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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opic: 새둥지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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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새둥지
on: May 27, 20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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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어느 하루 패디오 지붕 처마 끝에 지푸라기 몇 개가 걸쳐 있기에 ‘어.. 바람에 날렸나?’ 하다 보니 금방 여러 개의 마른 풀 나부랭이가 쌓이고 한 나절 지나니 좀 초라하기는 하나 새 둥지 하나가 거뜬히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참새보다는 약간 큰 새 한 마리가 그 안에 앉아 있기 시작 했습니다.

아하.. 알을 낳는구나..

그러다가 얼마 후 어미 새가 끈질기게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낳은 알을 품는 듯 했습니다. 어쩌다 조금은 몸집이 크고 머리에 빨간 깃털까지 달린 잘 생긴 남편 새가 와서 품고 있는 어미 새에게 뭐라 말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식탁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집을 지어 밥 먹을 때마다 좋은 볼거리 입니다. 새집과 우리 사이에는 유리문이 있어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어미 새가 알아 채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남편 새는 ‘힘들지?’ 아니면, ‘라디오 크게 틀어 놓는 그 시끄러운 집 마당에 가면 지렁이들이 많대..’ 하며 밖앗 세상 소식을 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어미 새에게 간식거리라도 날라다 주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집 지은 곳이 하필이면 마당으로 나가는 패디오 지붕 처마라 누가 나가려고 문을 열 때 마다 어미 새는 부지런히 도망갑니다. ‘새들 말’을 할 줄 알았으면 ‘겁 내지 마, 너를 해치지 않을게’ 고 해 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 패디오 문 사용을 포기 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 도망 가는 것도 아니고 가까운 나무로 쏜살같이 날아 가 남편 새와 합세 해 짹짹거리다가 어미 새는 곧 돌아 와 다시 알을 품기 시작 합니다.

오래 전, 오클라호마에 살 때 패디오에 있는 바비큐 그릴의 공기 통 구멍으로 허밍버드 같은 아주 작은 새가 마른풀과 조그만 가지를 날라 집을 짓고는 그 안에 알을 품는 통에 몇 주 바비큐를 해 먹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 이 새는 그래도 그보다 훨씬 나은 곳을 택한 것 같기는 합니다. 두 주 후는 달라스에 사는 큰애가 초등학교와 유치원도 아직 못 들어 간 아이들 셋을 달고 오는데 아마도 그 때쯤이면 손주 놈들에게 좋은 볼 거리가 될 듯싶어 기대가 큽니다.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올 때마다 짹짹 소리지르며 제 몸집보다 큰 노란 입을 짝짝 벌리고는 온 몸을 흔들어 대는 새끼들이 저 안에서 생명을 틔울 때 그 소리만 들어도 활기가 넘칠 것입니다.

문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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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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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가까이 집을 비웠다가 가 보니 새 둥지가 사라져 깜짝 놀랐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새둥지 지푸라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새끼가 자라 제힘으로 날기에는 짧은 기간이고 보통은 새가 떠난 후에도 새집이 바람에 날려버릴
정도로 허술하게 짓는 것도 아니며, 그 동안 이곳에 강풍이 분 적도 없고 보면 필시 이 새 가족에 무슨 변고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서운하고 아쉬우며 한 편 미안한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가능성은 희박 하지만 열심히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떠난 것이니 그 동안 새끼가 부화되어 빨리빨리 자라 더 안전한 곳으로 이사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위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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