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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문을 활짝 연다
타운뉴스 2024.12.30 발행인 컬럼
2024년은 즐겁고 유쾌한 일도 많았지만 되돌아보면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포성이 진동하고 있고 무고한 시민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목숨을 잃고 있다. 또,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화약고들이 전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자연환경은 어떤가?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기상이변은 끔찍할 정도다. 미국 일부 지역에 밀어닥친 Ice Storm은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중서부 지역에서는 대홍수로 도로와 가옥 등이 침수되었고 전기가 끊어져 사람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이 엘니뇨로 인해 폭우와 홍수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 인도, 중국 등에서는 극심한 스모그가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전쟁과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개개의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개인적 삶을 보더라도 2024년 우리의 삶은 고달프고 우울했다.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미래는 불확실한 상태에서 불안감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하루 이틀 뒤면 2024년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2025년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희망을 품고 새로운 출발을 꿈꾸었던가? 얼마나 많은 다짐을 하고 계획을 세웠던가?
한때는 가는 해 오는 해 구별하지 않고 무덤덤해지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리 여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는 게 고단하고 힘이 들기 때문에 계획도 세우지 않고 다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한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한 해에 한 가지씩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운다. 실천하기 쉬운 걸로. 새해에는 ‘걷기’를 아침에만 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걸을 작정이다. 최소한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은 걸을 생각이다.
10여 년 전에 뉴욕 매거진은 ‘복잡하고 오염된 대도시에 사는 사람과 인적이 드문 시골에 사는 사람, 누가 더 오래 살까?’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뉴욕 시내 거주자들이 도시 외곽 거주자보다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그 까닭을 뉴요커들이 외곽 거주자들보다 더 많이 걷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만큼 걷기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연말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다. 네 사람 중 세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골프를 치고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일주일에 6번을 친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6번 치는 친구는 예전에 비해 배도 많이 들어갔고 살도 빠져 건강미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골프를 일주일에 하루 빼고 다 치냐?” 친구는 “자기도 의문이라면서 집 앞에 골프장이 있고, 날마다 함께 치는 사람들이 다르고 하루 일과를 골프로 시작하다보니 그리 되었다”고 했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 ‘걷기 계획’은 더 굳어졌다. 주 6일 골프 치는 사람도 있는데 주 7일 아침저녁, 하루 두 번 못 걷겠는가?
전문가들은 빨리 걷기를 권장한다. 빨리 걷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적다는 주장인데 필자는 좀 생각이 다르다. 빨리 걷기보다는 적당한 속도로 무리하지 않고 걷는 편이 더 좋다고 믿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디디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도 할 생각이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숙고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단순히 건강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198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루마니아 태생 유태인 작가 엘리 위즐의 '밤'이라는 소설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유태인들의 운명에 관한 책이다. 책 속에 유태인들이 걸어서 다른 수용소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채찍질을 당하며 걸어서 행군해야 하므로 밤사이에 낙오되는 사람도 있고 걸어가며 자는 사람도 있었다.
2024년의 나의 ‘걷기’가 소설처럼 총칼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해도 건강을 위해서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내몰려서 걸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2025년은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며 환한 빛 속에 천천히 걷는 걷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이 지구도, 각자의 삶도 천천히 걷는 가운데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고 밝아지기를 기원한다.
2024년의 끔찍했던 기억들은 모두 날려 보내고 새롭게 2025년을 시작하자!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화염이 멎고, 온 세상 사람들이 마음 편히 손잡고 노래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기원하면서 2025년의 문을 활짝 연다.
안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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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주간 신문 타운뉴스 1557호 2024.12.24 발행인 컬럼을 옮깁니다.
옮긴이 문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