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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법’이 다스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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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법’이 다스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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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idae Admin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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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높은  다스리는 나라

파파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다일흔을 앞둔 나이지만 2 지붕을 제집 안방 드나들  오르내린다 또래라면 고소공포증부터 걱정할 법한데그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모습조차 경쾌하다.

그의 파트너 알베르토는 이른바 ‘웻백(wetback)’이라 불리는 밀입국자다한밤중 텍사스의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다 등이 흠뻑 젖은 이들을 가리키는 속어다동유럽과 멕시코어울릴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사람은 십수 년째 페인트 작업을 함께하며 찰떡같은 팀워크를 자랑한다.

파파에게 물었다고향이 그립지 않느냐고주름진 얼굴에 잠시 아련함이 스쳤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 미국이 훨씬 좋아요.” 이유를 묻자 짧게 답했다. “자유가 있으니까.” 우크라이나는 한때 소련의 연방이었다전체주의의 그늘 아래서 살았던 그에게 자유는 추상이 아니라 삶의 체감이었을 것이다.

강한 억양에도 영어가 유창한 파파는 이민  교사였다지금은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지만 표정엔 불만이 없다자유를 누릴  있다면 어떤 일도 감내할  있다는 듯하다.

알베르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미국의 뭐가 좋으냐그의 답은 뜻밖이었다. “법이 다스리는 나라라서.” 멕시코는 돈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했다마약 범죄가 들끓는 것도  때문이라며 혀를 찼다대통령의 호화 저택 이야기를 꺼내며 “ 돈이 어디서 났겠느냐 되묻던 그의 표정엔 냉소가 배어 있었다.

파파도 거들었다. “예전 우리 대통령  화장실은 황금으로 되어 있었어.” 과장일지라도 말은 오래 남았다절대권력은 부패한다는 경구를 그는 몸으로 겪은 셈이다.

 사람을 알게   동네 HOA 경고장 덕분이었다낡은 집을 제때 손보지 못해 보수와 페인트칠을 하라는 최후통첩장을 받았다여러 견적 끝에 파파를 택했다가격도 합리적이었지만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작업 마지막 &아웃에서 햄버거를 투고해 나눠 먹다가 느닷없는 정치 토론이 벌어졌다알베르토의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대화는 북한의 김정은소련의 스탈린러시아의 푸틴그리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까지 번졌다파파는 트럼프가 푸틴과 닮았다며 얼굴을 찡그렸다독재의 기억이 그만큼 또렷한 탓일 것이다.

토론의 결론은 단순했다. “우리가 미국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사람이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야.”

 말을 들으며 문득 윌리엄 수어드가 떠올랐다링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 달러의 헐값에 사들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러나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은 “미국은 헌법보다 ‘ 높은 (higher law)’ 다스리는 나라라는 신념이었다여기서 ‘ 높은 이란 하느님의 정의혹은 인류 보편의 도덕을 뜻한다그는 노예제도가 아무리 합법이라 해도 정의에 어긋난다면 정당화될  없다고 보았다.

어쩌면 미국의 건국 이념은  ‘ 높은  향한 끊임없는 추구에 있는지 모른다그래서 파파도알베르토도그리고 수많은 이민자들이 차별 없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있는 것이다.

요즘 내란 재판으로 시끄러운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법의 지배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새삼 되새긴다지붕 위에서 묵묵히 페인트를 칠하던  이민자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거창한 정치 담론이 아니라 앞의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토대라는 평범하지만 단단한 진실이었다

                                                   미주동창회보   2026.3    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박용필  문리대66, 편집고문
 
 

 
Posted : 11/03/2026 11:41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