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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2년(1959년). 9. 5. 토요일 고2
기하노트 잊어버리다. 누구의 짓일까? 생각 할 수록 신경질 난다. 시험 때가 되니까 남의 노트를 훔쳐 간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손의 피가 통해 있는 노트를 가져 갔다는 것. 나는 불쾌했다. 나의 성스런 백지 위에 그려진 몇 글자가 한낱 도둑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것이 그지없이 불쾌하다. 이런 무질서. 이런 환멸의 테두리에서 나는 A.B.C.D를 배웠고 도덕윤리를 배워 왔다. 기적이다. 확실히 기적이다. 보자. 어떻게든 노트만은 찾아 내리라!
작은형이 시골 가는데 시계 빌려 달라 하기에 거절했다. 시계는 부대에서 잃어버렸다 한다. 어째서 시계를 잊는 단 말인가? 아버님께서는 그것을 그래도 돈 들여 고쳐 논 것이 아니냐?
그러나 시계를 빌려주지 않은 나는 조금 께름했다.
저녁에 임_과 천_이 찾아왔다. 관이는 찾아오니 반갑다. 놀다가 갔다.
나는 오늘도 고민속에 하루를 보냈다. 나 자신 점점 지하로 굴러 떨어져 들어 가는 것 같다. 나의 주위에 나에게 만족을 줄만한 게 뭐 있느냐? 며칠 후에 시험 본다는 게 나를 괴롭힌다. 학교에선 두시간 수업밖에 안 한다. 돈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특출 나게 잘난 게 없다. 절망이다. 자. 이제 푹 파묻히자. 앞으로 나의 생활
- 될수있는 한 외출을 금한다
-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선 책상머리에 앉는다.
(독서 건 뭐 건 책상머리에 달라붙는다).
- 시험 후는 삼위일체 영어 참고서에 돌입한다.
- 친구 들과의 시간을 되도록이면 줄인다.
- 밤 늦게까지 공부한다(공부할 게 없으면 앉아 있기라도 함)
- 겸손해 질것.
- 동무들과 어울리되 바보같이 굴 것.
- 학관에 다닐 것.
- 독서에 치중한다.
나라는 하나의 인간은 참 기막힌 존재다. 기막히다는 게 나에겐 큰 “폐물”을 의미한다. 내가 뭐 잘난 게 있느냐? 나는 이제 파묻혀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파묻혀야 한다.
4292년(1959년) 9. 6. 일요일
일요일이다. 즐거운 일요일이다. 그러나 나에겐 초조의 일요일이다. 안타까움과 무서움이 겹쳐진 일요일이다.
엊저녁엔 작은형 친구가 자고서 아침에 갔다. 이름은 종_이라 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기의 과거를 숨김없이 털어 놓았다. 자기의 너무나 조숙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고2때 여자 땜에 퇴학 맞았다 한다. 그후는 공부를 안 했다 한다. 그러나 무식하지 않았다. 문학에 취미가 있다 한다. 그는 나에게 한편의 시를 써 주었다. 부대에서 맞고서 쓴 것이라 한다
“비애”
자신도 모를 우울감에 사로 잡힌다.
가시밭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 같이
세찬 파도 속에 이슬로 사라지려는 배와 같이
불붙는 가옥에서 잠자는 비 같이
달리는 열차의 난간에 매달리어
힘이 진하면 떨어져 사라질 운명과 같이
내 마음도 고독하고 슲다
4292.7.20.
이 시를 읽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이 사람이 시를 질만한 시적 기술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내 좁은 견해로는 없다고 본다.
아주 없다고 본다. 왜냐? 소재가 너무 낡다. 옛날 연극의 대사에 나오는 싸구려 문구와 같다. 그가 어리다면 모르다. 그러나 지금 20을 넘은 그가 이렇게 쓰다니. 시 자체가 그렇다. 끝에 가서 고독하고 슬프다고 했다. 고독하고 슬픈 그때의 환경이나 심적 상태를 말로 표현한다면 ‘조용’, ‘침묵’ 이런 것들일 텐데 위의 비교해 놓은 것들이 너무 동떨어진다.
물론 기합을 받고 난 후의 심정이야 말로 고독할 것이다. 부모 없는 외로운 객지에서 말못할 서러움을 가뜩 안고 있는 그에게는 그게 더욱 서러울 게다. 그러나 불붙는 집에서 그의 심정이 고독하고 슬플까? 고독하고 슬픈 것. 이것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이후에 생기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그렇다면 불붙는, 또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조급하고 안타까울 뿐이지 고독하고 슬플 여유조차 없는 게 아닌가?
하여튼 이 시는 시로써 돼먹질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가장 자처하는 “재질”로써 붓을 움직여 놓고 나를 보게 하였던 것이니, 나는 무언중에 이를 감상하고 손뼉을 쳐야 할 것을, 고소를 금치 못하는 나 또한 범인일 뿐이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써 보고 싶다.
동떨어져 떠온 구름 한 조각
내 가슴 앞에 살풋이 앉다.
겹겹이 싸인 향수를
북국의 땅. 내 앞에 터트리다.
함께 그 곳에 데려가 달라고
모밀꽃 씹어 가며 나는 애원 했더란다.
그러나 동떨어져 떠온 구름 한조 각
내 가슴 앞에서 살풋이 뜨다.
공부하다 보니 두시 7분이다. 앞에 있는 거울을 집었다. 흰자위가 붉으시 레 하다. 오늘 결국 물리는 끝내지 못하나 보다. 선생은 자면서 신음하신다. 감기가 몹시 걸렸는가 보다. 어머니는 아랫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다. 외엔 아무도 없다. 어쩌면 무슨 생각이 날것도 같다. 아련한 그 무엇이 나를 안타까이 주무른다. 고향 생각이 난다. 상-이 생각이 난다. 6학년때 박_자와 눈쌈하든 일. 상 받던 일. 매맞던 일. 아. 세월이 빠르다. 지금 상_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박-자는 지금 남편과 단꿈을 꾸고 있겠지. 아. 정말이지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나는구나. 이걸 다 어떻게 쓴 단 말이냐?
불현듯 고향에 가 보고 싶다. 아. 어쩌면 저기 꽃한송이 되어 있네. 딸까? 따 달라고 하네. 그런데 난 싫어. 따면 네가 시드는 걸.! 만물이 모두 잠든 이때. 아! 귀뚜라미 소리도 그쳤구나. 아른하게 들리든 그것도. 밖엔 비오는 소리. 바람소리. 날 울리는데. 나는 일어나는데. 그리고 춤을 추는데.
연못가 꽃이 고개 숙이는데
해바라기, 연연히 고개 드는데
외톨 수 병길은 고갤 반드시 하는데
그리곤 향수에 잠기는데
이것은 시가 아니고 낙서다.
초침이 자꾸 간다. 아이고, 자꾸 간다.
내일 국사. 모래는 고문, 한문, 글피는 다음날 것 아유 무섭다!
4292년(1959년) 9. 8 고2
치즈를 사려고 동대문 시장에 갔다. 치즈 값이 700환 하든 게 900환으로 뛰어올랐다. 사 들고 오며 상도동 자취하든 생각이 되 솟는다.
오늘 시장을 다녀오며 나는 나 자신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 그 근원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여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 자만심에 충만했던 나! 얼굴이 좀 반반하다고, 또 머리가 좀 좋다고 자처하던 나! 나는 이 어리석었던 나의 옛 추억에 귀밑이 빨개졌다.
내가 무어 잘났단 말이냐?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가 크게, 높게, 보였다. 지나친 낙망인지도 모른다. 앞에 앉은 여학생도 나를 내리깔겨 보는 것 같다. 옆에 앉은 중년신사와 국민학교 애도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다. 1개월 전만해도 나는 이렇진 않았다. 버스속의 모두가 나를 괜찮게 보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정말! 정말 그리 했었다. 그러나 나는 무어 가진 게 있단 말인가? 지식이 남보다 뛰어나단 말인가? 그렇다면 인품이나 남보다 뛰어나단 말인가? 아니면 신체라도 남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말인가?
키 작은 나! 공부 못하는 나! 욕심 많고 타산적인 나! 성질이 괴팍한 나! 더러운 짓은 다한 나! 야심이 충만해 있는 나! 괴롭다. 내가 요사이처럼 나 자신을 이렇게 냉정히 비판해 본적은 없다. 정말! 결코 없다. 작은형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자만이 가장 현명하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기에 나는 남에게 우선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아닌가? 목이 움츠려지고 인상 쓰던 얼굴도 평범 해진다. 이것이 내 인생이 되기 위한 하나의 길인지도 모른다.
전대로 지내면 그 어찌 되었을지도 모르는 나의 인생 행로가 지금 이럴 때로 인하여 몇도, 아니 몇 분의 일도라도 틀어질지 나 자신 모른다.
작은형이 구두를 사 왔다. 두 켤레!
한 켤레 샀다가 적어서 또 한 켤레 샀다는 것이다. 부대에선 고생된다고 야단! 나와서는 쓸데없이 욕먹을 짓만해서 야단! 집에서 돈 만환 허락 없이 가져 다가 휴지처럼 써 버리는 자칭 부호의 아들!
4292년(1959년) 9월 8일 고2
내가 요사이 감정이 왜 이렇게 예민해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소위 센티멘털 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감상의 대상이 되었고 생각의 초점이 되었다.
오늘 외국 고관 환영 차 학교수업을 폐지하고 삼각지에 갔을 때 그리고 인파 속에 휩싸여 이_과 함께 걸을 때 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절로 고개가 움츠려졌다. 저 많은 인파! 그 모두가 나보다 낳았다. 낳은 것 같이 보였다. 지금의 나는 가장 비겁한 나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심정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가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쓰는 일기장을 들춰 보면서 나는 끝없는 공상을 줄줄이 이어 보았다. 동시 나의 주위의 모든 환경에 대해 혹은 환멸을 혹은 희열을 가져 보았다. 걸리는 건 한두가지 아니다. 더러웠고 조촐했던 나의 과거, 이건 확실히 나에겐 모독이었다.
국_이와 서장댁에서 하숙하고 있을 때 나는 정말로 모든 것(육체에 대한)을 깨닫게 되었다. 수-이라는 것도 거기서 알게 되고 여성이라는 본질적인 것도 거기서 알게 되었다. 지식의 섭취엔 국_과 의논할 만큼 급급했다. 결국 나는 범인이 입을 헤 벌리고 좋아하는 수_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하였다. 그러면 나는 그러한 짓을 나 혼자만 알고 있었단 말인가? 만_이를 가르쳐 주었고 이_을 가르쳐 주었다. 이 얼마나 씻지 못할 큰 죄악인가? 내가 키가 못 크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만일 이러한 이유라면 나는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다. 어째서 규_의 말에 현혹되어 갔단 말인가? 규_이, 소위 점잔 하다고 자처한자인 그! 그가 누구와 한 번도 관계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정하랴. 이건 확실히 모략 정상이다마는 우리 친구들 가운데 그로 인하여 고민한 자가 무려 몇이나 될까?
그러나 장단점이 있다. 국_이를 그의 장점을 말하라 할 때 나는 말 못 하겠다. 내 친구들. 그것도 가장 현명 하다고들 자처하는 그네들이 그런 짓을 하니 하물며 학교 친구들이야! 욕망을 재우기 위해 계획한 일은 또 한 두 번인가? 이런 것을 따져 볼 때 나는 그래도 가장 천진하며 잘해야 될 과거 1년간 엄벙덤벙 보낸 게 다시금 아깝다. 남들이 모두 하는 운동도 한번 못해보고 그렇다 고해서 공부도 제대로 않고 거뜬히 1년을 보냈다는 사실 뼈저리게 후회된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기간이 있다. 나는 원하는 대학에 붙어야 한다.
자 이제 그만하자. 한문 공부는 서너 시간 해야 겠는데 지금 시각은 열두시반! 만물이 꿈속에서 방황할 때다.
4292년(1959년) 9. 11. 고2
내일은 시험! 지금의 나의 심정은. 모든 게 귀찮다는 것. 그리고 빨리 이 고역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것, 시험을 잘 치러야 하겠다는 것, 요사이처럼 죽 공부하면 성적이 퍽 오르리라는 것 등을 예상하며 집에 와서 책보를 열어보니 영어책이 바뀌어 있다. 내 것이 아니고 이_ 것이다. 할 수 없이 저녁에 갖다 주었다. 왕복 한시간 반 걸렸다. 시간적으로 적지 않은 손해였으나 책을 주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이_이 없는데는 약간 섭섭했다.
4292년 9. 15.
그동안 시험이라 하여 일기에 손을 대지 않은 게 며칠이 되었다. 4일간의 시험! 그동안 나는 무척 피로해 졌다. 이젠 휴식을 찾아 잠시 펜대를 놓아야 하겠다. 시험보는 동안 독감이 걸려 하루 종일 고생하고 시험을 치룬 적이 있다. 그러나 시험을 다 보았다고 해서 뭐하나 신통한 게 없다. 그저 “허무” 그것이다. 오늘 작은형이 천안에서 왔다.
내가 왜 이렇게. 내가 왜 이리 못났을까? 자신을 타이르려 하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형과 나와의 사이에 그지없이 좁게 가로막은 무슨 막! 이것을 나는 영원히 제거할 수가 없다. 아니 제거하고 싶다. 따져보면 사실 나와 작은형이라는 이름의 형이라는 사람과 따듯한 정이 오간 건 한 번도 없다. 언제 있었던가. 그런 기회가. 한 번도 없지 아니 한가 그런 기회가! 어렸을 때? 어렸을 땐 어렸을 때 대로 앙숙으로 지냈고 좀 커서 객지에 나와 있을 땐 객지에 있는 대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나는 열 여덟인데 아직도 나는 일변하지 않았다. 내가 철이 없다고?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3년 전, 아니 1년 전만해도 큰형을 무척 싫어했다. 싫어한 걸 지나쳐 증오까지 했다. 그러나 1,2년 지난 오늘 나는 그것이 나의 철부지 생각이었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그러나 작은형의 경우는 달랐다. 내가 자라긴 자라나 그 생각은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삼일 전인가… 나는 시험 공부를 하다 말고 물끄러미 자는 작은형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어머님의 주무시는 얼굴을 보았다. 번갈아 자꾸 보았다. 만일 비슷하기라도 하다면 나중엔 겹쳐져서 하나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어그러졌다. 아무리 해도 겹쳐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문득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거울을 형 옆에 놓았다. 그리곤 멀찌감치 서서 거울 속의 나와 그 옆의 형의 얼굴을 보았다. 앗, 같지 않았다. 전연 다르다. 무서워졌다.
4292년(1959년) 9. 16 고2
오늘은 단축수업 하였다. 내일은 추석이니 놀라 한다. 놀아야지.
- 9. 16
학교에서 4시간 수업을 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어머님 모시고 형과 함께 서울역에 나갔다. 5시 반차는 대만원이었다.
거의 모두가 꽉꽉 찬 곡간 차 같았다. 천안역에 다다르니 이미 사방은 깜깜해져 있었다. 나가다가 순_누나. 세_이. 명_이를 만났다. 집에 다다르니 역시 반가운 건 집안식구이다. 그렇다. 이것은 순간!
저녁에 고단함을 못 이겨 잠을 자다. 친척에 여행 온 것 같다.
4292년(1959년). 9. 17
추석이다. 기쁘다면 기쁘다 할 수 있다. 비바람은 세차게 몰아친다. 폭풍 사라호다. 추석의 날씨 치곤 퍽 재수가 없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데 예식을 조금은 알겠다.
저 밥 옆에 국, 그 외 기타 과일과 찬을 놓고 절한다.
그 다음 국은 내가고 빈 사발을 그 자리에 놓고 거기에 냉수를 붓는다. 그리곤 거기 다가 밥을 세 숫갈 떠 넣는다. (재앙이 물러 가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그 다음은 2차로 다시 절하고 다음에 술을 세번씩 첨가해서 따른다. 그 다음엔 젓갈 자리를 옮긴 다음 절을 한다. 그러면 절차는 끝나는 것이다.
절하면서 조금은 지루한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생각했나? 우상이다. 우상! 그러나 신성한 우상이다. 이것으로 인해 가족이 만나게 되는 것은 좋은 기회다. 이런 기회밖에 없는 것이다.
아침식사 후에 비속을 거닐며 할머님 댁으로 가서 조금 얻어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빗속을 집으로 돌아오고 기철이 어머님을 찾아 뵈었다. 얼굴은 부어 계셨다. 음성이 처량하고 힘이 없었다. 병 있는 자에겐 환자만이 위로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가지고 기철이 어머님 앞에 나서기가 좀 시스럽기도 했다. 파리한 그 눈 그 음성, 그 가슴, 그 뜻, 여기에 쓸쓸하고 힘겨운 인생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가엾었다.
기_이 큰누나와 몇 시간 이야기했다. 영근을 만나고 싶었으나 그만 두었다. 역시 나는 병신 같은 놈이다. 뒷문에서 세번이나 되돌아섰으니! 6시 반 차로 가려고 만_형님댁에 갔더니 명_누나는 돈이 없어 망서리고 있다. 여기도 나를 피하는 인간 하나가 있다. 문_다. 불쾌하다. 꼭 빗 받으러 다니는 고리 대금업자 할아범 같다. 내가!
나 혼자만 타려 하다가 역전에서 만나다. 기쁘다. 그러나 번거로운 내 마음엔 기쁨을 가져질 여유조차 없다. 드높은 천장의 천안역은 나의 존재를 또 뭉크러뜨려 주다. 대단히 졸렬한 나를!
이 차에 올라 3시간을 시달린 다음 서울에 도착 집에 오니 10시경이다. 소제하고 사진 장난 좀 하고 자다.
4292년(1959년). 9. 18. 금요일 고2
아침에 늦잠 잤기 때문에 그냥 가다. 과외수업 지각하다. 떡 싸 가자고 와서 점심, 아침을 때우다.
집에 돌아와 소제하고 있는데 큰형 심부름으로 명_누나 데려오다 (시험지 매기느라고). 작은형 오다. 자다.
4292년(1959년). 9. 19 토요일
아침에 명__누나 해 주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가다.
집에 올 때 박_식과 오다. 작은형 오다. 10시경 형이 가자 병직형과 아버님. 어머님 상경하시다. 반가웠다.
4292년(1959년). 9. 20 일요일
아침에 종로5가에 있는 교회 나가서 선생님으로부터 뼈에 속속들이 까오는 설교를 듣다. 심히 감동하다. 다음 토요일. 4시 반을 약속하고 그 곳을 나와 육본가서 형에게 돈 주려 하니 돈이 없다. 내가 잃어버렸는지 쓰리 맞았는지 도무지 기분이 나쁘다. 주머니에 있던 돈을 털어 주고 집에 돌아오다.
요사이 나는 내 자신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다.
4292년(1959년). 9. 21. 일요일
학교 수업 마치고 집에 와서 곧 책상에 붙어 다닌다는 것이 이것저것 하다 보니 다 망쳤다. 저녁에 늦게까지 공부하긴 했다.
4292년(1959년). 9. 22. 화요일
셋째 시간 수업 중에 별안간 위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명령이다. 우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반가웠다. 이에 더 반가운 게 어디 있으랴? 서울 시내 전부가 오늘 토이기 수상을 영접 나간다 한다. 철없는 함성! 타락의 울부짖음을!
시청에 가서 앉아있자니까 헤치라 한다. 어? 웬일이냐? 아직 귀빈도 오시지 않아 있자니까 헤치라 한다. 아마 예정이 어그러졌는가 보다. 무_과 나란히 걸며, 무_의 높직한 어깨와 또 스쳐가고 밀려가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정말이지 나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리석은, 혹은 현명한 생각에 잠겨 시종일관 말도 하기 싫었다. 학년 뺏지나. 모표를 떼어 버리고 저 우유 배달부처럼 다 떨어진 작업복으로 자전거를 타고 싶다. 정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마음은 역시 겉치레에 불과 함인가? 화신3층에 가서 옷을 맞췄으니 말이다.
집에서는 그럴듯하게 이유를 꾸며 댔으니 결국 따져 보면 모양 내자는데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던 내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것을 면키 위해 모양을 낸다. 이렇게 순간이나마 합리화해보려는 나! 참으로 가엾은 인간이다. 무_과 함께 우미관에 들어갔다. 마침 돈이 있어 내가 내기로 했다. 제목이 뭐였더라? 난 참 맹목적인 놈이다. 영화 제목을 그날로 잊다니. 기껏해야 한 달은 기억하면 그건 참 나에겐 무척 좋은 영화다. 그렇지 않으면 원작을 읽은 것이거나. 거기 나오는 배우 이름도 모른다.
그 배우 참 잘 생겼다. 아니 여자는 또 어떻고? 정말이지 앞에 있으면 당장 껴안아 버리겠다마는… 참 예뻤다.
집에 와서 피곤한 다리 끌고 세수, 공부하다. 지금은 세시 15분 지금까지 공부했다. 매일 이렇게만 계속하자. 방학 때 독서를 해야겠다. 아 참 오늘 용_이가 다녀갔다 한다. 그 친구 참 친할 만한 아이다. “시 감상” 이라는 책을 빌려주고 갔다. 하여튼 고마웠다. 이 사회가 Give and Take의 사회라 면 나는 응당 다른 무얼 빌려줘야 겠지만 나는 그 Give and Take를 증오하는 자중의 1인이기에 빌려주지 않겠다. 그러나 그가 빌려준 것과 관계없이 내일, 영미 여류 단편집, 교양신서를 빌려주어야 하겠다.
오늘 월러, 케더작 ‘포올의 경우’를 읽었다. 그리고 지드작 전원 교향악을 읽었다. 전원교향악은 감명받았다. 거기 나오는 눈먼 소녀를 맘껏 사랑해 보고 싶다. 그의 티끌 하나 없는 순수성 위에 나의 투명한 지식을 부여하면 그는 반드시 내 배우자에 적합한 인물이 될 것이다.
밤에 상_형님, 영_형님 오시다. 대단히 반갑다.
4292년(1959년). 9. 23. 수요일
저녁에 임_이 찾아왔다. 반가웠다. 와주는 게 고맙다. 임_이 온 김에 사진을 빼기로 했다.
우선 사발을 세 개 물 떠 놓았다. 불을 껐다. 깜깜한 속에서 두개의 그릇에 각각 M.Q.와 하이포를 풀었다. 다음 인화지를 필림 크기 정도로 잘랐다. 그런 다음에 유리 가운데 정사각형만이 빛이 나오게 한 틀 위에 필림을 놓고 그 위에 자른 인화지(꺼칠꺼칠한 부분)을 놓고 순간적으로 스윗찌를 틀어 필림을 통한 빛이 인화지에 닿도록 한다. 그런 다음 그 인화지를 M.Q.에 넣어 저으면 사진이 나온다. 적당히 휘젓고는 다음 하이포에 5분간 담가둔다. 변색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 다음에 물에 놓는다. 그렇게 되면 사진이 완전히 되는 것이다(마르기만 하면).
20장쯤을 하고 인화지는 싸 놓고 불을 켜 보니 방이 퍽 어질어졌다.
깨끗이 치고 하니 열한시가 거의 되었다. 임_이 돌아간 뒤 형이 왔다.
이틀 전인가 차 안에서 어느 허름한 술주정군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던 말이 떠오른다. “이승만이 뭐냐?” 대통령이 뭐…냐 말이야, 응? 목간통에 가면 다같이 xx가 달렸고 털이 나 있다. 이승만도 세끼 밥 못 먹으면 말라 죽는다. 죽어. 응? 이승만이 뭐냐? 도대체 뭐냐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두서없이 내뱉는 주정이나 나는 그 앞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옆에서 “여보 그게 무슨 소리요. 점잖지 못하게!” 하며 책망하는 어떤 중년 신사의 은근한 음성에 나는 순간 생각에 잠겼다. 비록 한쪽은 알콜성분속에서 올바른 이성이 없고, 또 한쪽은 유리 날 같이 이성이 살아 있고 최고의 지식을 가진 자라 해도 좋다. 술주정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 “이승만도 세끼 밥 안 먹으면 말라 죽는다” 이것이 주정꾼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나는 동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성을 올바로 갖지 못한 주정꾼의 입에서 나온 소리기에 나는 더욱 동감이 가져지는 것이다. 잠재의식일른지 모른다 항상 가슴속 깊이 그 마음을 품고는 있는데 법이라는 테두리 안이기 때문에 말 못하다가 알콜 덕분에 그 테두리를 벗어나 한번 부르짖어 보는 걸 게다. 그는 틀림없이 가난할 것이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신사는 분명히 부자일 것이다. 억측이지만.
이 생각 저 생각이 자꾸만 스쳐 나도 모르게 딱 소리를 내며 연필을 집어 던졌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그리곤 싸르트르의 “정분”에 나오는 SEX에 대한 묘사가 생각난다. 내가 그것을 본건 고1때이다. 그때 나는 그걸 읽고 꼭 11일 동안 공부를 못했다. 책상에 앉으면 그 생각이 나고 버스 안에서 여학생과 옷을 스쳐도 그 생각이 나고 잠자리에서도 변소에서도 그런 생각은 그치질 않았다. 그 작품은 물론 나와 같은 이런 졸장부를 독자로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는 소년이고 또 남달리 예민한 학생이기 때문에 몇 날을 고민해야 했었다. 그러한 나! 그러면서도 뭐 잘난체하는 나! 가엾은 인간은 나다. 길에 가는 거지도 아니고 밀수하다 들킨 무역회사 사장도 아니다. 가엾은 인간은 바로 나다.
10원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수단의 시초를 자꾸 캐가라. 어찌 될 것인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그것은 10원을 벌기 위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응아 하는 소리는 돈을 벌겠다는 절규요 부르짖음이다. ㄱ,ㄴ,ㄷ,ㄹ을 배우고 희열에 잠기는 것 이것도 10원을 벌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각모 쓰고 서운한 심정으로 문을 나올 때도 10원을 벌어야겠다 는 의구심이 더욱 마음을 지배한다. 그 10원을 벌기 위해 방법이 생기며 악기 재능이 10원을 번다. 사기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수도 있다 또 장사해서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결국은 10원을 벌기 위해서의 방법들이다.
필동 일가족 살해 사건도 결국은 10원 벌기 위해 5의 생명이 스러졌다. 10원을 번다는 신성한 목적 아래엔 행해진 그 어떠한 방법이라도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러기에 범인 송도 태연하게 웃는 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