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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머리 오븐구이 찜과 소머리 국밥
초등학교 이삼학년 때, 육이오의 폭격을 피해 피난 가 살던 아산 시골마을 정미소에서 잡일을 하던 석동이 아저씨가 간혹 점심때면 고추장이나 된장에 싱싱한 고추를 푹 찍어 보리밥을 먹는 게 너무 맛있어 보여 나도 그걸 흉내 내다 매운 고추에 입에 불이 나 엄마의 냉수사발을 들이키며 식히던 게 생각난다.
아마도 음식 탐에 유별난 호기심, 입에 맞는 음식은 주저없이 먹어대는, 음식 안가리는 버릇은 어릴 때부터였나보다.
“한국 수퍼 생선 진열대 끝자락 얼음위에 숨어 있길래 나도 두어 개 사 가져와 오븐구이 찜을 해 보았어요”
오륙 년 전, 밥상에 아내의 연어 대가리 오븐구이 찜이 선을 보였다. 댕강 잘린 연어 대가리가 반으로 쪼개져 오븐구이 된 찜인데 수저를 분주히 움직이며 공략하다 보면 여기저기 먹을만한 고기살도 어지간이 붙어 있고, 먹는 재미도 쏠쏠하여 밥 한 공기 비우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뭐든 구미 당기게 만들어 내는 아내의 음식 솜씨가 한때는 도마에서 사료나 쓰레기 통으로 직행할 연어대가리를 밥상의 요리로 둔갑시킨 첫날이었다.
원래 ‘대가리’라는 말은 동물에게 나 쓰여지는 호칭이기에 이렇게 붙여 보았지만 어휘 자체가 거칠고 일상 쓰기에 그리 좋은 어휘는 아니다. 더구나 사람 머리를 표현하는 말로는 한참 부적절 해, 한때 북의 김정은이 한국의 대통령을 ‘삶은 소 대가리’라 칭하며 막말을 해 그런 칭호를 넙죽 받은이도 문제긴 하지만 북의 위정자들은 정녕 상종 못할 인간들이라고 혀를 찬 적은 있었지만, 동물의 대가리조차도 사람이 맛있게 먹으면 ‘머리’로 대접받는지 예부터 택시기사들이 즐겨 찾는 소대가리 국밥집은 간판이 한결같이 ‘소머리 국밥’ 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 ‘연어머리’ 라 부르기로 한다.
옛날 수퍼에서는 구경 못하던 식자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일터면 소 꼬리, 닭 모래주머니, 닭 발, 소 내장 등이다. 사료나 공업용으로 처분되었을 식품들이 식문화의 다변화와 세계화로 가주지역 한국 마켓에 가 보면 그 종류가 꽤나 다양하다. 코스트코 육류 진열대에서는 소 혀, 양, 천엽, 꼬리 등이 보이고, 어쩌다 지역의 동남아 국가 토속 수퍼에 가면 짐작도 안가는 식품들이 많이 보이는데 나름의 향토 맛이 있어 귀한 먹거리임에 틀림없다. 여하튼 연어머리가 아직은 한국 수퍼에서만 보이고 있지만 늘 듣고 자란 ‘어두일미’ 라는 말과 함께 가끔 우리집 밥상에 오르게 되었다.
십 수년 전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 한인타운 근교의 조그만 한인교회에 다닐 때 마켓 생선부에서 일하는 집사님이 판매용 회를 뜨고 남은 큼직한 머리들을 가져와 교회 자매들이 나누곤 했는데 이것이 드디어 한인 수퍼 생선부 진열대에 상품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거였다. 비닐로 포장은 안되어 있지만 얼음위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것을 몇 개 골라 저울 뒤 직원에게 건네면 머리를 반쪽으로 갈라 아가미를 발라내고 약간 다듬어 파운드당 4불대로 포장해준다. 가격으로 치면 초창기에 파운드당 99전 하던 게 이렇게 올라 요사이는 연어머리 하나가 고등어 한 마리 맞먹는 값이라니 알을 낳기 위해 바다와 강의 경계를 오가며 폭포를 거스르는 연어는 온몸을 바친다 하겠다.
아내가 정성으로 ‘요리’ 해 주는 연어머리는 맛도 맛이지만 요리 조리 뒤집어 가며 알뜰히 발라먹느라 식사를 서둘러 안 해 좋다. 커다란 연어 눈알이 선뜻하건만 아내가 머리를 다시 정성껏 씻어 내 양파, 마늘, 버섯, 생강, 레몬, 간장과 함께 양념해 오븐에 요리하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진다. 목덜미 살은 푹 익어 회처럼 쫄깃한 육감은 없지만 듬뿍 떼어 내 먹는 연어 특유의 감칠맛이 있고, 머리부분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쫄깃쫄깃한 고기부위를 발굴해 내는데, 특히 눈 가까이 볼 살 맛은 일품이다. 눈알은 물컹해 입에 넣기가 순간 망설여지지만 물고기 눈을 먹으면 눈이 맑아진다고 어려부터 귀에익은 말을 생각하며 눈 딱 감고 입에 털어 넣는다. 연어머리 구이를 먹으면서 폼을 잴 필요는 없지만 맛있고 재미있으며 소탈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늘 있게 마련이다.
“여보, 누굴 불러 같이 먹었음 좋겠다”
“아니, 손님 청해 놓고 욕먹을 일 있어요?!”
--아, 참. 물고기 머리 뿐이지! 당신 말이 맞다. 기껏 불러 머리만 내놓으면 머리한대 얻어맞은 기분이겠지. 하지만… 같이 먹고 즐길 그런 친구가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
서울의 소머리국밥은 그것만 가지고도 소문난 식당이 있는가 하면, 소머리 국밥집만 잔뜩 들어서 있는 골목으로 알려진 동네가 서울에는 몇 군데 있는데 대개는 택시기사들이 많이 들리는 곳으로, 주차하기 쉬운 공터 주변을 끼고 몇 집이 모여 있다. 식당마다 목청 높은 아저씨들 안내로 길가에 주차 후 식당에 들어서면 너 댓 자리의 식탁이 빡빡하게 줄지어 있고 식탁마다 조그만 깍두기와 김치 항아리, 그리고 들깨사발과 파를 듬뿍 썰어 놓은 질그릇, 마늘 고추양념통이 놓여있다. 메뉴는 지극히 단순 해 애써 고르느라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간판처럼 그저 소머리국밥 집이다.
택시기사들이 단골로 가는 소머리 국밥집들은 맛과 양에서 단연 톱이다. 손님들이 늘 달리는 게 직업인 사람들인 만큼 소문도 빨라 음식 잘못했다가 파리 날리기 십상이라 주인은 고객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이렇게 소머리집만 나란히 늘어선 곳이 서울에 몇 군데 있는 중, 효창공원이나 연희동 서소문근처, 북한산 입구 등이 소문을 탄다.
혹은 기사들이 찾는 곳은 아니어도 서울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도 소머리 국밥집들로 소문난 곳이 있는데 경기도 곤지암이 그 중 하나다. 인근에 몇 개의 그럴싸한 골프장이 있어 주말이면 서울을 빠져나온 골퍼들로 붐비는 ‘할머니 소머리 국밥’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발 디딜 틈이 없다. 골프 회동에 일인당 삼 십여 만원의 돈을 쓰는 골퍼들도 한그릇에 만원 하는 국밥과 소주 한잔을 여기서 해결하고서 야 일정을 맺는다. 소머리 국밥은 이렇게 의젓한 메뉴로 등장하여 서울 가 지내는 동안 특히 혼자면 찾아가는 음식이었지만 그것 역시 누굴 집으로 불러 같이 하기엔 조심스러운 밥상이다. 연어 머리 건 소 머리 건 흉허물없이 같이 식탁에 둘러 앉아 먹을 정도라면 막역한 사이어야 한다.
30여년 전 오클라호마에 살고 있을 때 교인 중 목장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교인들이 원하면 소머리를 통째로 운반해 주겠다 했다. 그러나 교회에도 그걸 통째로 삶을만한 큰 솥이 없었고, 소 머리를 어떻게 토막 낼까 엄두도 못 내 사양하며 들 애석해했다. 떠나고 몇 년 후에 드디어 교회에서 소머리를 통째로 받아 국밥으로 향수를 달랬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한국인!’ 했다.
서울역 퇴계로에서 남대문 시장 입구, 회현 역을 끼고 조금 들어가다 왼쪽 골목길에 접어들면 온골목이 천막으로 뒤덮인 식당 골목이 있다. 이 골목은 칸막이 없이 낮은 의자 네다섯과 식탁 한두개가 전부인 개별 식당 간판이 줄을 이어 나타나는데, 몇 년간 서울 나가 근무하는 동안 사무실이 서울역 앞에 있어 이곳을 가끔 찾았다.
자리를 비집고 앉으면 주모가 바로 옆의 큼직한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소머리 국을 휘 저어 뚝배기에 담고 밥 한 종기와 함께 건넨다. 셀프로 놓여있는 들깨와 파 종자기를 당겨 듬뿍 떠 넣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머리 국밥을 땀 흘리며 한 그릇 비우고 나서면 매서운 시장바닥의 겨울 바람도 오히려 상쾌했다. 이곳 미국에도 LA한인타운에 가면 언젠가 이런 곳이 나타나겠지.
형식과 절차에 연연 않고, 소탈한 마음으로 뭇 시선 신경끊고, 오로지 나를 만족시키던 소머리 국밥,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반겨주는 연어머리 구이 조림과 만들어주는 손이 가까이에 있어 식탁이 덜 심심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