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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일 미국은 ‘Operation Absolute Resolve’라는 군사 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체포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미국으로 이송되어 뉴욕 연방법원에서 마약 테러 및 코카인 밀매 공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어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두 사건은 형태는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외부 군사력이 독재자를 직접 제거했다는 점이다. 현대 국제정치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 두 달 사이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독재 체제는 분명 비판의 대상이다. 권력 집중, 언론 통제, 반대자 탄압, 선거 왜곡은 문화나 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정치 방식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이러한 체제의 확장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지점에서 철학자 칼 포퍼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에서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사상과 권력 구조를 비판했다. 특히 “역사의 필연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상에 대해 깊은 의심을 제기했다. 누군가 자신이 역사의 방향을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비판은 배제되고 권력은 절대화된다. 정치적 반대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무지로 낙인찍힌다.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재가 시작된다는 것이 포퍼의 경고였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정치 체제는 이러한 ‘닫힌 사회’의 특징을 보여 주었다. 권력 집중, 정치적 억압, 반대자 탄압이라는 측면에서 두 체제는 포퍼가 말한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포퍼의 사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독재를 반대했지만 동시에 유토피아적 혁명과 거대한 체제 설계를 경계했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겠다는 거대한 기획은 대부분 또 다른 권력 집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점진적 사회공학’이었다. 이상적인 사회를 한 번에 건설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작은 개혁과 제도적 수정. 실패하면 수정하고 폭력보다 토론을 택하며 권력은 끊임없이 비판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외부 군사력에 의한 지도자 제거는 근본적인 해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행사된 힘은 또 다른 ‘역사 설계’의 충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두로를 미국으로 압송해 재판에 세운 조치 역시 국제법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한 국가의 지도자를 군사력으로 체포해 자국 법정에 세우는 행위는 주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란 공습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도자를 제거하는 ‘참수 전략’은 단기적으로 체제를 흔들 수 있지만 동시에 지역 갈등을 확대하고 장기적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국제법은 또 하나의 기준을 제공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질서는 무력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원칙 위에서 유지되어 왔다. 특정 체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사 개입이 반복된다면 세계 질서는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힘이 곧 기준이 되는 순간 중견국과 약소국은 언제든 불안정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국제정치는 도덕적 선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힘과 전략, 국내 정치, 그리고 가치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가치의 이름으로 힘을 행사할 때 그 힘이 다시 가치의 토대를 파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한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포퍼가 던진 질문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쁜 통치자를 평화적으로 제거할 것인가?”이다. 열린 사회의 강점은 지도자의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는 데 있다. 선거, 권력 분립, 언론의 자유, 사법적 통제라는 제도를 통해 잘못된 권력을 교체하는 구조를 만든다.
만약 정권 교체가 오직 외부의 폭격이나 군사력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은 열린 사회의 내적 힘이 아니라 외적 힘에 의존하는 변화일 뿐이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사태는 우리에게 찬반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을 요구한다. 독재에 대한 분명한 거부, 국제법에 대한 일관된 존중, 그리고 힘의 사용에 대한 냉정한 자기 절제,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도덕적 확신과 현실 감각을 함께 지킬 수 있다.
열린 사회는 약하지 않다. 그 힘은 폭력이 아니라 비판과 제도, 그리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겸손에서 나온다. 독재를 끝내야 한다는 의지는 단호하게. 그러나 그 방법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그것이 오늘날 세계 정치가 다시 배워야 할 열린 사회의 원칙이다.
타운 뉴스 2026.3. 안창해 칼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떠올려보자. 미군은 단기간에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임무 완수”를 선언했지만, 이후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내전과 테러, 폭격이 계속되면서 통제 불가능한 소모전으로 변했다. 전쟁은 ‘이기는 것’과 ‘끝내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이번 이란 사태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이스라엘 연합은 핵·미사일 시설과 지휘체계를 정밀 타격하며 초기 우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란은 전통적인 국가군이 아닌, 혁명수비대(IRGC)를 중심으로 한 비대칭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헤즈볼라, 후티 등 대리세력 네트워크까지 결합되면서 전장은 국경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전쟁 한 달째에 접어든 현재,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지속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며, 중동 에너지 시설 타격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지구전 양상이다. 초기의 군사적 우위가 시간이 흐르며 피로로 전환되는 구조다. 이란이 특별히 강해서라기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여기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바로 미국 내부의 균열이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약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전쟁 예산을 둘러싸고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재정 부담과 정치적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민주당은 “전쟁의 목표와 기간이 불분명하다”며 거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재정 논쟁이 아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군사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전환된다. 총알보다 더 빨리 소모되는 것은 ‘정치적 합의’이며, 결국 전쟁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것은 전장이 아니라 의회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지금의 예산 갈등은, 이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란 내부 상황 역시 단순하지 않다. 최고지도자 사망 이후 권력 공백이 발생했지만, 체제는 즉각 붕괴하지 않았다. 전문가회의는 신속히 후계자를 선출했고, 혁명수비대는 정치·경제 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불안정해 보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결속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외부 충격이 내부 붕괴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이러한 구조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북한과 70년 넘게 대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미 유사한 구조 위에 서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동과 다르지만, 본질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첫째, 압도적 군사력이 전쟁의 빠른 종결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초기 타격은 일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장사정포, 미사일, 핵이라는 변수가 결합되는 순간 전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북한 체제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견고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취약하지만 정치·군사적 통제력은 강력하다. 외부 압박이 곧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위험한 오판일 수 있다.
셋째, 전쟁은 반드시 주변국을 끌어들인다. 중동의 충돌이 에너지 시장과 국제 정치를 흔들듯, 한반도 전쟁은 동북아 전체를 뒤흔들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중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이 어렵고, 군사적 우위보다 구조가 더 중요하며, 외부의 기대와 내부의 현실은 언제나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은 총성과 함께 시작되지만 결국 예산과 정치 속에서 지속되거나 멈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낙관도, 과도한 비관도 아니다.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강한 동맹을 유지하되, 전쟁이 가져올 비용과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사회를 지탱시킬 수 있는 복원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지금 중동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거울이다. 이 거울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안창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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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해 컬럼은 3월 2일자 타운뉴스, '독재자의 종말, 열린 사회의 원칙' 제하의 컬럼에서 '정권 교체가 오직 외부의 폭격이나 군사력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은 열린 사회의 내적 힘이 아니라 외적 힘에 의존하는 변화일 뿐'이라고 설파합니다.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늘 같이 흔들며 시위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위 군중 유투부와, 트럼프 입을 애타게 바라보며 도움을 갈망하는 자유 우파 유투버들의 희망방송을 접할때마다 느끼는 자괴감을 대변 해 주는 문구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스스로 해결 할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3월 30일자 타운뉴스의 안창해 칼럼, '이란 전쟁과 한반도' 제하의 글에서 '지금 중동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거울이다. 이 거울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라고 말합니다. 한반도 남과 북은 체제 자체의 다름에서 오는 배타적 갈등이며 이 또한 우리 스스로가 우리 안에서 해결해야 되는 근원적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옮긴이 문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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