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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가 마침내 해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승리를 단순히 경기 결과로만 받아들인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의미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우승은 점수판 위의 숫자가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꺼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지펴낸 하나의 불씨였다.
이번 대회에서 베네수엘라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강팀들이 즐비한 토너먼트에서 매 경기 고비의 연속이었다. 그 시작은 일본과의 8강전이었다. 초반 흐름은 완전히 일본이 장악했다. 점수 차는 벌어졌고, 경기 분위기 역시 기울어 있었다. 여기서 무너졌더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반 이후 베네수엘라의 타선이 폭발하며 흐름을 뒤집었다. 결국 8-5라는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팀이 얼마나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외침이었다.
준결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켰던 이탈리아였다. 무패로 올라온 이탈리아는 이미 돌풍의 중심에 있었고, 경기 초반 결코 베네수엘라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1-2로 뒤져 있었다. 그러나 7회말, 투 아웃 상황에서 시작된 반격은 집요했다. 볼넷과 안타, 그리고 결정적인 적시타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3점을 만들어냈다. 4-2. 이 점수는 단순한 역전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베네수엘라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결승전. 상대는 미국이었다. 전력, 환경, 관중, 그 어느 것 하나 베네수엘라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모든 야구팬들이 미국의 우세를 예상했다. 그러나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물러서지 않았고, 오히려 더 대담하게 맞섰다. 팽팽한 균형 속에서 경기는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8회, 미국의 브라이스 하퍼가 동점 투런 홈런을 터뜨렸을 때 많은 이들이 흐름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9회 초, 선두 타자의 출루로 시작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어진 적시 2루타, 단 한 번의 스윙이 경기의 흐름을 다시 갈라놓았다. 3-2. 그리고 마지막 이닝. 투수진은 흔들림 없이 마운드를 지켜냈다. 그 순간,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사상 첫 우승’이라는 역사가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의 우승은 약자의 반란인가? 그렇지 않다. 베네수엘라는 결코 약팀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한, 개인 능력만 놓고 보면 세계 최상위권이다. 문제는 하나의 팀으로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달랐다.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로 뭉쳤고, 그 결과 일본, 이탈리아, 미국을 차례로 꺾는 완벽한 여정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진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늘의 베네수엘라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붕괴 속에 놓여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고, 나라 곳곳은 더 이상 일상의 공간이 아닌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진 사람들은 그곳에서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국가, 디아스포라 베네수엘라다.
이번 대회에서 터져 나온 경기장의 함성은 바로 그 공동체의 목소리였다. 미국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경기장을 가득 채운 응원은 베네수엘라의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상실과 그리움,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외침이었다. 야구는 그들에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서로를 확인하는 언어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해외에서 뛰고 있지만, 삶의 뿌리는 여전히 고향에 있다. 가족과 기억, 그리고 책임이 그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경기는 달랐다. 기술 이상의 무언가가 흘러넘쳤다. 설명하기 어려운 집중력,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그리고 끝내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 그것은 사명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팀이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상황이지만 대표팀 앞에서는 갈등을 멈췄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팀을 응원했다. 이 장면은 공동체가 아직 함께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열악한 현실 역시 이들의 가치를 더해 주었다.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은 상황, 충분하지 않은 준비, 복잡한 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조건들이 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서로를 의지하게 만들었고, 하나의 목표로 더욱 단단히 묶어냈다.
베네수엘라는 우승했다. 그러나 우승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너진 나라에서, 갈라진 상황 속에서 하나로 뭉쳤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이 결국 정상에 이를 수 있는 원동력이었음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베네수엘라의 우승이 남긴 진짜 의미다.
타운뉴스 2026.3 안창해 칼럼 안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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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