계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낙관하기에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한미동맹은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움직이며, 미국의 기본 기조는 언제나 자국 우선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번 변화를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스틸 대사의 재정 전문성을 활용한 선제적 협상 채널을 구축하고, 중국 관련 압박에 대해서는 국익 중심의 명확한 원칙을 미리 세워야 한다.</span></p>
<p><span>지금 필요한 것은 기대를 경계하는 냉정함과 동시에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적 사고다. 감정적 환영을 넘어 냉정한 분석과 치밀한 대응이 뒤따를 때, 이번 인사는 비로소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span></p>
<p>    타운뉴스 2026 4 13  1624호    안창해 칼럼</p>
<p>----------------------------------------------</p>
<p>옮긴이 문병길</p>
<p>&nbsp;</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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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란 전쟁, 승리보다 출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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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6 Apr 2026 04:53:49 +0000</pubDate>
                        <description><![CDATA[이란 전쟁, 승리보다 출구

세상의 모든 전쟁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중동에서 동시에 그 반복을 목격하고 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갈등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전쟁은 언제나 유사한 경로를 따라 흘러간다.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div>이란 전쟁, 승리보다 출구</div>
</div>
<p><span>세상의 모든 전쟁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중동에서 동시에 그 반복을 목격하고 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갈등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전쟁은 언제나 유사한 경로를 따라 흘러간다.</span></p>
<p><span>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분명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초기의 기동전은 사라지고 전선은 고착화되었으며, 전쟁은 철저한 소모전으로 변했다. 러시아는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했고, 우크라이나 역시 버텨냈지만 그 대가는 막대했다. 전쟁의 본질은 이미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로 바뀌었다.</span></p>
<p><span>이 구조는 명확한 결과를 낳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점점 줄어든다. 전쟁은 길어질수록 승리의 의미 자체를 약화시키고, 결국 모두를 소모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span></p>
<p><span>이러한 틀은 현재 중동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란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갈등, 그리고 그 배후에 얽힌 미국과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는 단순한 충돌을 넘어 복합적인 구조로 확장되었다. 2월 말 미·이스라엘의 직접 타격과 이란의 보복, 대리전, 해상 긴장 등으로 전선이 급속히 분산되면서 에너지 공급망까지 흔들렸다. 최근 파키스탄 중재 휴전 합의가 나왔으나, 레바논 등 잔여 긴장이 여전하다.</span></p>
<p><span>초기 군사적 대응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는 적응하고 대응 방식은 진화한다. 그 결과 전선은 넓어지고, 충돌은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확인된 패턴이다.</span></p>
<p><span>두 전쟁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빠른 승리를 전제로 시작된 전략이 장기화되면서 변질되었다. 둘째, 외부 변수의 개입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서방의 지원이, 중동에서는 주변국과 국제 정세가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셋째, 경제적 부담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사비를 넘어 에너지, 물류, 금융 시장까지 충격이 확산된다.</span></p>
<p><span>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비교적 명확한 전선과 영토를 둘러싼 충돌이라면, 중동의 갈등은 훨씬 더 비대칭적이고 분산된 형태를 띤다. 다양한 세력과 지역이 얽힌 복합 전장이라는 점에서 파급력 또한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다. 특히 해상로와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긴장은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요소다.</span></p>
<p><span>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전쟁이 향하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장기화될수록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손실만 누적되는 구조로 빠져든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교한 군사적 타격이라도 그것이 전쟁의 종결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span></p>
<p><span>문제는 시간이다.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의 폭을 좁힌다. 초기에는 가능했던 정치적 해법이 점점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더 큰 비용을 치르는 군사적 대응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다.</span></p>
<p><span>현재 중동 상황은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소모전으로 접어들 위험이 여전하다. 충돌이 반복되고 긴장이 누적될수록 상황이 통제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번 그 선을 넘어서면 전쟁은 전략이 아니라 관성에 의해 지속된다.</span></p>
<p><span>최근에는 긴장 완화를 위한 외교적 접촉과 중재 시도, 휴전 합의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를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이러한 움직임 자체는 분명 중요한 신호다. 중요한 것은 결과의 내용보다, 전쟁의 방향을 바꾸려는 의지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얻을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가능한 한 빨리 출구를 찾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쪽의 패배가 아니라, 모두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결단이다.</span></p>
<p><span>전쟁은 언제나 ‘조금만 더’라는 유혹 속에서 길어진다. 그러나 그 ‘조금’이 쌓이면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우리는 이미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span><br /><span>지금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 더 늦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바로 그 선택이야말로 더 큰 파국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그 대가는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된다.</span></p>
<p>    타운뉴스  4/13  1024호  안창해 칼럼 </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옮긴이 문병길 </p>
<p>위 내용은 문리대 웹의 생각과 무관합니다.                           </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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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알수록 어려운 사람 공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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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9 Apr 2026 18:26:04 +0000</pubDate>
                        <description><![CDATA[알수록 어려운 사람 공부
얼마 전 선배가 다른 선배 한 분을 모시고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약속한 식당에 갔더니 선배가 세 분을 더 모셔와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가운데 두 분은 예전에 뵌 적이 있었지만, 한 분은 처음 보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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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시작되자 선배가 양주 한 병을 꺼냈다. 프랑스산 브랜디, 흔히...]]></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span>알수록 어려운 사람 공부</span></div>
<p><span>얼마 전 선배가 다른 선배 한 분을 모시고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약속한 식당에 갔더니 선배가 세 분을 더 모셔와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가운데 두 분은 예전에 뵌 적이 있었지만, 한 분은 처음 보는 분이었다.</span></p>
<p>&nbsp;</p>
<p><span>식사가 시작되자 선배가 양주 한 병을 꺼냈다. 프랑스산 브랜디, 흔히 말하는 꼬냑이었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있던 음식과는 썩 어울리는 술은 아니었다. 한식당에서 해물탕과 생선찜, 갈비를 시켜 놓고 꼬냑을 마신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풍경이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잔을 비워둘 수밖에 없었고, 세 분만 술을 마셨다.</span></p>
<p><span>술이라는 것은 참 묘한 물건이다. 병 속에 있을 때는 단순한 액체일 뿐이지만 사람이 마시는 순간 전혀 다른 무엇으로 변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약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억눌렸던 감정을 풀어내는 도구가 된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말의 홍수를 터뜨리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span></p>
<p><span>그날 내 맞은편에 앉았던 80대 중반의 어르신이 바로 그랬다. 오렌지카운티 한인회를 누구와 함께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각종 한인 단체의 장을 지냈다는 이야기, 이미 세상을 떠난 한국의 대통령 한 분과 얼마나 가까웠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한 그분의 이야기는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span></p>
<p><span>모임을 주선한 선배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슬쩍 화제를 바꾸려는 표정과 말투를 여러 번 보였다. 하지만 이미 속도를 낸 기관차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긴 채 식사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span></p>
<p><span>식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내 앞에 놓인 잔에 술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본 그 어르신이 괘씸하다는 듯 말했다. “잔을 비워야지요.” 나는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못 마신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술을 남기면 안 된다면서 내 잔의 술을 자기 잔에 부으라며 술잔을 내밀었다.</span></p>
<p><span>나는 두 손을 모아 잔을 잡고 그분의 잔에 술을 부어 드렸다. 그분은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스스로 꽤 멋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저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려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span></p>
<p><span>며칠 뒤 모임을 주선했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 미안했다며 다시 한 번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선배가 그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와 여러 가지 배려를 보며 마음공부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실 그날의 진짜 배움은 따로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품격이란 목소리의 크기나 경력의 화려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span></p>
<p><span>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어르신 몇 분이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해서 어떤 자리에 나갔다. 내가 대접하려고 커피와 파이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약속했던 분들 외에 다른 한 분이 더 와 있었다. 그는 내 옆에 앉자마자 갑자기 물었다. “너 몇 살이야?” 대답하기 싫어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몇 년생이야?”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정중하게 말했다. “왜 반말을 하십니까?” 그러자 그분은 주먹을 내 뺨에 갖다 대며 말했다. “난 누구에게나 반말이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XX놈이 어디다 손을 대? 돌았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주변의 어르신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잠시 후 그분이 말했다.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먼.” 내가 말했다. “네가 있어 내가 갈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span></p>
<p><span>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조금 더 참았어야 했나.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조건 같아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또 노자는 도덕경에서 故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라고 말했다. 강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편에 속하고,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삶의 편에 속한다는 뜻이다.</span></p>
<p><span>문제는 이 가르침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야 하는가이다. 무례함을 참고 넘기는 것이 덕일까, 아니면 부당함에 선을 긋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살다 보면 정답을 찾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그런 질문들 속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완전히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사람을 통해 배우는 공부는 끝이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어떤 사람은 존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거울처럼 보여 준다.</span></p>
<p><span>맹자는 “반구저기(反求諸己)”라고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으라는 뜻이다. 요즘 나는 그날 일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아마도 인생의 수양이란 바로 그런 질문을 계속 붙잡고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span></p>
<p>           타운뉴스 2026.4.6   안창해 칼럼</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문병길 옮김 </p>
<p>&nbsp;</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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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베네수엘라의 깜짝 우승</title>
                        <link>https://mulidae.com/community/jayoo/%eb%b2%a0%eb%84%a4%ec%88%98%ec%97%98%eb%9d%bc%ec%9d%98-%ea%b9%9c%ec%a7%9d-%ec%9a%b0%ec%8a%b9/</link>
                        <pubDate>Sun, 29 Mar 2026 06:41:22 +0000</pubDate>
                        <description><![CDATA[베네수엘라의 깜짝 우승
베네수엘라가 마침내 해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승리를 단순히 경기 결과로만 받아들인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의미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우승은 점수판 위의 숫자가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꺼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지펴낸 하나의 불씨였다.
이번 대회에서 베...]]></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span>베네수엘라의 깜짝 우승</span></div>
<p><span>베네수엘라가 마침내 해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승리를 단순히 경기 결과로만 받아들인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의미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우승은 점수판 위의 숫자가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꺼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지펴낸 하나의 불씨였다.</span></p>
<p><span>이번 대회에서 베네수엘라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강팀들이 즐비한 토너먼트에서 매 경기 고비의 연속이었다. 그 시작은 일본과의 8강전이었다. 초반 흐름은 완전히 일본이 장악했다. 점수 차는 벌어졌고, 경기 분위기 역시 기울어 있었다. 여기서 무너졌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반 이후 베네수엘라의 타선이 폭발하며 흐름을 뒤집었다. 결국 8-5라는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팀이 얼마나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외침이었다.</span></p>
<p><span>준결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켰던 이탈리아였다. 무패로 올라온 이탈리아는 이미 돌풍의 중심에 있었고, 경기 초반 결코 베네수엘라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1-2로 뒤져 있었다. 그러나 7회말, 투 아웃 상황에서 시작된 반격은 집요했다. 볼넷과 안타, 그리고 결정적인 적시타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3점을 만들어냈다. 4-2. 이 점수는 단순한 역전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베네수엘라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span></p>
<p><span>​ 그리고 결승전. 상대는 미국이었다. 전력, 환경, 관중, 그 어느 것 하나 베네수엘라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모든 야구팬들이 미국의 우세를 예상했다. 그러나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더 대담하게 맞섰다. 팽팽한 균형 속에서 경기는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8회, 미국의 브라이스 하퍼가 동점 투런 홈런을 터뜨렸을 때 많은 이들이 흐름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span></p>
<p><span>그러나 9회 초, 선두 타자의 출루로 시작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어진 적시 2루타, 단 한 번의 스윙이 경기의 흐름을 다시 갈라놓았다. 3-2. 그리고 마지막 이닝. 투수진은 흔들림 없이 마운드를 지켜냈다. 그 순간,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사상 첫 우승’이라는 역사가 완성되었다.</span></p>
<p><span>​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의 우승은 약자의 반란인가? 그렇지 않다. 베네수엘라는 결코 약팀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한, 개인 능력만 놓고 보면 세계 최상위권이다. 문제는 하나의 팀으로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달랐다.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로 뭉쳤고, 그 결과 일본, 이탈리아, 미국을 차례로 꺾는 완벽한 여정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span></p>
<p><span>이들의 진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늘의 베네수엘라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붕괴 속에 놓여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고, 나라 곳곳은 더 이상 일상의 공간이 아닌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진 사람들은 그곳에서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국가, 디아스포라 베네수엘라다.</span></p>
<p><span>​ 이번 대회에서 터져 나온 경기장의 함성은 바로 그 공동체의 목소리였다. 미국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응원은 베네수엘라의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외침이었다. 야구는 그들에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서로를 확인하는 언어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span></p>
<p><span>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해외에서 뛰고 있지만, 삶의 뿌리는 여전히 고향에 있다. 가족과 기억, 그리고 책임이 그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경기는 달랐다. 기술 이상의 무언가가 흘러넘쳤다. 설명하기 어려운 집중력,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그리고 끝내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 그것은 사명감이었다.</span></p>
<p><span>더 놀라운 것은 이 팀이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상황이지만 대표팀 앞에서는 갈등을 멈췄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팀을 응원했다. 이 장면은 공동체가 아직 함께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span></p>
<p><span>열악한 현실 역시 이들의 가치를 더해 주었다.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은 상황, 충분하지 않은 준비, 복잡한 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조건들이 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서로를 의지하게 만들었고, 하나의 목표로 더욱 단단히 묶어냈다.</span></p>
<p><span>​ 베네수엘라는 우승했다. 그러나 우승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너진 나라에서, 갈라진 상황 속에서 하나로 뭉쳤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이 결국 정상에 이를 수 있는 원동력이었음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베네수엘라의 우승이 남긴 진짜 의미다.</span></p>
<p>                    타운뉴스 2026.3 안창해 칼럼                                                         안창해</p>
<p>&nbsp;</p>
<p>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p>
<p>문병길 옮김</p>]]></content:encoded>
						                            <category domain="https://mulidae.com/community/jayoo/">자유 계시판</category>                        <dc:creator>visitor mulida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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