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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활짝핀 장미를 찍고, 예쁠 때 사랑을 고백하고, 빛나던 때를 기억한다.
시든 장미 앞에서는 입을 다문다. 버려야 할 것, 치워야 할 것, 한물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영상 속 장미는 시들었으나 떠나지 않았다.
꽃잎은 바짝 말라 종이처럼 구겨졌다. 물기를 잃어 갈색으로 변했고, 곧 부스러질 듯하다.
한때는 부드러웠을 꽃잎의 결이 이제는 쭈글쭈글해졌다. 갈색 씨방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위한 장식이 아니다. 다음생을 위한 단단한 결심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배경이다. 뒤편의 풀잎들은 싱싱하게 살아 있다. 선명한 초록, 물기를 머금은 잎맥. 삶은 저렇게 무심하게 계속된다.
왕성한 생의 한복판에서 이 장미들은 시간을 거스르듯 멈춰 서 있다.
그래서 더 외롭고, 그래서 더 고귀하다. 피는 것은 본능이지만, 시드는 것은 태도다.
활짝 필 때는 누구나 본다. 햇빛과 물과 박수갈채를 받는다. 하지만 시들고 나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때 꽃은 스스로 자신을 결정한다. 떨어져 내릴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붙잡을 것인가.
영상 속 장미들은 후자를 택했다. 구겨졌으나 무너지지 않았고, 말랐으나 가벼워지지 않았다.
시듦은 실패가 아니다. 완성이다. 우리는 시들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주름을 가리고, 지친 티를 감추고, 끝없이 피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은 말한다. 모든 피어남은 시듦을 전제로 한다고. 시듦이 있기에 피어남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영상 속 시든 장미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예뻐서가 아니다. 시듦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담담함과 다 살고난 후의 모습이 아름답다.
시듦의 미학이란, 사라짐의 미학이 아니라 남아있음의 미학이다.
Aug 14, 2026
안창해(安昌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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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에 실려 보내온 시든 장미꽃송이 사진과 짧은 에쎄이를 읽고 감상의 깊이를 일깬
귀한 이 글 옮깁니다. 옮긴이 문병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