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한아
영화 ‘국제 시장’을 보았는데 '고생'한 세대를 표현했다지만 내면의 갈등 표현은 전무 하다시피 해 아쉬운 면이 있었지.
과거 세대가 육체적인 고달픔으로만 나열된다면 눈물 쥐어 짜내는 신파 조가 되기 십상이지.
자막에 나오는 연대를 보니 주인공(덕수)은 우리 세대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그의 분장과 말년을 보면서 내가 어느새 저렇게 늙었나.. 그게 오히려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기는 영화 자체가 '내 나이가 어때서?!'식의 영화 였더면 덜 실망 되었겠지만.
영화는 서독 광부로 가서 고생하는 것으로 그렸다만 사실 그 당시 서독 광부로 발탁(?) 되어 간 사람들은 훨씬 더 참담한 한국 땅의 젊은이들보다 나은 길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간호사들도 그랬고.
남한에서 이산가족 만나는 장면들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는데 이북에서 피난 오다 헤어진 사람보다 전쟁 통에 우왕좌왕 하다 서로를 잃은 남한 사람들도 많았지. 그 때 이산가족 찾기 화면을 보고 눈물을 머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으련마는 그것은 두고두고 보아도 모자라지 않는 육이오의 민족 비극이었지. 단지 이 영화가 마치 한 건 잡은 양 그 장면들을 너무 길고 반복적으로 투사 해 관객을 몰아붙인듯한 인상을 주었고.
흥남 부두에서의 수만 인파나 영화 곳곳의 배경 화면 등, 고도의 화상처리와 박진감 넘치는 구성은 심혈을 기울인 제작진의 성의가 보이는 작품이긴 했어. 한국 영화의 영상 처리 수준이 이제는 국제 무대에서 한자락 할만 하다는 생각도 들고.
여하튼 이 영화는 지금의 풍요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솜사탕처럼 달콤한 젊은 애들에게 자기네들 위 세대에 이런 과거도 있었구나 하는 '발견' 차원에서 의미가 있겠지. 그러나 이 영화가 홍보 영화는 아니지 않는가. 어디까지나 그 과정을 거쳐 지나온 ‘늙은 세대’들에게 지난날을 반추 하고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깊이를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
끝 장면에 주인공(덕수)이 하늘을 향해 '나 정말 억수로 힘들었어 예' 하고 울먹이며 독백하는 장면은 어쩐지 '투정'비슷한 엄살 같기도 하고, 지금의 젊은 애들로부터 'So What?'하는 반응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지. 그건 마치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 식의 욱박지름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살갗으로 느끼는 피곤함과 아울러 마음속에 쌓이는 속상함도 누구 못지 않은 요새 젊은 애들이니까. 그 속상함은 우리 세대가 그들 나이에 느꼈던 그것과는 깊이가 틀리고 절실함이 많이 다른 디지탈 식 고민 이겠지만. 못 먹는 고민과 잘 못먹는 고민이 같을 수는 없겠지.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우리 세대, 특히 우리보다 몇 년 위의 세대들 마음 속의 깊은 상처를 그려 주는 데는 실패 한 것 같다. 사실 우리보다 더 근원적 고통을 안고 산 세대는 일정기에 초등학교에서 자기 이름을 책갈피에 숨겨두고 일본 이름으로 불리워야 했으며, 육이오에 전장으로 끌려 나갈 운명에서 허덕이다 남북 이념의 무질서한 갈등과 열악한 국가경제의 틀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80대 아니었겠나.
동정을 받기 보다는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붙잡고자 안간힘 쓴 옛 세대에 지금의 젊은이가 머리를 숙이고, 지나온 세대들에겐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그런 깊이 있는 영화가 아쉬웠었어. 여기저기 언론에 아이들 손을 잡고 이 영화를 본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들이 젊은 애들에게 보여주기 알맞다고들 하는데.. 글쎄, 나는 모르겠군.
어찌 되었든 너도 한 번 보려무나. 혹시 모르니 눈물 훔칠 손수건은 꼭 넣고 가거라.
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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