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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셸 스틸 전 연방하원의원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했다는 소식은 한미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년 3개월 이상 공석이던 자리에 정치인 출신, 그것도 한국계 인사가 낙점됐다는 점에서 상징성과 기대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감정적 환영과는 별개로 이 인사가 갖는 실제적 의미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셸 스틸 지명의 1차적 의미는 ‘상징성’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실향민의 딸로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하고,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주해 정치권에서 커리어를 쌓은 그의 이력은 한미 양국을 잇는 문화적 가교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한국어·일본어·영어 3개 국어 구사 능력과 정서적 이해는 외교 현장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California State Board of Equalization 위원으로서의 경력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재정·세무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단순히 ‘우호적 신호’로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의 대사 임명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정치적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미셸 스틸은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진영과 정치적 코드가 맞는 인물로 평가받아 왔으며, 이는 곧 이번 지명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즉, 한국을 배려한 인사라기보다 미국의 정책 방향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카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실제 한미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먼저 안보 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이미 구조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주한미군과 확장억제 체계는 특정 인물에 따라 흔들릴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와 같은 이슈는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스틸의 개인적 관심사이자 공화당 외교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스틸 전 의원은 의회 활동 기간 내내 북한 인권 문제의 강경한 옹호자였다. 그녀는 “나의 부모는 북한에서 사회주의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일구었다. 나는 사회주의의 위협을 잘 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중국 내 탈북민 보호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법안을 주도했다. 2024년에는 탈북민 망명 보호 강화와 중국 내 탈북민 인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을 거듭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은 앞으로 주한대사로서 북한 인권 문제를 한미 협의 테이블에 보다 구체적으로 올릴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경제다. 향후 한미 관계는 안보보다 경제에서 더 많은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배터리, 공급망 재편 등 핵심 산업에서 미국은 이미 ‘자국 중심 재편’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무·재정 전문가 출신 대사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역 불균형, 투자 조건, 산업 정책 등에서 한국에 대한 요구와 압박이 보다 구체적이고 정교해질 가능성이 높다. 스틸의 재정 전문성은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한국 산업 현장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중국 정책 역시 가장 큰 변수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중국 견제에 대한 보다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그 선택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셸 스틸 체제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보다 직설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그녀는 의회에서 중국 관련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다. 캘리포니아 항구와 대학,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 잠재적 영향력을 폭로하고, 대만 민주주의 지원 법안과 중국 연계 대학에 대한 연방 자금 제한 조치를 주도했으며, “아시아 국가들의 자유를 위해 중국에 맞서 싸우자”고 공개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과 입법 행보는 앞으로 주한대사로서 한국 정부에 중국 견제 동참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한국 외교의 전략적 유연성을 시험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외교 스타일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직업 외교관이 조율과 균형을 중시한다면, 정치인 출신 대사는 메시지와 속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과 압박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때로는 협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되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마찰을 키울 가능성도 내포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적 외교’ 스타일과 맞물리면 한미 간 소통 속도는 빨라지되, 한국 측의 사전 조율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번 인사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도전’이다. 한국계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낙관하기에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한미동맹은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움직이며, 미국의 기본 기조는 언제나 자국 우선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번 변화를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스틸 대사의 재정 전문성을 활용한 선제적 협상 채널을 구축하고, 중국 관련 압박에 대해서는 국익 중심의 명확한 원칙을 미리 세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대를 경계하는 냉정함과 동시에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적 사고다. 감정적 환영을 넘어 냉정한 분석과 치밀한 대응이 뒤따를 때, 이번 인사는 비로소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타운뉴스 2026 4 13 1624호 안창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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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문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