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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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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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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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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5-

 

1958년 (단기4291년) 11월 초(고 1)

 

오늘도 나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읽기책을 펴들고 앉았다. 왜 이렇게나는 절망속에서만 걷고 있어야 하나? 그저 황새를 참새가 따르지 못하듯이 나도 그저 천안서 다닐것이지 주제넘게 서울에 와서 하숙하며 공부하다니이런 생활, 이런 무질서한 생활이 도대체 뭣이란말인가? 그저 날짜 가는것이 나에게는 압박감만 주니 말이다. 자 이럭저럭 한달만 지나면 하숙비 18000환이 나를 위협하고 사친회비도 뻘써 2달이나 밀리고. 에이. 죽고 싶다. 엊저녁 체육대회를 마치고(11월1일) 용산에 있는 공장에 찾아갔더니 인원 형님은 일찍 들어 가시고 유한이 아버지만 일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도무지 서로가 무관심이라. 유한이 아버지 말씀엔 네형이 어디 안된다는 말을 해본적이 있느냐? 고하니 그도 형을 무시하고 있는게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나도 이제 형을 원망하는것이 넘쳐서 이제는 아주 무시해버리고 싶다. 도대체 8월 15일부터 며칠이나 끌었단 말인가? 그것도 아주 안 된다면 모르되 내일 내일 하고 미룬 게 아닌가. 아주 안됀다면 숫재 그러니라나 하지, 이건 뭐 기껒 기다리며 고대했다가 찾아가서 그래도 형 눈치보며 조심껏 물어보면 안됐다 며칠후에 와 보라.

사실이지 나자신 퍽미안하다. 왜냐하면 형이 나에게 그런것을 구해 줄 아무런 의무가 없다. 사실 형이라해도 무지무지하게 먼 형이다. 이종형이라 하지만 그것도 막연한 형이다. 어른 말씀을 들으면 몇 십년 전에 나의 외할아버지가 형의 어머니가 병으로 다죽어가는 걸 약으로 살렸다 해서 그 고마운 뜻으로 나의 외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삼았다한다. 그러니 그와 나와는 그저 의형제벌이다. 그렇게 되면 혜자하고 나하고도 아주 딴 남이 아닌가? 그렇지만 서로가 매일 만나면 꼭 같은 친구들끼리처럼 다정스러지는것은 어릴때부터 놀던 떄의 연장이라고할까? 지금 나는 솔직히 말해서 혜자 나이또래의 여자를보면 좀 마음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확근해진다. 그러나 혜자를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간혹가다 나는 그를 세차게 껴안고 싶은 그 어떤 충동을 받는다. 이때마다 나는 나의 야심에 세차게 매질을 가하곤 한다. ‘이 개자식만도 못한 놈아? 너는 의리도, 순정도 없냐? 예의범절도 모르냐?’ 하며 나자신 너무나 혜자에게 미안 해 얼른 혜자 옆을 피하든게 한 두번이 아님었다.

쓰다보니 엉뚱한데로 글이 흘렀다. 이렇게 딴 남이나 다름없는 인원형이 나의 방을 구해 줄 아무런 의무도 이유도 없는것이다. 그렇지만 왜 애초에 해준다고 했단 말인가?

남아일언중천금이요 남아의 일구이언은 가장 굴욕적인 창피라는데 왜 한번 말 했으면 해 줄 것이지 안돼는 일을 억지로 해준다고 했단 말인가? 여지까지는 돈이 없어 못구했다 해도 좋다. 그러나 대전서 돈이 올라왔다면서 왜 구하지 않았는가? 무성의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막연하다. 이제 자취하게 되면 막연하다. 우선 쌀이나 도구를 사야 될테니 그게 돈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밥을 해 먹어야 될텐데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통학하기 전엔 자신만만하게 나섯든것이 불과 열흘도 못가서 나가 떨어지는 놈이 지금 또 자취한다고 자신 만만하게 나서지만 어찌되려나?

그러나 이런겁을 먹는것이 남자의 수치인줄은 누가 모르겠나마는 사실이 그런걸 부정할 수 없다. 하여튼 방만 구하면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니 희망은 있다만…

난 오늘 사친회비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야된다. 허지만 형은 또 왜 안오는가? 난 지금 형 생각만하면 그만 화만 자꾸나고 내 맘 속 아주 깊이 원망의 상대자가 형이라는 걸 형이 알았으면 한다. 연기원 좀 내 달라고 편지까지 했는데 학교에 한 번도 안오다니. 내 이렇게 커가지고 구질구질하게 형한테 매달리는것도 챙피하지만 자립을 못하니 할 수 있는가? 형은 그래도 돈을 벌지 않는가? 아니 그렇다고 내가 돈을 달랬나 그저 학교에 와서 연기원만 내 달라는거지. 아무리 시간이 없기로써니 문리대와는 엎으러지면 코 닿을데 있으면서 그렇게도 무성의 하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내 생활에 무관심하다. 자기는 서울서 5시반 차 타고 시골와서는 고단 해 죽겠다고 하며 내가 통학한다고 하니까 그렇게라도 하라고? 딴 남같으면 있을 욕 없을 욕 다 퍼 붓고 싶다마는 형이니 욕 할 수도 없고……

나는 형이 아니꼬운것은 형은 도대체 돈 얘기라면 질색이다. 아니 자기는 돈으로 살아가지 않고 흙으로 살아가나? 그저 돈 얘기면 질색, 그것도 정말 피눈물 나는 아버님의 말씀일진대, 주제넘게 돈 없는 처지에 돈 얘기만하면 싫어하다니 아니꼬운 노릇이다. 거기다 돈쓰기는 남의 갑절은 쓴다. 월급을 타면 하루 이틀에 없어지나 보다. 누구주고 누구주고, 그리고 가만이 보면 담배든지 차든지 모두 고급으로 사먹는다. 저런 신사에 사친회비 못 내 쩔쩔매는 동생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든지 생각 안하리라. 그리고 제사때도 남은 절 하는데 자기는 잠을 자고 있다. 예수를 믿는다나 어쩌나 하고. 도대체 글깨나 짓는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저렇게 거만과 불손만이 차지하나 생각하니 도무지 형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냉정하게 비판해서 식구들을 논하면, 아버지. 아버지는 어느정도 나에대한 이해가 있으시다. 그러나 어쩐지 가정에 대한 애착심은 작다. 그저 될대로 되어라하는 극히 방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은 퍽 인색하나 뭤을 꼭붙잡고 느러지질 않으신다. 그저 될대로 되라 형이다. 나는 아버지께는 언제나 죄송스럽다. 모두가 나 때문인것처럼 생각된다.

다음은 큰형이다. 나는 이형을 도무지 형으로 모시고 싶지가 않다. 도무지 형제로써의 정이라곤 하나도 붙지 않는다. 책임감이 없다. 문학이나 한답시고 거만해진것만 같다. 아무리 바쁘기로서니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 연기원도 못내준단 말인가?

작은형. 우리가족 중 그래도 가장 경비가 덜 들인것이 작은형이다. 대학교 떨어지고서는 성질이 더욱 고약해졌다. 내가 중2때 명륜동에서 자취할때 아무도 없는 서울서 얻어 마진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부드득 갈린다. 형은 몇 년전 병관형한테 보복당하더니 이제는 내가 보복을 해야겠다.

도대체가 그까짓 군에 헌번 나가서 웬 불만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내 생각 같아선 난 하숙하며 한달에 2만환을쓰는데 자기는 그렇게 못써서 몹시 기분나쁜 모양이다. 그런면에선 나도 보기가 좀 미안하다. 그러나 매일 찌프리는 이맛살을 대할때 나는 만일 내가 큰형이라면 그냥 놔두지 않을텐데… 하고 생각하니 주먹이 부르르떨린다.

병직형… 그래도 내맘에 꼭드는형이다. 마음도 제일 좋고 내 청도 잘 들어준다. 아니 그보다도 지금은 우리식구지만 사실상 따지고보면 그는 고아가 아닌가? 우리는 모두 인문으로 갔는데 그형님은 남 대학 갈 시절에 월급생활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이 형님이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도대체 그 마음속을 잘 모르겠는 형님이다.

큰아버지. 도대체 큰아버지가 즐겁게 나는 향해 웃는것은 못 보았다. 정이 붙질 않는다. 그리고 나의 서울가서 하는 공부에 상당히 불만을 품고 계시다. 아버지가 돈이 궁해 꾸러갈때마다 아 왜 병길이는 서울가 공부시켜 가지고 그렇게 야단이냐?”고 하신다. 도대체가 불만이다. 아마 아들을 변변히 키우지 못하는 집안은 이런가보다고 생각된다. 큰아버님댁은 그래도 아버지 삼형제 중 가장 잘사는 편인데 하나 도와주려고는 않고 무슨 소리만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큰 댁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다. 잘사는집, 흥? 그렇게만 놀아라. 물건 하날 사도 악착같이 돈을 받으려하는 집이다. 그렇게도 야박할수가 있단말인가.

큰어머니. 아주 간사하다. 나의 공부에대해선 큰아버지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계시다. 간사하기 이를테없다. 도무지 취미 없다.

혜자어머니. 그저 내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아주머님이다. 매일매일 억지로 살아나가시는 걸 보면 나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바루앞에 잘사는 큰어머님집과 좋은대조가 된다. 내가 큰어머니네에 대한 반발심이 일때마다 나는 혜자네가 꼭 내집같이 느껴진다.

개목누님도 또한 맘좋은 누님이다. 나는 그누님이 어쩐지 나도 모르게 좋다. 그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외로울때도 그누이 집에가고 기쁠때도 거기에 가고싶다.

하여튼 친척식구들은 나의 공부에 대해서 그리 탐탁치않게들 여기는 것 같다. 나 자신 그렇다. 후회막급이다. 괜히 서울와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말이다.

 

1958년 (단기4291년) 고11월 9일

오늘 공장에 갔다가 뜻밖에도 소식을 들었다. 유한 아버지의 말엔 우리 시골집이 550만원에 이미 매매가 되었다는 것이다. 앞이 캄캄했다. 시골서 이사를 와?

아이구… 이제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그야말로 앞이 캄캄했다.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나는 이 일기장에 옮겨적을래도 이루 내 감정을 표현할수가 없다. 하여튼 그건 이사할때 쓰기로 하고… 당장 하숙비가 문제다. 14일까진데 오늘이 12일이 아닌가? 인원형은 또 4흘후에 오라고 했으니 그 떄에 봐야 할 문제다.

그럭저럭 날은 가고 달은 바꿔 12월 달에 들어선지 일주일이나 되었다. 내자신 왜 이렇게도 게을러졌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지난일로 인해 도무지 붓으로 표현 못하겠다.

내가 만_이와 같이 있을때 확실히 나는 만_이가 죽도록 미웠다. 그를 대하면 한방에 있는 관계로 할 수 없이 반가운체 대하나 마음속엔 언제나 부글부글끊어 올르는 것이다. “너 이놈, 언제든지 보자 언제는 너의 코가 납착해지도록 두들겨 주리라”하고 부르짖는것이다. 나는 이런 가면적인 그와의 생활에서 하루속히 떠나고 싶었다. 빨리 옮겼으면 하고 원했던 것이다.

또하나의 큰문제는 역시 돈 문제도. 아버지는 작은형을 서울로 특명내리게 하는데 돈 20000환 못 구해 쩔쩔매는 판에 어느 낮짝으로 내가 또 2000환 달라고 요구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아버님께 부탁해서 10일, 17일경 최씨댁(서대문구 충정로 3가 295번지)에 오게 되었던것이다. 최씨는 옛날 아버님께 큰 빚을 지었다 한다. 아들 겸_와 같이 있게된것이다. 사실 겸수와 나는 나이가 같은데 나는16세라고 속였다. 겸_와 나와 좀 분리시켜보자는 것이다. 방은 비록 좁으나 외따로 떨어진 게 좋았다. 그리고 좀 지내보니 괞찬았다. 다만 겸_어머니만이 좀 쌀쌀한감이 없지 않았다. 과거의 일이 있었느니 많큼 나는 겸수어머님만 보면 어쩐지 가슴이 선듯해지는 그무엇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시험도 무두 치뤘다. 겸수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도 어짜피 공부를 해야 했다. 복습이나 예습이나 충실하게 해가니 나 자신도 너무나 열심히 하므로 기쁘기 한량없었다. 예습을 잘해가니 제일 마지막시간이 지루하긴 커녕 오히려 기다려지는것이었다.

그리고 선자가 나보다 훨씬 커서 나는 좀 곤란했다. 선자도 혜자다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키가 저렇게 크면 벌써 자랄것은 다자랐것을 다 자랐겠지. 어린애로 대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성 문제, 즉 여자 앞에서는 언제나 양심을 채찍질해 올바른 이성을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전에 시골 가서 죽도록 애써 만든 사친회비 10900환을 냈는데 오늘(12월6일)또 사친회비 14200환이 나온것이다. 어휴

그리고 나는 요사이 자꾸만 여자생각이 나고 추잡한 장면이 자꾸 연상되어 어느땐 머리가 아퍼지는것이다. 내가 이러한 태로로 학업을 계속해서 그런지 이번 통지표가 형편없이 된것이다. 수가 하나, 우가 둘, 나머지는 모두 미이다. 기가막힐 성적이다. 그러나 나자신이 만든 성적임엔 틀림없다.

하, 세월은 빠르다. 벌써 방학이 반이 지났으니 말야. 그런데 내가 게을러진 탓인지 도무지 일기 쓰기가 싫어졌다.

정신상태가 썩어 들어가는것이 아닌가? 자 그러니 그동안의 희노애락이 무수히 많다만 어떻게 이걸 다쓰나. 하여튼 차례로 적어보자. 12월 24일 나는 이불짐을 싸면서 이곳 최씨댁에서 그래도 한달이나 있었다는것이 고마웠다. 이불을 싸면서도 퍽이나 복잡하던 머리 속이었다. 다시 못올 집 같았다. 그리고는 최씨 부인의 쌀쌀한 모습이 떠오르곤 하는것이다. 사람이 남의 집에서 잔다는것, 이것이 떳떳히 마땅한 댓가를 주며 사는거라면 모르되, 돈 거래 없는 거렁뱅이 짓이란 어떤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설령 주인이 마음이 좋아서 그런덴 관심을 두지 않고 마냥 아들쳐럼 따듯하게 대해 준다고 하자. 그러나 그러고 지내는 나자신은 그렇지 않은것이다. 나는 언제나 무슨 조그만 일에도 나는 그냥 얻어먹는다생각하면 비관되는때도 있고 또 무슨 약점이나 잡힌 거 같아서 도무지 조심이 되는 것이다. 또한 내성격이 내향성인지라 그런면에는 더욱더 세심한 주의를 하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저께 영근이 주려고 정성을 다해 그려논 카드를 디려다 보았다. 문득 영근이 생각이 났다. 연근이! 영근이! 얼굴을 바짝보면 별로 예쁘지 않은데 몇발자욱 떨어져 있으면 참 예쁘게 보인다. 나는 그애와 코흘릴때부터 알아온 처지인데 이제와서 새삼스러히 그 애의 얼굴이 그립고 꼭 깨물고 싶은 그 무슨 충동으로 크로즈업 되는것이다. 나는 그 애와 좀 친하고 싶었다. 아니! 보통 인간이 생각하는 추잡한 교제도 아니고 또 아주 점잔빼는 그것도 아니다. 내 생각은 그저 어린때처럼바로 그것이다. 서로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천진난만하게 놀아 봤으면 하는 바로 그것이다. 다른 건 더 바랄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기독교계통의 가족인데 다 자랐다고 볼 수 있는 처녀에게 대한 나의 그러한 태도를 이해해 줄까? 그것이 나의 의심이다. 하여튼 나는 보따리를 쌀때니만큼 어디까지나 현실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됀다. 하여튼 영근이와 꼭 친해지고 싶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규승이네집에서 밤을 새서 놀기로했다. 그런데 1000환씩 내라고했다. 그러나 나는 전번에 온돈 3000환을 독어 사전사느라 다 썻기 때문에 돈을 꿔야 했다. 그래서 미안과 챙피를 무릅쓰고 선생님한테 가서 500환만 달라고했다. 나는 그말씀을 듣고 아차! 했으나 떄는 이미 늦었다. 아. 가난한 군상들이여… 아 가련한 월급쟁이여! 아 가련한 병길이여! 선생님 월급봉투에서 500환 떼서 개시로 남을 준다는 것, 아마 선생님이 기분이 좀 나뻣을거라. 허지만 너무 내가 경솔했다. 스승한테 돈을 꿔 달라고 하다니 하여튼 말해 논거니 할수 없어 그여코 500환을 꾸고야 말았다. 그건 그렇고 오늘저녁에 놀기로 되었는데 내 돈은 국정이와 규승이가 적당히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놀러갔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한 여덞명 모였다. 하여튼 재미있게 놀았다. 내생전 처음 크리스마스 이브를 크리스마스답게 찬란하게 지냈다.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기쁘게 3S 구락부 친우들과 한자리에서 즐거움을 나눈것이다.

3S 구락부. 이것은 몇 달 전부터 만든 모임인데 나도 이제부터 들기로 했다. 그런데 25일 아침에 회의를 열었는데 겨우 정한다는것이 바다에 가서 몇시서부터 몇시까지 뭐하고 또 뭐하고… 이런 유치하고 소극적인 문제를 토론하고 있었다. 나는 화가 벌컥났다. 도대체 경기 서울 보성, 비교적 우수한 학교에서 나온 놈들이 이렇게도 트릿한가 하고………

우리의 목적은 계몽,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계몽이 목적이라해서 지금부터 계몽! 계몽! 하며 날뛰어야 된다는 것인가? 계몽이란게 뭔지부터 아는가? 대통령이 태어날서부터 법률공부를 했다는 말인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그들의 토론에 나는 빠지고도 싶었다.

바다도 못 가본 자들이 육지에 앉아서 어떻게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런 경솔한 계획을 한단 말인가? 지금은 무엇보다도 친목,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이 모임에 들은 이상 언제나 비평가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기 얼굴에 자기가 침을 뱉는 격이니까 말이다. 하여튼 모임의 발전에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정신으로 대들것을 결심했다.

 

다음날(25일) 나는 12시차에 올랐다. 그곳에서 친구 하날 만나서 천안까지 그냥 저냥 이야기했다. 중앙고1인데 형이 가르치는 아이였다. 형이 얌전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리들 들으니 형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천안오니 뭐 그게 그거였다. 형은 나한테 돈 한푼 주지 않고 뻔질한 낯으로 쳐다만 보는 것이다. 그런게 형? 흥. 다음날도 다음날도 나는 공부하는둥 마는둥 했다.

28일에는 선생한테, 작은형한테 흥근이한테 준식에게 이렇게 다섯통의 편지를 써서 붙였다.

31일 12시에 나는 라디오에서 인경 종소리 중개 방송하는 걸 청취했다. 나는 시계를 노려봤다. 10초전. 9초전, 5초전… 드디어 무술년은 지나갔다. 다사시다난했던 무술년은 그 종말을 고하고 이제 기해연의 새해가 돌아왔다. 다사다난한 무술년이 나에게 준 모든 일이 이젠 한낱 추억이 되어 머리속에 저장되었으니- 아 세월은 빠르다.

1일에 우리는 설을 지나게 되었다. 도대체가 양력설을 지내는 집이 없어 세배할곳도 없고 하여 쓸쓸하기 한이 없다. 오후에 성묘갔다 와서 친구들하고 모여 관이네 집에서 밤을새서 놀기로 했다. 200환씩 내기로 했다. 세_이, 주_이, 나 관이 또하나 이렇게 해서 다섯명이었다. 갑오잡기 해서 비과를 다 잃으니 눈깔이 뒤집혔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서로 _ _를 만지는데 어쩐지 남이 만지는 감촉은 훨씬 달랐다. 한번……

다음날 일어나니 여덟시다. 나는 참 미안했다. 남의 집에서 저녁늦게까지 떠든것도 잘못이려니와 아침마저 늦게 일어나면 어떻게 여길 것인가? 부랴부랴 옷을 입고 집으로 뛰어갔다. 그저 놀고먹고 자고 놀고 돌아다니고 공부하고 이것이 나의 생활의 전부였다. “인생은 운동이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이있다. 그야말로 나의 생활은 운동이 아니고 그무엇이냐?

친구와 한 방에서 놀며 잔다는것, 이것이 참으로 인상깊은것이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다.

오늘 또 나는 인생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꼈다. 외할아버지댁의 외삼촌 아들인 올해 다섯살난 종수가 저승으로 떠난것이다. 저녁에 어머니께서 나보고 할머니네 집 종수가 위태하다 하니 가보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길로 곧장 종수 있는데로 가 보았다.

방은 꽤 환한데 할아버지께서는 종수를 간호하고 계셨다. 그런데 종수 눈을 보니 꼭 허공에 들뜬 것 같았다. 어쩐지 보통 사람과는 달라 보였다. 그리고 말을 못하고 헛소리만 자꾸했다. 나는 할아버님께 병원에 좀 가보시자고 하니까 할아버지께서는 괜찮다고 하셨다. 아까 낮에는 눈을까뒤집고 야단하더니 이제 훨씬 나졌다고 했다. 나는 그소리에 퍽 안심되어서 잠시 보고는 곧장 집으로 같다. 그런데 그날 밤 한시경쯤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릴 듣고는 아! - 하고는 말이 않나왔다. 어저께 그 애의 얼굴을 본것이 나의 그에대한 대면은 그의 인생에서 최후가 아닌가? 인생이 허무한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언제 갈지 모르는 기약없는 인생의 목숨. 한때 피는 꽃같은 인생, 인생은 허무한것이다.

불란서의 쇼펜 하우어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동안에 벌써 반생이 지났다” 했지만 종수는 그가 인생이란 어휘의 의미도 깨닫기 전에 전 생애가 지난것이 아닌가? 저하늘 어느곳엔가는 그의 혼이 있을것이 아닌가? 아 그런 생각을 하면 그리운 그 무엇이 솟구치군 한다. “날때에 차디찬 소리를 올리고 군소리해가면서 생활하고 실망하고 죽는것은 인간뿐이다”라고 영국의 헴풀이 말했지만 그러나 이런말은 종수에게는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종수가 무슨 이성이 있어 판단하는 능력이라도 있었든가? 아 가련한 그인간. 다섯살의 천진난만한 그인간. 속이 타고 아퍼도 말도 못하고 가버린 나 어린 그 인생. 얼마나 가련한가?

! 인생이 이렇게도 허무해서야, 하여튼 오늘은 종수가 저승으로 갔다. 종수야, 부디 저승에 가서 잘 살아다오.

하루가 또 지났다. 그런데 이날(3일) 저녁에 영근이가 나한테 와서 교회에 가자고 했다. 나는 퍽 반가웠다. 하지만 하필 가자는 데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교회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그 애 하고 같이 걷는 게 좋아서 가기로 했다. 안식교회인데 좀 멀었다. 그리고 더구나 내가 좀 가고 싶었던 것은 서울 전도학교 학생들이 한 며칠간 특별강연을 하게 됬다는 것이다. 나는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오늘 가 보았다. 설교를 들은 후 나는 조금이나마 깨달은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지독한 무신론자였고 또한 예수를 경멸했으며 천주교 신자들을 마구 놀렸다. 보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예수가 그리고 하느님이 그리고 천당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나 나는 오늘 설교를 듣고 조금이나마 감명을 받았다. 어찌나 조리있게 그리고 흥미있게 말 해 주는지 신이 날 지경이었다. 창조자에 대해서 말했다. 와 보니 신발이 바꿨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신성하게 보려고 노력 했야만 했다. 예수라는 것, 천국이라는 것, 이런것이 정말 존재하나? 인간이 죄를 범하고 그것을 남에게 알리지 못하는 경우 자위라도 해 보려고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세워 놓고 자기만족에 취하는것 아닌가? 또는 저승엔 천국이 실지로 존재하고 있는것일까?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달나라 여행을 꿈꾸고 있는 20세기의 과학도 무신론을 증명하지 못하는것이다. 하여튼 그건 어떻고간에 신이란 것, 이것은 사실이지 인간에게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라고 느꼈다. 신을 신봉하는 한 인간의 선은 있을 지언정 악은 없는것이다. 만일 그것이 악이라면 벌써 그것은 이 지구상에서 매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장되기는커녕 점점 더 그 신앙심만 번식하는것이다. 그것이 진실로 무신론자들의 의견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모두 속은것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인류가 우매하진 않을 것이다. 하여튼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 이것은 나에겐 중요한 일이다.

 

다음날(4일)도 나는 하루 종일 한 일은 없은 채 교회에 갔다.

오늘은 안식일에 대해서 설교를 들었다. 눈이 마구 쏟아졌다. 관이와 양순이와 호영이네 놀러 갔었으나 재미가 없었다. 

 

5일 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요사히 작은 아버님댁이 큰 불안에 싸여있다. 병춘이형은 장질부사요 병철형은 간질병이요 병운형은 폐결핵이요 집안식구가 거의다 병을 앓다싶이 하는데 병춘형은 신음까지하며 아주 대단한것이다. 그래서 나는 몹시 걱정이 되어 들어가서 병 간호하고 계시는 작은아버지한테 어떠냐고 물었드니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말도 않했다. 그러나 나는 굿한후는 들어가서 아프냐, 어떠냐, 더하냐 등 병증세를 묻는것이 아니라는 걸 몰랐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저께 웬 노인이 부엌에서 굿 하는 걸 보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확, 기분 나쁘게 떠오르는 것이다. 굿이라는 것. 이 얼마나 유치한 짓이냐? 인공위성이 대기권을 벗어나는 이 시대에서 굿이란게 도대체 어따가 써먹는 개 뼉다구냐? 더럽다. 뭐? 환자한테 귀신이 있다고, 기운이 나쁘다고?  집터가 나쁘다고? 허튼수작이다. 병균에 의한 빡테리아까지 현미경으로 확대하는 이 시대의 의학술이 하품을 할 정도지 그래 유치하게 점쟁이를 불러들이다니. 하여튼 이러한 유치한 집도 있어야지 무당들이 살고 먹지 않느냐? 하지만 나는 좀 가혹하나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당! 그대들이여, 지금의 직업을 빨리 전환시켜 여지까지의 굿은 모두 녹음기에 녹음하여 국립박물관에 저장하라 그렇게 되면 너희들의 굿은 그런대로 하나의 유물로써 이름을 날릴지 모른다.

허나 그대들이여 직업 전환하기도 싫고 또 딴 짓으로는 살 수가 없다면 죽으라! 사회에 암이나 되어 주고 과학의 발달을 방해하고 인간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모든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사회봉사를 하고 싶지 아니한가? 그 사회봉사가 바로 그대들의 죽음이라는 걸 아는가? 하여튼 굿이라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진 지랄발광증 증세인것이다.

 

6일    오늘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20년이래 처음 보는 강 추위라 했다. 정말 이제 본격적으로 추워지는구나 생각하니 방학 후 일이 더욱 걱정되었다. 얼음이 꽁꽁 얼었다. 주_이와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저녁에 교회에 갔다가 올때 영근이와 같이 왔다. 어쩐지 화딱지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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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04/04/2026 9:3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