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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opic: 그래도 고국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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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그래도 고국
on: October 10, 20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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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1일(금)

비행기가 LAX 활주로를 차오르며 밤하늘 은하수를 깔아 놓은듯한 LA의 시가지가 아련히 사라지니 태평양으로 진입한 비행기 주변은 10월 10일 (목) 밤 11시 30분 칠흑 같은 암흑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 자야 될 시간이니 시차를 극복하리라 맘먹고 주는 밥도 마다 않고 잠을 청하기도 하고, 서성거려도 보고, 영화도 한 편 보고하다가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11일 새벽 다섯 시가 되었습니다. LA 공항과 인천공항 시계는 불과 여섯 시간 차이를 보이는데 실제로 비행기 안에서 보낸 시간은 11시간이니 칼렌다에서 잃어버린 다섯 시간은 아마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찾으리라 생각 됩니다. 그리 보면 지구 왼쪽에서 태어나 바른쪽에서 죽는 사람은 영원히 잃어버리거나 덤이거나 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들은 지구와 같이 돌았는지 역으로 돌았는지의 차이겠지만 죽어 몇 광년 거리의 우주로 영혼여행을 한다면?

이런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하며 인천 공항 로비에서 십여 분 기다리는 중에 잠을 설치며 일산을 네 시에 떠난 처제가 새벽 길을 헤치고 인천 KAL공항까지 우리 부부를 맞으러 차로 나와 주었습니다. 동 트기 전의 서울 외곽은 주위가 뿌연 채 모든 것이 잠에서 덜 깬 듯 하였습니다.

이번 저의 고국 여행은, 내년엔 오기 힘들 것 같은 기분 이어 무리를 해 집사람 곁을 따라나선 셈입니다. 미국에서 공중파 TV를 보며 암울한 느낌의 한국 정세가 '현장'에 도착 해보니 TV고 광화문이고 신문이고 조국 문재인 윤석열 김정은으로 온통 들썩이는데 10월답지 않게 서울은 덥습니다.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시한 폭탄을 안고 사는 서울 사람들, 그러나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그럴 거라고 체념 하면서도 속내는 불같이 화를 내고 사는 서울 사람들, 그러면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좌절 없는 오뚜기같은 고국에 며칠 지내면서 마음을 풀어볼까 합니다.

비록 이 동숭동 사이트가 동문들에게 잊혀지고는 있지만 그저 독백하는 기분으로 앞으로 서너 주 고국 땅을 밟으며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것들을 써 볼까 합니다.

2019년 10월 12일

TV를 보느라 면 에누리 없이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수십만의 인파가 각기 조국 죽이자 조국 살리자 하는 데모 모습입니다. 그리고 에누리 없이 피켓 파도타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재작년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때 광화문의 수십만 촛불들의 파도타기 광경처럼 절실한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극단적으로 분열되어가는 조국 짜증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품고 있는 알 중 하나가 썩은 것도 마다하고 고집스레 품어대고 있는 대통령에 식상하고, 보편성과 합리성을 제쳐놓고 조국 지키자고 피켓 드는 진보성향 주사파들의 이기적 심리 또한 속상한 겁니다. 여하튼 조국이라는 엄연한 파렴치를 두둔하는 것은 큰 무리수를 두는 것입니다.

25년 전 화성 연쇄 살인사건 진범으로 자백한 이춘재의 출현으로 온 나라가 떠들석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때 15세 소녀 강간 살해 등 몇차례의 살인 사건 범인으로 지목되어 고문받다 자살한 사람들과 누명을 쓰고 15년을 억울하게 옥살이 한 윤모씨 등의 인권문제가 심판대에 올라 어수선 합니다. 암울했던 대한민국 경찰의 주먹구구식 수사와 고문 만능의 과거 범인 조작이 들어나고 있으나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옛일들이 되어 허무합니다.

2019년 10월 13일

충남 아산에서도 아주 벽촌에 들어 가 사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와 하룻밤 지내려고 두 시간 운전을 해 내려갔습니다. 이 친구는 젊어서 신사복 만드는 일을 배워 한때는 서울 번화가에 양복점을 몇 개 가지고 있으면서 사업을 크게 벌였던 친구인데 십 몇 년 전에 사업을 접고 가족 선산에 있던 야산 농지에 가 농사일에 전념한 친구입니다. 인근 식당을 돌며 짬밥을 손수 수거 해 양돈도 해 보고 과수원도 해 보는 등 열심을 내다가 이제는 일손을 놓다시피 해 농장이 꽤 산만해져 있으나 그의 삶이 소박하고 인간미가 넘쳐 한국 나오면 꼭 들려 하루 밤 지내며 회포를 풉니다. 부인이 서울 집에 가 있을 때는 친구가 밭에서 따온 자료들로 찬을 뚜걱뚜걱 만드는데 세련미는 없으나 그 맛은 일품입니다. 그리고 가지나 버섯 등 가꾼 농작물을 주섬주섬 싸 차에 넣어주는 폼이 꼭 명절을 보내고 떠나는 자식놈들 챙겨주듯 합니다. 최근 몇 년 친구는 시골집과 영등포 아파트를 오가며 사는데 친구는 마을 사람들과 정이 들고 매사 적극적이고 솔선 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대단하고 동네 터주대감 노릇 하고 있고 성격이 활달한 부인은 서울 아파트 할머니들과 친교가 두터워 부부가 시골 농사와 서울 생활을 오가는 모양입니다.

2019년 10월 14일

아침에 친구의 조그만 트럭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동이 안 걸리는 겁니다. 너무 오래 방치 해 둔 모양입니다. 전화를 거니 불과 10분만에 보험회사 직원이 달려오는 겁니다. 이런 벽촌에 말입니다. 점프로 시동을 걸어 보더니 충전이 안 된다 하면서 견인차를 부릅니다. 또 십 분이 안되어 견인 차가 어디서 달려 왔습니다. 친구가 자주 가는 읍내 정비소를 묻더니 곧장 끌고 갔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벽촌은 더 이상 50년 전 벽촌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후에 서울 도착 하니 TV에서 조국이 오늘 두 시에 장관직에서 사퇴기자회견 했다는 속보가 계속 나오고 있군요. 가족의 고통을 더 이상 감내 못하겠고, 조국의 분열상을 더 이상 지켜보며 대통령께 폐를 끼칠 수 없게 되었다는 변이었습니다. 10월 초부터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수십만 태극기 부대들의 연이은 시위에 움찔해진 현 정권이 조국에게 사퇴지시를 내린듯 합니다. 조국 지키기에 연연하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 민주당이 더 큰 저항에 부딛칠 수도 있다는 계산의 결과였다는 시각도 있고, 일각에서는 최근 조국을 유난히 감싸고 도는 유시민의 촉새 같은 언행이 검찰에게 조국 아내 정경심이 숨긴 노트북 추적의 빌미를 주어 조국일가가 코너에 몰려 버렸다는 말도 들립니다.

조국 사퇴 발표에 임해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비리 캐기에 온 검찰이 총동원 되다시피 하는데 그래도 국민들의 사법개혁 요구는 여전하지 않느냐? 검찰총장은 현 사태를 성찰하라는 요상한 말과 함께 조국사태로 지난 몇 개월 심각한 정국 혼란이 야기된것을 엉뚱한곳으로 화살을 던지며 해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은 조국대로 검찰 계획에 관해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 했다는 얘기고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조국의 검찰 개혁 과정은 아주 훌륭했으며 조국이야말로 검찰 개혁의 유일무이한 적격자라고 강조 하고 있었습니다. 야당들은 대통령이야말로 국론 분열의 최종 책임을 사과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꼬집습니다. 어찌되었던 조국 사퇴는 혼란의 극치를 일단 잠재울 것 같으나 시원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군요.

2019년 10월 15일

분당에서 30여분 더 외곽으로 나아가 있는 시안묘지공원에 가 그곳 묘에 30년 가까이 계시던 장인 장모 어른의 화장수순을 밟았습니다. 처가 식구 중 한국에 살고 있는 유일한 처남이 올 봄에 지병으로 먼저 가고 나머지 처가 형제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주 해 살고 있는 터라 부모님 산소를 화장 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지요.

아내와 처제, 저 셋이서 새벽에 일산을 떠나 약속된 시안묘지공원의 묘소에 가니 직원 셋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울 외곽 고속 순환로를 택했는데 8차선 터넬을 여러 개 지나며 고국의 첨단 인프라를 실감했습니다. 가지고 간 과일과 건어물, 소주 등으로 간단한 차례를 지낸 후 직원들이 분봉 떼를 떠 내고 가래질하며 깊이 파고 들어 가 드디어 관 뚜껑을 들쳐낸 후 두 분의 뼈를 상자에 넣어 트렁크에 실어 주었습니다. 작업은 두 시간가량 걸렸습니다. 관 주위를 식물 뿌리가 휘감지도 않았고 근처에 샘이 있음에도 흙이 물에 젖어있지 않아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그 동안 편안하게 계셨겠다 생각하니 한결 개운했습니다.

상자 두 개를 싣고 벽제의 거대한 화장지에 도착해 역시 이미 밟아놓은 수순대로 화장을 해서 두 분의 유골 가루를 받는데 두 시간가량 걸렸습니다. 분말로 된 유골을 받아 들고 경관이 좋고 임진강이 훤히 내려 보이며 처남의 납골당이기도 한 자유로 근처의 검단사 옆 산등성이에 올라 전망있고 하늘이 트인 곳에서 수풀속에 뿌리며 바람에 날려 보내고 나니 저녁노을이 사방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원래 유골 가루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날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장인 장모 어른께서 자유로를 달리는 차들과 그 너머 끝없이 펼쳐진 임진강을 바라보시는 것도 지루하지 않으시리라 생각 됩니다.

집에 와 TV를 보니 조국이 서울대학 교수로 복직했다 하여 말이 많군요. 어제 두 시에 법무장관직 사직서 제출, 5시에 대통령 인가, 6시에 서울대학 복직 서류접수 및 복직, 참 조국스럽습니다.

2016년 10월 16일

초등학교 동창 둘과 마포에서 만나 커피를 하며 옛 정을 나누었습니다. 미국 떠나기전에 열심히 만든 나무 공예품을 선사하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45년전 저희 결혼식 때 주례를 해 주신 김용준 교수께 한국 오자마자 찾아 뵈려고 전화를 수 차례 했으나 통화가 안되어 내일은 무조건 찾아 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앗차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올 8월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막혔습니다. 지난 해 한국 나왔을 때 아흔을 훌쩍 넘기신데다 수술을 하시어 불편한 몸으로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대문까지 나와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산소라도 찾아 뵐 계획입니다.

2016년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장면이 TV에 중계 되고 있군요. 여 야 의원들의 대 검찰총장 질의가 팽팽합니다. 윤석영 검찰총장의 약간은 가늘고 높은 억양이 아쉽기는 하나 그의 차돌같이 단단하고 간단명료한 답변들이 인상적입니다. 조국사퇴는 정국 혼란을 일단락 진 게 아니고 현재도 진행사항이며 검찰이 그와 그의 가족 비리를 추적하는 것은 현정부를 농단하는 것과 같다는 여권의 위기의식이 표출되고 있었습니다. 윤 검찰총장의 수사진행에 관한 법과 원칙에 따른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 천명의 단호한 의지와 소신이 엿보였습니다. 국회위원들 질의 내용에서 그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본연의 임무보다 정당을 대표하는 구태의연한 작태는 여전합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가까이 지내는 지인 부부를 이곳에서 만나 마포갈비 집에서 점심을 하였습니다. 몇 십 년 좋이 되었음직한 '원조 마포 최대포집'에서 돼지갈비를 구어 먹는데 그 옛날 50여 년 전에 드나들던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 때는 소위 소가죽이라는 안주가 있어 비싼 되지 갈비에 주머니가 바닥나면 꼭 청해 먹던 것이 있었는데 이 가죽은 어찌나 질기고 단단한지 씹어 삼키려면 한참을 씹어야 했고 따라서 소주 안줏감으로서는 주머니와 타협이 되는 마지막 메뉴였습니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그것을 주문하면 주모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부터 이것은 사라지고 대신 돼지가죽이란 것으로 대체 되었는데 아귀에 힘주어 씹을 필요도 없이 연해 그 옛날 구두공장에서 불량품으로 쫓겨나 마포갈비 구공탄 위에서 안줏감이 되었던 소 가죽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서울 변모의 일면입니다.

그곳을 나와 마포 한강 옆의 월드컵 축구장이 있는 하늘 공원을 갔습니다. 공원 위의 갈대 숲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어 수많은 인파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이곳은 쓰레기 처리장이었고 인근 난지도에 친구 부친이 땅콩 밭을 가지고 계셔 철 되면 밭에 말린 땅콩을 구어 먹곤 했던 곳인데 이곳이 큰 산이 되어 그 위에 어마어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한 에피소드. 저녁은 소문난 연희 칼국수 집에서 먹자고 연희동을 향하는 중 아내의 전화벨이 울리더니 처제의 다급한 말소리가 들립니다, 언니, 형부 전화기 잃어버렸어?. 영문 없어 해 하는 아내으ㅏ 표정을 바라보다 아차! 하며 입고 있던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있어야 할 아이폰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월드컵 주차장에서 하늘 공원을 관광객 태우고 오르내리는 맹꽁이라는 이름의 간이 셔틀 버스에서 빠뜨린 모양인데 그것을 주운 어느 외국 관광객이 가이드에게 주었으며 제가 전화기 뒷면에 스티커로 적어 놓은 처제 전화번호로 그 가이드가 고맙게도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전화기를 월드컵 평화 주차장 사무실에 맡겨 놓았다는 전갈을 받고 식사 후 저녁 늦게 그곳에 가 전화기를 찾으며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비밀번호 없이는 open도 안되게 set up 된 새 아이폰인데 구입 후 30일은 해외 로밍을 못한다 해 한국에서는 위치추적도 불가능한 처지라 착한 손에 들어갔어도 연락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었는데 처제 전화 번호를 써 붙인 저의 준비성도 대견했지만 여러 착한 손을 거친 행운이 있어 이렇게 찾게 되다니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오! 필승 코리아!

2019년 10월 18일

참으로 희한한 축구경기였습니다. 올림픽 예선 남북 단일팀 선출을 위한 남북 축구 시합이 북에서 열리는데 북한은 선수들의 전화기 휴대를 금지하고(일체의 현장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양측 응원단을 불허 하고 일체의 중계를 차단 하였으며(북팀 패배 시 김정은 절대권위 손상 및 체제 균열 우려), 일체의 취재 기자단 입장을 배제하고(방송 및 촬영 보도 금지), 시종 북측 선수들의 폭력적 경기 행태 속에서 0 대 0 무승부의 게임을 펼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북측의 도무지 이해 못할 유치한 짓거리가 온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북의 이와 같은 전례 없는 국제 행패에도 속수무책 내지는 바른 목소리 한 번 못하거나 내지르지 않는 한국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도 답답합니다.

오늘 인천공항에서 LA로 출발 예정이던 아시아나 A380 항공기 엔진에서 기름이 새 화재가 일어나는 사고가 있었다는 보도였습니다. 승무원만 탑승하고 승객은 아직 탑승하지 않은 상태여서 다행이었지만 3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륙 후 이런 일이 벌어졌더라면 대참사가 될뻔했습니다. 탑승했던 승무원 20명은 모두 무사했다고 합니다.

2019년 10월 19일

바닷가에 가 조개를 구어 먹자고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드라이브 했습니다. 썰물로 한없이 펼쳐진 개펄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더불어 조개나 게를 관찰하는 모습들이 가주 해안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일행 다섯이 물 빠진 개펄을 걷다 모래에 반쯤 묻혀있는 핸드폰을 발견하고 전화 화면에 뜨는 통화기록에서 임의로 전화를 걸어 주인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에 와 캠핑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는데 오늘 아침 일찍 개펄에서 잃어 찾아 헤맸으나 포기했던 것이라며 숨이 턱에 차 달려 와 찾아 갔습니다. 그저께 하늘공원에서 잃었다 찾은 저의 핸드폰 생각을 새삼 하며 찾은 고마움을 되돌림 한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실미도까지 드라이브 했습니다만 20여 년 전에 가 보았던 자연 그대로의 섬은 사라지고 토요일 넘쳐나는 차량과 무질서한 해안가 식당들의 난립, 노래방 스피커의 소음 폭탄 속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다시 영종도로 나오는데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해변가 식당마다 가게 앞 해변 도로 주차장을 자기들 전용 물로 둔갑시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어 불편했습니다만 저녁 노을 아래로 서서히 들이치는 밀물을 바라보며 푸짐한 해물찌개로 바다 맛을 만끽하고 돌아왔습니다.

2019년 10월 20일

일요일을 맞아 오랜만에 아내와 처제와 함께 김포 앞 강화도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맛을담은강된장'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맛 집이 인기 있는 식당으로 나오기에 열 시에 일산을 출발 했습니다. 인천시와 강화도를 잇는 4차선 다리는 굼벵이 차량들로 극심한 정첸데 요사이 북에서 시작되어 DMZ 멧돼지를 통해 남하한다는 돼지 열병 바이러스 감염 방역 때문에 강화도 입구에 설치된 차량 방역 살포를 받으며 지나느라 정체가 더 심했습니다.

서울 시내도 그렇지만 역시 강화도에도 손님 없이 텅텅 빈 식당들이 수두룩합니다만 소문난 된장 식당을 찾으니 한 시간가량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강된장이라는 강화도 특유의 된장을 우렁과 각종 양념으로 버무려 만든 일종의 쌈장을 한 뚝배기에 담고, 또 다른 뚝배기로 북창동 순두부식의 개개인 밥을 지어 쌈을 싸 먹도록 만든 메뉴를 택했는데 별미여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싶었습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을 꽉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교통체증 마다 않고 맛을 찾는, 맛집 인터넷 사냥 성향을 읽을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여유, 극성, 뱃짱, 체념, 울분, 초고속으로 up된 물질문명 사회를 만끽하는 그들은 광화문과 서초동에 포진하랴 강화도로 밥 먹으러 오랴 바쁩니다.

식사 후 한국 최초의 방직회사였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며 커피 집으로 꾸민 매우 흥미로운 장소를 역시 인터넷으로 찾아 구경했습니다. '조양 방직'이라는 이름의 이곳은 90여 년 전 한국의 최초 방직공장이었던 모양으로 당시의 시설과 기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위에 온갖 골동 기계들을 재생 해 식탁과 의자로 내부장식을 하여 관광객들이 앉아 쉴 수 있도록 꾸며놓고 있었습니다. 입장료를 따로 받는 게 아니고 단지 커피나 간단한 음료를 사 먹는 사람에게만 오픈한다는 간접적 안내서만 있을 뿐이었으며 구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 넓은 옛 공장 시설을 갖가지 아이디어로 꾸미고 골동품을 대중의 엔터테인 공간으로 만든 노력과 투자에 비하면 매우 겸허한 요구가 아닌가 하였습니다. 박물관 입구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 해 기념 식수 했다는 나무가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있어 장소의 연륜을 말 해 주고 있었는데 2018년도에 개관했다는 안내 글이 보였습니다. 커피값이 7000원으로 좀 비싸긴 했지만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 오니 TV에서는 엊그제 미국의 지나친 방위금 분담 요구에 하의 해 미 대사관저를 담을 넘어 무단 침입 해 시위를 벌인 대진연(한국 대학생 진보연합소속) 대학생들에 격노한 미 측의 항의가 드세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 해에는 백두칭송 위원회를 열고 올 10월 초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에 미국은 이 땅을 물러나라는 현수막을 걸고 점거한 과격 단체이기도 합니다만 타국의 대사관저 담을 넘는 일은 여하튼 국제양식을 벗어난 행위로 지탄을 받을 일입니다. 국민이 표정관리 하기에는 좀 머쓱한 망동이 아닌가 하며 경색되어가는 한미 관계에 불쏘시개 하나 더 던지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이 들고 나온 공수처 법 제정 안으로 국회는 또 다른 소용돌이 속을 헤매고 있는데 이 법이 조국과 그 가족의 검찰조사와 연계되어 그를 보호하자는 좌측과 역시 끝장을 내야겠다는 우측의 사안이 걸린 법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공수처 설치 발의는 1996년도부터 시작되어 노무현, 김대중 정권하에서도 다루어졌으나 성사를 하지 못하다가 문재인대통령과 고국 행정부에서 다시 대두된 발의입니다. 공수처란 말 그대로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처로서분벼 그간 검찰 소속으로 수사와 기소 및 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대통령 가족, 고위공직자, 퇴역 장성등의 비리를 다룸에 한계를 들어내는 문제점이 많았으므로 대통령 직속의 별다른 특별기관을 설립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 법안 자체가 직간접으로 비리 연관에 노출되기 쉬운 정치인들을 즐겁게 하는 기관은 아니어서인지 적극적인 추진력이 없었고, 게다가 현존하는 상설 특검 기능에 옥상옥이 될 수도 있다는 반론등으로 지지부진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조국 전 법무장관이 사활을 건 듯 사법개혁을 부르짓는 와중에 이 공수처 설립을 밀어부쳤는데 하필이면 자기 가족이 온통 검찰의 칼날아래 수사를 받고 있던 처지였던 관계로 여 야가 공수처 설립 여부를 놓고 또다른 국민 분열상을 보이게 된 것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조국건은 끝난 게 아니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들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공수처 설치는 장기집권을 노린 독재법이자 제왕적 대통령 옹립의 발로며 조국 감싸기 위한 편법이 되리라는 보수 한국당의 적극 반대에 진보성향의 더불어 민주당은 사법 개혁은 역사적 사명이며 과거에 공수처 설치를 외쳐대던 한국당이 이제는 돌변 해 말초신경적 과민반응만 보인다고 힐란하며 만일 한국당이 계속 브레잌을 걸면 소위 패스트 트랙 국회법으로 한국당 없이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 놓고 있는 작금의 여 야 싸움은 끝날 기미없이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의 혈세 오백조 예산안 처리보다 당리당략 혈투에 몰입 되어 있는듯한 국회위원들을 국민은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 사이에서는 위태롭다 느껴지는 서울이지만 막상 와 보면 청명한 가을날씨에 평온하기 짝 없습니다. 뉴스에서는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누비며 전열을 다지면서 미국의 도전을 용서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는 최근의 동영상과 함께 북한 제재는 절대 풀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오버랩 되고 있습니다. 강화도에 가 청명한 날씨를 만끽하고 돌아 왔습니다만 미국 오기 전 누군가의 하필이며 왜 이때.... 를 한 귀로 흘리며 온 저 역시 이 분위기와 묻혀 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설마 하는 마음과 속 상해 하는 마음이 모두의 가슴을 누르는 듯 합니다. 청명한 날씨가 내일부터는 약간의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여질거라는 보도입니다.

2019년 10월 21일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 하고 법원에 조국 부인 정경심을 조국일가 사모펀드와 딸 부정입학 등 11개 조항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간 뇌경색등의 건강문제를 제기했지만 수감생활에 지장을 초래 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는 검찰의 판단이 있은 후였습니다. 여하튼 법원의 영장 기각 여하에 따라 정교수가 피의자가 될지 피해자가 될지 가름이 될 수도 있어 이틀 내로 결정될 구속여부가 초미의 관심사 입니다.

TV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 등 공감이룬 사안이 국민적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된다고 담화를 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있은 청와대 종교 단체 지도자 초청 모임에서 대통령은 조국사태에 따른 국론 분열이 상상외로 심각하다는 인식이 공유 되었다는 언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이 조국을 감싸 온 대통령의 인사 행정으로 야기된 것을 성찰 하기 보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패 싸움 탓으로 돌리는듯한 인상을 주어 떨떠름 했습니다.

어제까지 추락하던 문재인 지지도 여론조사는 10월 셋째 주 수치가 전주 41%로부터 45%로 반등을 보였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전화면접으로 실시하는 한국갤럽과 자동 응답기로 조사하는 리얼미터 조사인 바 위 조사결과는 중도 층 반응이 덜한 자동응답 여론조사 결과 입니다. 나이많은 사람들은 여론조사 자동 응답기를 접하게 되면 후딱 끊어버리는 습성이라네요. 한국 갤럽 결과는 39%로 저조해진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여론조사라는 게 그 신뢰도에 절대적 숫자를 부여 할 수는 없지만 모쪼록 국민이 품고 있는 편향에서 탈피 해 합리적인 자유민주주의 추구의 국가 리더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수출감소, 경제 성장률 감소, 경기침체, IMF 국가평가 하향 지표 속에서 안개 속을 헤매는 정국을 돌파하는 게 지상 과제인 것 같습니다. 미 중 북 간에 열외가 되다시피 한 대한민국 처지로 대통령의 한계가 있습니다만 문재인의 왕고집이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왕고집과 궤를 달리 한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혈세로 운영되는 31개 국가 공기업 중 적자를 내고 있는 기업이 16개라 합니다. 1조 이상의 적자를 내고있는 한국전력은 올해 우수기업으로 선정 되어 그 임원들이 거액의 성과금을 받았다는데 공기업 업적 평가 기준 중 정부 시책 참여도에서 전력공사가 탈 원전 정부시책에서 상위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방송이 있었습니다.

2019년 10월 22일

올 8월에 소천하신 김용준 선생님 댁을 아침에 찾아 뵈었습니다. 90이 넘으신 사모님은 거동이 지극히 불편하신데 기억력은 말짱 하시어 늦게 찾아 뵙는 저희 부부의 허물을 용서 빌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을 당신의 멘토로 모셨던 김용준 선생님은 군사 정권에 항의하다 교수직에서 7년을 정직 당하고 민주정권 회귀로 명예회복 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늘 야 편에서 곧은 자세로 정부의 손짓을 뿌리치며 주관대로 살다 가신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는 아래로 당신과 많이 안 닮은 동생 얘기가 나오면 말문을 잠그시던 김용옥 교수, 그리고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 누님이라 부르며 따르던 김숙희 교수가 계신데 50여 년 전 저희 결혼식 주례를 해 주신 선생님이 이제는 영영 가신데다 저는 지구 저편에 사니 이들이 언젠가 세월에 씻겨 헤어질 인연들이 되겠지요. 인생은 이래서 허망하다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강남의 교대 역에서 만나 점심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오랜 교사생활을 한 친구, 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던 친구, 건설회사에서 엔지니어링을 하던 친구, 이제는 모두 퇴직하여 지내는 친구들이 몇 년 만에 만났습니다만 연륜을 짊어지고 모이면서 인생 후반의 중후한 흔적이 풍깁니다. 옛날처럼 자리를 옮기며 기고만장하던 혈기는 많이 내려 앉았지만 서로의 족적을 잘 아는 죽마고우에 다름 아닌 사려 깊은 벗들입니다. 해가 거듭되며 일찍 가버린 동기, 혹은 소식이 묘연한 동기들로 입학할 때 스물이 넘던 동기들이 이제 한 줌도 안됩니다. 누군가 정치얘기 하자 말자 하니 대화가 끊기곤 합니다만 정치 얘기 안 하면 부담이 덜 되는 건 확실합니다. 어쩌다 강남 땅값 널뛰는 얘기가 나오면서 에둘러 다음 만날 기약을 하며 헤어졌습니다. 상대적 빈곤감은 막상 때린 사람은 없어도 모두가 얻어맞고 있는 듯한 허탈감이기도 합니다.

2019년 10월 23일

어떤 오해가 있어 최근 몇 해 어제 만난 동기 친구들 모임에는 나오지 않고 있으나 제가 좋아하고 아끼며 가까이 지내는 또 하나의 동기를 꼭 보고 싶어 연락을 해 마포의 원조 최 대포 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이 친구는 한때 위암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암에서 온전히 해방 된 것 같습니다. 얘기 중 미국서 살던 친구가 최근에 한국 나와 살고 있는 것을 알고 반갑게 불러 내 셋이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점심을 했습니다. 둘 다 수학 교수로 하나는 서울에서 하나는 미국에서 퇴직했습니다. 최근에 한국 나와 살고 있는 친구는 퇴직 후에도 학술 논문 발표를 하고 있는데 수학 논문의 공동 저자 이름은 언제나 알파벹 순서로 나열하는데 요사이 고국 딸이 관계된 논문의 저자들 나열이 제 1 저자, 제 2 저자 등으로 인용되면서 논문 작성 기여도로 나열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한 편 수학과 교수로 퇴직한 친구 얘기는 요사이 대학생들의 실력 차이나 학습 이해도의 괴리가 너무 커 강의 하기가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닌데 이는 대학 입학 사정에 최대 7 대 3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는 수시와 정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시라는 것은 과거에 실시하던 입학 시험으로 필기 시험을 말하며 수시라는 수능관계 점수로 학생의 학력 시험 성적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별도로 가지고 있는 체육 특기 라던지 연구나 사회 활동 등 자기 계발을 통한 실적을 출신 고교 학적에 기록하여 합격 심사에 7 의 기준으로 무게를 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수시가 학생 본인의 노력이라기 보다 학생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의 산물로 부패의 온상이 되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마도 조국 딸이 엉터리 논문 저자로 둔갑 해 의대에 들어 간 것도 이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하기는 며칠 전에 어느 기사를 보니 한 학부모가 수시 학원에 몇 백만 원 주니 며칠 내에 학생 이름으로 그럴듯한 프로젝트 수행 기록서가 수십 페이지의 리포트로 작성되어 학부모에게 전달 되는데 막상 학생 본인은 그 내용도 생소하다는 TV 방영이었습니다. 친구의 얘기는 이런 식으로 들어 온 학생이 너무 많아 학생간의 극심한 강의 이해도 차이로 애로가 이만 저만 아니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수시의 창궐은 지난 수십년 입시위주의 대학 입학이 인성교육을 멀리하고 학원을 난립시키며 고교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시달림의 역사적 고육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단지 그것이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최근에 한국으로 이사 와 사는 친구는 미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고 해 어디에 살던 자기가 사는 곳을 맞춤형 주변으로 꾸미며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TV 에는 현대기업의 금년 사업 이익이 70% 급감 했다는 보도가 보이고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 환송 심사에서 뇌물 액수가 36억에서 86억으로 늘어 대법원에서 다시 지방법원으로 이첩되었으며 이에 따라 다시 법정에 서야 될지도 모른다는 보도입니다. 나라 돈 챙겨주는 기업을 토닥이랴 그 기업을 때려 잡으랴 헷갈리는 정부입니다.

저녁식사는 죽마고우 부부와 마포 꽃게 집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큰 식당은 아닌데 소문 난 게장 집으로 예약한 손님만 받으며 두당 사만 원 밥 값이 좀 무겁긴 하지만 음식 맛이 감질나고 식단이 깔끔해 서울 오면 한 번쯤 들립니다. 한국 식당은 팁이 없어 부담이 덜 하다고 아내는 말 합니다. 미국에선 팁이 일종의 복병이고 웨이터와 손님 사이의 채점과 체면 겨루기 순간이 되어 정산 할 때마다 단 몇 초라도 머리를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한국에 나오면 이 과정이 없어 편하다는 얘기 입니다. 오늘 자리를 같이 한 친구는 맛 집을 두루 아는 식도락가로 원만하고 사람 좋은데 웨이터들 대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 식사 전에 팁을 듬뿍 주어 수완을 부립니다. 미국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뇌물 형 역 팁 행각입니다만 한국은 이래서 재미 있기도 합니다. 게를 유난히 좋아하는 두 여자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음식 값을 내겠다고 친구와 한국 사람들 특유의 지갑 열기 씨름을 벌인 후 식당을 나서니 마포 서울대 동창회관 뒤 좁은 먹자 골목은 휘황찬란한 도로 주변 가로등 불빛 아래 차량과 사람들이 뒤범벅 되어 부산 합니다.

2019년 10월 24일

검찰의 조국 부인 정경심 교수 구속 심사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영장이 발부 되었습니다. 혐의상당부분이 소명되었으며 증거 인멸 염려가 있어 구속을 인정한다는 법원 취지였습니다. TV 화면은 법원 앞에서 구속 영장 발부를 환영하며 조국 구속까지 가자는 시위대와 구속은 직권 남용이라는 조국 수호 단체들의 시위 그룹이 따로 무리 지어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이 보입니다. 관심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의 향후 수사 확대가 되겠습니다.

김정은이 금강산 남측 시설을 돌아보며 격에 안 맞고 유치한 시설들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고 하면서 전부 박살내고 자기들이 전면 개조 해 사용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뜨고 있습니다. 현대가 5000억을 들여 만든 시설이 '압수'당할지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에서 벌어진 무 관중, 무 취재 단, 무 중계의 남북 축구팀 선발 시합을 보면서 북의 실종된 국제 스포츠 개념에 경악한 게 엿새 전 일인데 오늘은 육이오 때 동네를 진입한 인민군이 동네 부자를 반동으로 몰아 재산을 압수하고 소위 인민재판으로 처단까지 한 그때의 살벌함이 되살아 나는 기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엊그제 친구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누군가가 이제 머지않아 남이 북에 흡수되면 재산 다 뺏길 테니 부동산 빨리 팔아 챙기라는 농담 아닌 농담과, 강남 집값 오르는 것을 보면 남이 북에 먹힐 염려들은 안 하는 민심이니 그럴 필요 없지 않겠는가 하며 농담을 주고 받던 생각이 납니다.

2019년 10월 25일

정부가 WTO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선언한 모양입니다. 이는 최근 트럼프가 미국의 농산물 수출 증가를 위해 한국이 농산물 수입 관세를 없애도록 압력을 넣고 있어 내린 조치가 아닌가 합니다. 농민들이 대거 저항 시위를 하며 포기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화면이 뜨고 있습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쌀 등 농산물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 못하니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입니다. 경제력 10위권 국가가 농업 개도국 명함을 갖고 있는 것도 어색하고, 미 중 무역 전쟁으로 자국 농민들의 불만에 압력을 받고 있는 트럼프의 장삿속도 속 보이며, 손해 보는 일에는 절대 양보 못하겠다는 농민들의 이기주의가 뒤범벅 되어 오늘 TV도 부산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학 입시제도의 수시 편중도가 너무 높으니 수시와 정시 비율을 재 조정 할것을 국무회의에서 지시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모든 자사고와 외고를 2015년 부터 일반고로 개편 한다는 방침을 발표 했습니다. 조국이 이제 조국을 위해 기여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2019년 10월 27일

아내와 처제와 함께 셋이서 차에 옷가지와 여행에 필요한 잔 것 들을 챙긴 가방들을 싣고 강원도를 향했습니다. 속리산 단풍도 볼 겸, 이제 보면 언제 또 보리 하는 묘한 심정으로, 가뿐한 허리는 아니지만 심기 일변으로 길을 나선 겁니다. 일산을 정오쯤 떠나 운천 근처의 산정호수를 들려 화천 DMZ 근처 평화의 땜이 오늘의 목표입니다.

산정호수로 가는 길에 운천 조금 못 미처 야미리라는 마을은 제가 근무하던 제 3 전차대대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옛 부대가 큰길에 인접 해 있었기로 마을로 들어서니 그 자리에 지금은 기갑 여단이 들어 서 있었으며 당시 하사관과 장교들이 하숙을 하거나 세 들어 살림을 하던 부대 앞 마을은 전혀 딴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네 군데군데 몇 십 년 지나며 폐가가 되다시피 한 집들이 간혹 눈에 띄어 아마도 그런 집 들 중 하나가 55년 전 제가 지내던 집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길에서 벗어나 차를 잠깐 멈춘 몇 분 간 45톤 급 M47 탱크 다섯 대를 끌고 마을 앞을 나서며 그 굉음에 가슴이 벅차던 전차소대 소대장 시절의 추억을 혼자 반추 했습니다.

일요일 산정호수 일대는 들어 찬 식당과 차의 홍수, 그 사이로 비집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물결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몸살에 일조하고 그곳을 벗어 나 화천 땜의 파로호를 들린 후 DMZ 가까이에 있는 평화의 땜을 향했습니다. 평화의 땜은 전두환 때 북에서 예고 없이 수문을 열어 제치면 범람해 인명 피해가 있으므로 국민의 성금으로 예방 차원의 땜을 설치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아이들이 저금통장까지 들고 나와 성금 한 돈으로 만든 큰 땜이었습니다. 원래는 그 근처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이외로 땜 근처에는 숙박시설이 전혀 없고 날은 점점 어두워질 기세라 험한 꼬불꼬불 산길을 운전 해 내려와 양구에서 가까스로 방 두 개를 잡아 짐을 풀었습니다.

2019년 10월 28일

아침 일찍 일어 나 양구의 박수근 박물관을 찾으니 공교롭게도 오늘은 휴관하는 날이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이나 시골 아낙에 전통 의상을 입혀 만든 인형들, 고전적 풍물을 담은 풍경들은 너무나 서민작이고 향수에 젖게 하는 것들이어서 못 보는 게 애석했습니다. 다시 어제 저녁에 고생하며 내려 온 산길을 되짚어 드라이브 하며 평화의 댐으로 가서 찬찬히 둘러 보았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비목공원에는 예의 그 녹슨 총대 위에 구멍 난 헬멧이 걸쳐 있어야 했으나 어느 관광객이 가져갔다는 안내원의 말을 듣고 혀를 찼습니다. 그곳에 있는 '세계 평화의 종 공원'에는 평화에 기여 해 노벨상을 받은 인물들의 사진과 악수 하자고 내민 모습의 손 조각들이 나란히 있는데 그 중에는 우리나라의 김대중과 한승수의 손도 있어 잡아 보았습니다. 그곳에 비치한 평화의 종은 대단히 크고, 단체로 온 관광객들 20명 이상 신청하면 잠금을 풀어 종을 치게 하며 일인당 500원의 자발적 성금 함이 있고 그 성금은 한국 동란에 참여한 에티오피아에 보내진다는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때마침 일단의 군인들 관광객이 종을 치는데 그 소리는 주위 산야를 깊고 길게 울려 퍼져 큰 종의 위력을 알 만 했습니다.

산길을 달려 양구 백자 박물관에 갔으나 월요일은 휴관, 다시 DMZ를 향해 두타연이라는 곳을 갔으나 거기부터는 돼지 바이러스 때문에 제 4 땅굴 현장까지 통행이 차단되어 있었으며 양구 통일관 역시 월요일은 휴관이라 발길을 돌릴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발길을 돌리기는 했지만 원래 이번 여행의 목적이 강원도 산들의 단풍을 보자는 것이어서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통일관 앞 마당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대형 관광버스가 오더니 오십명가량의 관광객들이 차에서 내리기에 아니 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허탕치는 게 아닌가 했으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인솔자와 운전기사 등이 버스 밑의 짐칸에서 탁자와 의자들을 펴고 어느 식당에서 같이 온 듯한 여자분 둘이서 음식을 퍼 나르니 버스 옆의 주차 공간이 금새 50명이 앉아 식사하는 훌륭한 공간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합동 식사하는 장면을 보며 한국의 관광 양식도 다양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휴관으로 한적한 이 주차장을 임시 식당으로 꾸며 식사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드라이브 내내 처와 처제는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끊임이 없는데 둘이 교대 해 드라이브 하겠다 기에 저는 뒷자리에 앉아 차창을 스치는 가을 산을 즐기며 가끔 얘기에 참견 하곤 했습니다.

드디어 설악산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신흥사를 올라갔으나 기대했던 단풍은 아니었습니다. 단풍나무들이 아직 푸른 기가 있는가 하면 빨갛게 익은 잎들은 벌써 말라가는 듯한 기색 이어 설악산 단풍이 절정의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산턱 너머로 숨으려 하는데 아직도 관광객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신흥사 입구의 거대한 불상에는 수많은 불교 신도들이 합장을 하기도 하고 무릎 꿇어 불공을 드리는데 불상의 뒤로 돌아 가 보니 불상 밑에는 지하 계단이 있고 수십 명이 찬불할 수 있는 불당이 있었습니다. 불상의 크기가 가늠되는 건축이었습니다. 광장에는 부처님께 바치는 곡물과 양초 등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큰 돈을 써 가면서 이들을 사 불상에 바치는 것을 보며 그들의 불심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습니다.

기왕에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이곳에서 가까운 속초로 가 일박 하자는데 의기가 투합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속초 해변에 가 보니 날은 어두워지고 저녁이 깊숙해져 서둘러 방 두개를 잡아 놓고 예약을 한 후 여관 주인이 천거한대로 속초 중앙 수산물 시장을 찾았습니다. 싱싱한 회와 함께 꽃게와 각종 바다 조개, 전복 등을 스팀으로 쪄 내 셋이서 신나게 먹어댔습니다. 나중에 회 뜬 후의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여 내는데 그 또한 일미여서 소처럼 위가 두 개 없는 게 한이었습니다.

오늘 밤 잠자리는 그러나 음식점의 맛있는 바다요리 연장선에 있지 못했습니다. 짐을 풀고 보니 처제가 혼자 잘 방 문고리가 고장 나 잠기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나 혼자 그 방에서 자기로 하고 처와 처제를 ‘안전한’ 방에서 자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방에 전기 시설에 문제가 발견 되어 주인은 옆방으로 저를 옮겨 주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사단은 제가 옮긴 방이 누군가 지독한 흡연 가가 장기 체류했던 방이었던지 방에 찌든 담배 찐 냄새에 구토가 날 정도여서 한 밤중에 잠을 깨니 계속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밤중에 주인을 깨기도 뭣해 망설이다 도루 열쇠 고장 난 방으로 옮겨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2019년 10월 29일

아침 일찍 해변을 달려 양양 앞바다 동호 해수욕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 셋뿐인 드넓은 모래사장을 거닐었습니다. 어젯밤의 에피소드가 말끔히 씻어지는 경쾌한 해변 산책이었습니다.

오늘 목표는 오색 산장의 성국사와 오대산의 월정사, 그리고 치악산 국립공원입니다. 오색산장의 단풍과 산책로는 일품이었으며 그곳 산채 식당에서 먹은 산나물 비빔밥은 지금 생각해도 진하고 고소한 나물 맛들이 입에 군침이 돕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곳 냇물의 거대한 바위 복판 구멍에서 나오는 물을 약수라 하여 관광객들이 줄지어 떠 먹고 병에 받아 가는데 좀 떨어진 곳에 이것은 식수로 인증된 물은 아니니 조심하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 눈엔 분명히 화강암 바위의 벌어진 관입로를 따라 위로부터 흐르는 냇물이 스며들다 묘하게 움푹 파인 바위에서 수돗물처럼 솟아나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산에서 따로 솟아나는 천연 샘물로 알고 기를 쓰고 마시는 것입니다. 하기는 약수로 믿고 마시면 약이 될 수도 있다지만 말입니다.

오대산 월정사는 단풍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200년이 넘었다는 우람한 은행나무가 절 앞을 꽉 채우다시피 버티고 샛노란 은행 단풍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인가 아내와 이곳에 왔다가 스님의 산채밥 요리책을 사서 지금도 아내가 가끔 들 척이며 음식을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절이 품위 있고 조용해 마음에 듭니다. 붉다 못해 그림자까지 붉은 단풍이 속을 후련하게 해 줍니다. 노란 단풍이 더욱 청아한 조화를 이루어 줍니다.

지난 밤의 경험을 살려 오늘 숙소는 마음 써가며 정했습니다. 마침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산장이라 깨끗하고 벽이 황토로 되어 있어 숨 쉴 때 가슴이 트는 듯 했습니다.

숙소를 잡으니 날은 어두워지고 밥은 먹어야겠기에 인근 식당들을 뒤졌으나 저녁 일곱시가 좀 넘었는데도 문들을 닫아 여기저기 헤매다 닭튀김 집을 가까스로 발견 해 친절한 주모의 푸짐한 닭갈비로 저녁을 때웠습니다.

처제와 아내는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밤 늦게까지 둘이 떨어지질 않아 같이 오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TV 도 여러 찬넬 나오고 와이파이도 잘 되어 저는 저대로 심심치 않았습니다.

2019년 10월 30일

이른 아침의 치악산 구룡사 오르는 길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의령대사가 창건한 이 사찰의 아침 이슬이 촉촉한 숲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군데군데 피어 있는 단풍을 조명하며 차분하게 산책객을 맞습니다.

구룡사 입구에 가 기다리고 처와 처제는 차를 가지러 가며 아빠는 여기서 기다리라 한 아내의 말을 곁들은 입구 경비원 아저씨가 길 맞은편 기념품 가게 아낙에게 딸들은 나이 차도 여전히 아빠 아빠 한다고 농담 하는 것이 들려 슬그머니 차 오는 방향으로 자리를 피해 걸어 내려 갔습니다. 경비원이 자세히 안 보고 한 얘기였겠지만 아내와 처제가 난데없이 제 딸로 둔갑되는 이런 순간이 저에게는 행인지 불행인지를 헷갈리며 이럴 때는 아무 말 않고 있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하얗게 세어버린 저의 머리 염색을 퇴직과 더불어 포기한 것이 화근인지 모르겠습니만 제가 너무 늙어보여 아내를 딸로 보는 눈 먼 사람만 아니라면 저는 한 턱이라도 낼 정도로 은근히 기분이 좋아질 예정입니다.

치악산은 그리 광활하지는 않지만 험한 산세의 골짜기에 폭 빠진듯한 산책로가 경쾌한 충격을 줍니다.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의 숲 속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은 간혹 비치는 햇살을 받아 광채를 빚습니다. 냇물 위를 가로지른 흔들 다리는 짧지만 흥미롭습니다. 속리산에서 실망한 단풍을 이곳에서 한껏 만회 한 셈입니다.

다시 고속도로를 시간 반 달려 원주의 '뮤지엄 산'이라는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일인당 이만오천원으로 뻐근했지만 매월 마지막 수요일인 오늘은 반값이라기에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많은 전시관이나 사찰 들 입장료가 육십오 세 이상은 활인이 되거나 무료여서 아직 65고지를 탈환하려면 '멀어' 기꺼이 전액요금을 내는 처제와 65고지 탈환한지 일년도 채 않되었지만 입장료 적게 내는 게 '기꺼이' 신 나는 아내 틈바귀에서 덤덤히 혜택을 즐기는 접니다만 이곳 요금은 구별없이 막무가네였습니다. 그러나 들어 가 보니 그 시설하며 전시관의 내용 자체가 워낙 품격이 돋보이고 예술의 극치를 보이고 있어 그 값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만도 다다오가 설계한 정원용 뮤지엄으로 고 품격 야외 박물관 방문객 답게 예술가 빵떡 모자에 한껏 문학 냄새 풍기는 옷차림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우리 농민들의 다단계 논을 상기시키는 얕은 인공 호수들이 자갈 평판 위에 얕게 깔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곳을 나와 말로만 듣던, 혹시 중고등학교 시절에 소풍 갔었는지도 모를 춘천의 '남이 섬'을 향했습니다. 이번 여행길의 마지막 행선지이기도 한 이 섬을 가기 위해 배 타는 곳을 도착하니 관광객들로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어 서울 사람들의 마지막 피신처가 여기인가 싶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거의 전부가 동남아 사람들이었는데 아마도 서울 여행 패키지에 서울 인근인 이 지역을 넣었는지 대형 관광 버스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막상 배를 타고 남이섬에 도착 해 섬을 둘러 본 인상은 '한 번으로 족하며 다시는 오지 않을 관광지' 였습니다. 기대하던 은행 나무 숲 길은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에 몸살을 앓은데다 잎들을 많이 잃어 초라해 보였는데 동남아 젊은이들은 그래도 즐거워하며 사진 찍느라 바쁜 모양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 섬은 섬 자체를 하나의 색다른 이국으로 설정하여 관광객에게 신선한 감흥을 주자는 취지인 것 같았으나 섬 전체가 온통 남대문 돛대기 시장같이 번거로워져 마음 차분하게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낭만은 오직 동남아 외국인의 것인 듯 했습니다. 섬 초입에는 육지와 섬을 잇는 정부의 교량 건립 시책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어 앗 이곳 역시 한국이구나 하는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서울을 가까이 하며 굼벵이 자동차 행렬은 끝이 없었으나 장장 십여 리는 됨직한 6차선 터넬을 지나며 대한민국 인프라의 발전상에 감명이 깊었습니다. 일산 처제네를 도착 해 짐을 풀고는 모두들 무사한 강원도 여행을 감사 했습니다.

2019년 10월 31일

오늘은 처제네 베란다의 화분들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을 위해 며칠 전에 쿠팡이라는 인터넷 쇼핑 웹사이트에 들어 가 자동 타이머, 워터 스프레이 노즐 등을 주문한 것이 여행 중에 도착 한 것입니다. 이곳의 쿠팡은 미국의 아마존닷콤이나 이베이와 같은 판매 및 배달 체계로, 생긴지 몇 년 안되었으나 그 방대한 품목과 다양한 쇼핑 프로그램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품목명이 영어의 한글 표기와 순수 한글로 복합 되어 있어 품목 조회에 많은 시간과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국은 아직 미국의 홈디포 같은 초대형 하드웨어 쇼핑 몰이 없고, 동네 어귀에 있는 철물점에서는 이런 부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 쿠팡이 살려 준 셈입니다. 아니면 옛날 청계천 주변의 철물 전문점들을 타색 해야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패키지를 여니 자동 타이머의 수도꼭지 연결부속 중 엉뚱한 부품이 배달되어 인근 철물점을 두 차례나 가야 했고, 화분마다 물의 양을 조절하게 되어 있는 노즐 30개 중 열개나 불량품으로 접착 부위에서 물이 새는 데 미국처럼 리턴이 수월한 것도 아니고 시간도 없고 하여 화분 끝의 튜브를 막아 버리고 겨우 설치를 끝내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미국이라면 동종의 중국 제품에 이토록 불량품이 많을 리도 없을 것이어서 중국 제품들 수입 시 품질 관리에 소홀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영어로만 되어 있는 설명서뿐인데 중국식 영어인지 도움이 못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간혹 감 못 잡을 중국제품 영어 설명서가 있기는 하지만, 홍수같이 전세계에 퍼지는 중국 제품들에 한국도 몸살을 앓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기종의 타이머 가격이 미국의 홈디포 쇼핑 몰이라면 십오 불 정도면 족할 것이 이곳 쿠팡에서는 40불인 것도 강대국에 허리를 더 굽히는 중국의 행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2019년 11월 1일

일산에서 마포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지난 몇년 공덕역 로터리에 조그만 아파트 형 오피스텔을 간직 해 오면서 서울 나오면 잠자리로 쓰곤 합니다. 공교롭게도 올 해는 작년에 이미 올 10월에 며칠 빌려주기로 약조한 지인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내와 급히 한국을 나오게 되어 며칠을 일산 처제의 신세를 진 터였습니다. 사려 깊고 조신하며 형제간 우애가 유난한 처제는 성심성의로 저희에게 거처를 제공 해 주었던 것입니다.

저녁 식사는 20여 년 전 LG의 석유개발 부서에서 동고동락한 직장 후배들과 마포의 중국요리집에서 했습니다. 저와는 나이 차가 20년이지만 그들과의 정은 끈끈이 남아 거의 매년 서울 나올 때마다 만나는 즐거움을 갖습니다. 그 중에는 조기 퇴직한 사람도 있고 아직 현직에서 꽤 높은 임원이 된 후배도 있습니다만 저에게는 모두 같은 옛 직장의 선후배로 흉허물 없습니다. 그 중엔 본인이 장가 가며 주례 서 달라던 후배도 있었는데 안 해본 주례가 겁나 꽁무니를 뺀 게 지금도 후회됩니다. 그들 모두는 제가 맡고 있던 해외 자원개발 부서에서 일 자체의 긍지와 열성을 가지고 있어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던 젊은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자녀가 결혼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의 체바퀴가 돌면서 믿음직스러웠던 옛 부하가 회사나 사회의 중추가 되는 과정에서 잊지 않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분을 나누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 됩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같이 출장 다니면서 동고동락한 추억은 무엇보다 진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솔하여 아꼈습니다. 조국과 같은 학번들이었는데 조국의 잔꾀와 사악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TV에서는 더불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처음으로' 조국 사태를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담화가 나오고 있고, 요사이 정치가들이 자기 PR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유투브를 황교안 당대표도 등록하며 첫 장면에 클라리넷을 불러 그리 한가하냐는 비아냥을 받은 모양입니다.

좌 편향 일색의 문재인 정부가 자초 한 결과이긴 하나 근래 유투브들의 반 정부 활동이 활발한 중에 일부 저질 유투브의 원색적인 대통령 비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 대통령을 XX끼로 호칭하며 운집한 수많은 태극기 부대를 쥐락펴락하는 어느 한기총 연맹 목사를 보며 그의 공산당 혐오는 이해하면서도 좀 더 젊잖은 종교인의 자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하튼 정부도 유투브는 말살하지 못하는 이유가 미국 회사 소유이기 때문인 것은 그런대로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2019년 11월 3일

국회위원들의 대정부 국정감사 장면입니다. 무식인지 태만인지 공부 않고 질의에 답변하는 정부 각료들이 있어 행정부처의 빈틈이 많이 보입니다. 정의용 안보실장을 날카롭게 몰아세우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를 행정부처장들 자리에 읹아 답변 준비하는 뒷좌석에 앉아있던 강기정 정무수석이 벌떡 일어나 나경원을 삿대질하며 '꾸짓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옹 고집통이기도 한 문재인의 수족치곤 지나친 오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의용 실장의 구멍뚫린 안보개념을 접하면서 위태롭기 짝없는 대한민국의 안보가 염려됩니다. 어제 미군 B1B 군용기가 NLL을 북으로 비행을 한것이나 유엔총회에서 10여일 전 김정은을 포함, 2400만 북한 인민을 몰살하여 북한 전체를 초토화 시킬 수도 있다 한 트럼프 발언, 12월안에 '새 계산법'을 들고 와 협상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 하겠노라고 위협하는 김정은, 그리고 DMZ를 청소하며 북에 길을 터주면서 겉은 멀쩡하나 썩을대로 썩은 조국을 그토록 감싸 국가를 분열의 표상으로 만든 정부와 여당, 조그만 한반도는 이들의 각축전으로 숨가쁜 나날의 연속입니다.

2019년 11월 5일

육이오 때 피란 가 살던 충남 아산시 배방면은 어린 시절을 보내던 깊은 산골 동네입니다. 오늘은 작심하고 오전에 두어 시간 운전 해 저심 때 도착했습니다. 부친이 금광을 운영하던 그 동네에는 어릴 때 그곳 금곡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지금도 살고 있어 몇 십 년을 잊지 못해 찾아 갑니다. 오직 거기 가 그들을 만나며, 지금은 집도 주위 환경도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여전한 산천 초목을 끼고 사는 그들과 호흡을 가까이 할 때만이 저의 마음속에 조용하고 아련한 추억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늘 반겨주는 동무들 넷과 점심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곳을 나와 30리 가량 떨어진 천안에는 초등학교 첫 해와 졸업하기 전 두 해를 다니던 천안 초등학교 동무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손을 털고 반겨주는 두 친구들과 저녁을 하고 서울에 돌아오니 밤 아홉 시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좌 편향 일색인 정부와 퇴색 일로의 경제에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독 충남은 75세 이상에 버스까지 무임승차를 펴는 도 행정에 감사보다는 무대포 선심 행정에 역정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배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에 더욱 불안 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농사일에 일생을 지낸 시골 친구는 사람들의 현 정부 비난이 너무 편파적이며 강대국들 틈바귀에 끼어 진퇴양난인 대한민국의 처지를 비난 일색으로 일관 할 일만은 아니라는 이외의 말도 했습니다.

미국 사는 사람이 한국에 와 운전한다며 친구들은 놀랍니다만 KTX와 전철, 택시를 갈아타며 시골 마을을 찾아 다니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어서 감히 핸들을 잡습니다. 한국의 자동차들은 '끼어들기'의 연속이며 우선 내 차 머리를 움직이는 대열에 팍 끼어 넣어야 오던 차가 할 수 없이 움찔 넣어주는 형식입니다. 손을 들어 양해를 구하면 간격을 만들어 주며, 들어서서 고맙단 신호를 하는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 운전자들은 너무 바쁘고 삭막합니다. 때로는 그런 인사치레가 오히려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도 있어 서울의 거리는 미국과 사뭇 다릅니다.

난데없이 5년 전 세월호 구조작업 때의 총체적 부실을 재조사 하겠다는 검찰의 발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배의 침몰 시 해양경찰 헬리콥터로 이송되었더면 살았을 조난 학생이 경찰간부의 불법적 헬리콥터 이용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6시간이나 걸리는 배편으로 이송되는 바람에 생명을 잃게 된 경위가 최근에 밝혀지고, 관계 기관들의 근무 태만으로 구조가 지연되어 수백의 희생자가 발생한 증거가 최근의 당시 자료 조사에서 발견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정부는 세월호 재조사를 위한 특별 수사단을 만들어 세월호 구조실패 및 구조과정과 수사축소 의혹등을 풀겠다는 취지임니다. 다시 엄습하는 세월호 사건의 악몽이자 또 세월호냐 하는 피로감이 오는것은 사실임니다만 어떠한 거짓도 역사앞에서는 영원하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단지 세월호 반추가 또다시 정치색 짙은 편법이 되지 않기만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기왕에 특별법을 만들바엔 터무니없이 균형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 보상비와 대우로 국민의 혈세가 닝비 된 것도 힘께 바로 잡아야 될 것입니다.

2019년 11월 7일

대한민국 거소증 연장을 위해 목동의 출입국 관리소를 찾았습니다. 미국으로 말하면 영주권 갱신인 셈입니다. 미국에서 살다 30여년 전 한국 기업에 나와 십여년을 근무 한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나온 미국 태생의 세 아이들을 영어로만 하는 연희동 외국인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드록시켜야 했습니다. 일년에 몇만불을 훌쩍 넘는 학비 혜택을 받으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조건이었는데 외국인이 한국에 거주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소증을 그때부터 가지기 시작 해 지금까지 2년마다 갱신 해 오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3년간 유효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하니 한국이 이제는 외국인의 유입을 푸는 게 아닌가 생각 됩니다. 젊은 세대들의 저출산, 결혼 회피 풍조로 이삼십년 후 부터는 한국의 인구가 줄 수도 있다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소증 갱신을 위한 수속이 전처럼 무작정 앉아 기다리는것이 아니고 이제는 며칠전에 인터넷으로 접견 시간을 예약하고 찾아오게 되어 있어 수속은 단 십여분에 끝났는데 한국 관공서의 효율적인 업무 처리가 돋보입니다. 미국 DMV에 가 일을 보려면 한나절 조히 걸려 질리는데 한국은 IT 강국 답게 모든 공공기관이 전산망으로 덥혀 각종 증명서 발부나 민원 처리가 쏜살 같습니다. 교통 카드 하나를 갖고 전국의 어느 전철이나 버스 또는 택시를 타도 요금 지불 수단이 되며 특히 전철과 버스는 30분 내에 갈아 타면 '환승'의 활인 요금이 적용됩니다. 동시 다발로 이루어지는 수백만 교통 인구 중 내가 한 역에서 전철로 타는 순간부터 여러 다른 선의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환승과 거리를 감안한 요금이 찰라적 계산을 통해 나의 교통카드에 부과되는 씨스템은 고연 예술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인들이 부러워 할 만큼 앞서가는 교통 씨스템의 수혜자들이기도 합니다.

저녁에 오클라호마에서 가까이 지내던 친구와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공덕동 아파트를 떠나 6호선 전철을 타고 삼각지 역까지 가 다시 4호선을 갈아 타고 서울의 부자들 사는 강남을 갔습니다. 전차를 갈아 타기 위해 지하도를 헤매다 낭패보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가까스로 환승하는 전철을 찾고는 엉뚱한 방향을 잡아 성급히 유턴하는 경우도 있어 미국 촌놈 다 되었네 하며 혼자 씁쓸 해 하기도 합니다. LA나 오렌지 카운티처럼 전철이 없는 곳에서 살다 서울에 와 전철을 타면 실수를 종종 합니다. 그러나 전철처럼 시간 맞추기는 더 좋은 게 없어 강남의 이수역에서 내려 친구를 만나니 약속시간 네시가 딱 되었습니다.

전철을 타면 노인석은 대체로 한 두 자리 비어 있는데, 때로는 그리 안늙어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어 그 앞에 서 있기가 좀 뭣 합니다. 노인이 젊은이가 앉아있는 앞에서 서 가면 역시 그림이 안 좋습니다. 자리를 양보 할 생각이 애시당초 없는 젊은이는 그래도 약간의 부담감은 있어 모르는 척 아이폰에 눈을 꼿거나 자는 척 하지만 노인은 주위사람들을 거북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일상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 나라인지라 자리 양보 않는 젊은이보다 그 앞에 서 있는 노인이 주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상 전철 입구 근처에서 목적지까지 개깁니다.

서울 전철에서 좌석에 앉게 되면 맞은편 사람들 얼굴 쳐다 볼 수도, 차창을 스치는 까만 지하철 벽을 즐길 수도 없으니 시선 둘 데가 마땅치 않게 됩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아이폰에 열중인지 모르겠습니다. 좌석버스처럼 전면이나 후면으로 의자배치가 되어 있는 프랑스 전철이 탐 납니다. 택시나 버스도 교통지옥은 피할 수 없으며 근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시위군중으로 막히는 서울은 그저 광활한 주차장이 되는데 전철은 땅 위 사안에 관심 없이 달려 주니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국 노인들에게는 공짜 입니다. 하지만 버스는 창가를 스치는 시내를 구경할 수 있어 좋습니다. 요금을 내고 탈 바에야 급하지 않으면 지하철보다 버스를 애용 합니다.

저녁 식사시간이 아직 일러 친구와 잠깐 당구장을 찾았습니다. 주 중애 근무시간이어서인지 젊은이들은 없고 대부분 나이들이 지긋합니다. 당구장 구석에는 흡연실이 따로 설치되어 있어 유리창 칸막이 골방안에서 자기 순서도 안 노치랴 담배도 피랴 바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십년 전에 당구장에 자주 드나들던 친구들은 그 동안 바빠 멀리 했던 당구 큣대를 어쩌다 한 번씩 잡아보고 즐기는 모양입니다. 150과 200점을 각각 놓고 쓰리 쿠션 게임 한 번 하는데 한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친구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30년 넘게 일 한 후 퇴직 해 지금은 서울서 살고 있는데 한국 생활을 매우 흡족 해 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에 공기 청정기를 설치 해 놓으니 미소먼지나 황사 문제는 없다 합니다.

2019년 11월 8일

마포 공덕동의 아파트를 삭월세 주기로 계약 했습니다. 그 동안 몇해를 비워 두었었으나 이제는 한국 나올 기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팔려고 하니 외국인의 경우 구입금액과 매가 차액에 부과되는 세금이 높아 복덕방에 내 놓았더니 세입자가 금새 나타났습니다.

저녁에 중고교 시절 부터의 절친과 우리 부부가 오래만에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저녁을 하기로 하고 30여년 전의 수산시장을 상상하며 여의도 쪽을 향했습니다. 국회 의사당 앞은 토요일 태극기 시위로 막혀 있어 이리저리 돌아 수산시장에 도착하니 새로 건축된 대형 수산시장의 위용이 나타나 그 옛날 바닥이 질퍽대던 수산시장의 추억은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광활한 바다 고기들과 각종 어패류 가게들은 여전히 온갖 활어들과 함께 호객하며 혼잡한데 가까스로 한 가게를 잡아 회 값을 치루었습니다. 이 활어집 젊은이는 우리를 한참 기다리게 하면서 그 위층에 있는 식당들을 희저으며 빈자리를 찾는 모양인데 그 많은 식당마다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그 중에는 아래층에서 뜬 회 쟁반을 손에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 진풍경을 빗고 있었습니다. 횟집 젊은이가 드디어 어느 한 식당의 빈자리를 찾아 주어 셋이 겨우 비집고 앉게 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앉아서 마냥 기다려도 회를 가져다 주지 않는거였습니다. 우리 앞서 회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위층 식당은 우리처럼 아래층의 활어 가게에서 보내오는 회가 도착하면 상추와 맡반찬 등 양념을 제공하고 물고기 뼈들로 매운탕을 끓여 주면서 따로 식사비를 받는 식당들인데 식당은 한마디로 돗대기 시장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없이 왁자지껄한 식당 좌석에 끼어 한참 기다린 후 횟집 젊은이가 활어와 함께 보여준 회 접시 견본과는 사뭇 다른 회 그릇을 덜렁 던져 놓고 가 버린 후, 이제는 식당의 종업원들이 너무 바빠 제때 써비스를 못해 또 몇 십분을 지난 후에야 상추와 양념등 구색을 갖추고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옆 손님과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끼어 앉아 식사를 하는데 넓은 식당이 온통 떠날듯한 북새통이어 서로 얘기를 나눌수도 없는 소음이었습니다. 늦으막히 나온 매운탕이 속을 후련하게 하는 중에 오늘은 죽마고우가 우리 부부를 위해 마련한 저녁인데다 그의 진심어린 마음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워낙 마음이 유한 친구는 시종 내색 않고 활달하게 식당 웨이터들에게 쫒아 가 밑반찬을 부탁하며 애를 쓰는데 써비스야 어쨌던 친구의 온정에 마음으로부터 울어나는 고마음을 느꼈습니다.

그 옛날, 해변가는 아니었지만 서울 복판에서 바다 냄새나는 활어를 구경하며 가끔 와 즐겼던 노량진 수산시장은 사라지고 현대식주차빌딩과 호화스런 시설과는 대조적으로 난잡하고 무질서한 대형 식당들과 비 효율적인 써비스로 오로지 손님들의 주머니만 노린듯한 현대판 노량진 수산시장을 뒤로 하며 우리는 '한 번 경험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바로 여의도를 통과 해 마포대교를 찾았는데 수산시장 앞 올림픽 강변도로가 어찌나 복잡하고 길 안내 표시가 허술한지 여러번 잘못 꺽으며 헤매다가 겨우 공덕동 오거리에 숙소에 도착 했습니다. 친구는 우리를 내려주고 가느라 빙빙 돈 셈인데 시종 활달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살리려 애쓰는 모습에서 친구 잘 둔 내가 복이 있다 싶었습니다.

2019년 11월 9일

오늘은 한 회장 부부와 우리, 이렇게 넷이서 대부도에 가기로 한 날 이어 아침 일찍 일산을 출발, 합류하기로 한 연희동 한회장 댁을 향했습니다.

회장은 한국의 톱 3위 내를 수 십 년 지키며 문구 및 생활용품을 제조 해 국내판매 및 해외에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25년 전 저희는 이 회사의 미주 지역 총판으로 인연이 맺어져 지금은 아내가 주로 하고 있습니다만 이 회사의 로고를 간판으로 내걸고 현재에도 오렌지 카운티에 매장을 몇 개 가지고 있는 터입니다. 인간미 넘치고 수더분한 회장 부부와 오랜 인연을 맺어오며 한국에 나올 때마다 대부도에 있는 한회장의 아침농장을 찾는데 원만하고 인덕 있어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 기쁩니다. 별장 잔디에 테이블을 놓고 앉으면 일 킬로 남짓한 거리에 해안과 넓은 바다가 한 폭 의 그림 같이 펼쳐져 한 시간 전 북적대던 서울의 번거로움을 말끔히 씻어 줍니다.

오는 길에 오이도 수산시장에 들려 산 게와 어패류를 큰 냄비에 찌는 동안 동장에 서너 그루 있는 큰 감나무에서 잘 익은 것 몇 개를 따 먹었습니다. 해마다 감을 따지 않고 놔두어 새들이 먹던지 아니면 그 감들이 연시가 되어 제풀에 떨어져 깨진다 합니다. 요즈음 농가에서는 감 과수원이 아니고는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그대로 놔둔다는데 시골 친구들 얘기로는 위험하게 올라가 따려다가 낙상해 병원비 들기보다 시장에 가 감 몇 개 사 먹는 게 훨씬 싸게 먹히는 가라 말 합니다. 달라진 한국의 시골 문화를 실감 했습니다. 어렸을 때 연시가 풀섶에 떨어져 깨져 있으면 엎드려 깨끗한 부분을 빨아 먹던 생각도 납니다.

오이도 수산시장에서는 아내가 미국까지 가져오겠다고 젓갈 류를 꽤 많이 샀습니다. 이름도 요상한 열 댓가지 젓갈들인데 그중엔 제가 좋아하는 낙지젓과명란젓도 있습니다. 하나같이 맛 갈 나는 밥도둑들인데 이렇게 아내가 사 가지고 가면 미국 가 석달 가까이 밥상에 오릅니다.

싱싱한 꽃게와 갖가지 조개들을 삶아내니 짭짜름한 천연 양념에 살들이 푸짐하고 감칠맛 있습니다. 회장은 ‘아침 농장’ 포도밭에서 나오는 포도를 몇 백 되는 모닝글로리 전 직원에게 매 해 한 상자씩 선물로 나누어 주면서 회장 부부의 온정과 배려로 모닝의 독특한 한식구 기업 문화를 이어갑니다.

2019년 11월 10일

분당에 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체력 단련 전문 테라피스트를 방문했습니다. 나이 30 중반인 미스터 황은 처의 친구 소개로 몇 년 전에 알게 된 건실한 청년인데 분당에서 오피스텔에 치료 방을 꾸미고 균형이 틀어져 여기저기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 쳬형을 바로잡아주고 각종 스트레칭과 근육 강화 운동을 병행하며 통증의 근본 원인을 제거 사람들이 효과를 보아 입 소문을 타고 끊임없이 찾아 오는 손님으로 늘 바쁩니다. 치료 해 주는데 정성을 쏟습니다. 환자 몸의 골격 하나하나와 응어리 진 근육을 살펴본 후 삐뚤어진 뼈 마디들을 손으로 또는 섬세한 목제 기구를 가지고 타격으로 교정하며 허해진 근육 보강이 통증 해소와 건강 유지의 유일한 해법임을 강조합니다. 저의 척추 협착과 그에 따른 오른 발 전체의 통증을 원인 분석 하고 일차 치료하는데 세시간 가량이나 할애하여 주었습니다. 미국을 떠날 때 그로부터 치료를 받은 사람이 전해 달라는 조그만 선물을 전달할 목적으로 방문 한 것인데 의외로 과분하게 마음 써주어 고마웠습니다.

지지난 해 그가 잠깐 도미 해 머물면서 그로부터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좋은 효과를 보아 미국에 들어 오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반깁니다. 그러나 초기에 수술로 잡으라는 USC 척추 수술 의와 균형이 깨진 체형은 수술 전에 체형을 바로 잡는 게 우선 순위라고 말하는 미스터 황 사이에서 혼동을 겪게 됩니다.

그와 헤어져 역시 분당에 사는 처의 친구 부부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처의 친구는 손수 담은 김장김치를 몇 포기 주는데 아내는 이것을 미국으로 가져가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한국의 김치는 배추가 단단해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있어 미국 배추와는 많이 다르답니다. 채소나 과일들이 한국 것들은 맛이 진하고 단맛이 나며 씹히는 촉감이 다릅니다.

일산의 한 샤부샤부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 받았는데 한국의 식당들은 그 좋은 시설에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해 경기 침체가 실감됩니다. 친구 남편은 운영하던 한국 굴지의 토건회사를 IMF로 접었으나 워낙 심성이 좋고 원만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부담을 안 줍니다. 최근 파킨슨 증세로 고생합니다만 골프 칠 때만은 전혀 흔들림 없고 샷도 장타에다 파 아니면 보기 게임 수준이어 골프가 하나의 치유 운동이 될 듯 합니다. LA 북부 벤추라 지역에서 큰 일식 식당을 경영하다 20년 가까운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나와 사는데 재미있다 합니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황사에다 시끄러운 남북 불안에 마음을 쓰는듯 하기는 했습니다.

오늘은 실제로 77되는 귀빠진 날입니다만 그저 부부만 알고 지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미국 오렌지카운티 집에 오면 생일 파티 하자 해 놓은 게 있는데다 호적상으로는 열흘 뒤로 되어 있어 아예 그때 가 케익 먹지 생각했습니다.

일산으로 드라이브 해 돌아 오는데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이삿짐 나르기로 계획된 트럭 회사에서는 내일 계획대로 이삿짐을 나르겠다 하니 그저 비가 잦아들기만 바랄 뿐입니다. 늦었지만 집에 도착 하자마자 마무리 짐 정리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2019년 11월 11일

공덕동 아파트형 오피스텔의 가구들을 일산 처제에로 옮겼습니다. 이삿짐 회사에서는 조그만 트럭 하나로 될 줄 알았던 가구들이 제법 많아 두 대에 나누어 실었습니다. 깨끗하게 비운 아파트는 이달 말쯤 젊은 독신 직장 여성이 월세로 들어 올 예정입니다.

일산에 가 다시 이삿짐을 풀고 대강 정리한 다음 서둘러 혼자 차를 몰아 다시 공덕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파킹하고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며 을지로 입구의 한일관을 찾았습니다. 숨가쁜 행선이었지만 일주 전에 약속해놓은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여섯 시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 중 어떤 친구는 거의 20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지만 고등학교 동창과의 만남은 얘기가 길어질수록 재미가 소록소록 납니다. 나이들을 먹다 보니 몸 아픈 얘기가 많은데 얘기 하다 보면 나만 탈이 있는 게 아닌 것이 금새 밝혀집니다. 정치 얘기 안하니 마음들이 오히려 홀가분 합니다. 오늘 모임은 저의 오랜 벗이자 마음을 주며 지내는 죽마고우 영이 주선한 모임이었습니다.

2019년 11월 12일

공덕동에 가 에어컨이나 히터, 냉장고 세탁기 등을 다시 점검하고 일산에 나머지 자디잔 짐들을 옮겼습니다. 오전 내내 집들을 정리하고 나니 공덕동 아파트와 비슷한 방 하나가 처제네 집안에 생겼습니다. 방을 내 준 처제가 고마웠습니다. 처제도 조만간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 할 계획이라 저희 방도 언제 없어져야 할 지 모르지만 아내는 어쨋던 한국 나오면 자기 동생과 또 단짝 될 것이 마음 놓이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공덕동 세 든 사람이 계약 기간 끝나기 전에 처제가 이사가게 되면 저의 어릴 적 고향인 충남 아산시같은 곳에 조그만 방을 얻어 가구를 옮겨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 가서 고민 할 일이고 지금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아내와 처제는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하루 종일 서로 이야기 해도 동이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내가 며칠 전에 지인들과 해 놓은 늦 점심 약속에 저도 합류하기로 하고 저희 부부가 처제와 함께 일산의 원마운트(ONEMOUNT) 몰 내 바르미라는 스시 뷔페 식당을 찼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늘 대모님이라 부르는 분과 모닝글로리 회장 사모와 만나 다섯의 오붓한 자리가 마련 되었습니다. 두분 다 인품 있고 정이 깊어 만나면 즐겁습니다. 특히 대모는 나름의 도가 터 사람 관찰하는 예지가 유별나고 길흉도 판가름 해 준다는데 전혀 그런 내색을 안 해 안심이 됩니다.

한국 몰들이나 몰 내의 잘 꾸민 식당들은 정말 우아합니다. 미국의 몰 보다 월등 나을지도 모를 원마운트 몰 시설들을 감탄하며 뷔페식당에 들어서니 우아한 인테리어에 두당 20불짜리 뷔페가 맞는가 싶었습니다. 북의 장사포를 불과 40리 거리에 두고 있는 일산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며 이런 나라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난센스는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풍요를 즐기는 일산 사람들이 부럽게도 보일 정도였습니다. 강남을 가 보면 이런 시설에 몇 곱 할 터이니 제가 미국 촌놈인 것은 확실한 것 같으나 TV에서 연일 나오는 우울한 정치 뉴스들이나 텅텅 빈 거리의 식당들, 나라살림이 가까운 장래에 거덜날것을 뻔히 알면서도 퍼주기 식의 선심 복지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노라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사람들은 지난 수 천 년의 역사가 말 해주듯 결코 꺼꾸러지지 않는 오뚝이의 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합집산을 하다가도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온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괴력을 나타내 위기를 극복 해 온 민족입니다. 남이 북에 넘어가지도, 한 반도가 미국이나 중국에 말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정녕 좌 편향으로 나라가 공산화 되려 하면 국민은 사일구와 같은 촛불로 가슴에 불을 지피며 뒤집을 것이고 김정은이 핵질을 해대면 딴 나라 핵을 빌려서라도 대항 할 것입니다. 일본이 은근히 두려워하듯, 북의 핵과 남의 경제가 어우러져 강국들이 무시 못하는 한반도가 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일 수도 있습니다.

저녁에 일산서 유명한 오리 고기 집에 가 아내와 처제 셋이서 오붓하게 늦깍이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오리를 통째로 진흙으로 싸 다섯 시간 불에 달구어 굽는 요리로 예약이 필수인 이 식당은 소문 난 곳인데 역시 밑반찬들도 일미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각 생일 파티이긴 했으나 형부 생일이라고 처제가 전부터 벼르다 오늘서야 기회가 되어 한 턱 낸 겁니다. 내심 고마웠습니다만 그 큰 식당에 손님이라고는 달랑 우리 뿐이라서 마치 우리가 전세 낸듯 했습니다. 생일 파티는 한 셈이 되었습니다.

2019년 11월 13일

마포의 모닝글로리 문구회사 본사 디자이너 합동회의장에 아내가 초대되어 일산에서 아내를 오후 세시쯤 데려다 주고 혼자 여기저기 잔일들을 보고 저녁에는 오랜 친구를 불쑥 만나게 되었는데 복잡한 시내에서 차를 몰다 길을 놓쳐 U턴을 서너번 하고 나니 기진맥진이 되어 겨우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산 처제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 깊었습니다. 아내는 모닝 본사에서 디자이너 이십여 명을 상대로 주로 카드 제작과 판매에 대해 조언을 해 주면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는 중에 저는 황망하고 길을 헤매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여섯 시경에 회의가 끝 난 아내를 픽업 해 일산에 돌아 왔더면 훨씬 좋았었다는 후회막급의 하루였습니다. 버스노선과 일반 차량 노선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서대문구 지역을 운전하며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서울 한달 체류는 장인장모어른 묘 화장 행사를 시작으로 아파트 이사와 함께 거소증 연장 등 몇 가지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돌아가게 되어 마음이 뿌듯합니다.

몇달 전부터 우리가 미국 들어갈 때 처제도 같이 들어가 오렌지 카운티와 LA에 살고 있는 두 언니와 오빠 그리고 남동생을 만나보며 두 언니네서 두어 달 지내기로 계획하고 있어 내일 우리와 같이 비행기를 탈 예정입니다.

2019년 11월 14일

갑자기 서울 날씨가 추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가 한달여 지내는 동안 가을 날씨여서 다행이었습니다. 서울은 이제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닥치는 모양입니다.

오후 7시 50분에 인천 공항을 출발하는 KE 11 로 셋이 미국 LA 공항에 도착하니 미국은 여전히 14일인데 시계는 오후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LAX 공항 출구에는 무슨 공사중인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마중나온 차를 만나는게 무척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부에나 팍 집에 도착하고 어바인에 사는 언니네가 처제를 픽업 해 가고 둘이 오이도에서 사 바리바리 싸들고 온 젓갈들과 서울 갈 때 얼려 놓았던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나니 온 몸이 나른 합니다.

Buena Park 집의 TV에서는 조국의 첫 검찰소환에 관한 속보로 8시간 비공개 출석을 해 조사를 받았으나 조국은 '법정에서 모든것을 가려 내겠다' 하며 진술거부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공개소환 폐지법의 첫 수혜자가 조국이라니 다시금 조국 답습니다. 한달 전 서울 도착 했을 때 TV는 온통 조국으로 도배되다가 점점 사라지길래 이제는 끝나는가 했는데 미국 와 TV를 켜니 또 조국입니다. 그가 법무부 장관자리에서 끌려 내려올 때 누군가가 이제부터가 조국의 시작이라고 한 말이 생각 납니다.

끝까지 진부한 저의 서울 체류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병길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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