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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opic: 동문의 소설 독후감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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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동문의 소설 독후감
on: March 24, 202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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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61 외교학과)의 장편소설, '감나무집 요십이'를 소개합니다.

충청남도 서산인근 농촌마을에서의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회상하며 집필한 소설인데
그 옛날 충청도 농민의 구수한 농촌 모습과 일상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 읽는 재미를
동문들과 나누고 싶어 저의 독후감을 옮겨 보았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주영의 장편소설 '감나무집 요십이’를 읽고

소설은 저자의 어린 시절, 그가 다섯 살, 세상 물정 모르지만 어른 말씀 잘 듣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일으키며, 맑은 세상을 의심 않고 맑게만 보면서 초등학교를 졸업 때까지, 1946년부터 1954년까지의 이야기이고, ‘요십이’는 저자가 태어나 삼 일째 되는 날 대를 이어 내려온 천주교 집안의 할아버지가 지어 준 세례명 ‘요셉’이 부르기 쉽게 요십이로 굳어진 저자의 아명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씀으로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 현세에서 요십이 세대들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시절’이지만 ‘옛일을 회상하는 즐거움’과 후대에게 ‘상상하기 힘든 동화’같은 얘기’을 해 주며 현재의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증언하고, 지금이 ‘살기 나쁜 세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정말 좋은 세상’임을 깨닫도록 해 주고 싶다고 피력함으로 이 장편소설의 서두를 푼다.(18쪽) 그러나 읽는 내내 나는 저자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 이야기가 아니고 사랑과 아낌,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흐르는 그 시절의 뼈대 있는 한 농가의 삶을 느끼면서 후회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읽었다는 느낌이다.

요십이가 맺고 있는 모든 인과관계와 그가 자란 농촌 마을, 그를 만들어가는 식구들, 그리고 그가 이해 할 수 없는 시대의 격변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이 찬 요십이의 안목으로 풀어가며 어린 시절의 자신과 주변을 회상하며 이야기 하면서도 그가 요십이를 그릴 때는 한치의 오차 없이 요십이의 눈높이를 벗어나지 않았음에 탄복한다. 그의 예리한 필봉이 그토록 적나나하게 충청도 벽촌 옛 삶의 모습을 복원하는 중에도 요십이를 여전히 다섯 살의 여느 집 아이에서, 열두 살의 초등학교 졸업반 학생이 될 때까지 가감 없고 소박하게 그릴 수 있었던 저자의 일관된 이야기 전개에 매료된다. 이는 또한 소설 내내 흠뻑 취해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요십이는 나와 나이도 같고, 어려서 충청도 산골의 벽촌에서 자란 배경이 있었으며 농촌에서 살았으되 농사꾼 일색으로 산 게 아니고 늘 논과 밭 외곽으로 돌며 탈 농어촌의 꿈을 안고 사신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과, 무엇보다도 같은 점은 초등학교 이 삼 사 학년의 철모르는 어린 시절 살던 시골동네에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들이닥친 육이오를 겪었다는 사실, 그리고 더 붙이자면 요십이나 나나 초등학교를 졸업 하고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소위 객지생활을 하며 시골 티를 벗어나는 도전을 시작 했다는 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천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 했지만 육이오를 맞아 아버지가 금광을 하던 아산군 배방면 중리마을(당시는 검배)로 가족이 피난 가 살면서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몇 년 다녔고, 요십이 고향은 충청남도 당진의 신평면 한정리(일명 원머리) 라는 것과 요십이네는 천주를 믿은 지 7대째 집안으로(433쪽), 매일 저녁식사 후 언제나 모든 식구들이 할아버지 방에 모여 만과기도(저녁기도)를 하고, 때로는 주모경(주기도문)을 외우는 다섯 살짜리 요십이에게 할아버지가 사랑의 눈길을 주는(206쪽) 독실한 천주교 가정이었던 것 등이다.

이 소설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소설 곳곳에 펼쳐지는 우리 농촌 재래의 식 재료 만드는 절차가 저자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직접 만드는 모습을 담은 것이며, 감히 일반 요리책이 설파 할 수 없는 아주 상세한 경험적 요령들이 행간을 메워주어 소중한 읽을거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농촌에까지 변화를 일으키는 시국의 배경을 간간이 설명하는 배려를 접하면서 이 소설을 단순 흥미 본위가 아니고 후손을 위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저자의 깊은 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섬세한 충청도 토박이 사투리에 관한 통찰력은 읽는 이의 심금을 사로잡는다. 옛날에는 온양과 공주 사이가 맹경산으로 막혀있어 벽촌이었던 중리 검배마을에 가면 초등학교 시절에 살던 그 터에 집 짓고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무들이 몇 있어 지금도 충청도 사투리들을 듣는 즐거움을 맛보는데 요십이네 동네의 그보다 더 진한 충청도 토박이 사투리를 세심하게 표기한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작가의 섬세한 글귀는 산뜻하고 짜릿한 경쾌함을 준다. 군살이 없고 요란한 수사로 기교를 부림이 없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며 행간을 채우도록 유도한다. 투박한 농촌의, 그러나 몸에 밴 옳은 삶의 규율과 올곧은 인성의 내림 가훈 속에서 소박하게 자란 요십이의 어린 마음 주위를 저자는 요십이네 울타리 넘어 사탕수수만큼 깊고 달콤한 글귀로 감나무집을 그려 나간다.

소설은 요십이가 다섯 살 되었을 즈음 원래의 작은 아래채를 헐고 기억 자로 된 훨씬 큰 집을 증축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 되는데 요새 같으면 건축 기사와 장비들이 들어서고 전기 톱과 설계도가 판을 칠 것을 호롱불과 초가집이 대세인 그 시절 외지에서 온 건축가(대목)가 보조 일꾼 몇을 데리고 와 대목 머릿속에만 있는 설계도에 따라 늦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석 달 남짓에 걸쳐 짓는 과정이 여섯 살 요십이의 쫑긋거리는 호기심과 함께 아주 자세히, 그러나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그때 그들의 연장은 자귀, 먹줄통, 대패, 끌, 정, 이엉, 다림추, 어레미, 발작두 등 낯선 이름의 연장들이 허다한데 이 모든 것이 차례로 등장하며 지어지는 요십이네 사랑채 건축 장면은 대목의 수완과 요십이의 호기심, 그리고 저자의 섬세하고 열성을 다 한 문장에 녹아 들면서 활동사진을 보듯 실체화 한다.

대목이 일꾼들과 집을 짓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그들의 식사 때를 맞추어주는 요십이 어머니, 그리고 잔심부름 하는 열여섯 살 형과 세 누이들이 그들의 일상과 함께 같이 돌아가는 하나의 협업이었으며, 집터를 다지고 대들보 얹으며 상량식을 하기까지 그것은 지루하지 않은 요십이네의 삶이자 농민들의 삶 자체이기도 했다.

상량식을 하며 돼지머리를 놓고 칠성신에 고사를 지내는 절차에서 저자는 나름의 해박한 관찰로 그 유래를 재미있게 설명하는데, 요십이네는 목수 일꾼들의 수고에도 답하고 농촌의 민속을 부정하지 않는 유연성을 보이면서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 가정의 자세를 지키려는 부모의 안간힘이 애처롭다.(51쪽),

ㅡ 광우 아버지, 여기 좀 봐유.
참다못해 어머니는 일꾼들 틈에 끼어, 기둥들이 하나 둘 세워지는 과정에 취해 있던 아버지에게 가서 즉시 뒤돌아서 부엌으로 가 버렸다. 낮에는
‘소 닭 보듯’ 하는 부부 사이인 부부가 부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ㅡ 상량 헐 때 돼지 대가리는 놓는다고 하던디, 어찌해야 헌대유?
ㅡ 돼지 대가리는 할 수 없고, 닭이나 몇마리 잡지 뭐.
ㅡ 시루떡도 안 해유?
ㅡ 그건 해도 되어.

천주교 가정에서 미신 행위는 싫고, ‘제사 밥’에 꽂는 일꾼들 기대도 모르는 바 아닌 요십이네는 융통성과 과묵한 성격, 그리고 사업차 집을 비우기 일쑤인 아버지를 대신 해 집안일을 처리해야 하는 어머니의 강단을 묘사한다. 저자는 이렇게 간결한 대화를 써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는 묘수를 소설의 곳곳에서 보여주는 중 투박한 사투리는 그 무게를 더 해준다.

첫 눈이 내리는 겨울쯤, 요십이네 새집 마무리 작업은 구들을 놓고 장판을 바르는 장면에서 마치 매뉴얼 보듯, 그러나 정을 담아 전개된다. 세심하고 차분한 과정을 읽노라면 시골서 자라며 본적이 있는 나에게는 옛 생각을 떠 올리며 기억의 줄거리를 되 찾은 듯 신이 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가 장판 작업의 말미에 박아 놓은 글귀,(65쪽)

그렇게 정성드려 만들어진 아래채 새집의 한지 장판은 과연 먼 훗날까지 우리집안의 슬픈 일, 기쁜 일, 황당한 일 등 모든 일들을 매끈매끈한 바닥에
담았다.

는 짧은 표현으로 긴 여운을 함축한 보석 같은 구절이며 작가의 쉽고 진솔한 이런 표현은 소설 곳곳에서 빛을 내며 읽는 이를 즐겁게 해 준다.

새 집을 지어 방이 세 개나 늘어난 후 좀 떨어져 사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요십이네와 합류 하게 되는데, 건축하느라 는 입으로 축난 장독의 간장과 고추장을 충당키 위해 전통방식으로 요십이 어머니와 할머니가 누나들과 형을 동원하며 메주를 쑤는 과정이 자상하게 펼쳐지는데 이는 훗날 ‘살아있는’ 우리의 전통 양념 조리 책으로도 요긴하게 주목 받을 만 하다 하겠다.(75쪽)

싸리나무 소쿠리를 들고 할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픽픽 소리를 내며 끓고 있는 솥뚜껑을 밀치니, 꾹 참았던 김발이 힘차게 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잘 익은 누런 콩의 모습이 들어났다.......

요십이네가 모두 한 몸이 되어 일을 벌이며 하는 간장과 된장 제조과정을 담백하게 저술한 저자의 동기가 흥미거리 대중 소설을 쓰자는 게 아니었고 집안 후손에게 선대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며 그들이 원하면 스스로 만들어 볼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선대들의 방식에 무한한 가치와 사랑, 그리고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요십이 후손뿐만 아니고 가치를 찾으며 즐겁게 읽을 독자가 많이 생긴다는 것은 모두에게 큰 보너스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소재건 그 유래와 고증적 역사를 세심하게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 않은 저자의 넓은 지식과 끈기가 이 책의 진가를 더해준다. 일 테면 요십이네가 열심히 가꾸고 실을 뽑던 목화의 전래와 목화재배 전에 한국 농가에서 옷을 지어 입기 위한 삼베농사 내력을 간추림으로(103쪽) 당시의 한국 농촌의 일면을 할애 해 요십이네 후대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후손들에게 옛 것의 귀함을 말하는 저자의 열성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고로 ‘감나무집 요십이’를 재미있는 소설임과 더불어 귀한 기록으로도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십이네의 누룩 만드는 과정을 적어 놓은 다음 구절(127쪽) 중,

우선 통밀을 맷돌로 갈아, 물을 뿌려주며 수분을 맞춰 주었다. 이 때 적절한 수분은 한 웅큼 꽉 쥐고서 던지면 안 깨지거나 한두 조각으로 나누어질
정도면 되는 것이다

과 같은 설명은 아마도 세상 그 어느 요리책에도 없을 지침일 것이며 오직 요십이 할머니가 역시 당신의 선조로부터 배워 요십이 엄마에게 내림 한 값진 유산인 것이다.

어느 해 설날 요십이네가 떡국을 먹는데, 늘 새로운 일을 추구하기에 열심인 요십이 아버지가 인천에 갔을 때 구해 온 후추가루에 관한 얘기가 흥미롭다. 당시 충청도 당진의 원머리 마을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었던 모양으로, 곧 시집갈 준비 중이던 요십이 큰누이 가희가 아버지에게(148쪽)

ㅡ 아버지, 그 떡국에 넣은 후추 말인디유, 오디서 온 거래유?
ㅡ 이게 말이다, 나도 잘 모르는데, 인천에 갔을 때 시장에서 팔더라구. 가무잡잡한 게 쬐그만 열매야. 그래 물으니 후추라고 부르고,

라고 설명하며 후추는 고기 먹는 서양사람들 식탁의 중요 양념이라는 아버지 설명으로 대화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후추는 일년에 잘 해야 고기 먹을 기회가 한 두 번 뿐이었던 게 당시 농촌의 실상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다만 아버지는 딸의 관심사가 부엌살림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어서 매우 기뻤다. 그래서 이 순간을 가슴에 담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고
....

로 후추얘기를 끝냈다. '순간을 가슴에 담는’ 요십이 부모의 사랑은 맵고 진한 사랑임에 틀림없다.

저자의 하늘을 우러르는 농민의 애환을 그리는 장면은 눈물겹기까지 하다(188쪽)

보이지 않던 푸른 햇빛은 대지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비는 대지의 어머니이다. ---- 보이지 않던 푸른 새싹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이 새 생
명을 심은 것처럼. 그러나 그 생명도 물이 없으면 말라 버린다. 어머니의 품속이 아니면 아이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봄비는 어머니이다.
그래서 농민은 때가 되면 밥을 주는 어머니 기다리듯 봄비를 기다린다.

밭에 씨 뿌리는 봄철의 하늘을 향한 천수답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이렇게 ‘보통’말로 써 내리는 작가의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은 그 행간이 메우어질 읽는 이의 상상력을 부르는 힘이 있다.

요십이가 6살, 해방 후 3년째 되는 해,

할아버지와 요십이 사이에는 늘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마치 푸른 보리밭골에 스치는 봄바람처럼, 들이마시기 참 좋은 그런 봄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겨울에는 두루마기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 다니셨다고 하였다.(210쪽)

이보다 더한 가까움은 없을법한 저자의 표현기법이 읽는 이를 신명 나게 한다. 이토록 요십이를 아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요십이네 어른들은 장례차례 준비에 며칠을 눈 코 뜰새 없이 바빠진다. 상여가 나가는 날, 요령잡이의 선소리에 따라 상여꾼들이 복창을 시작한다(216쪽)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어ㅡ허이ㅡ어하
이 세상을 하직 하고 어ㅡ허이ㅡ어하
불쌍 허고 가련 허다 어ㅡ허이ㅡ어하
가련 허고 애통 허다 어ㅡ허이ㅡ어하
북방 산천 가는 길은 어ㅡ허이ㅡ어하
험허 고도 멀고 긴데 어ㅡ허이ㅡ어하
---
잘사 시오 잘사 시오 어ㅡ허이ㅡ어하
요령소리와 상여꾼의 소리가 할아버지와 요십이를 영원히 갈라 놓았다.
그래도 요십이는 울지 않고, 할아버지를 기억 속에 품었다

첫 두어 구절만 어릴 때 고향에서 때때로 들어 기억하던 상여꾼 소리 내용을 이렇게 끝까지 읽어 보는 것도 일종의 보너스로 여겨진다. 문헌을 헤매며 내가 상여꾼 소리를 뒤져 볼 기회는 없는 터에 소설 내내 저자가 공들인 이런 보너스를 접할 때마다 감사와 경이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주저 않고 이 책을 ‘보물’이라 칭한다.

요십이네 농사일 거들다 아예 집안 식구처럼 같이 기거하고 있는 한 동네 김서방은 요십이네 식구들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준다(248쪽).

ㅡ 오늘 특별히 허야 될 일 없남유?
ㅡ 글쎄, 나도 모르겠네. 김서방이 잘 알아서 해 주었지 않은가?
ㅡ 그럼 새끼나 꼬것슈.
이게 다였다. 아버지는 진성 농사꾼이 아니어서 농사일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김서방이 아예 집안에 들어 와 살게 되었으나 그에게 모든 것을 맡
기고 싶은 모양새로 보였고, 사실도 그러 하였다. 또 두 남자의 관계도 양반가에서의 주인 마님과 종의 관계가 전혀 아닌 농사일에 관한 한 명목상의
주인과 바지주인(?) 같은 관계여서 상하 관계가 아닌 모습이었다.
(중략)
그날도 매우 추운 겨울날이었다. 대한 추위가 그 이름값을 하는 모양인지 요섭이는 귀를 비비면서 밥상을 들고 가는 김서방을 졸졸 따라 사랑방에 갔
었다.
(중략)
‘고봉밥’이었다. 밥 사발을 꺼꾸로 엎어 놓은 것만큼이나 밥을 고봉으로 담아놓은 밥사발이었다. 김서방 맞은편 요십이 앞에는 밥사발 밑으로 밥이
가라 앉어 있었고, 국은 아예 없었다. 그래도 요십이는 할아버지 같은 김서방과 마주앉아, 밥 먹는 게 너무나 좋아, 밥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김서방
밥먹는 모습을 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249쪽)

그런데 사단이 난다. 요십이 눈에 김서방의 손톱 밑에 가득 낀 새까만 때가 들어오는가 했더니 김서방의 코에 누런 콧물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걸 보고 실망한 나머지 어머니에게 고자질 하게 된다.

ㅡ 어무니!
ㅡ 왜?
ㅡ 김서방 말유, 손톱 밑 때가 굉장해유.
ㅡ 그려? 그럼 니가 손을 씻고 진지 드시라고 허지 그랬어.
ㅡ 그리구 말유, 누런 콧물이 들락거리는데 꼭 밥에 떨어질 뻔 했슈.
ㅡ 어, 그려? 그럼 니가 코 풀고 드시라고 하지 그랬어.
고자질 한 보람이 전혀 없었다.

요십이는 김서방한테 어머니가 이야기 해 달란 의도였으나 그실 어머니는 정월명절을 코 앞에 두고 준비에 몹시 바쁠 때였다. ‘아이들에게 줄 설빔은 고사하고 올해에는 김서방에게 줄 설빔이 우선 급한 과제였던 것이다.’ ‘옷은 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매야 하는 일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재미도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하실 때에 어머니는 혼자 낮은 음성으로 노래 부르길 좋아했다’(250쪽)

산아 산아 높은 산아, 네 아무리 높다 한들
우리 부모 날 나으신, 넢은 은덕 미찰소냐
높고 높은 부모 은덕, 어이하면 갚사오리
------
가사 중에 '미찰소냐’는‘미칠소냐’를 잘못 부른 단어이지만 어머니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그렇게 불렀다.

어려운 아버지와 밥 먹기 보다는 사랑방에 가 김 서방과의 식사가 즐거운 요십이었지만 손톱 때는 싫었고, 그렇다고 어른을 나무랄 무례한 짓은 허용 않는 집안의 훈육이 여섯 살배기 몸에도 배어 있었으며, 달리 용한 아이디어도 없고 해서 엄마에게 일러바쳤으나 무위로 끝나고 만다.

뼈대 있는 농가의 한 단면을 보이는 장면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하거니와, 바느질 하며 혼자 노래로, 이름하여 제목이 ‘부모은덕’ 일성싶은 노래를 어머니가 부르던 것도 이토록 기억하여 그 틀린 가사까지 적어 놓았으니 저자의 통찰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저자가 다 큰 후 누이들과 합세 해 그 때 어머니가 실 땀 바느질의 무료함을 달래 흥얼거리신 이 가사를 되짚어 본 노력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몇 십 년 전의 소소한 틀린 가사까지 기록한 이 소설은 과연 진솔 담백한 회억 이상이다!.

요십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어 마을에서 십리 떨어진 읍내 초등학교에 입학 통지서를 받은 아버지 명으로 동네 이발사에게 머리를 깎는다.(264쪽)

요십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이 담배벌레 잡는 것이었다면 싫어하다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머리 깎는 일이었다.
(중략)
무서워하는 이유는 이발 아저씨가 사용하는 바리깡의 이빨이 몇 개 빠져 있어서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었다. 석이 꼭 나타나서,
앞에 서서 구경하고 있기 때문에 소리 내 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말복 때에 동네에 바로 그 이발사가 나타났었다. 아버
지가 요십이를 불렀다.
ㅡ 요십아! 너 이발사 아저씨가 오셨는데 이발 해라!
ㅡ 아이 싫어유. 담에 깎을께유.
ㅡ 너 오늘 꼭 이발해야 되어.
ㅡ ...
ㅡ 너 오늘 이발 안 하면 학교 못 가.
ㅡ 핵교유?
ㅡ 그래, 너 이주 후에 학교 가야 되어. 취학 통지서 나왔어.
ㅡ 그게 뭔데유?
ㅡ 너 학교에 입학 하라는 통지서야. 그런데 긴 머리를 하고는 입학 할 수 없는거야. 알겠냐?
ㅡ 알것씨유. 깎을께유.
결국 눈물을 참으면서, 어금니를 꽉 물고 그 무서운 일을 치러내었다.

이렇게 해서 ‘요십이는 단기 4282년 9월 1일 00공립국민학교 제 1학년 에 입학토록 하심을 자이 통지함’ 이라는 통지문을 받아 든 아버지와 함께 십 리 떨어진 읍내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게 된다. 생전 처음 10리나 되는 읍내를 가 장터를 가로지르며 처음 보는 진귀한 시장의 물건들에 넋을 잃다 미아가 되어 울기도 하고, 가까스로 찾은 학교 건물의 유리창문과 기와지붕을 난생 처음 보고 놀라기도 한다. 이런 요십이를 저자는 어렸을 때의 눈높이로 담담하고 자연스러우며 치우침 없는 객관성으로 농촌의 한 아이를 따라가며 그의 부모, 그의 가족들과 모든 인연들을 엮어간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요십이가 바로 나의 어린 시절이고 요십이 가족이 나의 가족이 되는듯한 환상에 빠지도록 나를 책 속에 빠지게 한다.

할아버지 3년 탈상하는 날 요십이네는 큰 잔치를 위해 돼지를 잡게 되는데 동네아이들이 탐내는 것은 돼지오줌 보로 축구공을 만들어 차고 노는 거였다. 그러나 공은 이내 바람이 빠져버린다. 김서방이 한 몫 한다.(281쪽)

ㅡ 이리 온.
ㅡ 왜유?
ㅡ 그거 이리 줘봐. 축구공을 잘 맹그러 줄티니께.
ㅡ 오치기 맹그러유?
ㅡ 다 방법이 있응께. 낼 아침까지 지둘러.
과연 다음날 아침 요십이가 학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김서방은 자기가 만든 오줌보 축구공을 보여 주었다. 돼지 오줌보를 삼베 헝겊으로
싸고, 삼베 끈으로 이리저리 묶어 만든 축구공이었다. 요십이는 그날 공부시간 내내 그 축구공을 가지고 밭에서 축구놀이를 할 꿈을 꾸었다.

필요가 발명의 왕이라 하지 않던가? 때로는 돼지오줌보가 훌륭한 축구공이 되기도 한다. 나는 오줌보를 차던 기억은 없지만 껌이 귀하던 시절 학교 파하고 오리거리의 집에 가는 길에 밀밭에서 영근 밀 이삭 두어 개 훑어 손바닥에 비벼 가시 털을 털어 낸 후 입에 가득 넣고 한참 씹은 기억은 있다. 씹기에 열중하다 보면 껍질은 벗겨 나가고 하얀 밀떡이 쫀득 해져 꼭 껌 씹는 맛이 나곤 하였다. 게다가 좋아하는 색깔의 크레용 조각까지 함께 씹으면 결국은 색깔 나는 껌이 되었다. 도회지 아이들이 제대로 된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것 못지 않게 시골 농촌 아이들은 기구만 다를 뿐 신이 나기는 매 한가지였다.

요십이가 할아버지 3년 탈상 잔칫날 부엌을 휘 집고 다니다가 애석하게 학교를 노친 사연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회상 한다.(282쪽)

물론 부엌에서는 부인들이 두부전, 녹두전 등을 이미 만들어 과방에 차려 놓았다.
거기다가 할머니 어머니가 함께 만들어 놓은 작품인 달콤한 감주 등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요십이의 눈이 휘둥그래져서 자연스럽게 이것 저것
손을 대기 시작 하였는데 요십이는 이것 저것 맛을 보다 보니 학교 가는 것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중략)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한테 불려 나갔다. 솔직하게 답변하였다. 과방에 먹을 것이 많아 집어 먹다 보니 학교 갈 시간이 지났더라고. 선생님 역
시 "결석하면 안 되어요. 열심히 학교에 다녀야 해요.” 정도의 훈계로 끝냈다. 요십이는 이런 사유로 초등학교 6년 동안에 단 하루 결석을 하여 6년
정근으로 졸업을 하였다.

요십이의 6년간 정근은 곧 요십이 어머니의 정근이나 다름없음이다. 요십이의 끈기와 건강, 그리고 요십이네 어른들이 일구어 놓은 성실과 사랑의 열매이리라. 먹는데 정신 팔려 학교를 빠졌지만 아마도 요십이네는 그것으로 인한 후회나 책망이 없었을 터다. 소설 내내 무언의 사랑과 관용이 넘친다.

그러나 평화롭던 요십이네 마을에도 격변하는 한반도의 전운은 서서히 찾아 들기 시작했다. 제헌국회 4년 후 1950년에 처음 치러지는 국회위원 선거에서 요십이의 외당숙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당시 우세였던 ‘남북 협상 파와 좌 편향 중간파’의 득세로 뜻이 좌절 되었으며, 선거사무장 이었던 요십이 아버지는 집을 처분해서라도 선거운동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욱박지르는 선거 운동원들로부터 행패를 당하고 혼자서 피신하게 된다.(287쪽)

무섭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감나무 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는데도, 자연은 변함없이 그들의 법칙대로 움직였다. 비가 좀 오는가 싶더
니 '맹꽁 맹꽁’ 맹꽁이가 나타나 요섭이를 반겼다.
(중략)
며칠이 지난 7월 12일 요십이는 외사촌 헹규(형규)와 같이 외삼촌 사과 밭에 들어 가 사과나무 위로 올라가 놀고 있었다. (중략). 갑자기 뚝방 길 쪽
에서 천둥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따다 따다 총소리가 났다 처음 들어보는 비행기 소리요, 처음 들어보는 기관총 소리였다.(중략)
이 고요하고 평화롭던 동네에 전쟁의 비극이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부터 인민군, 그들이 동네에 나타났다...... 요십이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뒤를 쫓아갔다. 창희네 집 밖을 서성대더니 메고 있던 따발총을 꺼내
어 밭에서 돌아다니던 수탉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요십이의 호기심은 인민군 뒤를 쫓아가는 용기도 불사한다. 내가 살던 중리 검배마을에 인민군이 나타난 날짜는 좀 다를지 모르나 나에게 역시 그들은 구경거리였다. 인민군들은 무리 지어 금광기계실 공장 앞 마당에 진을 치고 공장 건물을 임시 숙소로 삼았는데 짬짬이 휴식시간에는 근처에 서성대는 아이들을 불러 놓고 노래를 시키곤 했다. 나는 동네 아저씨들로부터 동냥귀로 배운 한국군 군가와 그들의 군가를 혼동 해 어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였으나 인민군들이 박장대소하던 기억이 있다. 인민군들이 광산 마당 모퉁이서 어느 집 개를 잡아 삶아먹다 지나가는 나를 불러 거시기 부위를 썩둑 잘라 주며 저희끼리 희희덕 거리는 데, 영문 모르고 받아 먹던 나를 어머니가 보고는 인민군들을 호되게 야단치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소박하고 평화롭던 농촌 마을에 들이닥친 육이오의 진한 흔적을 요십이나 나나 일일이 알 수 없는 나이였기에 많은 두려움이 우리를 빗겨갔지만 후에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이 슬픈 역사의 한 획으로 모두의 가슴에 응어리를 만드는 혼란의 극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 또래는 그저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 어리둥절 하면서도 산과 들의 풍요한 푸름은 여전한 속에 가끔 무서운 변화에 숨 죽이던 초등학교 아이들이었을 뿐이었다.

저자가 쓰고 있는 요십이네 마을의 육이오 격변기 이야기는 한 농촌 마을의 수난사를 체험한 이들의 이야기로, 내가 살던 배방면 중리 마을에서도 비슷하게 겪은 일이었으며 소설은 망각과 무지의 어린 마음속에 퍼즐로 남아있던 조각들을 한 개의 그림으로 짜 맞추게 해 준, 슬프지만 잊을 수 없는 전쟁의 기록이었다.

ㅡ 그날 밤 아버지가 없는 온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을 때에 여희,연희,분희 세 자매가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어 어디서 듣고 왔는지 동네에
서 들은 소문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289쪽)
ㅡ 할머니 큰일 났슈. 저기 회장님댁 회장님 댁 재희 있잔유, 걔가 그러는디 인민군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갈꺼래유.
ㅡ 아니 뭘 잘못했다구 잡아간다냐?
ㅡ 옛날 천주학쟁이들 잡아가는 거나 마찬가래나봐유
ㅡ 증말 그렇티야?
ㅡ 회장님이 젤 잘 알꺼아뉴?
ㅡ 아, 그 양반이 그렇게 말씀 하셨다면 증말인가보다. 그러면 워떻게 해야 된다냐?
ㅡ 그집 허고 재수네 집 몽땅 싱교(성교)책들을 숨겼대유.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독실한 천주교 가정이던 요십이네는 서둘러 집안의 모든 성교 책들을 독에 넣어 땅에 묻었다.

인민군이 휩쓴 마을은 인민군과 좌익 세력들이 그들의 살생 부에 따라 소위 인민청소작업의 일환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 피신 해 있던 요십이 아버지는 무사했지만 옆 동네 샛터의 천주교회 부회장이었던 고모부는 ‘한 달 이십 오일만인 9월 27일에 총살당하였고, 그 시신도 찾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총살시켜 한 구덩이에 묻었기 때문이었다(298쪽)’

그것은 나의 가족이 지내던 아산의 중리 검배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한 날 나의 이웃 집 식구들이 다 함께 사라져 웬일인가 했으나 어른들끼리 쉬쉬하며 경찰에 관련된 가족이라 앞 비향산에 동네사람들을 부역 동원 해 파 놓은 방공호에 데려 가 몰살시켰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어린 가슴이 파르르 했던 기억이 난다.

미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황망히 사라진 요십이네 농촌 마을이 이번에는 우파들의 보복성 환란으로 이어졌다.(303쪽)

(남편이 가족을 놔둔 채 자기만 철수하는 인민군을 따라 도망친) 여맹위원장만 잡혀 와 동네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동네 여인들도 몽둥
이를 들고 그녀를 때려 죽일 기세였다.
ㅡ 조년은 죽어 마땅혀.
ㅡ 아니 조년이 무어길래 동네 사람들을 괴롭혔어, 엉!
ㅡ 아이고, 질게 말 해서 뭘 혀, 그냥 패 죽이고 말어.
그녀는 꿇은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요십이도 잘 알고 있는 영십이 어머니였다.. 왜 그러고 있는지 요십이는 알 수 없었으나 무언가 그녀가 잘못한
게 있는 모양이다 라고만 생각 하였다.

이 때 며칠 전에 피신했다 집에 돌아 온 요십이 아버지가 나서서 기지를 써 동네 사람들에게 실컷 때려 분을 풀되 몽둥이를 쓰지 말라 하며, 그녀를
죽이면 빨갱이와 다를 게 없지 않냐 하면서 동네 여인들의 분을 삭였다. 일차로 아들이 경찰나가 인민군에게 총살 당한 갑섭이 어머니가 그녀를 실컷
때리고 나니 분이 풀렸는지, 맥이 풀렸는지 물러서는 걸 필두로 동네사람들로부터 매만 물씬 맞고 여자는 목숨을 부지 했다. 당시 좌익에 붙어 동네
사람을 괴롭힌 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다반사였던 것이다.

육이오의 처절한 이념갈등이 한 식구처럼 오순도순 하던 마을을 갈갈이 찢어 놓는 비극이 온 동네를 휩쓸었다.

광산을 하던 나의 아버지는 인민군과 동네 좌익세력에 소위 농민착취 계급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며 처형 대상 살생부에 올라 있었고 인민군이 퇴각하고 우익이 득세하고서는 인민군 부대가 금광 시설에서 주둔했다는 이유로 부역죄를 물어 처단 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도 그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변호 해 주어 화를 면하게 된 것이었다.

서울 수복 후 제2국민병으로 징집되어 나갔던 열일곱 살 광우가 해골 같은 얼굴모양으로 살아 돌아 왔다. 이와 서캐를 잔뜩 품고 온 옷을 벗겨 아궁이에 던진 옷이 타는 모습을 본 초등학교 5학년 분희가 오빠를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320쪽)

ㅡ 오빠! 어제 어머니가 오빠 옷 아궁이에 집어 던졌을 때 어땟는지 알어?
ㅡ 내가 그걸 워치기 아냐? 어땟는디?
ㅡ 우린 공산당 다시 쳐들어왔는 줄 알았어. 따발총 소리가 나더라구.
ㅡ 에이 그짓말 말어라.
ㅡ 증말여. 아궁이에서 따다 소리가 나구, 그러구 이허구 서캐 타는 냄새 가 꼭 머리카락 타는 냄새 같더라구.

그러나 1951년 일사후퇴와 함께 서울이 다시 공산군에게 뺏긴 후 평택이 무너지느냐 아산이 무너지느냐 하는 초 긴장의 상황에서 또다시 인민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전전긍긍의 나날이었으나 다행이 무사했다. 육이오 전쟁 중 한번도 너무 했던 인민군과 아군의 각축전을 두 번 겪은 마을들의 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쌕쌕이와 비행기 폭격으로 집이 타고 파괴 된 도시와는 달리 시골의 산과 들은 여전히 푸르렀으며, 하늘과 땅을 근본으로 의지하고 사는 농촌의 삶은 지속되고 있었다.

어느 늦 여름, 농사와 집안일을 돌보며 한 가족 같이 지내는 김서방이 그가 길러 놓은 삼이 수확기가 되어 할머니한테 고한다.(335쪽)

ㅡ 저기, 광우(요십이의 열일곱 난 형) 할머님! 삼을 벨 때가 된 것 같은디, 삼굿(삼을 찌는 가마) 만들어야 하지 않겠슈?.
ㅡ 그럼세, 지금 혀야지. 쬐끔 지나면 장마가 올 것 아닌감.
ㅡ 그리유.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허면 어려워져유.
ㅡ 그려, 쇠뿔도 단김에 빼랏다구 당장 맹글어 보세.

이렇게 시작된 요십이네의 삼베실 뽑는 작업에는 온 식구가 며칠을 매달리게 되는데, 그 세세한 과정에 쏟아 붓는 요십이 어머니와 식구들의 정성은 이 과정을 꼼꼼히 설파 해 낸 저자의 자부심과 함께 두고두고 귀하게 읽힐 소설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손톱’이라는 소 제목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삼베옷은 기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 민족의 옷이고, 고조선 시대부터 의복이나 침구 재료로 사용 해 왔고,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입고 가는 것이 삼베 옷이지 않은가!’로 시작하며 저자의 집안 대대로 물림 받은 삼베 옷 만드는 전통에의 자부심과 사랑을 표현했으며 문외한이 쉽게 이해하며 읽어가면서도 그 과정의 섬세한 기록과 열의에 감복할 따름이다.

삼 실을 꼬기 위해 일부러 길게 자라도록 놔둔 어머니의 엄지 손톱은 요십이를 슬프게도 하였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손톱이나 치아로 제마를 째서 손가락으로 훑어 가늘게된것을 연결해야 하는데, 이때에 무릎을 고추 세우고 무릎에 비벼서 연결하
여 베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올을 만드느라 하도 많이 비벼서 어머니의 무릎이 벌겋게 피맺힌 모습을 보는 요십이의 마음이 짠했다.(339쪽)

저자의 적나나한 표현은 우리가 어려서 겪은 속옷의 이 잡기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어찌 보면 감히 설파하기 민망한 우리 모두의 불편한 옛 진실일 수도 있건만 저자는 한치의 주저 없이, 익살스럽지만 전혀 웃는 표정도 없이 요십이네의 이 잡기와 서캐 소탕전을 짓궂게 설파한다.(360쪽)

요십이와 난희의 손톱을 깎고 난 후 어머니는 요십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시켰다.
ㅡ 얘, 거기 이불 좀 펴서 요십이에게 줘! 요십이 너 윗도리 벗어.
ㅡ 아이, 왜 그래유?
ㅡ 빨리 벗어. 이리 줘!
요십이는 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뻔히 알고 순순히 조끼를 벗어 놓고 저고리를 벗어 어머니에게 넘겨주고는 이물을 뒤집어 쓰고 화로 가에 앉
았다..어머니는 벗어놓은 저고리를 화로에 펴 들고 ‘이’들이 기어 나오기를 기다리니 잠시 이들이 앗 뜨거워라 하고 기어 나왔다. 어머니의 ‘포슬
작전(이를 잡는 작전)’이 먹혀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움직이는 놈들은 즉시즉시 잡아 화로에 던졌다. ‘따닥’ 소리가 나더니 고약한 냄새
가 풍겼다. 이를 소탕한 후에는 저고리 솔기에 주로 붙어 있는 서캐를 찾아 양손의 엄지 손톱으로 눌러 알을 터트리니 그 소리가 재미있었다. 어머니
는 웬만
큼 이와 서캐를 잡은 후에 혹여 솔기 속에 들어 있을 서캐를 터뜨리기 위해 이빨로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나도 그랬지만 어른들은 곧잘 이를 두 엄지 손톱으로 눌러 터트리고 했으니 요십이 어머니는 훨씬 위생적이었던 게 틀림없다. 큰 놈은 터뜨리면 피도 튈 정도였으니 잔인의 극치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서캐 알이었지만 잔당 소탕을 위해 요십이 어머니가 잘근잘근 씹었다는 대목에선 아찔함과 함께 저자의 솔직함에 두 손 다 들어야 했다. 서캐를 잡은 후 씹어 소탕 할 알은 남아있지 없기 십상이며, 이 또한 아들의 옷이니 어머니만이 할 수 있다는 사족을 굳이 안 단 작가의 가식 없는 표현과 당당함에 재삼 매료된다.

광우 형이 어디서 헌 자전거 바퀴를 가져 와 바퀴살을 다 빼니 요십이의 둘도 없는 놀잇감이 되어 ‘백 발자국을 걸을만한 거리면 굴렁쇠를 굴리면서 달려’갔으며(384쪽), ‘특별히 굴렁쇠 굴리기는 자치기, 땅뺏기, 딱지치기, 심지어 연날리기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회상한다. 더 어렸을 때는 요강 뚜껑을 엎어 팽이처럼 돌리는 게 놀이였던(123쪽) 요십이에게 굴렁쇠는 스릴 만점의 놀이였음에 틀림없었을 터다. 나는 초등학교 때 마을 앞 개울가에 나가 수수깡으로 물레방아를 만든 다음 대롱으로 물을 흐르게 해 방아를 돌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생각을 하며 요십이의 굴렁쇠를 신나게 돌리며 달린다. 저자의 글은 이렇게 끌어 당기는 힘이 있어 좋다.

요십이는 어느덧 육학년이 되었고 대대장이 되어 조회시간에는 전교생 맨 앞에서 ‘차렸! 교장선생님께 경례!’를 구령하게 되었다.(447쪽)

요십이도 지난 겨울에 단추 다섯 개짜리 새까만 옷을 입어 보았고 이번 여름에는 그렇게 입고 학교에 가고 싶었던 구호물자 카키샛 반쓰봉(반바지)에
얼룩말 줄무늬 티셨을 입고 학교에 가 아침조회 시간에 전교 학생이 도열하여 서 있는 중앙에 서서 구령을 하게 되니 기분이 이만 저만 좋은 게 아니
었다.

읍내 중학교에 들어가는 줄로만 알고 있던 요십이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요십이가 그렇게 좋아하고 친근하게 지내던 누렁이 소가 갑자기 사라진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452쪽)

사실 누렁이 소와 요십이는 감나무 집안에서 함께 자란 죽마지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결국 요십이의 일생을 바꾸어 놓을 줄 누가 알
았겠는가?!
새해 들어 어느 날 갑자기 누렁이 소가 집에서 사라진 것이다. 요십이는 텅 빈 외양간을 들여다보며 이별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며 어머니에게 자초지
종을 물었다.
ㅡ 어머니, 우리 집 소가 워터기 된규?
ㅡ 아버지가 파셨어.
ㅡ 왜유?
ㅡ 그건 나두 물러. 물어보지두 안했구.

아버지가 요십이를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보내려고 누렁이를 판 것이었다. 서울에 가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요섭이에게 준 운동화도 결국은 누렁이가 준 선물이었던 셈이다.

요십이는 며칠 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중략)
드디어 저 멀리서 하얀 점이 보이더니 어느새 ‘뚜ㅡ, 뚜ㅡ’ 고동을 울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와서 멈춰 섰다. 똑딱선이었다.(455
쪽)

나는 머릿속에 꽉 찬 요십이 실타래를 한 가닥씩 풀어 내 몸에 감은 양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요십이가 되어 버린 나를 발견했다. 이 소설은 농촌을 모르고 자란 독자에게는 충청도 농가의 구수하고 진솔한 옛 삶을 느껴 보라고, 농촌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그리운 시절을 폭 넓게 반추하고 어린 시절의 의미를 찾아보라고 필독을 권하고 싶다.

농촌에서 지낸 몇 년의 초등학교 시절은 나의 인생에 골 깊은 추억과 황금 같은 농촌에서의 어린 시절을 안겨 주었고 지금도 나는 그 산천과 동무들을 잊지 못하고 찾아 다닌다. 그 시골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마치 내가 태어난 고향처럼 진솔한 마음의 쉼터로 자리매김 하고 있어 이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마치 빨려 들어가는 희열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겪은 어린 시절의 농촌 모습을 생생하고 세심하게 묘사하는 저자의 표현력으로 인해서다. 그것도 술술 읽히는 편한 말로, 마치 두런두런 담소하듯 써 내려가되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문장으로 말이다.

2021년 3월 7일 문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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