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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붓을 놓고 있든 제가 다시 글을 시작하면서 이것 만은 꼭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이 글을 동문들과 나누고져합니다.
때는 1979년 2월 추운 어느 밤, 저는 North Carolina 주에 있는 Ft. Bragg의 비상 작전 본부 (EOC: Emergency Operation Center) 앞에서 위병 (Security Police) 근무 중이었다. 허리춤에 묵직한 M45 권총을 차고, 열중 쉬었 자세를 취하고 서있었다. 윗도리에 필드 자켓 (야전 점프) 을 입고 있었으나, 한 겨울의 노스 캐롤라이나 추위는 견딜 수 없이 추웠고, 전쟁이 없으면 퍽 스러질 것 같은 나라이긴 하지만, 도대체 이번엔 어디로 쳐들어갈 궁리를 하느라고 “비상”을 내렸단 말인가 하고 호기심이 일어 나서 EOC 안으로 들어 갔다.
실내로 들어 가보니 영관급 장교 두명이 있었다. 먼저 경례를 올리고 관등 성명을 말하고, 위병을 서고 있는데, 너무 추워서 잠시 들어왔다고 말하자, 그들은 부드러운 말씨로 몸을 녹이고 쉬다가 나가도 좋다고 허용해줬다.
일단 야단을 치지 않아서 고마웠다. 그러고 잠간 있으니, 한 장교가 앞 칠판에 붙어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지, 내가 그걸 알고 싶어서 들어 갔는데 내게 물으니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모르겠읍니다”라고 답하니, 그 장교는 의기양양하게, “IRAN” 이라고 마치 초등학교 1학년에게 일깨워 주듯이 자문에 자답을 해줬다.
그는 그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옆에 붙은 지도를 가리키면서 여기는 어느 도시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마치 나라도 못맞춘 주제에 도시를 어찌 알겠는가라고 조롱하듯이. 저는 이번에도 똑 같은 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어시딱딱하게, “TEHERAN”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저는 바로 일어서서 감사를 표하고, 나와서 정위치에 도루 섰다. 드디어 제가 알고 싶었든 답을 얻어서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며칠 전에 “샤”를 쫓아내고 세운 아야톨라 호메이니 정권이 뿌리를 더 내리기 전에 싹을 잘라버리자고 돌격 선봉대 “
공수부대”를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침공할 작전을 세우고 부대 장병들을 비상 대기 상태로 경계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하였다.
당시 저는 Ft. Bragg에서 “82nd 공수 부대”를 지원하는 군단 직속 14th DPU (Data Processing Unit) 에서 주특기 74D (Computer Operator) 보직 근무였지만 근무 시간외에서 대학 강의를 받고 있었는데 상급반 과목은 군 부대내 대학 분교에서는 수업이 없고, Fayetteville, NC 에 있는 Main Campus 에서만 수강 할 수 있었는데, 마침 위병 (Security Police) 모집 공고를 보고 자원하여, 저녁과 밤 번 (Evening & Night Shift)을 하면서 낮에 본교에 가서 강의를 들어서 조금만 지나면 3년 만기 제대 (1979.4.19) 와 거의 동시에 Fayetteville State University 로 부터 제2의 대학 졸업장을 받을 참이어서 세상 돌아 가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 침공 계획을 한다는 것을 안 이상 그 때부터 뉴스를 정밀히 관찰하였다. 아직 세상엔 “82 공수 부대”비상 대기 보도는 없었으나, “비노그라도프” 이란 주재 소련 대사가 이란의 사실상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접견했다는 짤막한 보도를 보았다.
이 보도를 보고 저는 즉각 제가 배운 International Relations (국제 정치학/외교학) 지식을 동원하여 (주1) 살펴보니, 미국이 이란 침공을 중지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대내 비상 대기가 전면 해제되었고 저도 EOC 앞에서 보초를 서지 않아도 되었다.
저의 상황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미국은 조금 전까지 자신의 졸개로 보았던 이란이 회교 중심적 정권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반전을 기획하여 군사 개입으로 나갈 셈이었다.
두째, 이와 같은 상황을 탐지한 이란 측은 소련에 보호를 요청하였다. <아야톨라-비노그라도프 회동>
비노그라도프는 이란 대사에 앞서 주 이집트 소련 대사를 지낸 소련의 중동 통임을 저는 알고 있었다.
세째, 이란 혼자라면 미국이 간단히 제압할 수 있겠으나, 소련이 이란을 보호하겠다면, 일이 크게 벌어지므로 (3차 대전?),
넷째, 이번엔 미국이 없었던 일로 치고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다섯째, 이란이 미국의“82 공수 부대” 비상 대기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란이 먼저 안 것이 아니라, 소련의 정보력으로 알아낸 다음, 비노그라도프가 호메이니에게 통보하면서 미국 침공시 보호를 자청했을 것으로 본다.
제가 이번에 올린 사실은 세계 어느 언론에서도 다룬 적이 없고, 마침 필자가 EOC 앞에서 보초를 섰고, 날씨가 하도 추워서 그 안에 들어 갔고, 담당 장교가 큰 비밀을 자랑삼아 얘기해서 알아낸 것이다.
필자는 1976년 4월 20일 미 육군에 입대하여 기본 훈련을 마친 뒤 Ft. Bragg, NC 에 배속 받았는데, 부대안에 여러 대학이 분교를 차려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보고 일과후 강의를 들었는데, 다행히도 독일이나 한국으로 전출 되지않고 한 군데에서만 근무해서 1979년 4월 19일 제대할 무렵에 90학점을 따서 GI BILL혜택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제2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인 GM에 면접한지 하루만에 취업 통보를 받았고, 근무 2주만에 Harvard MBA 출신을 만나 그녀의 조언 덕택에 Harvard MBA 코스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여러 동문님들 께서도 목표를 정하고 정진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읍니다.
제 글은 여기서 끝나지만, 관심이 있는 동문들을 위해 호메이니 정변이 일어난 배경과 테헤란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간단히 기술합니다.
이란은 제 1차 대전 이후에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었고, 영국은 이란의 석유 채광 이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란의 총리 모사테크 (Mosadegh) 가 영국계 석유회사를 국유화하자 영국의 정보기관 (MI6) 과 미국의 CIA가 짜고 1953년 8월 16일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모사데크 총리를 실각시키고 왕정에 실권을 쥐게 해줬다.
왕정의 부패로 민중 봉기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프랑스에 망명 중이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하여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프랑스가 호메이니를 암살하려고 샤에게 동의를 구하니 샤는 그를 죽이면 순교자가 되어 골치 아프므로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그를 살려뒀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축출 당했다.
우리는 카이로 선언은 잘 알지만, 테헤란 협정은 전혀 모르고 있는데, 1943년 11월에 미국의 로즈벨트 (주2) 대통령과 처칠 영국 수상은 테헤란으로 소련 수상 스탈린을 회동하러 가는 길에 카이로에서 중국의 장 개석 총통을 만난 것이다.
당시 이란은 소련과 영국이 공동 점령한 상태이고, 스탈린이 전쟁 지휘 관계로 멀리 갈 수 없다고 하여, 테헤란에서 회동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테헤란 회의 중요한 합의 사항은
1. 유럽 서부에서의 제2 전선 (독일 점령중 프랑스 북서부) 구축을 1944년 5월중에 실시한다. <실제는 1944.6.6>
2. 서부에서 제2 전선 구축 시기에 맞추어, 동부 전선에서 소련도 대독일 총공세를 실시한다.
3. 소련은 대독일 전쟁 승리 후에 대일본 전쟁 참가 약속하고 그 반대 급부로 일로 전쟁 때 일본에 빼았긴 영토와 (중국내 만주 지역) 이권 회복 약속을 요구하였고, 이는 1945년 연초 얄타 회담에서 확보함 <이로서, 소련의 한반도 침공이 가능해짐> 그러니까, 남북 분단의 씨앗은 테헤란 협정시에 잉태되었다 할 수 있겠다.
주1: 필자는 학부에서 외교학 부전공, Korea Herald와 삼성 그룹 근무를 거쳐서, 서울 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에 입학하여 (1971) 수학 중 남북 대화 사무국 에서 외신 담당관으로 근무하며 평양 회담에 수행원으로 참가했고, 회담이 중단되어 미국 이민함 (1974.3.9 나의 32살 생일 날).
주2: Roosevelt 는 ‘루즈벨트’가 아니고 ‘로즈벨트’로 발음함이 옳습니다. 그는 화란 (홀랜드/네들랜드)계통으로 ‘00’ 는 ‘우’ 가 아니라 장모음 “오-”로 발음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뉴욕 플러싱에 살았고 지하철이 Roosevelt Ave. 로 달려서 역 이름 발음하는 것을 많이 들었고, 발음이 나오는 사전을 통해 확인도 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