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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opic: 총무기피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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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총무기피
on: May 23, 20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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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들 모임에서 웃기는 얘기지만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좀 뜸해진 것 같습니다만 과 동기들은 가끔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어쩌다 제가 서울 나갈 때 이 모임과 때가 맞으면 열 일 제쳐놓고 나가 친구들 얼굴을 봐 왔습니다. 어떤 때는 모임의 총무를 맡은 친구가 저를 위해 특별히 자리를 마련하여 만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졸업 할 때 과 인원이 삼십이 안 되는 적은 숫자에다 그 동안 이미 세상을 떠난 동기, 미국에 와 있는 동기 들로 인해 만나는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총무로 수고하던 K가 갑자기 동기 모임과 ‘결별’을 선언 한 것입니다.

그 결별 사연이 실소를 자아 내기도 하지만 듣고 보면 웃을 얘기만도 아닌, 안쓰럽고 답답하며 딱하고 한심하기 짝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대학교 동기 회라는 게 워낙 적은 숫자라서 회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지난 수 십 년간 여럿이 번갈아 그저 총무라는 직책으로 수고들을 해 왔습니다.

동기들 간 유별나게 통이 크고 활달하며 사랑을 받던 영철 동기가 몇 년을 총무로 수고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공덕동에 사는 충희 동기 동기가 총무 바통을 이어 받았는데 삼 사 년 잘 하다가 이 친구 역시 심장마비로 졸지에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 육 년 전에 총무 역을 이어 받은 게 바로 K 동기인데 무난한 성격에다 친구들이 모두들 그를 좋아하는 터라서 몇 년간 별 탈없이 모임을 진행 해 왔습니다. 그러나 몇 년 하다 보니 총무 일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인지라 K는 누군가가 그것을 맡아 주기를 부탁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던 중, 한 동기가 뜬금없이 ‘우리 동기들 중 총무 맡으면 죽는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당사자가 들으면 기분 언짢을 말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 친구는 천성이 착하고, 누구를 해 칠 위인이 아닌데 엉성한 표현을 가끔 해 동기간에 웃음을 사기도 합니다만, 언중유골이라고, K가 들으면 기분이 썩 좋을 말은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K는 정말 그것에 신경을 쓰는 듯 하였으며, 시간이 흐르며 같은 생각을 품는 동기들도 한 둘 생겨난 듯 하였습니다.

그 동안 위암 수술도 하고, 어깨가 아파 고생 하는 등 잔병 치레를 하느라 고생 한 K는 총무 자리를 회피하는 동기들을 괘씸하게 생각하던 차에 아예 까놓고 이유를 말하는 한 둘로부터 그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듣고 보니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어쩐지 ‘총무’라는 책임이 자기에게 불운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K가 그저 총무 일을 하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것이, 동기 회 소관으로 백 만원 가까운 기금이 몇 년간 잔고로 남아 왔는데, K는 자기 통장에서 잠자고 있는 이 돈이 어쩌면 자기에게 별로 안 좋은 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며 그래서 틈만 있으면 동기들에게 총무 책임과 이 돈을 인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금 인계 이유가 그와 같이 석연치 못한 것이어서 선뜻 받을 친구가 나서지 않고 있어 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모여 먹으면서 써 버리지도 못하는 K의 성격이기도 하였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되어 머리끝까지 화가 난 K가 드디어는 동기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자기는 이 돈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며, 차라리 이 돈을 어디 자선단체에 희사 하겠다 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에 보내는 생각도 해 보는 모양 이었습니다.

저는 K를 워낙 좋아하고, 지난 수 십 년을 진실한 친구로 아끼고 있습니다만 작년에 이 친구 부부가 샌디아고에 일년 교육 차 와 있던 사위와 딸 가족을 방문 했을 때 저의 선약 차질로 ‘적시에’ 그의 가족을 에스코트 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겉 말로는 '괜찮다' 하기에 그런 줄 알고 일을 본 후, 일 주일이 지나 내려가겠다 전화 했더니 이 친구가 몹시 노여워하며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차례 '애걸'하다시피 하는 저를 끝까지 ‘만나 주지' 않고 이 삼 주 더 샌디아고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 가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가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기 몇을 '소집'까지 해 놓은 제가 머쓱 해 지기도 했지만 그 순한 친구가 왜 그토록 오지게 토라졌는지 가늠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저의 e-mail에도 답이 없던 차에 올 해 한국에 나와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 했으나 받지 않는 K에게 '죽기 전에 한을 풀고 가라'는 극언을 e-mail로 했더니 드디어 전화가 와 그가 왜 나에게 그토록 화가 나 있는지, 동기들과는 왜 ‘절연’을 선고 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나의 자랑을 잔뜩 해 샌디아고에 도착하자마자 같이 여행하기로 가슴 부풀어 있던 다섯 살 짜리 자기 손주 애에게 실망을 안겨 줬다는 것이 그가 화 났었던 이유였습니다. 듣고 보니 이런 저런 연고로 저나 동기들에게 화가 많이 나 있는 K를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K는 여전히 화가 가라 앉지 않았는지 서울 나온 저를 만나지는 않겠노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몇 년 전 자기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자기만을 위해 RV 로 여행을 떠나 준 것은 아직도 감사 해 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거였습니다.

동기들의 모임에서 일어난 이런 해프닝은 한마디로 참 웃기는 이야기 이지만 한 편 그저 웃어 넘길 수만도 없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마치 어쩌다 전철 안에서 붉으레 한 얼굴로 술 내음 뿜으며 고성으로 다투는 무임승차권 할아버지들을 보는 것 같은 씁쓸한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십 여 년 전에 갑자기 죽은, 제가 정말로 좋아했던 저의 동기, 영철 동기가 그립습니다. 그 친구는 LA에 와 40일 묵으면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골프만 치다 귀국 했던 적도 있습니다. 남의 일 거드는 일에 몸 안 아끼던 그 친구는 동기들 모임의 총무로 몇 년을 수고 했었지요.

우리가 지녀 온 50년 넘은 인연은 길고도 질겨 쉽게 끊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문제의 해결을 겨냥 해 돌진 하기 보다는 번잡한 곁가지들을 잘라 떨쳐 버리면서 쉽게 사는 방법에 골몰한 우리 모두가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K는 제가 포기 할 수 없는 친구인데 다만 세월이 녹녹하지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사니 아쉬울 뿐입니다.

문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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