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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4.14 일요일 (맑음) (중학교 3학년)
시골서 어머님께서 올라오셨다. 이제 며칠 안에 이사 간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나는듯이 기뻤다.
4월 15일 월요일 (구름)
이사 간다 하기에 학교에서 파하자마자 집에 오니 사정으로 이사를 가지 못하였다.
4월 16일 화요일 (비)
오늘은 구슬비가 내렸다. 그래도 어머님 일이 바빠서 이삿짐을 옮기고 학교에 가니 다행이 늦지는 않았다. 학교에 갔다 와서 집에 오니 눈에 띄는 것이 이불이었다. 시커먼 이불에 이가 슬슬 겨 다니지 아니한가? 나는 될 수 있는데까지 깨끗이 해 보려고 했으나 원체 방이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4월 17일 수요일 (맑음)
서울이란 이런 곳인가? 책방에 가서 시 하나 베끼려고 하니 얼른 책을 내 손에서 빼앗아 책 꽂이에 꼿지 않는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히고 무안하여 얼른 뛰어나왔다. 정말로 서울이란 이런 곳 인가?
버스타고 오는데 할머니를 앞에 두고 버젓이 앉아 있는 학생이 있었다. 할머니는 혹시나 하고 그 쪽만 바라보는데 그 학생은 본체만체 창 밖만 내다 보고 있었다. 아, 내가 만일 어른이라면... 그 학생은 경복중학교 2학년 생 이었다.
4월 20일 목요일 (맑음)
오늘은 반장, 부반장 선거가 있었다.
반장은 30표의 절대다수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부반장은 여섯 표로 한 두 표 차이로 선정되었다. 소위 한 학급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반장이 한 두 표 차이로 되고 안되다니. 다시 선거 하자 하려 했으나 생각이 있어 그만두었다.
4월 21일 일요일 (바람)
점심시간에 3반을 보니 반은 조용하고 일부는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교실을 둘러 볼 때 엉망이었다. 물총 장난을 하지 않나? 칠판에 낙서를 하지 않나. 뛰고 야단을 치지 아니하는가? 확실히 1반3반보다 뒤떨어졌다는 것을 명확이 알 수 있었다.
4월 22일 월요일 (맑음)
선생님과 같이 꽃을 사러 화신으로 갔다. 마땅한 꽃이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꽃을사러 간게 아니라 꽃을 감상하러 간 것 같았다.
4월 23일 화요일 (맑음)
손구락이 벼란간 아프기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생인손 이었다.
4월 24일 수요일 (맑음)
손가락이 점점 아파만 갔다. 마침 시골서 아버지가 올라오셔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다.
4월 27일 토요일 (맑음)
병원에서 하는 말이 "약은 주사를 맞아야지 돼! 먹어 가지고선 똥으로 죄다 나온단 말야" 의사의 나에 대한 강의였다. 그날 약방엘 가니 "주사를 맞아 가지고서야 쓰나. 먹어야지" 이것은 약주사의 말이었다.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자기가 돈을 벌기 위해선 모든 방법과 수단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다른 것이다. 그저 남이야 어찌 되건 말건 나만 살면 된다. 대 속에 소가 아니라 소 속의 대인 것이다. 이 사회가 이렇게 되고 보니 남북통일이 아니고 양심통일을 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학교 원예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천안으로 해서 온양온천을 다녀 오게 되었다.나는 천안 내려 가려던 참이라 얼른 다섯시 차를 타고 기다렸으나 원예반은 영영 오지않았다. 집에 가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4월 28일 일요일 (맑음)
내일부터는 이제 안 아플꺼야 하는 의사의 말과는 반대로 수술한 자리가 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동무집에 돌아 다니다가 2시 차를 타고 천안을 떠났다.
4월 29일 월요일 (비)
아침 조회를 서는데 나는 분단장이라고 줄 옆에 서게 되었다. 좀 창피했으나 이것도 경험인지라 억지로 책임을 다했다.
4월 30일 화요일 (구름)
교실을 옮겼다. 3~3반 교실로. 이제 2층에는 우리 반 뿐이다. 그런데 내 뒤에 놈이 너무 공부 시간에 떠들어서 선생님한테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5월 1일 수요일 (맑음)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5월 2일 목요일 (바람)
아침에 일어나니 그야말로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손구락만 아픈것이 아니라 겨드랑이까지 아파서 할 수 없이 학교를 하루 결석 하였다.
5월 3일 금요일 (맑음)
하루 결석 하니 손해가 막심이었다. 그러나 뱃장도 조금 생겼다.
1957년5월 4일 토요일 (구름) (중 3)
갑자기 시골서 전화가 왔다. 빨리 내려 오라고. 나는 왜 그러나 하고 궁금히 여기고 서울역에 나가니 동무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여행은 퍽 즐겁게 진행되었다. 집에 내려가 제일 먼저 손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전화 걸으신 이유를 대강 짐작했다.
5월 5일 일요일 (맑음)
국민학교 시절에 오늘, 이 어린이날을 좋아라고 뛰놀던 시절이 이제는 한없이 그리워졌다. 동무들과 미니 콜프장에 갔는데 2등을 했다. 콜프라 해서 크게 나쁜 것도 아닌데 이것을 저지하는 사회가 나는 이상했다. 두시차로 서울역으로 와서 천안의 병직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오니 연기가 코를 찔렀다.
5월 6일 월요일 (맑음)
뒤 떨어진 공부를 보충 하고자 영어 책을 펴 들었으나 머리는 몹시 산만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뒷산에 올라가서 동무와 야구를 받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책을 펴 들었으나 공부는 여전히 되지 않았다.
5월 7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체육시간이 들어있다. 그런데 체육복이 없어 그만 다른 반 아이 것을 빌렸다.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소풍 간다고 하는데 학예사로 간다는 소리를 듣고 그만 기쁨이 사라졌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1학년 때 한번 가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원효로 형 댁에 갔다. 한참 놀다가 올 때 형님이 원족 갈 때 쓰라고 300환을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과자를 샀다.
시간을 보니 11시20분! 이미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합승택시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내릴 때 50환을 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니 다행이 막차 한대가 있었다. 그걸 집어 타고 명륜동까지 오다가 수학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경례를 부쳤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수학선생님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5월 8일 수요일 (맑음)
날씨는 그야말로 쾌청했다. 사모님이 싸 주시는 김밥을 들고 미아리를 향했다. 벌써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그런데 모두들 아래는 체육복을 입었는데 나만 특별히 검은 것을 입었다. 담임 선생님이 꾸중 하시길래 체육복이 있긴 있는데 너무 짧다고 하니 짧아도 왜 입고 오지 않았느냐는 답답한 소리를 하셨다. 무릎 아래 차는 옷을 입고 속 내의가 다 드러내 뵈게 하고 오면 참 좋겠다.
꺼먼 양복을 입었기 때문에 행렬 제일 뒤에 서서 가게 되었다.
오늘은 하루 젱일 콘디숀이 나질 않았다. 소풍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싶었다. 6시쯤 해서 집에 돌아왔다. 체육복 때문에 망친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참으로 나빴다.
5월 9일 목요일 (맑음)
오늘도 역시 체육 시간에 창피를 톡톡히 당했다.
나는 정말 눈앞에 천안 집이라도 있다면 때려부수고 싶도록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도 약속을 안 지킬까. 모두들 얼마나 위대한 인간이길래 이렇게도 사람을 무시하는 것일까.
5월 10일 금요일 (비)
한일 없음. 학교에서 수학 국어 시험을 치룸.
5월 11일 토요일 (비)
서울역으로 오후 네시에 갔다. 동무와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오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서울 통신분소를 찾아가서 천안에 전화를 거니 병직형은 퇴근했다고 전해왔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집에 왔다.
체육복 생각을 하니 울화통이 터졌다.
5월 12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즐거운 일요일. 창경원...우이동...백운대...뒷동산...경복궁...동무네 집......
갈 데가 너무 많아 걱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편 할 것이 태산 같았다. 우선 영어공부와 프린트한 것 해 올 것 그리고 과학 노트필기. 그리고 수학 그리고 국어 그리고 목욕. 아침부터 시작한 것이 대길이네 가서 야구 조금 받고 온 것을 치면 꼬박 7시간이었다. 그래도 아직 부족 하다고 생각 되었다.
5월 13일 월요일 (바람)
고대하고 고대했던 체육복이 집에서 왔다. 참으로 반가웠다. 이 얼마나 속 태우던 것 이었던가. 집에 올 때 바람 덕택에 걸음 거리가 힘들지 않았다. 내일 영어 시험이라 시험공부를 조금 했다.
5월 15일 수요일 (맑음)
영어시험을 치뤘는데 엉망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우등 좀 한 번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반드시 하겠다고 장담은 못했으나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5월 16일 목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소위 이 방안의 어른 나리들께서 서로 권투 시합을 하였다. 아침부터 몹시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밥상에서까지 야단하여 빌려온 책에 된장 국을 업질렀다.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그러나 소위 어른이라는 명색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안 했다. 여지껏 몇 번이나 이런 장난들은 하는가? 참을 대로 참아 온 것이었다.
5월 17일 금요일 (맑음)
통지표를 나눠줬다. 평균이 겨우80점. 나는 참으로 낙망했다. 그러나 이게 다 누구의 탓인가? 참으로 공부 할 맘이 나지 않았다. 희망이 없었다.
5월 18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통지표 생각에 머리가 꽉 찼다. 그러나 이까짓 일에 이렇게도 야단인가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섯시 차로 시골에 내려갔다. 반갑게 맞아 주셨다. 반달 만에 가보는 시골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