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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미안해 엄마~” 세계가 반한 ‘쿨 코리아’
#장면 1:
한 달 전 쯤의 일이다. 모처럼 앞마당에서 세차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파트, 아파트~” 설마? 고개를 들어보니 백인 소녀 둘이 깡총깡총 뛰면서 로제의 글로벌 히트송을 신나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Kissy face, kissy face~”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부모의 얼굴도 인상적이었다. 그날 케이팝의 인기를 우리 동네에서도 새삼 실감했다.
#장면 2:
며칠 전 유튜브에서 BTS 제이홉(정호석)의 파리 공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올해 초 프랑스의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주관한 자선행사에서 제이홉이 오프닝 순서를 맡은 장면이었다.
“What’s up, Paris!” 인사를 건네며 무대에 오르자 4만여 관객이 일제히 외쳤다. “제이홉! 제이홉!” 이어진 ‘Mic Drop’ 무대에선 관객들이 완벽한 한국어로 떼창을 펼쳤다. “미안해 엄마~” 그 열광의 현장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한국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장면 3:
최근 한국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인 토니상에서 무려 6관왕을 차지했다. 토니상은 영화의 아카데미상, 방송의 에미상, 음악의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대중문화의 4대 어워드로 꼽힌다. 이제 한국은 그래미상만 받으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BTS, 블랙핑크 등의 세계적인 인기를 고려하면, 그래미 정복도 머지않아 현실이 될 듯하다.
21세기에 들어, 국민총생산(GNP)과는 또 다른 개념이 등장했다. 바로 ‘국민총매력지수’라고 불리는 GNC(Gross National Cool)다. 한 나라가 얼마나 ‘쿨’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계량화한 지표다. 이제 국력은 단순한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적 영향력과 감성적 매력, 곧 ‘쿨함’으로 측정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쿨’이라는 개념은 음악, 그중에서도 재즈에서 시작됐다. 쿨 재즈는 부드러운 음색과 간결한 멜로디로 여유와 감성을 전달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발표한 ‘쿨의 탄생’(Birth of Cool) 이후 ‘쿨’은 미국문화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일부 학자들은 쿨의 뿌리를 아프리카에서 찾는다. 노예로 끌려온 상황 속에서도 분노 대신 품위를 지켰던 정신, 위기 앞에서도 유머와 관용,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태도. 쿨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철학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였다는 것이다.
GNC를 국가브랜드 전략으로 채택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장기불황의 돌파구를 문화 상품 수출에서 찾고자 내세운 것이 ‘쿨 재팬(Cool Japan)’이다.
지난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등장한 ‘아베 마리오’는 그 전략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그 퍼포먼스는 사실상 ‘쿨 재팬’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문화의 본질보다 마케팅 논리에 치중한 전략은 결국 세계인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GNC는 어느 정도일까. 파리의 4만 청중이 “미안해 엄마~”를 외친 그 열기를 수치화한 것이 아닐까.
한국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제공항은 세계 일등이고, 고속도로 화장실은 세계적 벤치마킹 대상이다. 커피숍 테이블에 휴대폰을 놓고 돌아다녀도 분실 걱정이 없고 택시에 지갑을 두고 내려도 대부분 되돌아온다. 코리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쿨’한 나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