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이 박사가 56년전에 12 년에 걸친 독재 권좌에서 물러나고 하와이로 간 것을 한국에서는 그 분이 “자진하야”하고 “자진 망명”했다는 신화를 창조하고 지금까지 억지를 부리고 있으나, 필자가 최초로 4.19 당시 재한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부대사 마샬 그린 이 외교관 회고 면담록에서 이 박사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리를 물러났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박사가 물러가기 6개월 전에 이미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이 박사와 가까운 미네소타 출신 져드 의원 (공화) 을 비밀 특사로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서 젊은 후계자를 양성해서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는 우정어린 충고를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4.19 당시 현지 미국 책임자 (매카나기 대사) 의 의사 표시가 바로 미국 정부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러나게 된 것이라고 답한 것을 알아내서, 자진 하야의 허구성을 각종 매체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비밀 특사 파견은 문자 그대로 비밀이므로 미국 외교 문서에는 전혀 비치지 않아서 먀살 그린의 증언과 관련한 더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려했는데, 첫번째 소득은 당시 주한 미 대사관 서기관이었든 윌리암 와츠의 회고 면담록에서 그가 져드 의원을 경무대 (현 청와대)로 이 승만 대통령에게 안내했다는 증언이 있어서 져드 의원이 1959년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필자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져드 의원이 이 박사 면담 후에 반드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면담 결과를 보고했을 것이고 미국내 어디엔가에 있을 것으로 믿고 그 보고서를 발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했다. 우선 첫번째 대상은 아이젠하워 기념 도서관이었다. 여러번 그곳을 훌터 보았으나, 그 곳엔 없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실망하지 않고 틈이 나는대로 발굴 작업을 계속해서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 보고서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1)
[/u]특사를 보내게된 배경[u]
그러면, 먼저 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이 박사에게 비밀 특사를 보내게 됐는지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번 째로는 이 승만 박사가 “북진 통일”을 주장해서 미국을 세계 대전 (제3차 대전) 으로 끌어 들이려 하는데 식상해했다.
제 411 차 (미국) 국가 안전 보장 위원회 ( NSC ) 회의록 (1959년 6월 25일)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한국군의 단독 행동을 미군/유엔군 측이 얼마나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한국에서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렘니처 대장 (당시 미 육군 참모 총장) 이 현재로서는 한국군의 단독 행동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한국군이 유류와 탄약 공급을 미군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례적인 수량 이상을 요구하면 금방 이상 행위를 파악하게된다.)
그러나, 아이크는 그말만 듣고 안심을 하지 않고, 이 박사의 단독 행위 (북진) 낌새만 보이드라도, 이 박사와 그의 정부를 제거하고 뿐만 아니라, 단독 행위가 포착되는 즉시 한미 방위 조약을 폐기시킨다고 단언했다.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조인되고도 6년이 지난 그 때까지 계속된 이 박사의 “북진” 잠꼬대에 얼마나 화가나 있었으면, 이 박사의 즉각적 제거와 더불어 “한미 동맹” 파기라는 극언까지 했겠는가?
둘째로는, 이 박사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독재로 치닫고, 번번히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24 파동”을 통해 소급법까지 강제로 통과시켜서 그와 져드 의원이 이박사에게 비민주적 행위를 통박했으며, 정적인 조봉암 선생을 미국의 거듭된 사형 집행 면제 권유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사형을 집행해서 미국의 이승만 정권 옹호에대한 전세계의 비난을 뒤집어 쓰게되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미국 CIA 와 미대사의 이박사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 상태와 당시 이 박사의 통치 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이 박사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먼저 CIA 보고서 ( 1959년 8월 1일자) 는 이 박사가 1959년 5월 하순부터 노망기가 심화되었고 그래서 이 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국정 현황을 파악해서 운영하지 못하고 박찬일 비서가 프란체스카 여사와 상의해서 결정해 나간다는 ”사실상 이 박사 유고” 라는 점을 지적했고, 이에 따라 다울링 대사에게 그 보고서를 전달하고 내용을 확인하라는 훈령을 보냈다.
다울링 대사의 보고서 (1959년 8월 15일자) 역시 CIA 보고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을 올렸다. 현지 CIA 와 대사의 보고가 당시 대한민국호 의 선장이 유고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박사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져드 하원의원을 친우의 입장에서 이 박사에게 우정어린 충고를 하는 형식을 빌려서 사임을 종용하도록 그를 비밀 특사로 보내게 된 것이다.
보고서 내역
제목 : 이 승만 대통령과의 대담 주요 부분 기록
장소: 경무대 날짜: 1959 년 10월 27일
보고자: 월터 져드
이 보고서에는 수신자가 명시 되어 있지 않으나, 그를 파견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겠고 서울의 미대사관 전송시설을 활용하여 국무부로 보내서 그곳에서 백악관으로 직송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 크기는 편지지 크기 (Letter Size 8 1/2 X 11) 2 페이지 1/8 쯤 되며,
첫 페이지는 두 사람 사이의 정담, 그리고 미국의 대한 원 조 삭감, 미국의 대일 정책등에 의견을 나누고, 첫 페이지 말미 부터 본론을 다뤘다.
져드: 이 박사가 “Mr. Korea” 로 오래도록 알려져 왔는데, 만일 당신이 은퇴하거나,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경우에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길까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데 그런 경우에 대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또는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적격자로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읍니까?
이: 자유당이 단합되어 있어서 저의 정책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읍니다. 자유당은 과거에도 저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든 것 처럼 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것입니다.
져드: 당신은 4선에 도전할 계획입니까?
이 :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내홍이 심하여 약화되어 있읍니다. 그 점은 매우 불행한 사실이어서 제가 좀 돕고 싶은 마음도 있읍니다만, 제가 그런 쪽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곡해될 염려가 많습니다 ( 이 점에관해 무엇을 의중에 두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읍니다.)
자유당은 강력히 단합되어 있어서 “비록 제가 오늘 저녁에 세상을 떠난다해도 우리 나라가 아주 안전할 것으로” 제가 확신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제가 예정했든 말을 꺼낼 챈스가 생겼다 싶어서
져드: 이 박사 말씀처럼, 민주당내 균열이 커서 자유당이 선거에서 쉽게 이길 수 있다면, 이 박사가 돌아가셔도 자유당이 굳게 단합해서 이 박사의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4선에 굳이 나서실 필요가 있을까요? 나라는 그대로 바로 나갈텐대요. 즉 이박사의 후계자들이 혹시 예정된 길에서 벗어날 경우에, 이 박사가 바른 길을 잡아 주실 수 있어서그들이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지 않겠읍니까?
이: 그 들이 벗어난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져드: 그들이 물논, 의도적으로, 벗어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이 박사와 같은 역사적 거목이 타계하면 큰 진공이 생기고 추종자들 사이에 새로운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지도자가 살아 계신다면 어떤 조처를 취할지에 대해서 오래지 않아서 의견이 갈라지는 경우를 역사상 자주 보게됩니다. 그렇게 되면, 분파가 생기기 마련이고, 민중들은 앞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국기가 흔들리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요.
요컨데, 모든 사람들이 이 박사께서 돌아 가신 후에라도 모든 일들이 다들 잘 돌아갈 줄로 희망합니다. 그러나, 살아 계시는 동안에 (후계자가 ) 시행해 나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만일 박사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후계자에 의해 잘 돌아갈 것으로 믿으신다면, 살아 계실 동안에 후계자에 의해 아주 잘 돌아 가지 않겠읍니까?
그런데, 우연히라도, 잘 돌아가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 박사가 “원로 정지인” 또는 “존경스러운 국부”로서 그들을 깨우쳐주고 인도해주실수 있지 않겠읍니까?
이 박사님의 영향력이 막대하므로 감히 어느 정부라도 각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겠읍니까?
이 박사께서 그 무엇보다 조국애를 항상 앞세웠읍니다. 그렇다면,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현재 나라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그래서 여생을 가장 값지게 보내시는게 어떨까요?
*** 아마도, 이런 말을 통해서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아이디어를 심어주고 자라게했다고 생각은하지만, 글세요, 아주 낙관할만큼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유당측의 부통령 후보에 대해서 물었지만 이 박사는 자진해서 응답을하지 않아서, 이 기붕의 건강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들었다니까, 이 박사는 (이 기붕의) 다리에 신경이 문제가 있으나 정신은 말짱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저의 날을 세운 제의에 조금도 분노하는 기색이 없었고, 한국까지 찾아와준데 따뜻한 감사를 표하고, 다음에 되도록 빨리 찾아오면 그 때엔 진해에가서 프란체스카 여사랑 셋이서 일주일을 같이 보내면서 중국 철학을 논해보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마지막 장 (3 페이지)에선그 다음날 점심을 초대 받아서 이 박사와 프란체스카 여사와 친근한 담론을 나눈 것을 적었는데, 이 박사가 사전 예고 없이 어느 절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있던 많은 민중들이 그에게 모여들어 존경을 표했다는 예기를 세번씩이나 한 점을 알아차린 그는 이 박사에게 사람들이 후버나 트루만이 대통령직을 떠난 다음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전직 대통령들)에게 애정을 표한 것 처럼, 이 대통령에게도 현직일 때보다 은퇴한 다음에 더 많은 영향력과 애정이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경우 이번 제2기 때에 첫번 임기 때보다 더 많이 신임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다음 번엔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인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 기회에 이 박사에게 퇴임할 것을 다시 한번 은근히 권고했다.)
보고서 가운데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박사가 부통령 후보자 질문에 자진해서 답하기를 꺼렸다는 점이다. 이 박사는 이 기붕의 건강 상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기붕 당시 국회 의장은 걷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VIP들은 미 대사관에서 중요한 한국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이 박사에게는 사실상 불구자이고 속된 말로 "병신"인 이기붕을 후계자로 내세운다는 것이 면목이없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 박사는 명예롭게 물러갈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를 웃으며 넘겼기 때문에 불과 6개월 후에 권좌에서 축출당하고, 하와이 교포들이 보낸 전세기가 아니라 미국 정부 CIA 운용 비행기에 실려서 미국으로 압송당했다.
그러므로 자진 하야가 아니라 권좌에서 퇴출당하고, 망명이 아니라, 이조 말엽에 대원군이 청 나라에 잡혀 갔듯이 그가 그렇게 "빽"으로 믿고 설쳤던 미국으로 도루아미타불이되어 되돌아갔다. (2)
각주 1: 이 보고서는 후버 연구소의 Walter Judd Collection 가운데에서 찾아냈다.
각주 2: 이 보고서 발표로 더 이상 “자진 하야” 낭설이 없어지기 바란다.
각주 3: "이 승만 박사가 몰락의 길을 신나게 달렸다 (가제) 연재 예고" 를 통해서 알려 드린 바와 같이 이번 기사를 위시해서 계속하여 여러 동문들께 지금까지 왜곡되거나 은폐된, 즉 잘못 아셨든 사실, 또는 전혀 듣지도 못했든 사실을 차근 차근 전해드리려합니다. 걸기대 < Stay Tuned>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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