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of Old Forums

Welcome Guest 

Show/Hide Header
Pages: [1]
Author Topic: 한식(寒食), 한국인의 ‘개자추 Complex’
sangbongle-
e

Posts: 5
Permalink
Post 한식(寒食), 한국인의 ‘개자추 Complex’
on: September 2, 2015, 16:55
Quote

한식(寒食), 한국인의 ‘개자추 Complex’

(중국, 산서성 면산. 개자추 사당)

한식(寒食)의 유래:

한식(寒食)은 동지(冬至)가 지난 후, 105일째가 되는 날인데,
대략 양력으로 4월 5일이나 6일쯤에 해당이 되고,
청명(淸明)과는 같은 날이거나 또는 하루 뒤에 있게 되기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 라는 말이 있다.
즉,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의미의 말이다.

한식에는 술 • 과일 • 떡 • 포 등등의 음식을 들고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낫으로 풀을 베거나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히기도 한다.
이것을 벌초(伐草)라고 한다.

한식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춘추시대의 진(晋)나라에 문공이란 왕자가 있었는데,
부왕과의 반목, 형제간의 암투로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라 여러 나라를 19년 동안이나 배회 하였다고 한다.
배회 때의 어느 날 아사지경(餓死之境)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신하인 개자추(介子推)가 어디서 생겼는지 고기와 나물을 섞어 만든 음식을 올렸다.
그 때, 그 음식의 출처를 알지도 못하고 먹은 문공이 나중에 알고보니,
그 고깃국은 개자추의 허벅지살 이었던 것이다.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서 임금에게 먹였다!는 의미의
‘할고담군(割股啖君)’이라는 성어(成語)는 그렇게 생기게된 것이다.

그후, 진나라의 임금이된 진문공은 신하 개자추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세월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 문공이,
면산으로 들어가서 살아가고 있는 개자추를 불렀으나
개자추는 그 면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내려오게 하기 위하여 문공은 山에다 불을 질렀으나,
그래도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었다.
문공은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 날이 되면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였단다.
그래서, 불을 피우지 못하게 되자, 따끈한 밥을 해먹을 수가 없기에...
그냥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개자추 complex’ 라는 것:

심리학 용어에 ‘개자추 complex’ 라는 것이 있다.
서양인들이 볼 때에... 동양인들- 특히 유교적인 문화에 젖은 사람들- 에게는
‘독특한 문화(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독특한 심리를 아주 간단하게
표현할 때에 ‘介子推 콤플렉스(complex)’ 라고 하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것을 알고 싶으면 ‘介子推의 중국어 발음’으로 찾아보면 될 것이다.]

아주 알기쉽게 설명을 하여보면...
『 누군가에게 섭섭하거나 억울함 또는 피해를 당했을 때에
그것을 정직하게 직접 털어놓고서 밝히거나...
아니면 합당한 복수(復讐)나 정당한 보복(報復)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려서 상대방의 자책(自責)을 끌어내거나...
아니면 타인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심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종의 자학심리(自虐心理)인 것이다.』

자아! 그 개자추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개자추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정한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자연인으로 돌아 가려는 의도에서- 그 면산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즉, 문공이 19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화려한 귀국길에 오르는 마당에,
문공의 신하들 끼리, 서로 서로, 논공행상을 따지고, 직위를 미리 점치면서,
키득거리는 모습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되었는데...
더군다나, 논공행상에서 개자추의 자리는 아에 쏙 빼놓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다못한 개자추는, 결국, 보따리 싸는 것을 모두에게 보이면서,
자기의 어머니를 들쳐 업고서, 면산을 향하여 떠나 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면산으로 들어가서 살아가고 있는
개자추를 불렀으나, 개자추는 그 면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내려오게 하기 위하여 문공은 山에다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山에서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었단다.
(문공은 불에 타죽은 개자추를 기념하고자, 그날이 되면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결국 그 문공의 동정심을 얻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개자추의 행동처럼...
자기의 의사나 주장이나 불평 불만을 이렇게 자학(自虐)으로 처리하는 방법,
그러한 내향적이고 자학적인 행동이
동양인들에게서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또한 커다란 애통함과 추앙심까지
얻을 수 있지만...
이성적이면서 정정당당하게 외향적인 방식을 취하는 서양인들에게는
어리둥절하고 또한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어색한 방법일 뿐이다!

이토록 이상스럽기만한 자학적인 행위가 비난을 받아야 할 또다른 이유는,
바로, ‘나 면산으로 갑니다!’ 하면서... 크게 홍보를 하고 광고를 한 짓이다!
[개자추는 면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웃들에게 ‘맛이나 보라!’며 떡을 돌리면서,
하직 인사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떡을 얻어 먹은 이웃이 문공에게 개자추의 소식을 알렸고,
그때서야 허벅지 살을 얻어 먹은 생각이 난 문공이 그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개자추의 행위는 ‘제발 나를 말리고, 붙잡아 달라!’ 라는,
애원(哀願)의 제스쳐(gesture)인 것이다,
[만약에 말이다, 개자추가 정말로 명리(名利)를 탐(貪)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보따리를 싸는 것, 면산으로 떠나가는 것을,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겠느냐? 이다.
알고보면, 아주 치사하고 또한 졸열하지 않은가?
유행가에도 있지 않은가? “떠날 때는 말없이~” 라고.]

한국인의 ‘介子推 콤플렉스(complex)’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에, 이러한 심리-
개자추 Complex-는 중국인 보다도 한국인에게 더 강하게 배어 있는 것 같다.

자아! 그 점에 대하여 좀더 깊이 관조(觀照)하여 보기로 할까?

자기 스스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서...
즉 그렇게 함으로써, 야기되는 남들의 공감과 동정심에 의존하는
일종의 응석을 부리는 심리는... 한국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옛날의 선비라는 자들이 정사(政事)나 파당(派黨)에 자기의 뜻이 먹혀들지 않게되면
스스로 물러나고... 유배길에 오르게 되면 스스로 가시덤불 속에 들어앉거나,
갓이나 옷을 풀어 헤치거나 찢고, 밥상을 걷어 차거나 음식을 전폐하면서...
자학하는 행동들이 바로 그러한 심리가 아니던가?

`밥을 안먹고 심통 부리기' 라는 말이 있듯이...
먹으라고 차려주는 밥을 먹지 않는 행위를 통하여,
자기의 불편한 심기(心氣)나, 그 어떤 것에 대한 항의를,
자학적인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흔하고 흔한 싸움질을 할 때도
정정당당하게 서로의 힘을 겨루거나 또는 선공(先攻)할 생각은 안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라고, 하지를 않나...
비겁하게 얼굴이나 대가리를 들이 밀면서 `때려 봐! 때려 보라구!' 하면서
먼저 피해자가 되겠다!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질 않나...
더 나아가서 스스로 자해(自害)를 하지 않나...

[이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나의 경험담이 되는데... 2001 ~ 2002년에
나는 한국에 있는 모(某) 문학 사이트(site)에 “철학자가 본 종교” 라는 칼럼으로,
내 글을 기고 하였던 적이 있다.
그 때, 철학자가 ‘철학적으로 바라본 기독교에 대한 논리적인 내용의 글’이 실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기독교에 미친 사람들이 달겨들어, 온갖, 댓글을 달았는데...
그 중에, 자칭 시인(詩人)이라고 하는 김某 라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올리는 자기의 댓글이
전혀 효력를 발휘하지 못하고 웃음꺼리가 되자... 나중에는, 이렇게 나왔으니...
“저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고, 학교를 제대로 못다녀서 배운 것도 없으며,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니까...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해 볼테면 끝까지 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계속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또한 가진 것도 없다!’는 자학성 고백을- 마치 전과자들이
‘나 감옥에 다섯번 다녀온 별 다섯 달린 놈이야!’ 라고 내세우며 협박을 하듯이-
비장의 무기(武器)로 들고 나와서, 기어오르는 못된 짓을 하는 것이었다. 에효!]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짓들을
한국인의 ‘개자추 컴플렉스’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사족(蛇足):

끝으로, 이곳, 美國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를 한마디 해야만 되겠다.
이따금,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인종차별 운운하면서...
‘인종차별을 받았다!’” 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내가 볼 때에, 그 사람들이야 말로 “Racial discrimination” 이라는 영어 조차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또한 그 의미도 모르는 수준의 사람들일 뿐이다!
내가 볼 때에는 ‘오히려 영어 조차도 할줄 모르기에...
사실은 더 많은 덕을 보고 있는 주제에...’ 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아무 것이나 자기에게 불리(不利)하다고 생각이 들면,
무조건, 인종차별이라고 시끄럽게 떠들고, 폭력 시위(示威)나 일삼고 있는
그런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못된 버릇을, 그대로 흉내내어, 똑같이 써먹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나 아닐까?

~ Sang Bong Lee, Ph. D
Dr. Lee’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Closing Arguments

Image

Pages: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