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 들어서면 좌변기 칸막이 한쪽 켠에 쪼그리고 앉아
재래식으로 일을 보는 화장실이 꼭 있습니다. 필히 그런 자세래야 일이 치러지는
신토불이의 동포들이 있기 때문 일겁니다. 그런데 물 내릴 때 조심하셔야 됩니다.
어떤 곳은 물살이 너무 강해 무심히 물 내리다 곱게 쌓여 있는 그것이 위로 튀면서
날벼락을 맞습니다.
옛날, 좌변기가 처음 나왔을 때 누구는 그 위에 올라가서 한국식 목마 타는 모양을
하고서야 일을 볼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요사이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어느 곳에 가면 변기통 앞에 커다란 통이 놓여
있고 '화장지는 변기에 버리지 마세요. 막혀요!'라고 해 놓은 곳이 많습니다.
장시간(?) 그 통을 바로 코 앞에 껴안다시피 놓고 일을 치르려면 그것도 하나의
희극 입니다. 미국에서도 한인이 운영하는 영업소에서 가끔 봅니다. 아마도 오래 된
건물의 배관 파이프가 낡고 가늘어 막히나 공사 할 여력이 없는 모양입니다.
소변기 앞에 서면 십중팔구 이런 문구를 대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아니, 그럼 안 아름다운 사람은 어쩌라고! 한술 더 떠 이런 문구도
보입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 - 눈물과 오줌' 아, 뛰어난 한글의 위력!.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소변기 앞에 이런 문구도 있다 하였습니다. '당신 것이
생각보다 짧은 것을 아십니까?'(멀리서 쏴도 표적을 때릴 만큼 포신이 길지도,
강하지도 않으니 망상에서 깨어 한 발짝 앞으로 더 다가 서라는 얘기).
하기는 다들 한 발짝 앞으로만 다가 서 줘도 주위가 깨끗해 지는데 문제는 어느 한 인간,
무신경한 그 자 때문에 시작됩니다. 그가 질질 흘린 것이 빌미가 되어 다음 사람이 그걸
안 밟으려고 더욱 원거리 슛을 하게 되고... 악순환은 미화원이 바닥을 닦을 때까지
계속 됩니다. 남자 소변기 중앙에 파리를 한 마리 그려 넣으니 변기 주위가 훨씬
깨끗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남자들의 단순심리와 조준 심리를 노린 거지요.
어떤 자들은 굳이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 가 소변을 보면서 기관총 휘두르듯 하는
모양입니다. 도넛 형의 좌변기 뚜껑을 세워 놓는 성의도 없이 말입니다. 젖어 있거나
얼룩져 있는 좌변기에 앉기가 섬뜩하여 옆 칸으로 옮기거나 화장지를 한 움큼 뽑아 내
물 걸래 질 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소변 볼 사람이 좌변기 칸에 들어서는 것도 번지수가
틀린 거지만 기왕에 좌변기를 쓰려면 바지 춤 내리고 '앉아서' 일 보는 게 예의 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집에서 아들에게 그런 얘기 꺼냈다가, '아빠, 그건 남자들의 특권 이예요'
하는 바람에 머쓱해 진 적이 있었습니다. '야, 서서 하면 변기 물이 일 미터나 튄대' 하니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사실은 말하는 나도 곧잘 그 특권을 만용 합니다. 그러나 남의 집을
방문 시 소변을 볼 때는 앉아서 합니다. 나를 초대 해 준 고마운 사람이 열심히 닦아 놓은
변기통 주위를 행여 한 방울이라도 튄다면 예의가 아니지요.
하기는 엄동설한에 히터도 없이 얼음장 같이 차가운 공원 세라믹 변기에 올라 앉기 보다는
지퍼 내리고 잠깐 일 보는 게 그리 편할 수 없으며, 그럴 때 마다 ' 여자 아닌 게 다행이다'
고 서 푼짜리 자만을 하기도 합니다. 이리 저리 옮기는 이동용 남녀 공동 화장실에 들어 가
바로 코 앞의 소변기에서 억세게 나오는 악취와 함께 지저분하기 짝없는 변기통을
대하노라면 이런 간이 시설이라도 써야 될 처지의 여자들이 얼마나 용감 해야 될지 상상이 갑니다.
대부분의 경우 화장실의 좌변기 테두리 앞부분이 트여 있는 부분은 손이 안가 지저분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앉아 일 볼 때 내 것의 끝 부분이 닿을 수도 있고, 아니면 팬티 위 부분이
그 틈새로 끼어 들어 가 본의 아니게 변기를 청소(?) 해 줄 처지가 되어 신경이 쓰입니다.
이것은 좌변기 앞에 서서 벽을 보며 산탄 쏘듯 하는 사람들 때문이거나, 앉아 일 볼 때 포신을
낮추지 않고 '골 난 대로' 쏴 대는 사람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화장실 좌변기의 제일
앞부분은 곧 잘 지저분한데, 게다가 머리카락(은 아니겠지만)까지 한 두 가닥 양념 삼아 걸쳐
있으면 원래 즐기러 들어 온 곳이 아닌데다 불쾌지수는 곱절로 올라갑니다. 바닥에 물(?)기라도
있으면 차마 바지를 바닥까지 널프러지게 깔아 내리기도 뭐해 한 손으로는 한 움큼 허벅지쯤에
거머쥐고 엉거주춤 사타구니 공간을 확보한 후 다른 한 손으로는 혹시 몰라 포신의 각도를
하향 조절 하며 일을 보아야 하니 남자들은 한 번에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 수행 할 수 있는
실력을 발휘 합니다.
미국의 영업소 화장실에는 대부분 좌변기에 얹어 놓고 앉으라는 종이가 벽에 있습니다. 이것을
찢어지지 않게 잘 잡아 빼는 것도 기술이지만 이 너풀대는 얇디 얇은 종이를 기술적으로 변기
위에 올려놓은 후 그 위에 맞추어 앉느라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잘 맞추어 올려 놓은 후
조심조심 조준 해 앉아도 그 가벼운 종이는 스르르 반쯤 물속에 잠기거나 배설물의 자유낙하를
방해 할 위치에서 너풀대는 통에 아예 물속으로 잠수시켜 버리고 일을 보게 됩니다. 이 종이는
휴 헤프너처럼 청결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나 쓸 일이어서, 변기가 정 더러우면 화장지를 둘둘
풀어 좌변기를 한 번 훔치고 앉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스트레스도 덜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꼬박꼬박 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기에 설치 해 놓은 것 일 터이니 게으름을 미화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저분한 좌변기를 훔치고, 종이깔개를 그 위에 기술적으로 얹고, 한번에 정확하게 앉는
이러한 일련의 준비 작업이 아주 쉽지만은 아닌 것이어서,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요강이
얼마나 간편하고 위생적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것은 뚜껑이 있어 냄새도 안 났었습니다.
일 끝내고 일어서면 열 센서가 기다리다가 물을 사정없이 내려 주는데 어떤 곳은 사용자가
눌러야 되는 물 꼭지가 변기 뒤에 버티고 있습니다. 구둣발로 누르기엔 좀 약해 보이지만 잠시
머뭇거리다 발을 씁니다. 손을 대어 누르기에는 지저분해 보여 꺼림직도 하고, 구부리고 누르다
위 주머니에서 무어라도 빠져 변기에 들어가는 날엔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는 물살이 무서워
발을 쓰게 됩니다. 발을 쓰면서도 위 주머니는 꼭 누르게 되니 이건 무슨 버릇인가 싶습니다.
그러나 발부 옆에 '손으로 누르세요. 아파요' 라고 써 놓은 곳에서는 약간 미안해 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국 고속도로 화장실의 물내림은 점잖습니다. 비행기 화장실의 물내림 버튼은 물도 안
쓰면서 누를 때마다 굉음과 함께 변기통을 '싹쓸이' 하는데 그 앞에 서 있으면 몸도 빨려 들어 갈
것 같은 위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누를 때는 뚜껑을 꼭 닫으세요' 하는 문구가
버튼 위에 적혀 있습니다. 하기는 어느 변기든 물 내릴 때는 뚜껑을 닫고 하는 거라 합니다. 물이
튀거나 물보라가 발생 해 위생상 그렇게 해야 한다는데, 어쩌다 변기 커버에 요상한 색의 자국을
보게 되면 곧 잘 앉아서 물 내리는 버릇에 내 밑이 몹시 불만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비행기 화장실은 워낙 비좁아 어서 벗어나고 싶어집니다만 그래도 의자에 꽁꽁 묶인 근육을 풀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휴게소 화장실은 온통 바쁜 사람들뿐입니다. 손을 씻은 후 블로우 드라이어 밑에 손을 넣고
30초 정도는 느긋이 있어야 하는데 빨리빨리 근성으로 대개 시늉만 하고 나갑니다. 그리고
옷에다 적당히 물기를 닦는 사람, 손가락을 훌훌 털며 몸서리 치는 사람……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나 종이가 없는 탓에 화장실 바닥은 훨씬 청결합니다. 사실은 화장실은 들어설 때 손을
씻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중요한 무기를 다룰 손에서 세상 모든 세균을 분리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 본 후 손을 씻는 것은 당연 하겠지요. 들어 올 땐 ‘나’를 위해, 나갈 때는
‘남’을 위한 일이라고 할까요. 큰 일 볼 때 아무리 'paper work'을 잘 했다 해도 거울을 놓고 하는
게 아니니 절대 장담은 못 합니다. 고속도로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손 씻는 모습
또한 천태만상입니다. 들어갈 때 씻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아예 수도꼭지와는 인연을 끊고 시침 떼고
화장실을 나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 들 자기 나름대로 사정이 있습니다.
한 남자가 실수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 갔다가 여자가 기겁을 하고 '여기는 여자용 이예요!'
하니 이 남자 얼떨결에 지퍼를 올리면서 '이것도 여자용인데요….' 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한국 고속도로의 깨끗한 화장실은 그 옛날 1번 국도를 따라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
늘 질퍽거리는 정류장 공중변소에 까치발로 들어 가 황망히 일을 치르고 나오면서 신선한
공기가 고마웠던 불과 삼 사십 년 전 생각을 해 보면 그 기막힌 시설에 황송하기 짝 없습니다.
게다가 한참 마당을 가로 질러야 나타나는 시골 집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동지섣달
수수깡 담벽 사이로 들이치는 찬 바람에 이를 악물던 옛 생각을 하면 지금 경부 고속도로의
화장실은 천지개벽 한 겁니다.
곧 식사 하실 텐데 이 글 읽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문병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