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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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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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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yungk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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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1959)   4292 1월 25일  (고 1)   

오랜만에 펴 보는 일기장이다. 나의 무질서하고 무성의한 생활의 연속이 여기 한권의 일기장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내가 좀더 규칙적이고 학생다운 생활을 했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백지상태인 일기장으로 내버려 둘 리가 없다. 하여튼 나라는 이 한 인간. 도저히 뚜렸한 것 하나 없는, 싱겁기 짝이 없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방학 동안의 가지가지 일들이 회상된다. 서울 와서 제일 생각나는 게 영근이다. 아- 영근이. 어쩐지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진다. 사실 나는 그 애와 함께 교회를 다녔지만 그애하고 다니는 게 그지없이 즐거웠다. 갸름하고 둥그스런 얼굴 참 예쁘다. 한번 안아서 입을 힘껒 마추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한 뒤 그를 만날 때 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다. 그렇게 착실한 아이한테 내가 그러한 맘을 품다니…

언젠가 나는 영근이 가 있는 집으로 놀러 갔을때다. 영근이가 양말을 벗는데 그 발이 참 고왔다. 꼭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폭신폭신한 스폰찌 같았다. 아- 한번 손으로 마구 주물르고 싶다. 그저 도덕’이란 양심의 문지기가 나의 손과 몸과 마음을 붙잡고 있을뿐이었다. 내가 어찌 그런지 모르겠다. 내자신 여지껏 나를 퍽 남자다운 놈이라고 자화자찬해 왔는데 여자하나 앞에서 이렇게 마음이 요동한단 말인가? 내 자신을 책망하건만 그녀 생각으로 가득 찰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느때는 몸부림이 쳐 지는 때도 있었다. 껴안고 싶은 충동, 인간의 본능, 이것을 나는 군자답게 일소에 부칠 재간이 없었다. 그러므로해서 나는 저녁마다 찾아가지 않으면 서운한것이다. 저녁마다 찾아가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었다. 영근이는 나에대한 생각이 어떨까? 필요없이 찾아오는 나쁜놈이라고 생각할까? 평범한 이웃 사촌으로 생각할까? 또는 은근히 좋아할까? 남자 새끼가 이런 생각하는 것이 사내답지 못함은 스스로 깨닫는바이나 행동이 그렇게 되니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 영근이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

바로 국민학교 동창인 최동_이라는 애다. 한때 천앙중학교 짱으로, 한몫 보던 애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너무나 응큼한 놈이다.

영근이 언니 말 들어 보면 전에 호_이 같은애들하고 여럿이서 대림상회에 매일 같이 찾아와 영근이 언니를 누나 삼겠다고 졸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허락해 줬는데 이제 와서는 그것이 화가되어 영근이가 길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됬다는 것이다. 영근이만 지나 가게 되면 동네 깡패들이 농을 건다는 것이다. 영근이 같이 얌전한 애에겐 당치도 않은 말이다. 그리고 요사히 동_이가 나와 영근이가 교회 같이 다니는 것을 연애에 빠졌다고 말 한단다.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내 아무리 같이 다니는 게 좋아서 교회를 나가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은것이다. 나는 영근이와는 아무 허물없이 그걸 얘기했다. 애들이 너의 험담을 늘어 놓는다는 것과 동_이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애가 나를 이상하게 본다는 것을. 이것을 말한 그날은 몹시 눈보라가 몰아쳤다. 나는 허파속까지 얼어 붙는듯한 느낌을 가지고 냉담하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날 영근이는 그 이야기 때문에 퍽 고민했는가 보다. 그 이튿날 내가 놀러가니까 영근이 언니가 나한테 뭐냐고 물었든 것이다. 그러면서 영근이가 몹시 속상해하는데 뭐냐고 묻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일소에 부치고야 말았다.

요컨데 나는 영근이가 예뻣다. 한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포동포동한 그 얼굴이 자꾸 기억이 나고 그 보들보들한 발이 생각 났다. 그저께 나는 영근이 언니한테 편지 쓰면서 이 편지가 영근이한테 가리라 생각하니 한자 한자에 주의가 갔다. 되도록이면 나는 유식한 척했다. 모르는 한자도 사전을 찾아 쓰느라고 진땀을 뺏다. 이 편지를 영근이가 읽을때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방학 동안에 나는 하여튼 여자하고 제일 많이 놀았다. 규_이네 집에서 대개 놀았다. 규_이네 식당에서 일하는 정숙이라는 애를 좀 장난의 대상으로 해 주었더니 이게 나를 조금 좋아하는가 보다. 사실이지 직업에 귀천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규_이가 그들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제 인생은 뭐 하늘로부터 정해져 환경이 좋아 졌나? 다같은 인간인데 저렇게도 그네들을 무시한단 말인가? 자기네가 지금 돈이라는, 인생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력이 없어졌을때 자기는 저들보다 덜한 신세가 될수도 있지 아닐것인가? 그런데도 어째서 그네들을 무시한단 말인가? 나는 그네들과 흉허물 없이 놀았다. 그랬더니 좋아한다. 나도 불쾌하진 않았다.

느날인가 나, 관이, 주_이, 세_이, 규_이 이렇게 방에서 놀고 있을때 화자가 나보고 집에서 누가 부른다고 오라 한다. 나는 부랴부랴 오바를 주워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글쎄, 그곳에는 화자와 정숙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장에 가자는 것이다. 나만 불러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나에게 침을 뱉는 친구들의 환상이 떠올랐다. 비겁한 자식, 욕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안가려 했다. 그러나 그네들은 자꾸 가자구 재촉한다. 나는 같이 가기로 했다.. 또한 친구들한테 미안했다. 영화제목은 「어디로 갈까」였다. 한국영화인데 테마가 단순했다. 끝이 너무 비극으로 끝나 싱거울 지경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느라고 옆에 같이 있는 그 애들하고 얘기 한 마디 않했다. 하여튼 이번 방학을 통해 여자들과 마구 놀아댄건 내가 처음이었다. 여자들하고 화투 할 적에도 내가 제일 마구 놀아댔다. 누가 너무 난잡하다고 흉볼까 두려워지는 건 논 다음의 나의 마음의 상태이였다. 친구들과 놀때도 내가 제일 많이 떠들어댔고 또한 못된소리도 마구 씨부렁댔다. 거침없이… 그러나 방학동안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너무도 한 일이 없는 무의미한 생활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서울 올라와서 최씨댁에 쌀 여섯말 사 주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하기를 선x가 반대하니까 나가 달라는 것이다. 선x도 이제 철이 날 대로 나서 나하고 한 집에서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말을 듣는순간 불쾌한 마음이 솟구쳤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선x도 클대로 다 컸다고 볼수있다. 나이는 열 댓살인데도 나보다 키가 컸다. 불쾌했다. 또는 간사하고 음흉한 아줌마가 나를 내쫒기 위해 쓰는 한 수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x가 클대로 다 컷으니 그런말 하게도 됬다. 그애 음부에도 털이 났을가? 털도 나지 않았을터인데, 났다해도 겨우 조금 났을텐데 벌써 건방지게 그런생각을 하는게 불쾌했다. 더구나 월경도 겨우 시작했을까 말까 했을텐데… 망할년 같으니.

자기가 그까짓걸 가지고 뭐 곤란하다고 나를 객지에 내쫒야만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하여튼 나는 그 아줌마한테 사정해서 한달 만 있기로 하고 (1959년 2월 15일까지) 쌀여섯말을 사 날라 주었다. 요사이 나는 공연히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길 가면서 여학생을 보는것이 즐거웠다. 내자신 왜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더러운 놈이다. 지나 다니며 어느 여학생이든 나를 쳐다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3일전에 행_집을 찾아갔다.  대문에 서서 나는 잠시 생각 해 보았다. 내가 이집에 들어갈 아무런 이유가 있을가? 뭐 찾을 게 있으면 혹시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데 뭐 하러 다닌단 말인가. 행_가 보구 싶어서? 그렇다. 정말이지 행_를 한번 보고 싶다. 대문을 떠밀고 문에 들어가니 의태가 없었다. 나는 그애가 없는 게 무척 반가웠다. 그 애만 보면 찬 바람이 집안에 떠도는 것 같았다.

_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전에도 느낀거지만 정말 너무나 단순한 애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서로 사진을 뺐었다 나는 나와 대교와 국_이와 셋이 하숙 기념으로 찍은것을 주고 나는 양숙이와 길_와 찍은것을 가졌다. 양숙이는 애가 참 귀엽게 생겼다. 그애도 영근이 만큼이나 예쁘다. 그러나 내가 그 애와 친해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왜 내가 이런 추잡한 생각을 할까. 내 골통을 손으로 한번 딱쳤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한짓인데 역시 생각나는 그 생각뿐이였다. 여자와 남자. 이 사이가 참 교묘한 것이다. 어째서 인간이 둘로 갈리었는가? 어째서 이렇게 갈리어서 서로 흉금을 털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또 모이면 가면적인 것이 되고 아무런 발전이 없는것일까? 하여튼 이런 생각만 하면 괴로워지는 것이다. 요사이 교회 다니는 것만 해도 한편 괴롭다. 사실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지만 나 자신 철저한 믿음을 찾은것은 아니다. 지독한 무신론자인 내가 금방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의 부인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머리 속에 박혀있는 나에게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무슨 죄를 짓는것과도 같았다. 신의 (존재?) 여부도 확신치 않고 믿음의 길을 걷는것. 그것이 얼마나 가면적인 행위냐?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이건 말할 수 없이 교모한 것이다. 어저께(1월 24일)나는 청_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청_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모두 놀람을 자아낼 뿐이다. 말을 들어보면 여자 입곱을 관계했다는 것이다. 후랍빠가 4명, 처녀가 3명이라는 것이. 그 애 말은 진정임에 틀림없었다. _이와 나만이 들었다. 제일 먼저 관계한 게 창덕여고 애라는 것이다. 그 애를 남산공원으로 끌고 올라가 하의를 벗기고 관계했다는 것이다. 이 애가 나중에 임신해서 돈을 들여 처리했단다그리고 청_말에 의하면 자기들 7명의 클럽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하숙집을 빌려 여자 일곱명을 불러 놓고 술 담배 먹으며 끼고 돌다가 각기 방으로 끌고 들어가 관계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클럽에서 이탈행동을 했을 경우 몰매를 맞는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 클럽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여자를 여러명이 하는데 처음에 할적엔 구멍이 커서 잘 들어 가나 다음에는 잘 안들어 갔다는 것이다. 네번째 가서는 도저히 xx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고 며칠 후 그 여자애 말이 그날 그렇게 많이 해서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고 말 했다는 것이다. 얘기 하나 하나가 놀람과 흥미를 끌게 했다. 참 기가 막힌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게 인간이라 하지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얼마나 얌전한 청_냐 말이다. 나는 여지껒 그를 잘 못 본것이 아닌가? 아 참 세상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면서 이자식,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단 말인가? 아참 악한 놈이다. 7의 여인을 망쳐놓은 색마가 아니고 무엇인란 말인가? 하여튼—할 말이 없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의 xx가 딱딱해졌다. 그 청_란 놈. 그는 그러면서 육사에서는 병에 걸린 것은 말 할것도 없겠지만 여자와 관계를 한 자도 떨어지느냐고 걱정하고 있었다. 뻔뻔스러운 놈. 인간 최대의 악을 저질르고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감은 없고 다만 자기 앞의 난관만 걱정하는 놈. 아 참으로 악한 자다. 나는 이 말을 들음으로 해서 생각나는 모든 여자, 영근이, 행_, 양숙이, 화자, 화순, 정숙이 등등이 모두 나와 추잡한 짓하는 장면 만 생각나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요사히 너무 그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 이러한 것은 고쳐야겠다.

며칠만에 또 펜을 들었다. 오늘은 3일이다.

내가 요사이 이상하다. 도대체 나 자신은 뭘 잔뜩 한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별로 한것이 없다. 학교서 오자마자 책상머리에 달라는 붙는데 결국 따지고 보면 노트 몇 장 밖에 필기하지 못한것이다. 내가 요새는 편지를 많이 쓴다. 하여튼 하루에 한통씩은 꼭꼭 쓰는셈이다. 요새 한 편지만 해도, 영근이 언니한테 두통, 혜_한테도 하고 집에도 하고 우섭이 한테도 하고, 성경통신학교에서 보내는 통신과목도 답을 써서 우편으로 하고… 보통 때 같으면 편지 부치는 게 몹씨 싫지만 이런 경우는 괞찬다. 편지 부치러 서대문으로 가면 꼭 어느학교 학생인지 여학생이 쏟아져 나온다. 그게 좋다. 나는 참으로 더러운 놈이다.

하여튼 맘이 좀이상해진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혜_한테 1일에 편지했다. 용건은 간단했다. 집이나 알게 약도나 그려 달라고, 하여튼 쓸데없는 편지이긴 하다. 그러나 불연듯 혜_가 보고 싶었다. 혜_도 이제 키가 많이 컸을테지…하고 생각하면 불연듯 보고 싶다. 사실이지 혜_하고 나는 딴 남이다. 그러나 대할 땐 역시 형제같아지는것이다. 가족이라는 한 봉건적 테두리에서 혜_와 나는 묶여야 되며 만일 거기에서 탈선하면 그것은 죄악인것이다. 도둑질보다도 강도질보다도 더욱 무서운 죄악, 양심의 천사가 창을 찌를것이다. 혜_, 만일 그가 아주 딴 남이고 나와 친하다면…아, 내 골통은 또그 추잡한 생각으로 꽉 차는구나… 으흐흐, 혜_야, 미안하다. 제발 용서해다구, 체면없다.

그러나 너하고 한 번 길을 걷고 싶구나, 남들 보고 여보란듯이 너하고 팔장을 끼고 돌아다니고 싶구나. 혜_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나를 친오빠처럼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하면 고맙다. 그리고 또 그게 네 의무인걸, 만일 네가 나를 딴 남같이 대하면 좋다. 나는 너의 그 귀여운 얼굴에 키스해주고 싶어지는 걸, 아 몸부림쳐져.  이만 쓰겠어.

그리고 나는 유_이를 골탕먹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위조편지를 써서(글씨는 겸_가 쓰고) 발신인을 허 영애 라하고 유_이한테 편지를 오늘 부쳤다. (2월 3일). 내용은 8일, 오후 5시 덕수궁에서 만나자는건데 어디 이자식이 나와서 기다리나 안기다리나 두고 봐야지. 글씨가 남자글씨라 알아차릴지도 몰라. 그래도 아마 알아차리지는 못할 거야, 이놈 좀 아주 되게 골탕먹여 주어야겠어. 앗차 또 생각나는 게 있어. 영근이 언니 답장에 누나로부터’ 라고 써 놓고 누나’를 마구 지웠거든, 왜 지웠을가? 내가 나쁜놈이라 그런가? 도무지 모르겠어. 그래서 다음 답장에 나는 마구 누나’ ‘누나’하고 불러댔지 뭐. 쓰고 싶긴 쓰고 싶은데 잠이 오는구나 그만 자야지.

세상에 이렇게도 지독한 인간이 있는가? 주인 아주머니 말이다. 내가 있는 게 뭐가 그리 못마땅해서 지랄인가? 나이 마흔이 훨씬넘었으면 좀 어른다워야지 꼭 어린 계집애가 남을 시기하는 투다. 하연튼 더러운 여자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심하게 생각친 않았다. 그러나 어저께 식모아줌마 (식모 아줌마는 참 마음이 좋다.) 한테서 모든것을 들었다. 걸상이 없어졌기에 한참 찾다가 벽장 속에 있는 걸 겨우 발견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공부하는 걸 보기 싫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내 양말 좀 식모 아줌마가 빨아주면 생 야단났다. 왜 남의 식구 양말을 빨어 주는냐고 생 야단 난다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어른으로 대하기가 싫다. 그리고 또 내가 반찬이라도 더 먹을까 봐 부러 김치 깍두기만 놓는다는 것이다. 하여튼 나를 미워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밤에 좀 늦게 공부해도 전기가 닳는다고 생 야단이고. 뭐 내가 이사 올 때 선x 핑계대고 날 쫒으려고 했지. 그것이 한낱 핑계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면 그렇지 선x는 아직 음부에 발모도 안했을텐데 벌써 남자를 즉 이성을 알다니 안될 말이다. 하여튼 나는 어짜피 한 달 후 이 집을 나가야 한다.

1959(단기 4292) 2월 19일(고 1)

오늘은 왼일인지 아버님께서 식전에 이곳 최씨댁을 오셨다.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다. 내 하숙문제 때문에 오셨을까? 그렇지도 않은것 같다. 나의 요새 생활은 엉망이다. 공부하면서도 아주 내가 안해야 할것을 하는 것 같다. 요새 여전히 시험을 치르긴 치르는데 억망이다. 독일어는 좀 괜찮은데 영문하고 체육은 빵점을겨우 모면하게 되었다. 그리고도 나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되니 참 큰 일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시험이 곧 시작 될텐데

2월 16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서울시 모든 학교 학생과 일반인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데모가 진행되었다. 「일본의 용공정책을 규탄하자」, 「일본의 재일교포 강제 북송을 절대 반대한다.」, 「제국주의 일본을 타도하자」등등의 프랑카드가 마구 휘날렸다. 나는 역사에서도 배우고 국어에서도 배우고 했지만 하여튼 일본이란 나라는 지독한 쌩쥐같은 나란가 보다. 간사한 나란가 보다. 다음에 일본 여자하고는 결혼 안하겠다.

공부할 때마다 나는 영근이 생각이 나고 날 때마다 불안스러웠다. 그건 요전에 내가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안오는것이었다. 혹시 이 애가 오해나 하지 않았나? 그래서, 불쾌해서 답장도 안하는것이 아닌가?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 마음이 좋은 앤데… 헌데 또 몰라 지금 그 애는 나를 못된 놈으로 볼지 몰라. 무례하게 편지에 친밀감을 가지느니 성실하다느니 하고 떠들어 댔으니 말야. 하여튼 편지가 안오는게 안타까워 죽겠어. 좀 써 보내 주지. 이렇게도 남의 가슴을 태운담. 그리고 편지 쓰는김에 이영숙 선생님하고 누나한테도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통 안와. 아마 편지가 안들어 갔을 거야. 내가 참 어리석은 놈이지. 왜 영근한테 편지를 했는지 모르겠어. 편지함에 넣을때는 눈 딱 감고 넣어 버렸는데 날이 갈수록 걱정스러워. 이게 오해하고 화나 나 있으면 아이고, 나는 몰라. 좋아. 그애가 화 나 있으면 나는 아주 상종도 안해줄테야. 교회 갈때도 되도록이면 나혼자 가야지. 이게 밤길이 무섭다고? 안되지 안되.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내가 버티어야겠어. 그 애, 얼굴이 좀 잘 생겼다고 자만심에 차 있는거나 아닐까? 그리고 나를 어린 애 취급하려 드는것이나 아닐까? 걱정이 돼서 못견디겠어. 아... 영근아 편지나 보내 주렴. 나는 지금 고독해.

그리고 혜_ 한테서도 편지가 않와. 그 애는 지금 얼마나 컸을가. 얼굴은 얼마나 예뻐졌을가? 보고싶은데 어째 편지를 않할까? 유한이 아버지가 돈을 떼 먹어서 집을 가르켜주지 말라고 했을까? 인원형이 내가 하도 하숙문제로 졸르니까 귀찮아서 그랬나? 또는 혜_도 이제 클대로 다커서 나와 가까이하는 걸 꺼려하고 있는걸까? 그애도 이제 열일곱이나까 뭐. 어린 애는 아니지 뭐.

아니야. 편지가 않닿았을거야. 설마 그애가 그렇게까지 했을려고.

방학 때 화순이가 나를 극장 구경시켜줬는데 나는 그앨 어떻게 잘 구슬려 볼까? 그러나 이건 나대로의 망상이고 하여튼 방학때 가서 좀 친해 봐야지. 그애도 그리 미운 얼굴은 아니야.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하여튼 나는 일기책만 앞에 놓으면 어쩐지 자꾸 그런 더러운 생각만 난단말야. 나참 더러워서

그런데 나참. 주_이하고 2월 23일부터 자취하기로 했어. 고생이 막심하겠지. 정말 집이 집 같지가 않아서 창피할꺼야. 집에 울타리도 없어서 여학생들이 지나다니며 안을 볼텐데 아이 챙피해. 그러나 나는 그런 걸 극복해 나가야 할 운명에 부닥치고 있잖아? 아이 참! 지금 열 한시밖에 안됐는데 _수엄마가 자라고 하는구나. 전깃불이 아깝다는거야.

먼지를 털어가며 읽기를 펴든것도 까마득한 옛책 같아서 양심을 찌른다. 오직 내 마음만의 거울이기에 나는 언제나 이 일기책만은 빽속에 넣어 두거나 깊숙이 감추어 놓는다. 설사 내 아들놈이 생기더라도 안보여줄 작정을 하면서

 

(1959년 ) 단기4292년  3월 17일 (고 1)

그동안 나는, 아니, 나의 주위환경은 많이 변했다.

우선 나는 그 최씩댁에서 2월 21일 경에 이곳 상도동 주_이가 자취하는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하고 짐을 옮겼다. 지긋지긋하던 최씨댁을 떠나는 나의 홀가분한 마음 어느한구석엔가 자취할 걱정이 뒷전을 뚜드려 망서리게 하였지만 나자신 그까짖 고생이야 하고 결심한바도 있고, 또 최씨댁안에서의 나의 형편이 그러한 나의 걱정쯤은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어 나는 선듯 짐을 옮기게 됐다. 처음 와 보니 정말 말이 아니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가 할만큼 더럽고 춥고 어수선했다. 그러나 지금은 침대를 사다놓고 이것저것 정리해서 이젠 제법 공부 할 분위기가 되었다. 주_이는 도무지 그런데 관심을 안두기 때문에 방이 엉망이었으리라. 사실 어떤이는 남자가 그래야지 오밀조밀해선 못쓴다.”라고 제법 군자인양 떠들어 대나 나는 그렇게 생각진 않는다. 어느정도의 청결과 어느정도의 생활 방식 개선은 누구에게든 최소한도 있어야 될텐데 주_이에게는 그런것이 없는 듯했다. 너무 불결했다. 이불도 몇년을 빨지 않아 새까맣게 때가 묻어 마치 흰옷감을 염색해 논 것 같았다. 하여튼 닭털 침낭에서 어찌나 심하게 닭털이 나는지 도무지 어느땐 화가 다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모든것에 무성의 하였다. 내가 남의 흠만을 잡으려고 읽기를 펴든 건 아니다. 그것이 경제적인 면이건, 정신적인, 육체적인면이건 간에 그는 너무 무성의 할 때가 많았다. 그건 그렇고, 집 앞 길로 여학생이 지나갈 때 마다 나는 쌀 씻든 바가지를 들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왜 그럴까? 나는 좀 창피한것이다. 여학생이 힐끗힐끗 쳐다볼 땐 나는 더욱 얼굴이 빨개짐을 금치 못했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괞찮으려니 하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 와서 나는 전기를 도둑질해 쓴다. 전기를 도둑질해 쓰긴 첨이다. 처음엔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며칠 지나고 보니 그것도 잠간이었다. 매달아만 놓으면 라디오도 들리고 전깃 불도 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도둑놈들 심보가 꼭 이러리라 생각했다. 내가 나라전기를 도둑질 해 쓰기 때문인지… 나는 도둑놈을 그렇게 나쁘게 보진 않는다. 인간생활이 결코 생존경쟁일진댄, 그리고 그 생존경쟁이 결국은 아귀다툼일진대 도둑질이 뭐 나뿔 게 있는가?

약육강식의 20세기 문명속에서 경쟁에도 선악이 있단 말인가?  “주여주여”하며 가장 잘난 체 가장 회계하는 체하면서 죄를 짓는것 보담이야 얼마나 솔직한 죄인가? 그네들은 결코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네들은 결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것이다. 그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자기주관으로, 그 속에서 객관성을 전혀 무시하는 그네들은 무식하고 무지한 남성적인 매력에 나는 절찬을 가하고 싶다. 포승대신 금으로 만들훈장을 주어야 옳다.

자연을 숭배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바다. 우리의 근원을 따져 올라갈 때 우리’라는 한 단체는 하나의 인간이 근원이 된다. 그 인간이야 말로 객관이란게 있을수없다. 모두가 주관 뿐이다. 거기에 무슨 객관이 있겠는가? 나에게 사회라는걸 모르느냐하고 조소해도좋다. 나는 사회를 한 인간으로 보고싶기 때문이다.

전기를 쓰면서도 그러한 생각을 가끔하는 것이다. 결코 전기를 몰래 쓰는 게 양심에 꺼리진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 본연의 주관을 무시하고 나가는, 객관성에 얼뜬 그러한 전기회사 회원들을 욕하고싶다.

이제 며칠있으면 일주일 논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라 시험중인데도 나는 그지없이 태평하다. 그저 시험만 끝나라 눈딱감고 시험만 끝나거라. 시골 내려가서 재미있게 놀자꾸나. 두 달이나 안 갔더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난다.

 

1959년 (단기4292년) 3월 11일(고 1)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짐을 꾸려들고 기차에 올랐다. 적으나마 꿈을 싣고, 휘망을 싣고.

갔더니 작은형일은 잘 되었다. 그거 참 말성꾼이다. 군대에 꼭 틀어 박혀 있으면 뭐가 어때서 그 지랄로 튀어 나왔을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그저 참을성이 도무지 없다. 나하고 똑같다. 나는 6시에 천안에 닿자마자 시간마추어 교회에 가려고 영근이한테 갔다. 그렇게 보고싶던 영근이었으나 정작 보니 별 신통한 게 없다. 그저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여워 귀여워 자꾸 쳐다봐 졌다. 조그만 입을 꼭 다물고 약간 올라간 눈꼬리에 쌍눈섭 지어 가며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이번방학(도아니지만) 동안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종일이면 종일 방에 틀어박혀 한국문학전집만 읽어댔다. 사실 친구들도 없었고 영근이 한테 놀러가고픈 마음은 불같이 일어났으나 영근이 시험보는 도중이기 떄문에 나는 도사리고 아랫목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금요일에 교회가는 걸 감빡잊고 토요일에 갔었다. 기막힌 노릇이다.

서울 오기 전 날 춘자와 극장엘 갔다. 얼굴은 밉지않게 생겼으나 어쩐지 능글맞게 생겨먹었다. 전에 나를 극장 넣어줄때도 나는 그런 감정을 품었었다.

_이 형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시험치루어 떠러졌다는 소식에 접하고 나의 감정은 묘했었다

 

1959(단기 4292) 3월 16일

서울 올라옴. 이런 생활에서 형은 두 달만 참으라고 한다. 나는 두 달 후에 형님이 나를 어떻게 해주겠지 하고 꾹꾹참아 나갈 예정이다.

 

1959년 (단기4292년)  3월 25일  (고 2)

오늘은 아버님께서 올라오셨다. 작은형이 삼각지 육본으로 잘 옮겨졌다는 것이다. 참 잘 되었다. 다시금 병직형한테 미안한 일이다.

불현듯 지난 몇 년간 내가 서울서 지내며 옮겨 다닌걸 회상 해 본다.

 

신생숙->청량리(자취)->겸_->통학->원효로(하숙)->관이(자취)->천흥(하숙)

->명륜동(박떠벌네 자취)->명륜동(재만네 자취)->숙장댁(하숙)->상원(천막생활)

->서장댁(하숙)->잠선교(하숙)->통학->아현동(준식이네집)->명륜동(만_이라는 애)

->겸_(충청도)->상도동(자취, 주_이와)->?원서동(6월)->혜화동(전세)(8월)

->?명륜동->신촌->?명륜동(41년 9월)->이화동(42년 5월)->?

 

그런데 19일에 천광사 승호네 영히누나가 자살했다는 것이다. 참 기 맥혔다. 며칠 전에 내가 행운의 편지를 주었는데 날 흘겨보면서도 어딘지 사랑에 넘치는듯한 표정으로 몰라 얘, 네가 보통땐 편지 한장 안하다가 그런 귀찮은 편지만 싹 하니? 베기싫게!’하며 살작 흘기던 기억이 나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찬 죽엄으로 변하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탐정을 좋아하는 나는 불현듯 무슨 말인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타살? 은 아닐것이다. 그자리에 규_이 큰누나도 같이 있었다는데……? 설마. 그리고 화자 춘자는…? 설마. 그리고 후처는?...

설마…… 사람을 믿어야지.

일기에 손을 안댄지도 또 며칠이 확확 지나갔다.

지난일을 더듬으려한다.

우리학교 봄방학이 3월27일 부터 4월 3일까지였는데 나는 이날 한게 그래도 많다면 퍽 많다. 우선 3월27일에 한 일은?

이날 나는 종x이네 집에 가 보았다. 시골서 전부 이사 왔다 하는데 제법 큰방 하나를 전세로 빌려 쓰고 있었다. 종x이 어머니는 광천에 가 있고 거기에는 종x이와 영복이와 종x이 큰누나와 둘째 누나가 있었다. 한남동인데 그곳은 미군부대가 있다. 종_이와 되도록이면 가까이하지 말자는 내 마음이었으나 오늘만은 했다. 내가 그러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다. 종_이는 점점 나쁜 애들하고만 몰려다니며 노는 게 눈꼴 사나웠다. 그것도 좀 크게 노는 놈들이면 몰라도 정말 어리석게 나빠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채양도 짧막한 깡패모자만 쓰고 또 맘보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어쩐지 옛날의 순진한 종_이를 잃은듯해서 서운하기도 했다. 종x이네 집에서 을지로 사가로가서 종로 사가까지 걸어가 아줌마 일하는데를 들려서 놀다가 집에 왔다.

1959년 (단기4292년) 고2 3월 28일 구름

오늘은 오후 네시쯤해서 종만형한테 가 머리 깍고 겸_네 잠깐 들렸다. 준식이네 집에가서 저녁을 먹고 종로사가에 가 아줌마 있는데 들렸더니 아줌마가 아줌마의 오빠 집 즉 나하고는 사돈간인 집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저녁을 먹고 시간이 늦어 합승을 타고 집에 왔다.

3월 29일 비 일요일

오늘은 아침 일찌기 종로 오가에 있는 사돈집을 찾아가서 아줌마의 남동생(청주고등학교3년)을 만나 보았다. 나이 스물이라하는데 퍽 어려 보였고 또 키도 나만 해서 어쩐지 동생같은 기분이 났다. 종일토록 놀다가 저녁에 계림에서하는 「환상」을 감상했다. 그리고서는 다시 사돈댁에 가서 저녁을 먹고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1959년 (단기4292년) 고3월 30일  월요일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은 없다. 단지 있다면 아까 낮에 한강에 나가본 일이다. 비가 잠깐 왔는데도 누렇게 번진 강물을 보며 대한의 벌거벗은 민둥산이 생각나며 그 무엇인가 가슴을 치는 게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저게 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그 한강이 어느 계곡에서 시작될 때, 그계곡은 아름답고 희망에 가득차리라.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기고, 조약돌을 굴리며 찰랑찰랑 흐르는 물에겐 희망과 포부가 있었으리라. 이것이 진정 인생의 소년기에 비겨지리라.

그리고는 그물이 합쳐서 강물이 되어 흐를땐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고 또한 그속에서 알아지는 게 많으리라.

이것이 진정 인생의 청년기에 다 비겨지리라.

그리고 그물이 바다와 합할 때 그물은 영영 자취도 없어지리라.

이것이 진정 인생의 황혼기에다 비겨지리라.

강물을 하나의 인생에 비유하는거. 이것이 혹은 모든 걸 억지로 합리화 하려는 나의 결점인지도 모르지…

 

1959년 (단기4292년) 고3월 31일 화요일(고 2)

오늘은 혜_네 집을 어떻게 겨우 찾아서 저녁을 얻어먹었다. 그리고는 내일 극장에 데려가 주마고 했다. 혜_는 생각하던 것보다는 숙성하지 못했다고 생각 됬다. 그리고 얼굴도 뭐 그리 예쁘지는 못했다. 겨우 밉지 않을정도이다. 하여튼 그래도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1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혜_하고 약속한 날인데 어쩐지 가기가 싫다.

첫째, 영화가 「홀쭉이와 뚱뚱이 논산 훈련소에 가다」로써 한번 웃으면 그만인, 아주 흥미 중심의 것이고

둘째, 가면 또 혜_가 어린것들 업고 끌고 주렁주렁 매달고 올텐데 꼴보기 싫고

하여 그만 두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께름직 했으나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걸로 합리화하려 애썼다.

오전 한시쯤해서 형한테 찾아가서 이외로 시계 하나를 얻어 찼다. 그리고 돈도 약간 얻었다. 기뻤다. 그리고 규_이네 집에서 좀 쉬다가 네시쯤에서 YMCA 앞에서 혜_를 기다렸으나 도무지 오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그냥 집으로 와 버렸다.

 

4월 2일  목요일 (고 2)

오늘은 주x이 하고 상도동에서 미도파 앞까지 걸어갔다.

무척 다리가 아파서 올 땐 할 수 없이 타고 왔다.

 

4월 3일 금요일

오늘 학교에 와서 개학식 하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4일 토요일

오늘은 수학, 국어, 영어, 세과목에 걸쳐 시험을 보고 반을 편성했는데 나는 2학년 1반 5번이 되었다.  키가 자꾸 줄어든다. 아마 그걸 해서 그런가 보다.

그러나 규_이 말엔 키가 커진다는데…

이제 I자빳찌를 떼고 고등학교 II짜로 바꿔 다는 순간 나는 문득 창피한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그건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겠다. 그저 껍대기 치장만 자꾸 올라 가니까 그런가보다. 알맹이는 텅텅 빈채로……

나는 이상할 정도로 2학년이 되면서 무슨 계획이라든지 희망이 도무지 없다. 너무 실천력이 없는 나 자신을 아주 자포자기했기 때문이랄까?

 

4월 5일 일요일 맑음

식목일이라 그런지 날씨는 화창했다. 아침에 혜_한테 찾아가서 극장에 데려가려 했으나 빨래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 해서 그냥 오다가 아줌마 일하는데 들렸더니 뜻밖에 누님이 와 있었다. 앉아 있기가 뭐해서 곧 왔다.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6일 월요일

오늘은 대통령령에 의해서 놀기로 되어있는데 우리학교는 등교해서 청소를 하게 되었다. 반 아이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나, 장용, 이영이 한반이 되었다. 참으로 오랫만이다. 어디 이영과 다시 친해 보자고 나는 결심했다. 보기싫은 박xx이니 윤xx이니 호xx 이니 하는 작자들은 모두 딴 반으로 가서 나는 참으로 기뻣으나 내 주위엔 전부 딴 반 놈들이고 또 수x이 처럼 떠들기 좋아하는 애들만 있어서 조금 께름직했다. 그리고 담임인 신용태 선생은 아주 신경질적인 선생임을 나는 안다.

 

4월 7일 화요일(고 2)

오늘은 2시반에 강당에서 열린 동성고교 입학식에 참여하여 신입생에게 뺏지를 달아 주었다. 못을 쥐고 에리를 뚫을 때 「만일 이 못이 목을 뚫는다면?!」하고 생각하니 몸서리 처 졌다.

 

4월 8일 수요일 비

아침에 뻐스속이 어찌나 혼잡한지 아침에 밥을 잔뜩 먹고 갔는데도 뻐스에서 내려보니 뱃가죽이 쑥 들어갔다. 여학생들이 앞뒤로 서서 마구 비벼대는 통에 기분이 좋았으나 가슴이 턱턱 막히고 김치냄새가 마구 풍기는 바람에 (나는 김치 않 먹음) 눈쌀이 찌푸러졌다. 학교에서 이영이 우동을 사줬다. 한반이 된 게 퍽 반가웠으나 역시 애가 퍽 단순한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오늘은 새 교과 12권을 나눠 줬는데 특별히 신통한 게 도무지 없다. 절망가운데 새로움을 발견하는게 열락을 가져옴을 생활의 못토로 삼으려 하는 나로서는 별로히 새희망을 어수선하게 늘어놓고 싶지도 않았다.

 

1959(단기 4292)  4월 9일 고2 목요일 비

하루종일 한일이 도무지 없다.

집에 오기가 어쩐지 퍽 싫다. 집에 썩 닥아오면 다 낡아 빠진 집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란 「지긋지긋」그것이다. 더구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컴컴하다. 정말이지 너무나 암흑과 같다. 또 밥을 해야지…

아이고 이 생활을 언제 청산하나? 사람 거의 죽어간다. 그러나 한가닥의 희망이라도 잡아볼까?

한점의 구름이

여기 널려있다고 하자

그것이 이글거리는 땟볕을 가릴 때

그는 결코 시커먼 악이 아니다

 

그러나…

새싹을 덮을때

낙엽을 덮을때

따스한 마루를 덮을때

그는 결코 악을 면치 못하고

시커먼, 하나의 거치장스런

뚫어진 하수도.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10일 금요일 비

오늘은 아침에 과외 수업을 하기 때문에 여기서 첫차를 타야만 했다. 그러나 게으른 나의 버릇은 예상없이 그대로 반영되어 여기서 7시15분차를 타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 가니 8시 15분이었으나 오늘은 처음이라 그런지 선생님이 나오시질 않으셨다. 다행이었다.

하루 수업을 거뜬히 마치고 집안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풍x이를 요리조리 구슬려서 그가 전에 뻐스속에서 친해진 여학생하고 이번 일요일에 남영동에서 11시에 만나 창경원 가기로 약속했다는 것을 그여히 말하게끔 유도했다. 그것을 말하게 하는데 무려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그 학생의 전화 번호만은 내내 알지 못했다. 그것만은 아무런 수단으로도 알아 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후암동에 있는 그자의 집도 어렴풋이 알았고 전화는(서구)이고 또 민씨라는 것을 알았으니 전화번호부를 뒤지면 나오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전화번호를 알아서 무엇하겠느냐? 나자신의 자문자답에서 나는 대답할 바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나도 한목끼고 싶다. 그렇게 명랑하고 사귐성 좋은 여자의 동무들과 한번 놀아보고 싶다. 경험도 없으며 이론으로만 떠벌리는 나의 가면적 생활, 이중의 탈을 얼른 벗어 버리고 싶다. 그리고 나는 오늘 풍x에게 거짓말을 했다. 내가 으젓이 좋은 집에서 하숙한다고 얘기했더니 그러냐고 햇다. 다 낡은 집에서 자취한다고는 차마 말이 나오질 않으니 말이다.

참으로 단순한 애라서 속여먹기 딱 알맞은 건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런 걸 약점으로 믿고 대드는 나자신 비겁하지만 그는 나보다 키도 크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속이면서 아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뻐스속에서 나는 웬 지지배 학생이 자꾸 웃는데 나도 따라 웃었다. 지지배역시 실없는 인간이라 나역시 실없는 인간이구나. 흐흐흐…

집에서 주x이는 너무 실없이 웃는다. 도대체가 웃음을 숨쉬듯하니 도무지 그의 얘기도 신중히 들리지도 않고 또 하두 염증이 나서 주x이 웃음소리만 들으면 신경질적으로 기분이 나빠지고, 또 나자신 거기에 비례해서 웃음도 사라지고 우울해 지는것이다.

그리고 좀 협조해서 뭘 해 나가야겠는데…

저녁에 전기를 전깃줄에 다는데 옆방 큰 애가 보았다. 큰일 났다. 그 수다쟁이 아줌마가 동네방네 다 돌면서 떠들어 대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11일 토요일 맑음

날씨가 퍽 매섭다. 겨울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일까?

오늘 첫재 수업중에 교실문을 활짝여는 바람에 쳐다보니 외할아버지가 와 계셨다.

부끄럼과 창피에 나는 동무들의 폭소를 뒤로 두고 할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께선 이렇게 여행도 하시니 아직도 정정하신가 보다. 일인즉 할아버님께서 육본에 가서 작은형 좀 만나서 옷좀 전해주어야 하겠는데 어딘지 자세히 모르니 나하고 같이 가 달라고 하셨다. 나는 외할아버님을 모시고 육군본부로 갔으나 이미 접수 시간이 지나 버려서 할수없이 발을 돌려 종만형한테 갔더니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할아버님은 동대문집에 가신다고 먼저 나가셨고 나만 다섯시까지 기다려 머리 깍고, 밥 사먹으라고 억지로 주는 200환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갔다. 200환으로 헌 노트를 샀다. 할아버님께서 1500환 주시긴 주셨지만 그거 뭐 뻐스표 사고 이것저것 사면 단돈 10환도 안 남을텐데 지금 밥 사먹을 정황이 없는 것이다. 집에 와서 이불 꼬매고 내일 종만형하고 창경원 가는데 되도록이면 혜_하고 큰형도 같이 가기를 나는 원했다.

그간 별로 한 일이 없다. 다만 있다면 공부시간에 도무지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그것이 나한텐 이상한 일이었다.

 

4월 17일

오늘 누님한테 놀러갔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사람이 말이 아니었다. 가정이라는 따뜻한 그 무엇도 없이 객지에서 얼마나 외로우랴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도 무관심했든 게 미안했다.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19일 일요일

오늘은 나하고 종만형하고 혜_하고 창경원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을 일찍 먹고 만나기로 한 계시판에서 10시 30분부터 11시 20분까지 꼬박기다렸으나 혜_는 오지 않았다. 혹시 편지를 못받아 보았는지, 일이 있는지, 어느 놈팽의 장난인줄 아는지, 또는 나하고 다니는 게 창피해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마지막의 나의 짐작은 틀릴꺼다. 왜냐면 혜_는 어리고, 또 종만형이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잠깐 규_이 네를 들렸더니 대문간에서 선녀하고 정숙이가 얘기하고 있었는데 날 좀 쌀쌀하게 대했다. 나는 그만 속으로부터 화가 벌컥 솟아났다. 도대체가 저 계집애가 왜 날 화 내게 하는가? 혜_ 못 만난 분풀이를 실컷하고 싶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터덜터덜 대법원안에 종만형을 찾아갔다. 형은 도배지를 바르고 있었는데 아마 오후 서네 시가량 되어야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이다. 하 이거 기가 막힌다. 안될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아침부터 혜_도 못보고 정숙이도 그야단하고 하더니 이젠 종만이형도 일에 붙들려 꼼짝 못하는구나. 그런데 거기서 뜻밖에도 세윤을 만났다. 무슨 클럽(송죽구락부)에 들게 되어 그 일로 왔다가 슬슬 산보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세윤이 하고 돌아다니다 호떡집에 가서 뭐 좀 먹고 나왔다. 세윤은 한 몇 년 간 신문기자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때 종만이 형이 억지로 맏기는 돈 200환을 받아 가지고 경남극장에서 하는 영원한 추적”, 죤 웨인과 메리 머피가 주연인 영화를 감상했다. 나에겐 모두가 그저 그랬다. 무의식중에 프로그램을 사놓았으나 이것이 꼭 무슨 휴지통에서 꺼낸것 같아 내버리려 하다 그냥 두었다. 저녁에 돌아와서 목욕탕엘 갔다. 주_이도 목욕하고 있었다. 들어와 공부 한자 않고 잤다.

 

4월 20일 월요일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났다. 공부 좀 하고 학교에 갔다. 하루 종일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이불펴고 잤다 공부 한 자 않고.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18일 토요일

오늘도 조퇴를 했다. 한시간 공부하고 조퇴하니 기분이 얺짠았다.

싱거웠다. 삼각지에 내려서 8625부대까지 무진장 걸었다.

하 이거 어디 더워서 견디겠느냐? 겨우 겨우 기다려서 작은형을 만났는데 하나도 웃는 낯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다. 옷도 그냥 가져 가라는 것을 억지로 줬다. 남은 그것 땜에 온통 고생했는데 남의 고생은 통 알아주지 않으니 기가 막힌다.

거기서 짜장면 먹고 삼각지까지 같이 걸어왔는데 작은형은 또 서울 부대에 있는것도 불평했다.

어찌하면 그의 욕망을 충족시킨단 말인가? 시골 내려 간다는데 학관에 다닐 비용을 가지러 가는 모양이니 나는 다니기는 다 글러 먹었다. 하여튼 괴상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집에 와서 세수하고 주x이 뻐스표 내 주고 주x이는 시골로, 나는 종만이 형한테 갔다가 도루 돌아왔다. 올적에 또 200환을 줬다.

 

4월 21일 화요일 맑음

저녁에 독에서 동치미 훔쳐 먹다가 옆집 아줌마한테 들켜 챙피 톡톡히 당했다. 학생은 자기네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데 어째서 동침이를 훔쳐 먹느냐? 이거다. 나참 창피하고 부끄러워 혼났다. 어찌나 기분이 나쁜지 되든 안되는 노래래도 불러 이 기분을 물리치려 했으나 도무지 기분은 가라 앉지를 않는데 일기를 펴드니 속이 시원하다. 하기야 자기네들도 우리 쌀을 훔쳐 먹으니까 우리도 좀 동치미를 먹은 들 어떠하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칭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하여 동치미나 훔처 먹고 살세나.

 

1959년 (단기4292년) 고4월 22일 수요일 비

학교가 다 파하고 교문을 나서는데 뜻밖에도 병직형이 와 있었다. 나는 기쁨이 앞섰다. 사복을 하고 있어서 나는 제대 한줄 알았다. 그러나 내 기쁨은 다소간 감소되었다. 휴가 왔다는 것이다. 삼수를 맞나서 15만환을 도루 찾아야 할텐데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병직형 한테서 악방에 허가증이 없어서 한약방만 열고 있는데 그 형편이 말이 아니라는 것을 들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서울서 그래도 잘 먹고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러나 내가 이러는 동안 시골서 부모들은 얼마나 간을 태우실까? 아 내가 좀더 절제있는 생활로 나 자신의 조그만 허영심을 불살라 버려야 되겠다. 나는 설움이 울쿡 뻗쳐올랐다마는 꾹꾹 참았다.

 

1959년 4월 23일 목요일 맑음 (고 2)

“사람 제잘난 맛에 산다”는게 새삼스러운 소리는 아니다만, 오늘 절실히 느꼈다. 뻐스안에서 얼굴 지지리 못난 어느 인간 하나가 자기가 잘난체 인상 쓰는것 부터가 그랬고, 학교에서도 인품으로나, 성적으로나 얼굴로나 못난 양반이 잘 난체 떠들어 대는 것 부터가 그거고 또 자기가 제일인 양 떠드는 병길이가 그러하다.

하루의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큰형 하숙하는 곳을 찾았다. 소풍가서 없었다.

 

(1959)  4292년 고1959. 4. 24

학교 수업이 끝나고 특활시간에 체육관에서 50환씩 내고 영화 감상했다. 동물들의 세계 및 미 보스톤 마라톤 대회 실황중계이었는데 50환이 아까울 정도다.

체육복을 싸들고 종만이형 한테 가니 집에 없고 신체검사 관계로 시골 갔다 한다. 할 수 없이 터덜 터덜 돌아 나왔다.

 

  1. 4. 25 토요일 맑음

수업이 끝나자 말자 중앙고교도 달려가 형을 만나 쌀 값 좀 울거내려 했드니 월급 날이 아직 안돌아 왔다하며 29일에 오라 한다. 할 수 없이 집에 와서 주_이는 시골가고 나는 자다.

 

1959년 (단기4292년) 고1959. 4. 26 일요일 비

잠에서 깨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매우 음산한 날씨다. 음침한 창가엔 그 무슨 압박감 같은 무거운 기분이 내리눌르듯 사지는 뻐적지근 하며 노곤했다. 반쯤 열린 창으로 기와에서 물이 떨어지는게 보인다. 비가 좍좍오면 그 횟수가 빠르고 보슬비로 변하면 가끔 떨어진다. 저 기왓장에서 떨어지는 방울이 빨리 없어져야 할텐데… 할텐데 하다보니 12시가 지났다. 세x이 그놈은 약속을 어지간히 안지킨다. 놀러온다 하드니 도무지 놀러 오지 않는고나. 망할놈들, 혹시 우리를?... 그러나 이런건 약자의 소견이다. 우리는 우리대로의 굳굳한 프라이드가 있는게다. 심심하든 중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영근한테 편지했다. 내용은 그간 잘 있었는가? 로 시작해서 봄은 한창 무르익어 갔다느니. 어쩌니 하여 너저분하게 내려쓰고 혜_ 주소만 가르쳐 주고 내주소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건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영근이가 수집어서 편지를 잘쓰지 못할텐데 나중에라도 주소를 몰라서 편지 못했다는 핑계가 되며 둘째로 만일 했으면, 영근이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나? 하는 것이다. 하여튼 결과는 두고 볼 문제다.

3시경에 우산 들고 혜_네를 찾아 갔더니 식구가 다 있었다. 혜_ 엄마가 떡장사 한다고 말하니 비통해 들 하였다. 모두가 생각하는 허수아비 같았다. 불에 타는 피라미트 같았다. 저려진 명태의 비늘 같았다.

인원형은 도무지 자립도 못해 가며 뭘 한다고 나한테는 여전히 뻥뻥대고, 혜_는 도대체 내가 온 게 반갑지 않은지 시무룩 해 있고 유한아버지는 할 일이 없으니 집에서 우산 고치고 있고 가끔 신경질 나면 유한이 두드려 패고… 유한엄마 버는 돈으로 그날 그날 생활을 연명하고… 인원형은 또 인테리로써의 프라이드는 지키느라고 그러는지 여전히 입심좋게 떠들어 대고… 다 잘못이야! 어울리지 않는 조개 껍질이야! 맞지 않는 솟 뚜껑들이야!. 화요일에 혜_하고 9시반에 YMCA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의 문학전집을 남에게 빌려 주었다나.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고 저러고 영근이 보라고 준 조개는 어찌 된셈야? 내가 아주 준걸로 아나보지? 그러면 곤란하지. 내꺼라면야 무슨 문제겠는가?

집에와서 골아 떨어지다.

 

  1. 4. 27 일요일 구름

아침에 뻐스를 타는데 어저께 덴데가 몹시 아프다. 물에 데서 껍질이 벗겨 지기는 처음 당하는 일이다. 집에 일찍 와서 소제하다 저녁에 일찍 자다.

 

1959년 (단기4292년) 고1959. 4. 28 화요일 맑음

학교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누님있는데 갔더니 오늘 병운형 아줌마는 천안 내려갔다 한다. 좀 섭섭했다. 오늘 나는 누이한테서 부터 매형이 새 마누라를 얻으려고 이혼을 요구한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아니 그런 트릿한 인간이 있더란 말인가? 누님하고 짜장면 사먹고 화신에서 기다렸으나 혜x는 오지 않았다. 참 약속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계집이다. 사람 핏대나서 죽을 지경이다. 아니 그 쪼그만 년이 벌써 나하고 같이 다니는 게 챙피해서 그러는가? 물론 알건 다 알았으니까 그럴테지만 고년 너무 지독하게 나를 없신여긴다. 괘씸하다.

뻐스가 없어 합승타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주x이는 자고, 누룽지 밥은 쪼금 냉기고, 그래도 짜장면이나마 먹었기에 다행이지.

 

  1. 4. 29 수요일

형한테 갔더니 학교 소사가 편지와 함께 4000환을 주었다. 나는 여기서 우선 쌀 한 말 사고 백곡집 사고 국사의 연구를 사니 1000환 남았다. 먼저 있든 돈 하고 해서 2000환이 남았는데 이걸로 뭘 한단 말인가? 학관 다닐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겠다.

 

  1. 4. 30 목요일

오늘 한일은 0이다.

 

  1. 5. 1 고2 금요일

오늘도 한 일은 여전히 0. 여기서의 0은 나의 낙망과 절망이다. 요사이의 나의 생활은 0이다. 여 희망이 없다. 집에 오기도 싫고 그렇다고 학교 가기도 싫다. 내가 지금 자살한다면? 형은 묵묵히 서서 비감 해 할것이고 어머니는 간을 짜내는 통곡을 하실 거고 아버지는 시체를 내려다보시며 애석해 할꺼고 큰어머니는 눈물을 꼭꼭 찍어 낼 꺼고 병직형은 묵직히 앉은채 있을거고 작은형은 눈하나 깜짝이지 않을꺼고 또 작은 아버지는 왜 죽었느냐고 자꾸 물을거고 작은 어머니는 눈물을 조금 흘릴거고 새 아주머니는 흑흑 느껴 울거고, 그머리마을 아줌마는 형식적으로 나마 슬퍼 할꺼고, 영근이는 깜짝 놀라며 잠시 동안 애석 해 할꺼고 재식은 기도 해 줄꺼고 시계방 주인은 죽었느냐? 하는 정도 일꺼고 주_이는 회상에 잠길꺼고 세x이와 규x이는 눈물을 조금 흘려 줄꺼고, 관이는 두고 두고 애석해 할꺼고 혜_는 어마나! 하는 정도로 그칠거고 신문에선 학생 자살 이라고 크게 보도 될거고 김경환선생님은 어째 그랬느냐고 당장 우리 집에 와 줄거고 전창기 교장은 아하 우리학교에 그런 학생이 그랬느냐 하는 정도로 조회에 발표할거고 발표하면 이영은 애석해 할꺼고 김x훈, 방x석, 장x은 고소를 금치 못할것이고 호x복만은 애석해 해 줄것이다.

자살? 흥! 자살? 정말이지 어떤땐 싹 죽어 없어져버리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어디로 아주 산 속으로? 또는 아주 번화한데로. 산에 가서 중이 된다? 또는 인천 같은 친척이 하나도 없는데 가서 일을 하드라도 하여튼 떠나고 싶다. 가서 한 3년이나 5년동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일하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고 싶다.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어 나는 나 대로의 자립이 되고 또 사회경혐도 쌓고 싶다. 5년 후 다시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반겨할테고 또 가만있자. 그때쯤 되면 큰형은 장가들어 아들도 낳았을꺼고 병직형도 장가 들었을거고 작은형도 장가 들었을꺼라. 병관형은 아들이 주렁 주렁 있을꺼라.

자 영근이는 24살이라. 한참 연애할텐데 내가 나타난다면? 네가 어디서 본 무말랭이냐? 하겠지 또는 조금 놀람의 눈을 던질테지. 혹은 반겨 할까?. 그러면?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돌아서리라. 그리하여 다시 사라지든지. 나대로의 생활에 잠기든지 하리라.

이것이 한때의 공상일까? 아니다. 지금이라도 인천 어느 공장에 자리가 있으면 나는 서슴치않고 가겠다.

 

  1. 5. 2. 토요일 고2

큰형한테 갔다. 학관 다닐 돈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갔다 준다 한다.

고맙다. 참 고맙다. 어찌나 고마운지.

종만이형한테 가서 쓸데없이 시간 보내다가 집에 왔다. 오늘 뜻밖에도 규x이네서 놀던 애를 만났다. 반가웠다. 집이 어디냐고 했더니 청파동이란다.

 

  1. 5. 3. 일요일

오늘 저녁에 썸머타임 해제다.

지금 일기를 들고 앉아있는 나, 참 쓸쓸한 바로 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9시 반쯤해서 중일이 한테 갔더니 진달래를 꺾어오고 있었다. 거기서 놀다가 집에 오니 주x이가 없다. 놀러 나갔다는것이다. 기가 막힌다. 모처럼 산에나 올라 가려 했더니만 그것도 틀려먹었다. 지금 나는 이 읽기를 쓰면서 참 고독하다. 어째서 주위의 모든게 서글프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면도칼을 보아도 내 목줄을 끊어 자살하는 환상이 떠오르고 음침한 방에서처럼 희망이 없다.

희망없는 생활! 이는 진실로 괴롭다. 풍x이 그놈은 민영자만나러 남영동으로 간다지. 나는? 이제 하루 종일 방에 쑤셔박혀 있어야 한단 말이냐? 아 참 고독하다. 외롭고 쓸쓸하다.

지금 시각은 밤. 오늘은 고독감을 안고 결국 밖에나가 풍x이와 만났다. 그 새끼는 깔치 만나려다 썸머타임 해제로 약속이 어그러졌다나?

그 애하고 명동거리를 걷다가 허어져 나는 동영에가서 상처뿐인영광 을 감상했다. 영화관에 사람을 마치 짐짝같이 처 넣어서 영화감상’이 아니라 영화지옥’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문화수준이 높단 말인가?

3류극장만 찾아 다닐만큼 소박하단 말인가

3류극장만 찾아 다닐만큼 경제가 궁핍하단 말인가?

어찌나 숨이 막히는지 뻐스 속에서도 속이 답답했다.

집에 오니 주x이는 와 있었다.

 

1959년 (단기4292년) 고2   5월4일 월요일

아침에 첫 차를 탓는데도 지각을 했다. 교문에서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쌀 한 말 값과 반찬을 주셨다.

오늘은 학교를 파하고 곧 집에 왔다.

x이의 늘상 하는 말투 뭐. 흐흐… 11 부터 셤본다. 잘 봐야겠다. 스톱.. 조은파편이 이기지? 조은파라네.. 주요한이라네……” 말을 어물어물하면서 늘 콧속에서 맴돈다.

저녁에 라디오의 스무소개를 듣고 있는 나자신.

 

  1. 5. 5. 화요일

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창경원을 지나려니까 어린 학생들이 똑같은 무용복을 착용하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저런때가 있었을테지 하고 생각하며 뻐스를 타고 지나치자니 감회가 솟구쳤다. 어릴때 눈 싸움해서 박금자를 두들겨 준일로 해서, 그가 나를 막 떠밀며 무서운 표정을 짓는것과, 겁에 질렸던 나의 얼굴……

생각에 빠져 까닥하다 혜화동에서 내리지도 못할뻔 했다. 어릴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가운데 첫시간을 맞고 둘째시간을 맞고 또 셋째시간을 맞고……

수업이 끝났다. 곧장 이영과 함께 종로 사가까지와서 혀여저 누이한테 가서 내일 소풍갈때 도시락을 부탁하고 집에 돌아왔다.

 

  1. 5. 6. 고2 수요일

오늘은 소풍일이다. 그러나 어쩐지 나의 심정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했다. 소풍가는 기분이 도무지 나지를 않으니 말아다. 몇 년전만해도 소풍이다 하면 며칠 전부터 서성대며 초조해지던것이… 이제는 제법 어른이 되었나 보다.

9시반까지 중량교에 모였다. 도시락은 누님이 싸 주셨다. 거기서부터 동구능까지 한 사오리를 걸었다. 가까워서 퍽 좋았다. 이영과 한철원과 그리고 나와 또한명이 짝이 되어 점심을 나누었다. 푸른잎이 무성하다. 그 잎과 잎사이엔 개미가 오르내린다. 이슬이 맺힌듯 선명한 풀포기 사이엔 무수한 태고적의 비밀을 갖춘듯한 검은흙이 있다. 그리고 솔꼴이 썩어 엠완 탄환의 화약처럼 토막 나 있다. 그역시 검푸른 빛갈이다. 몇 년이고 썩었을 것이다. 또한 저위에 매달린 것들도 이젠 땅위의 이것들처럼 썩어지고, 그리고 새 싹을 피우는 거름이 되고…. 무수한 나무와 나무, 풀과 풀, 흙과 흙들 사이에도 무수한 감회가 넘쳤고 인정이 매마른 딱딱한 서울바닥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차이나는 정화된 순결 그것이었다.

둘레둘레 아무리 보아도 산림뿐이고 인적이라곤 우리 일행밖에 없다. 김밥 하나도 장소에 따라 그 얼마나 맛이 다르단말이냐? 기차 안에서의 그것은 앞사람이 쳐다보니 꼭 도둑밥 먹는 것 같고 집에서의 그것은 도무지 새로운 맛이 안나고, 하숙집에서의 그것은 도무지 사 먹는 것 같고 한 개 한 개에 정가와 세금이 붙어있는 것 같아 매시껍건만…… 그러나 대자연속의 이 김밥이야 말로 얼마나 맛이 있는가? 이말이다. 아홉개의 능이있다. 그러나 9개를 모두 구경하진 못했다. 모두가 그게 그것이라 하나만 보아도 다 알수 있었을 것 같았나 보다.

동구능에서 점호하는데 나는 뻐스가 서는 데 가서 기다렸기때문에 나 때문에 선생과 친우가 한참이나 기다렸다 한다. 이제 나는 큰일 났다. 그 화 잘내는 선생이 가만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1. 5. 7. 목요일

아침에 교무실로 들어갔더니 선생은 핏대가 나가지고 계셨다. 화를 내며 오후에 오라고 한다. 하루의 수업을 하는둥 마는둥 하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에는 소풍 안가고 학교로 나온 아이들에, 나처럼 이탈한 애에 (사실 나는 이탈하지는 않았다), 한 열 두 서너명이 마치 표범 앞에 선 나무꾼들처럼 서 있었다. 이윽고 담임은 때리기 시작했다. 먼저 이명규가 얻어 맞았다. 이 선생은 학생을 벌하기 위해 때리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자기 분풀이로 때리는 것 같았다. 때리는데도 꼭 깡패가 치는 식으로 주먹으로 턱을 쳤다. 선생에 대한 반발심이 솟구쳤으나 나도 저렇게 맞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섬찍했다. 하여튼 우리학교에서 제일 성미 고약한 선생님은 이 신영태 선생님뿐이리라. 아이들 평이 모두 그렇다. 어떤땐 악질적으로 노는 때도 있는가 보다. 너무 신경질을 내니까 어느땐 선생을 대한다는 생각 보다 뻐스에서 발등을 밟았다고 으르렁대는 나이든 사람 대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비신사적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정이 이루어 지겠는가? 물론 엄격한건 좋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거의 발작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태도에 우리는 언제나 긍정하며 복종만해야만 된단 말인가? 흥! 사제지간은 무어며 스승을 섬긴다는 건 무어냐? 이렇게 서로 물어뜯고 잡아 나꿔채는 세상에 스승이 어디에 존재하며 선생님라는 대명사가 붙은 인간에 대한 존경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얻어 맞은것으로 좋다. 그로써 나는 충분한 벌이 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반성문을 써 오라는 건 무어냐? 아니 소풍가서 조금 속 썩인 게 그렇게도 분하단 말인가? 하여튼 도대체 하나도 존경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모른다. 이제 지내봐야 될테니까…… 김경한선생님한테는 어느정도 나의 의사가 통했었다. 그러나 이 선생은 주제 넘게 고지식하고 신경질적으로만 놀기 때문에 도무지 우리 의사가 통하질 않는다.

학관다닐 돈을 가져다준다는 형은 어째 안오는고. 그러면 그렇지, 약속을 지킬리가 있나? 잠시나마 믿은 내가 바보지. 엉큼한 양반. 흥. 너를 보살펴 줄 날도 머지 않았다고? 말은 좋지. 미사여구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수작인가?

반성문인지 뭔지 쓸 생각하니 구질 구질하고 창피하다.

집에오면 주x이는 어쩐찌 사람 기분만 상하게 한다. 그러나 주x이는 참 무던한 애다. 나는 지내면서 그걸 잘 안다. 내가 핏대를 내면 결국 돌아서는 건 주x이지 결코 나는 아니다. 내가 주x이 같은 애하고 맞 닿았으니 망정이지 xx이와같이 살았다면 한 달도 못 지냈었으리라. 그만큼 주x이는 마음이 좋다고 할까? 그러나 주_이는 너무나 박력이 없는 듯하다. 줏대가 없는 것 같다. 무슨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나는 이야기를 전연 딴 방향으로 돌려 버리고 만다. 그가 말하는 이론은 너무 유치할때가 많다. 반박하자면 또 싸움이 일어나겠고 하니 그냥 내가 긍정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러면 아주 자기가 뇌까리는 이론이 가장 옳은 것처럼, 풍부한 만족감에 젖는다. 물론 나 자신 비천한 인간으로 결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주x이는 내가 보는 관점에선 너무 결점이 많다. 청결치 못하고 또… 에라 그만두자. 남을 탓할만큼 내가 잘난 놈이란 말이냐? 뻐스속에서 여학생 가방에 편지나 꽂고 지각을 폼으로 생각하는 그런 오밀조밀한 놈이 남을 탓할수가 있는가? 주x아, 미안하다. 나는 원래 신경질이 많은 놈이니 그것을 이해해 줘.

하여튼 나에게 요사이의 생활은 분명히 절망이 많다. 어린놈이 무슨 그리 뼈에 사모칠 절망이 있겠는냐마는 그러나 어쩐지 뭔가가 몹시 그리워지기도 하고, 모든게 싫어지기 도하고…… 하여튼 괴상망칙한 생활의 연속이다.

억지로 희망을 가져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건 자꾸 파괴되는데 그건 왠지 나는 모르겠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은 경우가 다르다. 선생한테 꾸중 듣고 나니 마음은 한참 울적한데 보이는 것은 모든게 나를 경멸하는 것 같다. 집에들어서면 내려 앉은 지붕부터가 이맛살을 찌프리게 하고 방에 들어서면 괘괘한 냄새부터가 자극시킨다. 밥 뚜껑을 열면 찬밥이 난잡하게 늘어붙어 있고 콩나물 몇 개 있는 국은 차디찬 채 기다리고 있다. 들어와서 양말부터 벗고 나면 나 혼자 공연히 쓸쓸해진다. 고향 집에 이런저런것 다 알릴 수 있지만 요전 편지에 나는 편히 있다고 써 놓았다. 혀기야 집에다가는 아무리 고생된다 고생된다 하며 편지를 해도 달리 도리가 없을 거다. 오히려 어머님 마음 고생만 더 시켜드리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왕 그럴바에야 어머님 안심이나 시켜드리자고 나는 그런 편지를 한 것이다. 허기야 그렇게 한 게 잘했지, 죽을 지경이라고 써 보내면 그나마 약국 일 때문네 속 썩이시는 부모님이 얼마나 상심 하실까보냐?

희망을 가져보려 한다. 그러나 희망을 가질 아무런 게 없다. 내가 과거엔 이런 경우가 없었는가? 있었으면 희망을 찾았기에 여지껏 생활을 계속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듯도 하다. 자. 내일부터 그걸 찾는 생활을 해야겠다.

희망을 찾는 생활을!

 

  1. 5. 8. 고2 금요일

우리학교 위 운동장에서 농구시합이 있었다.

특활시간에 영_도 문예반임을 알았다.

대단히 기분 나쁜 놈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잠자다.

 

  1. 5. 9. 토요일

학교를 파하자 위 운동장에서 농구시합을 구경했다. 체육선생은 빤쯔바람으로 심판하는데 배꼽을 뺏다. 상명여중 하고 중앙여중 하고 하는데 상명여중은 잘하는데 중앙여중은 형편없었다.

꼭 조래미 던지는 것같았다. 4시경에 선다래로 갔으나 혜x는 오지 않았다. 기분 나쁘게만 군다. 규x이네 갔더니 소위 자기 동생이라는 놈하고 천안 내려 가려는 중이라 한다. 병신 같은 놈이다. 자기가 가장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인 체하며 그런 잡념에 정신을 쏟다니. 규_이 누나는 왜 그리 거만한지 병신같은 계집애가 지랄한다. 모두 없어져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폐단아! 공산주의 사상으로 몰두하거라. 오는길에 행_네 잠깐 들려 행_를 보고 왔다. 나를 보고 얼굴이 왜 그리 검느냐고했다. 흥. 기가막히는 물음이다. 행_는 얼굴이 점점 못생겨 간다. 나는 그애보다 양숙이가 보고싶다.

집에 와 주x이와 놀다 잠을 잤다. 가슴이 몹시 아프다.

 

  1. 5. 10. 일요일 맑음

아침에 목욕했다. 규_이네 집에서의 회의에는 고의로 빠졌다. 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 풍x이와 만나 우리집에 데려와 잠깐 놀았다.

 

(1959) 4292. 5. 11. 월요일   2

월요일. 이제 새 한주일이 시작되었는가 보다.

오늘 한일은 0에 가깝다.

 

  1. 5. 12. 화요일

 

(1959) 4292. 5. 13. 수요일  2

형한테 가다. 학교 일과 자기 일에 지쳐진 형의 얼굴은 참 똑바로 보기가 안됐다. 파리 해 있었다. 누구 때문에 저렇게 고생하나? 따지고 보면 형 때문이다.

형한테 하복값과 쌀값을 얻고 하숙에 대해 의논하고 집에오다.

 

(1959) 4292. 5. 14. 고2 목요일

학교가 끝나자 곧장 만_이 있는곳으로 가다. 하숙이라도 알아볼까 해서다. 그러나 만_이도 주인 아줌마도 없다. 무돈이 하숙하는데 와보니 행_인가 뭔가 하는 꼭 합죽이 같이 생긴 년이 쌀쌀하게 없다’ 한다. 거 참 기분 나쁜년이다.

거기서 나와 관이네 집으로 갔더니 마침 관의 누나가 와 있었다. 얼굴이 좀 예쁘다. 미술을 잘 그리나 보다. 책가방을 거기다 맞기고 인_의 집을 찾았더니 인_은 아직 학교에서 않왔다 한다. 나 혼자서 중앙 다니는 애 (이름은 깜박 잊었다.)집을 찾아 헤메다 결국은 찾았다. 친척집에 있는거라 하는데 세간이 훌륭했다. 다시 인_이 집에 와서 인_이와 함께 이한평이 하숙하는 곳에 놀러갔다. 분위기가 썩 좋았다.

나는 여기서 하숙 하고 싶다. 18000환이라 한다. 조금 놀다가 (옥상에서)인_이과 나와 과자를 사 먹고 관이네 가서 책가방을 가져왔다. 관이의 태도는 전에 없이 쌀쌀했다. 좋다.- 그러나 나의 너에 대한 관심은, 그런 너의 태도로 해서 변경되지는 않는다.

거기서 나와 인_과 헤어진후 집에오다. 집에오니 전깃불도 달려있고 밥상도 차려져 있었다. 기분이 매우 좋다. 마른 반찬이 없음을 볼때 어쩐지 비감한 감정이 솟구친다. 꼬치장도 다 떨어져가는 신세이다.

 

(서기 1959)  4292. 5. 15. 금요일   2

_만_이와 함께 하숙하려는 집엘 가 보다. 주인 아줌마는 참 젊은데 아주 이쁘장하게 생겼다. 내 맘에 꼭들었다. 집도 조용했다. 결점은 물이 없고, 방이 좁다는 것, 그것이다.

_이네 집 아줌마가 참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대단히 고마웠다. 오랫만에 고깃국을 먹었으니 말이다.

_과 황과 혜화동에서 헤어져 집에오다.

특활시간에 간첩에 대한 말과 자수한자의 말을 들었다.

 

  1. 5. 16. 토요일 맑음(고 2)

새로 들어 온놈한테서 하숙 이야기를 들다. 15000환이라 한다. 귀가 솔깃하다. 우선 한 번 가보고 따질 문제다.

시골 갈려고 하니 재수 없게도 우리가 걸려서 서울운동장에 가게 되었다. 탁구, 축구, 농구에 걸친 우리 나라 선수들의 승리를 축복하는 성대한 식이다. 그네들이 민족의 영예를 위해 싸운 용기로 우리 3000만이 일어난다면 북진통일은, 단번에 되리라.

조경자를 찾으려 했으나 학생복을 안입어서 모르겠다. 내가 조경자를 찾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3시 차 타기는 글렀다. 또 자꾸 흐른다. 겨우 말해서 일찍 나와 형있는데로 갔더니 형은 안계셨다. 기가 탁 죽는다. 할수없이 하숙을 정했다는 얘기를 해 놓고 집에 오는길에 하복을 샀다. 위는 7호 아래는 8호로 샀다.

5시 반차 타기는 글렀다.

집에와서 하복을 입어보니 아래는 한바지를 입은 것 같다. 줄여야겠다.

9시쯤해서 뻐스타고 형있는 하숙으로 갔다. 도중 풍_을 만나다. 형은 역시 없다. 합승 타고 집에 오니 주x이가 와 있는데 기분이 나지 않았다. 주x이가 우울하다. 그러니 나도 우울 해 질 밖에.

 

(1959)  4292. 5. 17일 일요일 맑음  (고 2)

9시 차로 천안 가다. 두어달만에 가 보는 천안이다. 반가웠다. 그러나 상점에 가보기가 지겹다. 하숙 문제 말씀드리고 나는 친구도 없어 그냥 빙빙돌아다니다. 작은형은 휴가차 집에 와 있다. 오후에 저녁 먹고 춘자하고 극장가서 아내만이 울어야하나”를 감상하다. 춘자는 나만 시골가면 극장넣어 주는데 퍽미안하고 또 좀 부끄러운 일이다. 하여튼 내가 언제 한번 넣어 주고 그만 사이를 끊어야겠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다.

(1959)  4292. 5. 18.   월요일   2

아침 차로 상경하다. 이불짐을 가졌기 때문에 노량진에서 할아버지와 헤어져 보를 들고 상도동으로 들어가다. 거기 놓고 학교 가니 15분 지각, 조회가 있어 공부엔 지장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형 학교를 찾아 가다. 형은 연극부를 맡은 관계로 합숙한다 한다.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대학에 나가랴, 가르치랴, 합숙하랴, 살찔틈이 없을것 같았다. 나는 전에 그렇게도 악하게만 먹어오던 마음이 일시에 깨어나는 것 같다. 이렇게 고마운 형에게  나는 왜 그렇게도 심하게 오해를 했단 말인가?

차차 시일이 지날수록 나는 형한테 죄송한 마음 그지 없다.

하숙에 대해 상의하고 집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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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맄하면 영상이 명료해짐 


 
Posted : 12/04/2026 11:3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