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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내집 마련에서 그린란드까지
이민와서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게 된 데에는 한 공대 선배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선배는 미국에서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집부터 사야 한다며, 다운페이할 돈이 부족하면 기꺼이 빌려주겠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구입한 그 집은 시간이 흐르며 값이 몇배 뛰었다. “부동산은 사 두면 결국 남는다”는 그의 말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이 나라의 사고방식을 상징하는 문장처럼 남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구입할 수 있다”고 공언하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는 더 이상 변방의 섬이 아니다. 북극 항로의 요충지이자 군사 전략의 핵심, 희토류와 에너지 자원을 동시에 품은 21세기 지정학의 중심지다. 얼핏 즉흥적 발언처럼 들리는 트럼프의 언급은 사실 미국 건국 이후 반복돼 온 ‘전략적 공간은 사서라도 확보한다’는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은 독립 직후부터 스스로를 ‘확장하는 국가’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그 방식은 유럽 열강의 전통적 제국주의와는 달랐다. 무력 점령보다 구입과 조약, 다시 말해 거래를 통한 확장이 중심이었다. 1803년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매입은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미국은 단 1,500만 달러로 영토를 두 배로 늘렸고, 미시시피강과 북미 내륙 교통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이는 신생 공화국을 대륙 국가로 탈바꿈시킨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후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넘겨받았고,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와 남서부의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다. 전쟁이 개입되기도 했지만, 최종 귀결은 언제나 처럼 조약과 금전적 보상(1,825만 달러)이었다. 미국은 영토 확장을 ‘정복’이 아닌 ‘합법적 거래’로 정당화하며 국제사회의 도덕적 부담을 최소화했다.
1867년 알래스카 매입은 오늘날 트럼프의 그린란드 발언과 가장 닮은 사례다. 당시 러시아는 재정난과 안보 부담 속에서 알래스카를 유지할 여력이 없었고, 미국은 720만 달러라는 헐값에 북태평양과 북극으로 향하는 전략적 관문을 손에 넣었다. 언론은 이를 당시 국무장관에 빗대 ‘수어드의 어리석음(Seward’s Folly)’이라 조롱했지만, 알래스카는 훗날 에너지와 군사, 지정학의 핵심 자산으로 변모했다. 장기적 안목이 단기적 조롱을 이긴 대표적 사례다.
20세기에 들어 미국의 확장 방식은 달라졌다. 더 이상 대규모 영토를 매입하지 않았고, 대신 하와이 병합과 미·스페인 전쟁을 통해 해양 국가로 변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국제법과 탈식민주의의 확산으로 ‘영토 매입의 시대’ 자체가 막을 내렸다. 국가의 주권과 주민의 자결권은 더 이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그린란드 발언을 단순한 허언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오늘날에도 국제정치의 본질, 즉 영토 대신 영향력을 사고파는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군사기지 사용권, 자원 개발권, 항만 운영권, 안보 제공과 경제 지원의 교환은 현대판 영토 거래라 할 수 있다. 그린란드는 바로 이 모든 요소가 응축된 공간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국제정치는 여전히 도덕보다 이해관계, 선언보다 힘의 계산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영토 확장사는 박물관 속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세계 질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읽게 된다. 집이든 땅이든, 전략적 가치는 시간이 지나서야 증명된다는 사실을.
미주동창회보 381호 2026.2 박용필<편집고문>
문병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