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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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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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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yungk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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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단기4290년) 중3 3부 11월 9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고기 국을 먹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가끔 생각되는 일이지만 도시 고기 먹을 때마다 어머님께 황송했다. 도대체 집에서는 자주 먹지 못하는 고기를 나는 번번히 먹고 있지 아니한가? 요사이 나는 이런 생각이 부쩍 나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저런 생각하면 도무지 공부할 마음이 나질 않는다. 내 자신이 이런 생각을 안 하도록 힘써야 되는데………

저녁에 국정이가 시골로 내려간 줄 알고 기뻣는데 깜깜해서 그가 왔다. 나의 실망은 상당히 컸다. 하여튼 나는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도무지 이런 집에서는 공부가 안되는 것이다. 처음에 올 때는 집 사람들이 공부하기 좋다고 하기에 다른 것 제쳐놓고 온 것이 아닌가. 그도 또 하숙 값이나 싸야지.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돈은 돈대로 받으니…. 소위 서장 댁이라면 생활이 곤란하여 하숙 치는 것도 아닐텐데 돈은 돈대로 받는 것이 생각할수록 기분 나빳다. 하숙 치는 학생만 해도 일곱명이니까 만 팔천환씩 치면 12만6천환 근 13만환 이나 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먹으니 참으로 서울바닥은 이렇게도 인색한 곳인가? 도대체 이 넓은 서울 바닥에 내 몸 하나 둘 곳이 없어 이 야단이니 생각할수록 한스런 일이다. 하여튼 나의 집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날로 커져 간다.

저녁에 들어 누어 시 한수 읊어 보았다.

벌통에 새끼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일심 하여 봉황을 옹위하니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신 분의 깨닫도다. 파일에 현동 함은 산촌에 불긴하니 느티떡 꽁찐이는 제때의 별미로다.               -농가월령가- <고상안>

그리고 나는 앞으로 매일 시험이 있다고 생각하려고 힘쓸 것을 맹서했다. 그리하여 국정이에게도 시험이 있다고 속인 것이 아닌가?

 

11월 10일 일요일 (비)(중 3)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객지에서 생일을 맞이해 보기는 생후 처음이다. 바로 15년전 오늘 내가 거룩하게 이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 태어난것이 아닌가? 집에 가지 않은 것도 후회되긴 했으나 이것도 한 추억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저녁에 종각이와 함께 동영극장에서 하는 캘리포니아’를 가보았다. 구경하고 나면 허무해지는 건 영화이었다. 하여튼 오늘은 별로 컨디숀이 나질 않았다. 왜 하필 일요일에 비가 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1월 11일 월요일 (맑음)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공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정신이 산란하여 통 공부가 되지 않는다. 아버님께 약속편지 쓴 걸 생각할때 마다 가슴이 찔리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걸 기회로 좀더 분발해서 공부에 뎔중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기하는자 제일 악질이니라’하는 성결 말씀이 있다. 분명히 나는 시기심이 많다. 나는 내 자신이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 게 아마 소위 습관인가 보다.

좀더 이해력을 갖어야 하겠다.

 

11월 12일 화요일 (맑음) (중 3)

요사이 나는 고향 생각이 부쩍난다. 말없이 떠가는 구름만 보아도, 혼자 있을 때도, 어떠한 일에 심하게 충격을 받았을때도 나는 고향 생각이 간절해지는것이다.

 

1958년 (단기4291년) 3월 6일 (중 3)

오래간만에 쥐어 보는 일기장이다. 소위 시험때라 못썼다고 변명한다면 그건 절대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매일 저녁 일기를 못 쓸 정도로 바쁘진 않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돌이켜 보건대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기억에만 새로와진다. 기억을 더듬어 쓴다.

 

1958년 2월 15일 토요일 (맑음) (중 3)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있다. 본인 뒤에서 욕 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 아마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점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제일 싫어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자신 결백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자신 완전한 인간이 못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내 성질이 어떻다는것을 알고 있다. 부모님들이 늘 말씀하신것과 같이 나는 고집이 세다. 내가 하고싶은 일이면 꼭 하고야 만다. 나의 결점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역시 고치지 못하는건 천성인지…. 하여튼 나는 감정이 북바치면 나 자신을 잊는다. 때와 장소를 망각하는것이다. 이날도 나는 학교에서 우울해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뇌리엔 어저께 국정이가 나에게 대해서 한 말로 꽉찼다. 국정이는 비겁했다. 또한 악했다. 그는 너무나 영웅심이 강하다. 나이완 속되게 너무 성숙했다. 여성 생식기니 남성 생식기니 핸드플레이니 야간 레스링이니….

나는 모두 여기와서 배웠다. 내가 빨리 이집을 나가려 하는 이유도 한참 사춘기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귀를 모으고 듣고 빠지곤 하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대교가 덩달아 야단하는걸 보면 안타깝기도했다. 부모들의 피땀흘려 보내는 돈으로 공부하면서….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도 나는 남성과 여성의 성교환을 할때는 키쓰로써 이뤄지는줄만 알았다. 나는 그만큼 순진한 촌놈이었다. 영화를 볼때마다 키쓰하는걸 보며 애를 배면 하고 의아해하던 내모습이 다시금 아쉬워졌다. 이렇듯 나는 이곳에 와서 너무나 속된것을 많이 배웠다. 국정이는 악했다. 그는 식구들과 함께 모욕적인 언사로써 내 욕을했고 또한 내앞에서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나는 북받치는 화를 참을길 없어 그여코 손을 대고 말았다.

때리고나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맥이 풀렸다. 그날 나는 자면서 지금쯤 국정이는 시골 내려가선 뭐하고있을까 하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역시잘못은 내게있다. 한방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손을 대다니. 그것은 야만적인 행동임을 증명하는것이다. 나는 후회가 됐다. 그러나 나의 자존심은 후회를 용서치 않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이튼날 국정이 모친께 편지를 썼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편지에 나는 잘못한게 없다고 쓸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얼마나 졸렬한 행동인가를 곧 깨달았다. 그후 며칠 후 국정이 형님께서 올라왔다. 그후부터 나는 국정이와 다시 옛정을 쏟게 되었다.

방학때의 일이다.

소위 성 문제에 관해서 막 눈을 뜨는 나였다. 귀승이와 같이 선궁목욕탕엘 갔다. 귀승이는 거의 방탕한 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란 있다가도 없는것, 없다가도 있게 된다는것에 특징이 있다. 귀승이넨 확실히 부자다. 그러나 나는 귀승이의 정신적 수양재산은 아주 적다고 본다. 그는 돈이면 제일인 줄 안다. 가끔 내가 놀러가도 그는 매일 하는 소리가 공부하는 학생의 입에서 나와야 할 그러한 말은 아니다. 언제든지 가면, “병길아, 나 말랐지.  요새 아주 고민이 많어” 고민(?),  그는 요사이 아주 너무 여자에 관심이 많다. 시골서 서울 오더니 애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아이하고 목욕탕엘 들어 갔으니 또 그런 얘기가 없을리 없다. 나의 살결은 하얗다. 나 자신은 모르는데 남과 비교해 볼때 참 살결이 고왔다. 어떤 어른이 야, 참 너 살결이 여자 같구나”했다. 이소리 듣는게 별로 나쁘진 않았다. 귀승이는 그것에 털이 수북히 났다. 그런데 나는 발모가 한 5mm 밖에 되지 않았다. 나이가 같은데도 저렇게 빨리 자랐나 생각하니 참으로 신기했다. 귀승이는 나보고 핸드플레이 하냐고 했다. 나는 처음 듣는 소리라 어리둥절했다. 그저 그애의 일상 하는 말로 미루어보아 나쁜 소리겠지 생각하며 핸드플레이면 손을 가지고 노는거니까 여학생하고 손잡는 것이겠지 정도로 알았다. 나는 더 물을려 하지 않았다. 귀승이는 그것을 하면 키가 큰다고 했다. 키가 큰다기에 나는 무척 귀가 솔깃했으나 그저 그러려니 했다.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아보니 주먹싸움’으로 되어 있었다. 별 흥미 없이 그냥 지났다. 방학이 끝나고 나는 서울 하숙집으로 올라왔다. 여기서 나는 국정이가 곤히 잠들면 우선 안심이 됐다. 아무런 뚜렸한 이유가 없다. 2주일 지난 때였다. 국정이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 나는 옷을 벗었다. 빨개 벗었다. 나의 그것은 비대해져서 십센치 가량 되었다. 나는 손 안에 그것을 두고 막 껍질을 깟다 씌웠다 반복했다. 무언지 모르게 자꾸 치밀어 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맹렬한 속도로 그짓을 자꾸 했다. 순간 나는 자지러지는 쾌감을 느끼며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내 손엔 뿌연 끈끈한 액 같은것이 징그럽게 나와 있었다. 나는 황급히 닦아 그걸 내버렸다. 나는 도무지 어떻게 되는 판인지 몰랐다. 나는 얼른 책상 밑에 깊이 감춰둔 ‘학생과 성과학’ 이란 책을 꺼냈다. 뒤에 보니 일시적 쾌감을 못이겨 매일매일 핸드플레이로 고민하는 학생입니다…’ 하고 씌여져 있었다. 나는 이것이 소위 핸드플레이가 아닌가 생각 했다. 나는 처음으로 당했다. 아! 그것이 나는 섭섭했다. 여하튼 정액이 나왔으니 이제 총각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그후 나는 책에서 핸드플레이는 사춘기에 들어서면 신체적으로 불구자가 아닌이상 누구든지 나오는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이 17세면 나도 사춘기일것이다. 또 나는 이것을 한달에 두-세번 해야지 매일 하면 신경이 피로해지고, 이다음 행복한 가정을 꾸미지 못한다고 한것을 읽었다. 이로써 나는 핸드플레이를 알았다. 나는 이것을 안 후로부터는 공연히 여학생만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더구나 국정이가 그런 말을 하면 말할수 없는 창피감을 느꼈다. 국정이가 하는말은 대개가 이런것이다. “병길아, 요새 핸드플레이 열심히 하니?” 또는 나는 성적으로 통하는 여동생 얻고 싶다”,”여자와 성교환을 할때는 먼저 젓퉁이부터 만져 준 다음 차차로 내려가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둥’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부터 나는 여자를 가까이하고 싶었다. 가끔 나 있는 곳을 양숙이라는 애가 찾아왔다. 얼굴은 그래도 밉지 않게 생겼다. 언제부터인지 이집 안에선 소위 내 깔치로 불리게 되었다. 국정이 하곤 의남매를 맺었다. 잉태형이 야 병길아, 네 깔치 왔다” 이때마다 홍당무가 되서 창피해하는 나였으나 속으론 좋았다. 화토를 펴도 나는 양숙의 손을 꼭 쥐고 더 세게 때렸다. 요사이는 양숙이가 안와서 쓸쓸하기도 했다. 부쩍나는 나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지나가는 여자의 거기만 보고 싶었다.

나는 아침에 뻐스를 탄다. 내가 타는 뻐스엔 창덕여중, 풍문여중, 덕수여중, 경기중, 휘문중, 중앙중학교등으로 언제나 만원이다. 하루에 두 세 대쯤은 노치는것이 상례이다. 나는 이러한 혼잡한 뻐스속에서 여학행들과 어떤땐 등을 대기도하고 어떤때는 저절로 멎진 포옹도 하는것을 일종의 쾌감으로 삼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도대체 여성과 직접 성교환을 하는 장면은 어떠할까? 궁금하다. 나는 가끔 국정이와 이런 얘길 한다. 마취제를 사 지나가는 여자 마취시켜놓고 한번 해 줬으면…. 이것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상상이 간다. 그러나 나는 학생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의 몸이다. 나는 가끔 책에서 성에대해 학생이 질문 했을때 해답란이 당신은 학생입니다. 모든 잡념을 버리십시요, 거기엔 약도 없읍니다. 당신은 운동이나 기타 어떤 취미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되로록 잠자리는 베드를 피하고 이불은 얇게 하시오. 당신이 학업에 열중 하는것이 약입니다.’ 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시적인 쾌감으로 인해 닷새를 계속해서 했다. 자꾸 하구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꼭 아편과 같다는것을 깨달았을때 정신을 가다듬고 단념하기로 했다. 나는 결코 방종에 흐르지는 않기로했다

 

1958년 (단기4291년) 중3 3월 1일

벌써 며칠 전부터 나는 학급문고 관계로 원지를 긁기 때문에 아침에 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 오늘도 거의 열시가 되서야 합승을 타고 집으로 왔다. 내가 왜 이런짓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이것도 하나의 공부라 생각됐다. 이것도 나에겐 인내성을 기르는 좋은 시기가 되었다. 참을성, 이것이 나에겐 필요했다. 그러나 요샌 너무 시기가 중요하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런거 하는것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올적에 빵을 선생님 책 속에 넣고 왔다. (먹다 남은 빵)

 

3월 3일(중 3)

나는 내가 만든 학급문고를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3월 2일 오후

나는 학교에가서 내신서를 안써주는 바람에 화가 나 가지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길가에서 쏱아져 있는 쓰레기 줍는 사람을 목격했다. 그는 일어나려고 무단히 애쓰는 모양이나 며칠을 굶었는지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가서 안아주고 싶었으나 사람이 여럿 있어 너무 잘난체 하는짓이라 생각되었다. 그때 경기중고등학교 학생이 들어오더니 부축해 가지고 길 가 한옆 담에 기대 줬다. 나는 귀밑이 빨개졌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욕했다. 「이 병신아 너는 얼마나 깨끗하니? 바보야 양심의 가책이 없냐?」나는 정신없이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저이도 인간이다. 단군의 한핏줄기를 타고 나온 한 인간임엔 틀림없다. 그렇다면 민주사회에서도 모순이 있다. 가난한 사람은 그대로 가난한대로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하는가? 저 쑥 빠진 군상들! 저신사의 옷을 훌러덩 벗겨 그 사람에게 입혀 주고 싶었다. 저 양장부인들의 꼬락서니. 저 비단치마와 저 나이롱의 홍수떼들은 어디서 저렇게 돈이 나왔단 말인가? 세상은 너무나 차별이 심하다. 공산주의자는 이렇지는 않을테지~~

불쌍한 사람을 위해 나이롱에 둘러싸여 지나가는 허수아비의 옷을 발기발기 찢고 싶었다.

나는 뻐스안에서 가끔 이런 일을 본다. 옷이 좀 헙수룩하고 때가 뭍은 그런 사람이 앉으면 학생이건 어른이건 옆에 앉았다가도 슬그머니 일어난다. 특히 맘보스카트를 걸친 소위 점잖은 여자들은 아주 더럽다는 듯이 노골적인 눈치로 일어난다. 나는 그러면 한참동안을 눈을 부라리고 노려본다. 그러면 여대생 같으면 얼굴이 빨개진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다. 내가 뻐스에서 자리에 앉았노라니 내옆에 아주 옷도 근사하게 차려입은 여대생이 와 앉았다. 조금 후엔 거지행색의 어른이 다 떨어진 십환짜리 지폐를 내고는 뻐스에 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치 않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노인하나 앉기는 넉넉한 자리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대생은 슬그머니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나는 혜화동 종점에 올 때까지 싹 노려보았다. 여대생은 가끔 나있는데를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분명히 귀밑이 빨개져 있었다. 이윽고 회화동에 내렸다. 그 여대생(수의과대학)도 내렸다. 나는 한번 힐끔 노려보고는 가려고하는데 그여대생이 나한테 가까이 닥아왔다. 「학생 왜그렇게 노려봐요. 사람을!」하고 나한테 오히려 반박 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벼란간이라 당황했으나 곧「혹시 그 옷에 이가 떨어졌는지 보세요!」하고 톡 쏘아 부쳤다. 그제사 여대생은 얼굴이 온통 빨개 가지곤 그냥 돌아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자편에서 먼저 대들가봐 속으로 은근히 걱정했으나 아주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경우를 봐도 우리 한국이 얼마나 국민들이 사치에 물이 들어 있는지를 알수 있지 않는가? 참으로 한심할 노릇이다. 불면제 먹은 효과가 다 없어졌는지 밤 두시인데 잠이 오려고 하고 있다.

 

1958년 (단기4291년) 중3월 13일

오늘은 입학 시험 날이다. 공연히 마음이 뒤숭해졌다. 붙으려니 하고 안심하는 아이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러나 아직도 중학교 입학때의 뼈저린 고통이 역력히 남아 있는 나로써는 어쩔수 없는 약한 마음이었다. 중학교때 일차시험때 떨어지고 낙망하던 형님의 모습 아아! 지금내가 어느 심경을 헤메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름없이 동성에 들어가서는 형님께 고등학교는 반드시 경기로 가리라고 굳게 맹약했던 나자신! 그러나 그러나 확실히 나에겐 실력이 부족하다. 내가 이에게서 우연히 통지표를 본적이있다. 평균은 58점인데 603명중에 538등이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우리학교에 오면 중간은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여기서 무엇을 알수 있는가. 나는 역시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1958년 3월 16일(중 3)

오늘이 시험 발표 날이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역시 가슴이 조려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중학교때의 뼈저린 고통을 느끼고 또 그런 꼴을 당한다면 어찌된단 말인가? 이 학교에 시험치는 것만도 여간 고통과 창피가 아닌데 여기에서 탈락되면? 어제 온밤을 초조와 불안으로 지낸 나는 오늘 7시에 일어났다. 붙었을까? 떨어졌을까? 아니 떨어지진 않았을거야. 그래도 혹시. 설마. 내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켜가며 학교로떠났다. 3년 전에도 형 손잡고 이렇게 두근거리며 동성중학교에 오던 생각이 났다. 그떄는 붙어서 몹시 기뻤다. 그순간만은 경기중학교에서 떨어진 뼈져린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친구가 손짓을하며 가 볼 필요도 없다. 전부 붙었다고 하며 손을 흔들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표를 보았을때 있다! 있다! 있다! 문병길이라고 뻐젓이 써있지 아니한가? 나는 우선 숨을 한번 몰아 쉬었다. 그리고선 친구들을 보았다. 모두들 기뻐날뛰었다. 종각이도, 이영도, 황무돈도 모두 합격됬다. 1번부터 모조리 합격됬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공기를 마시며 그혜택에 무관심하듯이 입학에 합격이란 이게 별로 신통치 않았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정없는 것인가? 발표 전엔 제발 붙었으면 그것만 바랬는데 합격되고 나니 모조리 붙은게 싱거웠다. 좀 떨어질건 뚝뚝 떨어져야지 하는 말이 입에서부터 새나왔다. 하여튼 합격됬다는 기쁨, 다음 순간 싱겁다는 무미건조한 마음. 이들이 내 뇌리에서 갈등이 생겨 합격이란 두글자가 어떤 의미로 보이고는 사라졌다가 또는 어떠한 의미로도 보이곤 하였다.

나는 별 신통한 마음도 없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서울고교에 다니는  이 경기에 다닐  이 사대 부고에 다닐  이 휘문고교에 다닐  이 서울고교에 다닐  수……… 아아. 모두 나보다 좋은 학교들이 아닌가? 내가 언제가 내마음 누를길없어 형한테 물어보았다. “형, 경기에서 꼴지 하는것 보다 우리 학교에서 1등하는 게 낫지? 하자 아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니?” 하는 형의 노기띤 음성이 뒷잔등을 때렸다. 그렇다.! 확실히 어리석은 질문이다. 허나 이 어리석은 질문이 어찌하면 내 마음 속에서 떠날 수 있단 말인가. “요시, 내가 경기에 다시 들어가마, 다시” 하고 마음에 다짐을 두었지만…. 나는 이제 합격됐다. 이제 오직 남은것은 열심 열심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이후에 안 일이지만  이는 경기에 보결,  도 부고에 보결, 이도 서울고에 보결로 들어 갔단다. 그네들의 그러한 소식통이 들어올 때 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쾌감에 젓었다. 이것이 소위 시기심이 아닌가? 며칠 뒤 시골에 내려갔다.

밥. 사람은 밥이 있어야 산다. 방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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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2/03/2026 10:3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