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알래스카 여행 어때요?
박정모( 문리대 66) · 박인희( 간호대 67) 부부의
알래스카 100 일 살아보기
차에서 자고 먹고 캠핑하며 낚시, 짜릿한 손맛에
엔돌핀‘ 펑펑’
결혼 50주년 기념 , GMC 몰고 집 떠나
출발전 타이어 네짝 새걸로 몽땅 교체
대형 아이스박스 얼음 가득 채워‘ 씽씽’
바둑 용어에 ‘ 복기’( 復棋) 라는 것이 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바둑을 앞서 놓은 순서대로 다시 두는 것을 뜻한다.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바둑기사들은 매 경기를 복기하면서 무얼 잘했는지, 어디서 잘못했는지, 상대의 전략과 수는 어땠는지, 무엇을 더 신경써야 할지 찬찬히 살펴본다. 복기를 하다보면 뒤늦게 후회할 때가 더 많다. 부주의로 인한 패착이 못내 아쉽기 때문일 터.
여행에도 ‘ 복기’ 가 필요하다. 복습과정을 통해 앞으로 더 멋진 여행을 준비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바둑과는 달리 여행을 복기하면 설레임과 스릴이 가슴 한 켠에 가득 묻어나는 것을 느낀다. 동창회보의 요청으로 우리 부부의 100 일에 걸친 알래스카 여행기를 복기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연어 낚시의 짜릿한 손맛과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경관이 가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엔돌핀이 듬뿍 솟는다.
앞서 100 일의 여행이라고 썼지만 실제는 여기에 3 주가 추가된다. 장기 여행을 하려면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 필수템’ 은 먹거리 장만이다. 100 일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 부부의 입맛에 맞는 밑반찬을 마련해야 했다. 장조림과 국거리( 김치찌개), 그리고 곰탕은 컨테이너에 담아 꽝꽝 얼렸다. 이외에도 마켓에서 깻잎, 김, 라면, 국수 따위를 챙겼다. 코스트코에서 대형 아이스박스를 사 얼음을 가득 채웠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 여행에서 얼음값만 무려 1,500 달러를 썼다.
밥은 직접 해 먹을 요량으로 쌀 3 포를 샀다( 햇반은 비상용으로 구입). 전기밥솥을 갖고가 캠핑장에서 직접 지어 먹었는데 전기가 없는 곳에선 버너에 불을 지폈다. 한국인들은 밥심으로 살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캠핑을 원칙으로 했다. 자연과 호흡을 하다보면 코비드에 걸릴 까닭이 없다( 사실 이 대목이 늘 신경이 쓰였다). 모텔의 그 께름칙함이란…. 세상 편한 것이 캠핑이다.
드디어 6 월 1 일 새벽 알래스카 대장정에 올랐다. 한국에서 죽마고우들인 김종섭 서울대 총동창회장과 이경형 상임부회장이 미주 동창회 평의원 회의 참석차 LA 를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양해를 구했다. 우리 부부의 결혼 50 주년 기념여행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 타이어 네짝을 몽땅 새걸로 교체했다. 엔진오일은 물론이고 브레이크 패드도 갈았다. 차와 관련해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요소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15 번 프리웨이로 차를 몰았다. 창문을 살짝 열고 캘리포니아의 새벽 공기를 입으로 크게 들여마셨다. 상쾌한 기분이 발끗 세포에까지 전달되는 듯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나 보다.
우리 부부의 ‘ 애마’ 는 GMC Yucon 이다. 8 기통 미제차여서 파워가 세다. 알래스카나 중서부 등지를 여행하려면 포드나 GM 등 미제차를 타는 것이 심리적으로 ‘ 안전’ 하다. 외제차를 타면 현지인들의 눈초리가 등 뒤에 따갑게 꽂히는 듯 해 괜히 불안해 진다. 우리 부부의 여행과 관련한‘ 경험칙’ 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옐로스톤과 글래시어 내셔널 파크에서 6 일간 캠핑을 한 뒤 캐나다에 입국, 밴프 국립공원에서 야영을 하며 캐나디언 로키스의 비경을 즐겼다. 180 여 마일의 구간이지만 고산준령의 설경은 숨을 멎게할 만큼 아름다웠다.
알래스카 하이웨이의 시발점인 도슨 크릭(Dawson Creek) 에 도착한 때는 집 떠난지 보름여가 지나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할리 데이비슨 열성회원이 선뜻 우리 부부의 알래스카 방문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알래스카 하이웨이는 전쟁의 애환이 서려있는 도로다. 1942 년 제2 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미국이 일본군의 상륙에 대비,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만든 장장 1,000 마일이나 되는 고속도로다. 기록에 따르면 연인원 1 만1,000 여 명의 병사들이 하루 12~16 시간씩 중노동하며 8 개월만에 완공했다.
도로 연변의 광활한 지역에 샛노란 민들레가 피어나 대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창조주의 신비한 예술 작품에 그저 감탄할 밖에. 문득 ‘ 아리랑 민들레’ 가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장소현( 미대 65) 동문의 LA 폭동을 소재로 한 연극이다. “ 샛노란 꽃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더욱 곱게 빛나네. 뜨거운 불길에도 타지 않는 민들레, 샛노란 아리랑 민들레~.”
알래스카의 오뉴월이 민들레의 계절이라면 7,8월은 ‘fire weed’ 시즌이다 . 온천지가 진한 꽃분홍으로 장식됐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 그런데도 알래스카의 ‘state flower’는 ‘물망초 ’(forget-me-not)다 . 아련한 사연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 . ‘State animal’도 곰이 아닌 무스 (moose)다 .
드디어 300 여 마일을 달린 끝에 야망과 광야의 땅 Yucon 주에 진입, 왓슨 레이크(Watson Lake) 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도 하이웨이를 건설한 미군 공병들의 애잔한 사연이 전해진다. 칼 린들리라는 병사는 향수병에 걸린 나머지 이곳에 고향집을 가리키는 방향과 거리 표지판을 만들어 세웠다. 이것이 계기가 돼 당시 병사들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이 싸인판을 세웠다. 현재 2 만여개나 된다고 한다.
7 월 24 일, 알래스카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어느덧 37 일이 지났다. 페어뱅크를 108 마일 남겨놓은 지점에서 앵커리지 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이번 알래스카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Kenai River 의 강변도시 Soldotna. 시정부가 운영하는 센테니얼 캠프그라운드에 차를 멈춰 세웠다. 이곳은 킹 새몬(king salmon) 낚시로 유명한 곳이다. 연어 한 마리가 90 파운드가 넘는다니….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LA 에서 이곳까지는 5,200 마일 거리다. 피로와 함께 안도감이 몰려와 무려 12 시간이나 잠을 잤다.
알래스카에서 만난 가장 무서운 적은 모기떼. 언젠가 유튜브에서 가장 무섭고 해로운 동물 톱10 가운데 모기가 1 위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기향이나 스프레이 따위로는 모기 퇴치가 어렵다. 아침 저녁 장작을 태워 연기를 피워야 모기의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주로 차 안에 매트리스를 깔고 잤다. 모기떼의 공격을 원천봉쇄하고, 또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피할 수 있어서다. 곰이 출몰하는 지역에선 더 더욱 ‘ 차박’(car camping) 이 안전하다. 텐트도 가져갔지만 아이스박스 등 주로 물품 보관용으로 썼을 뿐이다.
올해는 연어떼가 올라오는 시기가 늦어진다고 해서 다시 남쪽으로 150 마일을 더 달려 수어드(Seward) 란 곳에 캠프를 차렸다. 수어드는‘beginning to Alaska’ 로 알려진 곳이다. 링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수어드가 의회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 러시아로부터 720 만 달러( 현재 가치로 1 억2,500 만 달러) 에 사들인 것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따 만든 도시다.
이곳에선 낚시를 ‘snagging’ 이라고 부른다. 미끼는 없고 무지막지한 삼지창같이 생긴 납덩어리가 붙은 triple hook 로 꿰차 올리는 방법이다. 삼지창으로 찍어 올리는 낚시. 예전 에스키모들이 폭이 10m 정도 밖에 안되는 강바닥에 이렇게 연어를 낚아 올렸을 것 같다.
강변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백명의 낚시꾼들과 독수리, 갈매기떼가 뒤엉켜 우리 머리 위를 날라다니는 경이로운 풍경도 경험했다.
8 일간의 수어드 생활을 뒤로하고 드디어 키나이 반도의 최서단 도시 호머(Homer) 로 향했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광어와 대구, 명태 낚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알류샨 열도는 끝없는 미지의 세계와 어우러진 베링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Homer Spit 는 멀리서 보면 마치 바늘침같은 육지의 연속선으로 캠프그라운드는 RV 파크, 레스토랑, 술집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 시설로 가득차 있다.
이곳 명소 중 하나인 선술집 Salty Dawg Saloon 은 대낮에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손님들이 사인하고 걸어놓은 1 달러 짜리 지폐가 온 천장과 내부를 장식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부개척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한번은 배를 타고 광어낚시에 나섰다. 20 여 명을 태운 배에는 낚시에 필요한 도구가 모두 준비돼 있었다. 누구나 두 마리를 잡을 수 있는데 한 마리는 28 인치 이상, 나머지 한마리는 그 이하의 것을 잡아야 하는 규정이 있다. 가장 큰 광어는 위스콘신에서 왔다는 80 대 할머니 한 분이 낚았는데 무려 124 파운드나 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레인겔(Wrangell) 국립공원에선 알래스카의 신비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발데즈의 ‘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북해에서 채굴된 원유가 800 마일이나 되는 송유관을 통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바로 발데즈다. 이 원유는 유조선에 의해 미국 본토로 수송되는데 절반 이상이 캘리포니아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동문들께서는 20 여 년 전 엑손 유조선의 원유 유출 사고를 기억하실 것이다. 지금은 대재난을 거의 극복한 듯 보인다.
발데즈에는 흑곰들의 출몰이 아주 빈번한데 먹이( 연어) 가 풍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새끼들과 함께 먹이를 찾아 바다가 인접한 강으로 연어사냥에 나서는 곰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발데즈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 솔로몬 걸치 부화장’(Solomon Gultch Hatchery) 이 있다. 연어알과 정자를 채취해 부화시키는데 이곳에서 선택돼 후손을 남기려면 무려 29 단계의 사다리 수로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 생산된 새끼 연어들은 6~8 개월 후 방출돼 바다로 나가게 된다. 매년 2 억7,000 만 마리의 핑크 연어와 200 만 마리의 실버 연어 새끼들이 방출된다고 한다. 2~3 년 후 평균 회귀율은 3~3.5% 로 알려져있다
주변에는 낚시터가 많아 주로 가족 단위로 와 피싱을 즐긴다. 워낙 핑크 연어가 많아 때로는 낚시하는 발밑에까지 오글오글 모여들어 우리 부부도 평생 처음 연어를 수도 없이 잡아 풀어주는 이른바 ‘catch & release’ 낚시를 하는 초유의 경험을 했다.
이제 본격적인 연어 잡이에 나섰다. Soldotna 는 미국 본토는 물론 전세계에서 연어낚시꾼들이 몰려들어 캠프사이트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소식에 일찍 서둘렀다.
Kenai 강가엔 1 마일에 걸쳐 176 개의 캠프사이트가 배치돼 있지만 이미 대부분 낚시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사이트는 낚시터와 가깝고 모기가 많지 않으며 또 프라이버시가 있어야 하고 화장실 등이 가까워야 한다.
Soldotna 방문센터에는 기념물이 하나 서있다. 1985 년 5 월 17 일 세계에서 가장 큰 킹 새먼(97.2 파운드) 이 잡힌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주인공인 레스 앤더슨의 나무상과 실제 크기의 연어를 나무로 깎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연어는 5 종류가 있다. 각자 모두 특징을 갖고 있으며 잡히는 시기와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연어 낚시는 일반 낚시와 확연히 다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끼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어낚시는 미끼가 필요없다. 바다에서 3~4 년 성장한 연어는 고향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먹지 않고 긴 여행을 한다. 따라서 연어낚시는 미끼가 필요없는 것이다.
연어는 산란여행 중 먹지는 않아도 숨 쉬기 위해 입을 뻐끔 거리는데 이때 낚싯줄이 입 속에 들어가 끝에 매여 있는 바늘이 연어의 입에 걸려 낚는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입 이외의 다른 곳에 바늘이 걸려 잡는 것은 ‘ 실격’ 이어서 모두 풀어줘야 한다. ‘foul hook’ 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 스포츠 피싱’ 정신에 어긋난다고 해서 지탄을 받는다.
가장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연어를 ‘chum’ 또는 ‘dog salmon’ 이라 부르는데 개도 안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나머지 4종류의 연어 - chinook(red), coho(silver), sockeye(red), humphy(pink) -를 모두 잡으면 ‘그랜드 슬램 ’이라고 부른다 . 올해는 그러나 ‘그랜드 슬램 ’ 달성이 불가능하다 . King salmon이 보호종목으로 낚시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triple hit’만이 가능하게 됐다 .
올해는 sockeye 풍년이다. 음향탐지기에 18 만 마리가 체크포인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모두들 고무됐다. sockeye 는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양식을 못해 모두 천연산이다.
이번 알래스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어알로 캐비아(caviar)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현지 주민들조차 연어알에 관심이 없어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 귀한 것을….
러시아에서 온 낚시꾼들로부터 캐비아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결국 성공하고야 말았다. 맛은 철갑상어 캐비아 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에 못지 않았다.
그런데 캐비아란 것도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우리의 젓갈 만드는 식으로 소금에 절이면 된다. 젓갈을 넣고 김장을 하면 6 개월 이상 신신한 김치를 먹을 수 있으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선 정어리를 젓갈로 만들어 먹는데 우리는 새우, 멸치 등 수십가지나 된다. 요즘은 멍게 젓갈도 나와 내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LA 를 출발할 때 마일리지 계기는 6 만이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7 만2,000 마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100 일 동안 장장 1 만2,000 마일을 뛴 것이다.
은퇴하기 전 생업이 CPA 여서 우리 부부는 4 월 택스 시즌이 끝나면 남미를 비롯해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 거의 안가본 곳이 없을 만큼 여행을 즐겼다. 그런데 정말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고…. 그중 베스트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알래스카다. 그것도 우리처럼 ‘ 차박’ 여행을 권한다. 내년에 알래스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동문들은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시기 바란다. 우리 부부만이 알고 있는 팁을 알려드리겠다.
“ 자연도 건강, 우리도 건강!”
박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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