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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he self is not, lov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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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 mul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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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he self is not, love is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연인이나 가족에게는 물론, 친구와 공동체, 심지어 국가와 어떤 신념이나 가치에 대해서도 사랑을 운운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한 자리에는 종종 상처와 실망, 소유와 갈등이 뒤따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왜 두려움도 함께 커지는가.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평생 이 문제를 탐구한 사상가였다. 그는 사랑을 감정의 고양이나 관계의 기술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자아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의외로 현실적인 질문이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기대와 기억, 비교가 숨어 있는가.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나의 경험과 상처, 욕망 등을 통해 해석한다. 상대의 말보다 내가 가진 이미지가 먼저 반응하고, 현재의 관계보다 과거의 기억이 더 크게 작동한다. 사랑의 이름 아래 관계가 점점 피로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 자체보다 ‘나’라는 중심이 관계를 지배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의 갈등이 바로 이 자아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자아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다. 기억과 경험, 인정받고 싶은 욕구,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심리적 구조다. 이 구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비교하며, 판단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와 긴장이 생겨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자아를 억누르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애쓰는 방식 속에 또 다른 자아의 욕망이 숨어 있다고 보았다. 질투를 없애려는 노력조차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움직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결보다 ‘관찰’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질투가 일어나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대개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는 내 감정을 서둘러 고치려 하지 말고, 조용히 바라보라고 말한다. 왜 불안이 생겼는지, 무엇이 상처받았는지, 어떤 기억이 현재를 왜곡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라는 것이다. 판단 없이 바라보는 순간, 감정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억압할 때는 더 격해지던 감정이, 깊이 이해될 때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

그가 말한 사랑은 바로 이런 이해의 고요함 속에서 나타난다. 두려움과 소유의 욕망이 약해질수록, 인간은 상대를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게 된다. 그때 비로소 관계는 지배와 의존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진다. 사랑은 상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존재하도록 허용할 때 형성된다.

이 통찰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타인의 삶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 이미지 속 행복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한다. 관계조차 효율과 만족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얼마나 나를 충족시키는지가 우선이 되고, 기대가 무너지면 관계도 쉽게 흔들린다. 사랑이 점점 교환과 소비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상대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만든 해석을 보고 있는가. 관계의 많은 갈등은 실제 상대보다,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대화는 닫히고, 이해보다 판단이 우선한다. 그러나 자기 생각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관계는 다시 자유를 얻는다.

결국 사랑은 어떤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비교, 소유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깊이 이해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삶의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사랑은 획득의 문제가 아니라 비움의 문제다. 무엇을 더 가지느냐보다 무엇을 내려놓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Where the self is not, love is.”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이상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만큼만 사랑할 수 있다는 통찰에 가깝다. 사랑은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깨어 있음이 널리 퍼지고 깊어질수록, 개인의 관계를 넘어 가족, 공동체와 사회 역시 사랑이 넘치는 밝고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타운뉴스 칼럼   2026.5 안창해 발행인


 
Posted : 16/05/2026 9:3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