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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 ‘노베루’상과 ‘브로큰 잉글리시’의 품격
“나이가 드니 일본말도 영어도 어눌해지네요. 제 ‘브로큰 잉글리시’를 용서하세요.”
게면쩍은 미소와 함께 던진 한마디에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누군가 ‘수키! 수키!’를 외치자 환호가 이어졌다. 서툰 영어조차 개의치 않겠다는 여유의 몸짓이었다.
연사는 프린스턴대학의 슈쿠로 ‘수키’ 마나베 교수, 202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다. 당시 그는 90세였다. 미국에서 60년 넘게 살았는데도 그의 말투에는 일본식 억양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억양 속엔 평생을 한 길로 걸어온 학자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프린스턴대는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었다. 먼저 그의 제자가 나서 스승의 업적을 소개했다. “수키의 가장 큰 강점은 끝없는 ‘호기심(curiosity)’입니다.”
학술모임이 열릴 때마다 그의 자리는 늘 정해져 있었다. 맨 앞줄, 오른쪽 끝. 발표가 끝나면 그는 특유의 ‘브로큰 잉글리시’로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은 폭포수처럼 이어졌고, 주변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호기심이 해소될 때까지 그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동료 교수와 학생들은 그를 ‘수키’로 불렀다. 그 호칭엔 존경과 친근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나베는 도쿄대학에서 기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1950년대 일본에서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같은 화두는 주목받지 못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연구 지원은커녕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1958년 즈음,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미국의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이력서를 넣었다. 놀랍게도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젊은 학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연구 환경을 마련해주고, 그의 호기심이 자유롭게 자라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는 이곳에서 기후의 물리적 모델링을 통해 지구온난화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인류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일본 교도통신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의 질문은 꽤 도발적이었다.
“마나베 상은 왜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이 됐습니까?” 그 어조엔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회견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마나베는 특유의 ‘유창한 브로큰 잉글리시’로 또렷이 답했다.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이 ‘예스’라고 말해도, 그건 꼭 ‘예스’를 뜻하지 않습니다. 종종 ‘노’를 의미하기도 하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는 미국에서의 삶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같은 연구자가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한 번도 연구계획서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매니지먼트를 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연구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답변은 간결했지만 강렬했다. 그것은 일본의 예의와 절제가 아닌, 사유와 자유의 언어였다.
매년 10월이면 노벨상 시즌이 돌아온다. 올해도 과학 분야의 수상자는 대부분 미국 연구자들이었다. 왜 그럴까. 답은 이미 마나베의 고백 속에 들어 있다.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환경, 하고 싶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그것이 미국 과학을 떠받치는 힘이자, 마나베가 선택한 ‘미국인’으로서의 삶의 이유였다.
90세의 노학자는 서툰 영어로 인류의 미래를 말했다. 그의 브로큰 잉글리시는 문법의 결함이 아니라, 자유의 언어로 완성된 또 하나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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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