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옥스포드 대학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은 컴퓨터화로 인해 702개 직군이 각각 사라질 확률을 예측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미국에서 고용의 47%가 20년 내에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부정적인 내용에 촛첨을 맞추었고, 지금도 AI와 관련된 성과가 보고될 때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여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일례로, 뉴스위크는 2018년 “인간보다 글을 잘 읽을 수 있는 로봇으로 인해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 고 보도했는데 이는 로봇 독해력의 작은부분에 대한 테스트 성과를 과도하게 포장한 기사였다.

AI로 인해 직업이 사라진다는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기술이 향상되어 생산성이 증가할 경우 인간의 전문지식, 판단력, 창의성의 중요성도 함께 증가한다. 인간의 업무에는 자동화할 수 있는 직무이외에 다양한 기술과 전문 지식, 직관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 중 일부를 자동화할 경우 많은 경우 나머지 부분의 가치가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I 시스템이 MRI 이미지를 분석하여 종양을 감지할 수 있게 될 경우 방사선 전문의가 사라지기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전문지식과 직관이 필요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많다.

둘째, 기술이 보급되는 속도는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에 비례한다. 즉, 기술의 발전은 일종의 자기조절 메커니즘을 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기술은 1960~1970년대에 등장했지만 소프트웨어, 하드웨어가 저렴해지고 사람들이 컴퓨터관련 기술에 익숙해진 1990 년대에 이르러서야 널리 보급되었다. 기술의 전파속도와 인간의 적응력이 모두 빨라지고 있긴 하지만, AI 기술 역시 인구의 상당수가 이를 활용할 수 있을 때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셋째, AI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를 추측하는 것은 용이한 반면, 새로 나타날 직업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량의 보급으로 인해 운전기사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 외에 어떤 직업이 생겨날까? 안면인식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감지하는 AI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테슬라와 같은 부분자율주행차에 내재된 AI 시스템은 운전자의 졸음, 부주의 등이 감지될 경우 음악을 틀거나 에어컨을 작동하여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 운전자가 필요없는 완전자율주행택시의 경우, AI 시스템은 탑승자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여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즉, ‘운전’이라는 측면에 촛점을 맞춘 기존의 모델 대신 이동성(mobility)이라는 ‘경험’에 촛점을 맞춘 새로운 비지니스모델이 필요하고 자동차 업계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직업이 나타날 것이다.

넷째, 현존하는 AI 기술에 내재된 여러가지 문제점들도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 먹었다. 왜냐하면 포식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 포식자는 누구인가? 이런 테스트를 위노그래드 스키마(Winograd schema)라고 부르는데 자연어를 이해하는 AI의 성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른바 적대적 공격(adversarial attack)도 문제로 남아 있다. 일례로, 버스 사진에 인간은 인식할 수 없는 정도의 미세한 변형을 가하면 AI 는 버스를 타조로 인식한다. 이러한 공격이 자율주행차, 의료사진 등에 가해질 경우 발생할 안전성 문제를 상상해 보라.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대량 실업사태로 이어진 사례가 없듯이 AI 역시 기존의 직업을 없애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AI 시대의 청년들은 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여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직업을 찾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낙오되는 사람들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분배,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는 절실하지만, 스티커가 붙어 있는 교통표지판을 음식이 들어 있는 냉장고로 인식하고, 문장에서 ‘그것’이 지칭하는 명사가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AI가 조만간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은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면 공해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고 세상에는 언제나 수많은 문제가 존재할 것이다. AI로 인해 새롭게 변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일이 없어진 세상을 그리는 상상력이 내게는 아직 부족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