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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미인(月下美人)' 타운뉴스 발행인 안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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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yungk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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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이다.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병상에서 일어나 재활치료까지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며 전화했다. 친구들 중에 형님 같은 친구가 서너 명 있는데 그 중 맏형 같은 친구로 그 어떤 목사나 장로보다도 더 진정한 기독교인이다. 성경이나 하느님 말씀을 말로만 외치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사는 친구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가 그의 병상 생활에 대해 들었다. 친구는 그때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병이든 그 병을 이겨내는 방법은 누워서 오래 있지 않아야 한다. 혼자 힘으로 걷기 힘들면 보행기를 잡고서라도 걸어야 한다. 조금 회복되면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하고, 스스로 걸을 수 있다면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걸어야 한다. 친구는 걷다가 지쳐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날 헤어지면서 친구는 내게 자기가 가꾸던 꽃나무를 주고 싶다며 고르라고 했다. 눈에 띄는 화분 몇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친구는 더 갖고 가라고 했으나 화분 세 개를 넣으니 자동차에 더 이상의 여유 공간이 없었다.

이날 분양 받은 화분 중에 하나가 선인장이다. 이 선인장은 본명이 에피필룸 옥시페탈룸(Epiphyllum Oxypetalum)이고, 멕시코와 과테말라, 브라질 등의 열대와 아열대지역에 서식한다. 이 선인장은 ‘달선인장(moon cactus)’, ‘밤의 여왕(Queen of the night)’, 혹은 ’공작선인장’ ‘월하미인(月下美人)’ 등으로 불린다. 1년 중 단 하룻밤만 밀랍처럼 새하얗고 커다란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글에서는 월하미인으로 부르기로 한다.

본래 밤에 꽃을 피우는 대부분의 선인장들은 크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몇 주 동안 뽐낸다. 그러나 월하미인은 1년에 하룻밤, 그것도 단 서너 시간 동안만 꽃을 피운다. 그리고 동이 트면 모두 시들어버린다. 그렇다고 해마다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꽃 피는 일 자체도 드문 편이다. 따라서 이 선인장을 키우는 사람들도 일생에 한 번이라도 꽃을 볼 수 있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선인장을 수년간 키웠음에도 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필자가 지난 5년 동안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월하미인은 유난히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꽃이다. 다른 꽃들에 비해 꽃봉오리 상태로 있는 기간이 상당히 긴 월하미인은 어둠 속에서 하룻밤 피었다가 다음날 해 뜨자마자 바로 시들어 버린다. 대부분의 꽃들이 여러 날 핀 상태로 있는데 비해 서너 시간 만에 지기 때문에 기다림에 비해 활짝 핀 꽃을 즐기는 시간이 상당히 짧은 편이다. 그래도 해마다 기다렸다. 올해도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올해는 꽃봉오리가 10개나 자리를 잡더니 한 달 정도 지나 활짝 피었다. 작년에는 한 송이도 피지 않았으니까 올해는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5년 동안 한 번 폈으니까 올해 두 번째 핀 것이다. 그것도 10송이가 한 번에 폈다. 그리고 열 송이가 지자마자 또 다시 네 개의 꽃봉오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여러 날 밤을 지켜보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을 때 활짝 피었다. 올해는 두 번이나 꽃을 피운 것이다.

월하미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속에 또 꽃이 있다. 사람들은 꽃술이라고 하지만 난 꽃이라고 우긴다. 술이면 어떻고 꽃이면 어떠냐. 꽃처럼 보이면 꽃인 거지. 활짝 핀 꽃도 아름답지만 피기 전에 꽃봉오리가 서서히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예쁘다. 오늘내일 꽃이 필거라고 매일 밤 자기 전에 내다보고 한밤중에 깨어나 들여다볼 때마다 그 고운 자태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활짝 핀 월하미인, ‘밤의 여왕’이 풍기는 향기는 뜰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진하다. 향기 가득한 뜰, 어둠 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이쪽저쪽에서 누르다 보면 아침 해가 밝아온다.

어디 그뿐이랴. 월하미인은 지고 나서 시들어 가는 과정도 남다르다. 대개의 꽃들은 시들면서 꽃잎이 한 잎, 한 잎 떨어져 바닥에서 뒹군다. 그러나 월하미인은 꽃잎이 서서히 오므라들면서 다시 꽃봉오리처럼 되어 한동안 그 상태로 나무에 달려 있다. 여러 날 그대로 달려 있다가 누렇게 변색된 후에 나무 밑에 떨어진다. 지저분하게 이리저리 날리지 않는다. 죽어서까지 여왕의 자태를 지키려는 그 모습이 경이롭다.

꽃이 필 때마다, 아니 꽃봉오리가 달리자마자 친구에게 사진과 함께 꽃 소식을 전했다. 올해도 아주 작은 꽃봉오리를 발견하자마자 사진 찍어 보냈다. 친구가 보낸 답장은 딱 세 줄이었다. ‘참 곱소. 매일이 그처럼 곱고 향기 있는 삶이기를...’ 답장 대신에 활짝 핀 꽃들을 사진 찍어 보냈다.

늦었지만 답장을 타운뉴스를 통해 공개적으로 보낸다. '고맙다. 친구야! 자네야 말로 곱고 예쁜 향기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네.'

                                                                                                                           chahn@townnewsusa.com

                                                                                                                            타운뉴스 발행인 안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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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미인(月下美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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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해 발행인의 컬럼을 타운뉴스 2024.10.28 vol 1548호 에서 발췌해 옮깁니다.

옮긴이: 문병길

 
Posted : 31/10/2024 12:4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