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희는 사실상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뜻으로 “여러분들이 바로 당상관입니다”
라고 창덕궁 인정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생각대로 말이 나오고, 말한대로 이루어진다
박 정희 판 "나는 왕이로소이다"
고 박 정희씨의 생전의 직위는 민주 국가인 대한민국) 의 “대통령”이었으나, 그는 전제군주국가의 “왕”으로 군림한 것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나는 왕이다”라는 직설법은 피했지만, 저는 그가 “나는 왕이다” 와 거의 같은 말을 하는 것을 가까이서 들은 적이 있읍니다.
그 때를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1970년 어느 여름날, 창덕궁 보수 공사 ( Renovation) 가 끝나고 그 다음날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에 박 대통령이 남보다 하루 먼저 돌아보는 행사가 있었는데, 당시 저는 Korea Herald의 기자로 근무했다. 청와대 출입 담당인 차장이 대통령의 지방행사에는 자신이 동행하지만, 시내 행사는 담당 부처에서 나간다며, 문화부의 저에게 문공부 행사니까 가서 취재하라고 하면서 비표 (청와대 경호실에서 발행한 대통령 행사 참석 허가증) 를 주어서 아주 지근 거리에서 박 대통령의 움직임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읍니다.
문화재 보수 공사니까, 당시 신 범식 문공부 장관이 오셨고,전 문교장관이었고 당시 동국 대학 총장이었던 이 선근 박사가 박 대통령을 안내하면서 설명을 드렸읍니다. 인정전 앞에 품계를 적은 비석들이 정일 품에서 종구품까지 늘어 서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서 정전 (인정전) 안에서 임금님이 정사를 보신다고 설명한 다음에, 계단으로 올라와서 인정전 주변으로 둘러져 있는높은 곳을 당상이라 고 하며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는 관리를 당상관이라 부는데, 당상관은 정일품에서 정삼품까지라고 말했읍니다. 그래서 당상관들만 왕과 대면해서 국사를 의논할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읍니다.
이 총장의 당상관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박 대통령은 자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한번 휙 돌아보고나서 “여러분들이 바로 당상관입니다” 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기쁘고 감사하는 표정들을 지었으나, 저는 그분의 말을 뒤집어 보니 “여러분이 당상관” 이며, “나 (박정희 자신) 는 왕이로소이다.” 라는 말을 한 것과 같이 들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이듬해에 있을 3선에 만족하지 않고 평생해볼 작정이로구나라고 판단했다. 자고로 왕은 죽어야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3선도 부족하여 유신을 통해 죽을 때까지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았다. 그분의 속내를 아는 저는 박 대통령의 측근 몇 분들이 박 대통령이 언제까지만하고 은퇴하실 계획을 하셨다는 엉터리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분들이 아직도 왕조 시대에 살고 있어서 주군 (?) 의 명예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부리고 있으므로 (즉, 그가 왕이 아니었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경멸한다.
(***박 정희의 피살을 "시해" 라고 포장했는데, 그 "시해" 라는 말은 옛적 왕조 시대 왕에게만 사용된 용어인데 왜 민주 공화국에서 그런 용어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용했는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시람들이 하는 말은 어느 것이든 저는 결코 실수로 내뱃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맘 속으로 평소에 생각하든 바를 말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기로 하자.
1982년 초에 삼성의 이 병철 회장이 미국 보스톤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당시 하버드 경영대학원 일년생 (Harvard MBA Candidate) 인 저는 그 분의 학위 취득을 축하하기위해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날 이 회장은 학위를 받고 답사를 하시면서 “오늘 학위를 주시는 것을 채찍질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 고 그의 사명감에 찬 결의를 천명하셨다.
저는 그말을 듣자 마자, 아! 이 회장께서 죽을 때까지 회장 자리를 내놓을 의향이 없으시구나하고 판단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당시 구씨네 럭키 가문에서는 살아서 구 인회 회장이 구 자경에게 자리를 물리고, 이어서 구 자경이 구 본무에게 역시 살아서 승계하는 전통을 세우셨는데, 삼성가는 그기에 못 미치는구나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 병철 회장은 돌아가실 때까지 회장자리를 이 건희 씨에게 물림을 하지 않으셨고, 이 건희 역시 승계를 하지않은 상태에서 지금 사경을 헤메고 계시다.
저는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두분 (박 정희 와 이 병철)의 지나가는 듯한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들의 잎날을 예견했고, 두번 다 제가 예견한대로 맞췄음을 이 자리를 빌려서 발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인정전 – 박 정희 대통령이 3선을 일년 앞둔 1970 년에 부지런히 이조 왕궁 보수 작업에 열중하였고 창덕궁 보수 공사를 끝내고 하루전에 돌아보던 가운데, 이 선근 동국대 총장의 당상관에 대한 해설을 듣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 “여러분들이 바로 당상관입니다”고 선언하여 사실상 “저는 왕이로소이다”라고 는 점을 부지부식간에 토로하였다. 관광객들이 서있는 곳이 ”당상” 이고 여기까지 올라 갈 수 있어서 임금님과 정사를 나눌 수 있는 고위 관료를 당상관이라 부르며, 정일품에서 정삼품까지만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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