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면서 저는 이 하루 그 친구는 이 세상에서 못 해 보는 '하루짜리 영화'에 감사합니다.
‘오늘’ 이라는 제목의 영화에는 제 주변에서 벌어진 모든 움직임, 내음, 바람소리, 말 소리들이 어떤 것은 기억 속에 담기고 어떤 것은 벌써 잊혀진 채 유일한 오늘 날짜 제목 한 편으로 이 밤에 묻힙니다.
이 한 편의 영화는 세상을 무대로 저 스스로가 주연과 연출, 감독을 감당하며 만든 작품으로, 숨쉬며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나 매일 만드는 한 편의 작품입니다만 먼저 간 그 친구는 만들 수 없습니다. 살아 있음으로 '오늘'을 제작하고 감상 합니다. 그 친구와 더불어 못 만듦이 아쉽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물론, 착하게 살다 간 그 친구는 지금 저 위에서, '미안 해 하지 마. 나는 여기서 너의 24시간짜리 활동사진뿐만 아니라 네 마음속까지 다 읽고 있다' 할지도 모릅니다. '너는 알리 없지만 버튼만 누르면 네게 내일 일어날 일도 모두 보이거든. 단지 나에겐 너의 내일을 바꿀 능력만 없을 뿐이지. 여기 와 보니 너, 나한테 고등학교 때 고약한 장난 많이 했더구나' 하며 손 바닥 거울 보듯 저를 내려다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내일 일을 모르고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내일 낚시에 한 마리도 낚지 못 할 것을 미리 안다면 나들이 준비하느라 설레는 기쁨이 없겠지요. 잔뜩 낚을 것을 미리 안다면 입질 하는 물고기와 실랑이 할 때마다의 흥분이 반감 될 것이고요.
내일의 결과물을 하늘에 맡기고 얻는 평온과, 알려고 안간힘 쓰며 가지는 번뇌, 어느 것이 나을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 해 보아도 내일 벌어질 상세한 일은 '모른 채'잠 속에 빠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설령 번뇌 함으로 내일의 아픔을 피할 수 있다 해도 승산 없는 번뇌로 매일 기진하기 보다는 아픔을 맞겠습니다. 아픔이 전혀 없는 인생은 그 인생 자체가 번뇌로 얼룩진 아픔일 것 같으니까요.
어찌 보면 죽음은 일생 치르는 마라톤의 결승 라인 인 것 같습니다. 단지 이 트랙을 달리는 선수는 저 하나뿐이니 열심을 다 해 달리던 게을리 달리던 등수가 없을 뿐입니다. 등수가 없으니 어찌 달려 왔는지에 점수가 매겨지는 마라톤일 뿐이겠지요.
매일 저 혼자 주연인 이 하루짜리 영화를, 그것이 졸작이던 수작이던, 살아 있다는 것 하나로 만들 기회가 주어지는 이 작품을 오늘도 감사히 연출 하면서 먼저 간 친구를 생각 합니다.
문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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