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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어린이 돌봄이 집 드라이브웨이 단상.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부에나 팍 시, 도심이긴 하나 공원이름을 가진 시 답게 조용하면서도 인근에 한인 수퍼 여러 개가 몰려 있어 한인들 타운으로 행세했던 가든그로부 시가 북상하고 있다고들 하는 지역에 살면서 부엌에 딸린 식탁에 앉으면 으레 바로 옆 창으로 마주 보이는 건너 집 주차장 이야기다.
아침 저녁으로 두번씩 일어나는 광경이 세월과 함께 눈에 익다 보니 소위 학습효과 라는 게 무시못할 일이어서 이제는 차만 보아도 차에서 내릴 꼬마와 할아버지를 알아 맞출 정도로 익숙해진 것에 혼자 피식 웃곤 한다.
식탁에 앉으면 옆 벽이 통째로 위 아래 두 단의 미닫이 유리창문이 있는 가운데 자연히 창 넘어 뜰과 잔디 그리고 길 건너 빤히 보이는 집의 앞마당이 시야를 채운다.
타운 하우스 단지안의 우리 집과 독립주택으로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길 건너 동네 사이로는 사 차선 도로가 중앙 분리대와 함께 가로지르는데 길 건너 집들은 넓은 드라이브 웨이와 함께 독립 주택들이어 맞은편 집이 우리 유리창을 꽉 채우는 동안 다행히 눈을 들면 남가주의 파란 하늘이 답답함을 덜어준다. 도시 생활이 으레 그렇듯 도로로 갈라진 양쪽 동네 간의 왕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십년 넘은 세월을 주말을 빼고는 아침저녁으로 매번 같은 차량들이 들고 나는 맞은편 집의 드라이브 웨이 광경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 맞추어 아이들 데려오는 차들에 익숙해져 버린 거였다. 이 집의 현관 문에는 늘 커다란 성조기가 펄럭이고 큼직한 두 유리창은 커다란 무지개로 치장되어 있는데, 토들러는 아니지만 서너살 취학 전 어린이를 상대로 돌봄이 영업을 십년 넘게 하는 가정집이다.
주중 매일 아침 아홉시경이면 일고여덟대 정도의 차들이 몇 분 간격으로 아이들을 내려놓고 오후 다섯 시경이면 역시 아이들 데려가는 차들로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한결같다.
손주 맡기고 찾아가는 할아버지, 한두 살 터거리 두 애를 힘겹게 안고 아장아장 걸리면서 안간힘 쓰는 엄마, 맞벌이로 보이는 엄마 아빠가 아이와 가방을 분담해 안고 차에서 내리는 부부 등 짧지만 모두에게 귀중한 일과가 길 건너에서 펼쳐지며 자주 시야에 들어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애써 시도하지 않아도 그들의 차만 보면 그 안에서 나올 사람들을 짐작해 혼자 웃기도 한다. 식탁 아내 자리는 창밖 무궁화 꽃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거 기억하기 보다는 어느 수퍼가 무슨 찬거리에 더 세일하는지가 더 아내의 관심사여서 훨씬 실리적이다.
그러나 돌봄이 집은 두서너 살 터울이의 아이들 연령대가 있어 차가 한 두 해 지나면 바뀌게 마련이어 눈에 안 익은 차가 들어서면 엊그제 새로 맡기기 시작한 가정이겠지 한다. 하지만 방금 도착한 저차에서는 종종 걸음의 손주 딸이 할아버지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겠지 하는 짐작이 맞아 떨어지면 할아버지 얼굴도 알아 못 보는 먼발치지만 속으로 굿모닝 인사 한다.
주방테이블에 앉으면 늘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이니 나만의 게임이지 맞은편 돌봄이 집에서는 이쪽 타운하우스의 나란히 붙어있는 어느 한 유닛 유리창 너머에서 하릴없는 누군가가 자기집 앞마당에 들어서는 차를 보면서 하는 추측게임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할 터다. 그저 멍 때릴 때 나 혼자 짓고 까부수는, 부담 없는 나만의 게임인 셈이다.
동네를 갈라놓은 이 고요테 로는 동서로 나 있고 제법 큰 길이라서 남가주의 밝은 햇살 아래 낮에는 창 너머가 전혀 안 보이는 게 서로의 프라이버시에 큰 도움이 된다. 저녁이 되어 집집마다 불을 켜게 되면 타운하우스 내의 산책로를 걷거나 도로 양쪽의 보도를 걷는 사람들을 의식해 다들 커튼을 내리고 적막의 도심 이웃이 된다.
아이들 부모가 맡기거나 찾으러 올 때는 어김없이 돌봄이 직원이 한발 먼저 현관 문을 열고 앞에 나와 기다린다. 아마도 집안 아이들 돌보는 곳에 드라이브웨이 감시 카메라가 있던지 혹은 길에서 꺾어 들어오는 차를 안에서 보고 있다가 마중 나오든지 둘 중 하나다. 차에서 내려 아이를 안고 보따리를 챙겨 들고 현관에 다가오는 부모들을 배려한 게 틀림없다. 돌봄이 선생이 아이를 받고 엄마와 몇 마디 주고받은 아이가 돌봄이 선생님과 문 안으로 들어가며 아직도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 하는 엄마를 못 본체 하면 엄마의 서운함이 잠깐 나 있는데까지 파동 친다.
아이 핔업을 위해 차가 차도에서 들어서면 어김없이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와 보따리가 돌봄이 선생님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나타난다. 아마도 오후 다섯시쯤이 되면 모든 아이들에게 떠날 채비를 해 문 앞에서 놀게 하는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늘 준비되어 있어 보인다.
할아버지나 아빠들이 아이를 인수 인계 시 도우미 선생과의 대화는 없다시피 해 엄마의 챙김은 늘 도드라진다. 다음 차가 들이닥칠 때까지 엄마의 시간은 아이에 관한 얘기에 짧을 뿐이다. 어쩌다 엄마 팔에 안긴 아이와 종종걸음으로 아빠손을 잡고 따라오는 부부가 차에서 내리는 온 식구 출동의 맞벌이 부부도 보이지만 대부분 엄마들이 혼자 아이들을 맡기는데, 자는 아이 깨워 씻기랴 입히랴 먹이랴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챙겨 예까지 데려오는 데는 매일 반복되는 전쟁터일 게다.
저녁 다섯 시가 되어 종일 엄마와 떨어져 지낸 아이들이 엄마를 반기는 몸짓은 길 건너에서도 느낀다.
첫 아이와 둘째는 휴스턴에서, 셋째는 오클라호마에서 낳아 우리도 오십여년 전 아이들 돌봄이 집 신세를 어지간히 졌지만 그때 아이들을 나르는 건 주로 애 엄마 몫이었기에 세월은 흘렀어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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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건너 어린이돌봄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