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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Topic: 용산 기지 공원 조성 계획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나보다
tedd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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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용산 기지 공원 조성 계획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나보다
on: November 3, 201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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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기지 공원 조성 계획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나보다

용산의 외국군 주둔은 왜군의 1904년보다

22년 전 청군 임오군란 (1882년)진압 위해 진주

해방후 미군 진주후 접수

북한 주둔 중국군은 1958년 철수

미군은 용산을 떠나도 평택에서 영구주둔 계획

이러고도 자주 독립국 내세울 수 있을까?

고교 서양사 선생님 드골의 미군 축출 전하셔

오늘 본국 매체는 지금까지 우리 본국 땅이었지만 우리가 자유로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었든 “금단의 땅”인 미8군 주둔중인 “사우스 포스트”의 미군이 새로 지은 평택으로 완전히 이전하게되면 뉴욕의 Central Park 와 같은 국립 공원을 만들어 서울 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하며 11월 2일부터 연말까지 6회에 걸쳐서 버스로 경내를 둘러보게한다고 한다.

본국의 젊은 언론인들은 역사 인식이 부족하고 연구가 미흡해서 그 땅이 일제에 의해 1904년에 빼앗겻다고 하여 114년 간 격리되었다고하지만, 그보다 22년 먼저인 1882년에 조선에서 일어난 임오군란을 진압해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들어와서 반란을 진압하고 그 때부터 용산 땅에 진주하고 있었다.

대원군이 청군 위문차 방문하자 그를 납치하여 천진에 억류하였다. 정국을 어지럽힌 괘심죄가 그 이유였다.

이 사건은 그 로부터 78년 이후에 일어난 ‘국부’ 이승만의 하와이 납치의 전조로 납치 주동자 마샬 그린 (Marshall Green) 에 따르면 , 그 (이승만) 가 미국의 강권에 의해 대통령직을 사직하고도 이화장에 있으면서 권토중래하여 정권을 재탈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서 이를 차단하려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주 1)

그리고, 1894년 청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용산의 청군을 밀어내고 그자리를 그대로 점유하였다. 그러다 1904년에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 제12사단을 주둔시키고 그곳에 “조선주차 일본군 사령부”를 설치하였고, 한일 의정서에 의거하여 380만 평방 제곱 미터를 강제 수용하였다.

태평양 전쟁 끝에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면서 (1945년 9월) 미군은 일본군 기지를 그대로 접수해서 사용하였다. 정부 수립후에 1949년에 미군은 철수하였으나, 용산 기지에는 미국 군사고문단 (약500명) 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한국 동란 (Korean War) 이 일어나서 미군등 유엔군이 참전하고, 북한측으로 중국군이 참전하였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조약이 체결되었다. 그후 외국군들은 서서히 한국에서 철군하였는데, 휴전 당시 북한에는 중국군 150만명이 있었으나, 1958년 2월 19일 전원 철군을 발표하였다.

남한에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2만 8천 5백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만 4천명이라고한다.) 현재 북미간에 “비핵화 협상을 진행중이지만, 미국은 그들의 군대를 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용산과 전방에 있는 미군은 전원 평택에 “호화로운” 영구 진지를 지어서 옮기는 것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머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승만 숭배자들은”한미 동맹” 을 그가 확보했다고 그의 제일가는 공로로 치켜 새우고 있으나, 미국은 이승만이 아닌 누가 (대통령으로) 있었어도 조약을 체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국가 이익에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1949년에 소련이 북한에서 먼저 철군하자 더 오래 있고 싶었으나, 국제 여론 때문에 철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 이후 미군이 아직도 한반도에서 밍거적거리는 것은 한미동맹에 의거해 주재국의 초청으로 와서 있다는 멋진 이유를 댈 수 있다.

바보들은 동맹 조약이 없었었지만 미국은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즉, 미국은 조약 유무에 상관 없이 언제나 국가 이익에 따라 참전이나, 철군을 결정하고, 이제는 동맹조약이 있어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오래도록 주둔시키고 있을 것이다.

--- 마르고 닳도록 ---

사족으로, 필자가 고2때 (1958 년)서양사 은사께서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미군을 프랑스에서 축출시킨 사실을 설명하시면서 제2차 대전 해방군인 미군이 전후 너무 오래 주둔해 있다고 모조리 축출해서 나토 본부가 파리에서 벨기에의 브러셀로 옮겨갔다고 알려주셨다. 우리 교장 선생님께서 훌륭한 선생님들을 스카웃해서 다른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사실을 가르치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필자 주

주 1 : 이박사는 내가 하와이로 축출했다 그린 증언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59910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 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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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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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Re: 용산 기지 공원 조성 계획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나보다
on: November 4, 201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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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럼 에 도 불 구 하 고...........

용산기지가 그런 긴 역사를 안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랍습니다. 흥미 있는 용산기지의 기록을 읽고 나니 지난 세월 착잡한 마음으로 지나치던 서울 안의 '딴 나라' 용산기지가 세기에 걸쳐 외세에 침탈되고 외세에 의존하던 대한민국의 청사진이었구나 하는 씁쓸함과, 그나마 파수 대 역할을 해 오늘의 풍요가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불편한 진실’에 말문이 막히기도 합니다.

온 나라들의 형님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이 이제는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미국 제일주의로 변화되어가고는 있지만 평택의 미군기지는 아직도 한반도의 안보에 큰 몫을 하고 있는중에, 쉬 제거 될 것 같지 않은 북의 핵을 상대로 한반도에 힘의 균형’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나라 간 힘의 균형은 평화의 충분조건이기도 합니다. 처절한 육이오 동란과 북의 끊임없는 신뢰상실 역사속에서 평택 기지가 우선은 안고 살아야 하는 응어리 아닌가 합니다.

궁극의 목표인 ‘자주독립’을 말하고 ‘우리끼리의, 우리만의 민족 통일’에 솔깃해질 여유가 없는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불행일 뿐입니다.

전작권을 반납 하는 일이 벌어져도 평택 기지는 철수 않겠다는 엊그제 미국 발표를 듣고 오른쪽은 한시름 놓고 왼쪽은 못마땅 해 하는 와중에 유구무언의 시름이 깊어집니다.

그러면서 이 겨울이 가면 봄은 또 찾아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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