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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神論과 有神論 2014.4.26. **
불교는 무신론의 종교요, 기독교는 유신론의 종교다. 이것이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이 차이점의 당연한 결론으로서 불교는 自力主義의 종교요, 기독교는 타력주의(他力主義)의
종교라는 명제가 생긴다.
먼저 불교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불교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무신론 위에 서는 종교다. 불교는 불타의 가르침인 동시에 사람은 누구나 다
불타(佛陀)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다 신(神)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불타는 신도 아니요, 또 신에게 권능을 부여받은 사람도 아니다.
그는 한 인간이었다. 6년의 수도(修道) 끝에 인생의 대진리를 깊이 깨달은 자가 된 것이다. 불타는 완전한 각자(覺者)다.
사람은 누구든지 진지한 수도를 하면 불타, 즉 완전한 각자가 될 수 있다. 신(神)의 은총이나 성령(聖靈)의 힘이 필요치 않다.
불타는 하나의 이상적 인간상(理想的 人間像)이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완전한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의
인격을 이루었다.
그가 깨달은 진리의 내용이 불교이거니와, 그 진리의 내용은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진리다.
'불법(佛法)에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없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불교에 의하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自己와
진리밖에 없다.
신을 믿을 필요도 없고 신의 힘을 의지할 필요도 없다. 나는 自力으로 나를 구원할 수 있고 나는 불성(佛性)을
지니기 때문에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의 자유자재경(自由自在境)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곧 부처다. 심즉불(心卽佛)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믿고 의지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무엇을 인생의
등불로 삼고
살아갈 것이냐.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발판을 어디서 구할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 석가는 자기 자신과 진리 이외에 믿고 의지할 것이 없다고 단언하였다. '내가 나의 등불이요(自燈明),
진리가 나의 등불이다(法燈明). 내가 나의 의지처요(自歸依), 진리가 나의 의지처다(法歸依)'라는 이 유명한 명제는
불교가 얼마나 자력주의의 종교인가를 웅변으로 실증한다.
석가는 운명하면서 제자들에게 최후의 말을 이렇게 말했다. '게으르지 말고 노력하라.' 그는 인생의 부단한 정진을
강조했다. 오직 자기와 진리를 믿고 쉼 없이 노력하라는 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다.'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요,
하느님이 우리의 등불'이라고 믿는 기독교의 타력주의적 신앙과 불교의 자력주의적 신앙은 종교적 자세에
있어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기독교는 유신론과 타력주의(他力主義)의 종교다.
기독교의 신은 어떠한 신인가. 파스칼은 그의 유명한 종교적 회심(回心)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의 신(神), 이삭의 신, 야곱의 신, 철학자 및 식자(識者)의 신이 아니다.' 자기가 믿는
성서의 신은 옛날 아브라함이 믿었고 이삭이 믿었고 또 야곱이 믿었던 신이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제일원인(第一原因)으로서의 신이나 형이상학적인
추상신(抽象神)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믿는 신은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유일한 인격신이다.
인간은 불타가 될 수는 있어도 신이 될 수는 없다.
불교에서는 스스로의 修道에 의한 구원과 해탈이 가능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자력주의에 의한 자기구원은
불가능하다. 내가 나를 구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구세주인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
빛은 내 속에 있다. 이것은 불교적인 인간관이다. 빛은 나의 밖에 있고 나의 위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빛에
의해서 비로소 빛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적 인간관이다.
이상에서 나는 기독교와 불교의 기본적 차이를 대비해 보았다. 불교는 고(苦)의 원리와 자각의 방법과
무신론의 입장과 자력주의를 토대로 하는 理性의 종교요, 기독교는 죄(罪)의 원리와 신앙의 방법과
유신론의 입장과 타력주의를 토대로 하는 초이성(超理性)의 종교다.
- 좋은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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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남편
어떤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10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면 내가 조금 늙은거고
50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하면 많이 늙은거다
10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하면 심각한 상태다.
이런 내용을 읽고난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어느 정도 늙었을까 궁금해져서 이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퇴근을 하면서 100미터 쯤에서 아내를 불러 보았다.
여보~~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었다.
아~마누라가 늙긴 늙었나 보다?
다시, 50미터 쯤 거리에서 아내를 다시 불렀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역시 대답이 없었다.
아~~내 마누라가 이렇게 늙었단 말인가.
또, 다시 10미터 거리에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뭐야~~~~~!
대답이 또 없다!
아!!
내 마누라가 완전히 맛이 갔구나!
탄식을 하며 집에 들어섰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측은한 마음이 든 남자가 뒤에서 아내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으며 나직히 물었다.
여보~~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 야!... 이 영감아..!!! ”
내가 수제비라고 몇번을 말했냐?"
본인 건강부터 챙기시기 바랍니다
역시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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