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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2년(1959년). 9. 24. 목요일 고2
하루 종일 한 일 없다.
4292년(1959년). 9. 25. 금요일
빈손으로 학교에 가서 통지표를 받았다. 전보다는 좀 오른 셈이다.
그러나 국어가 양인데 대해서는 화가 났다. 나는 그래도 했다고 해놓은 것이 겨우 양을 맞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따져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일찍 돌아와서 흥_이 놀다가 갔다. 저녁에 영구형님, 만복형님 오셔서 주무셨다.
4292년(1959년). 9. 26. 토요일
날씨도 맑다. 지금은 열시가 조금 지난, 하늘은 파랗게 물들고 바람은 소소하게 불어오는 한가한 아침 나절이다. 고요하니 적막할 뿐 아무 소리도 없다. 다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쇼팡의 “공기의 요정”만이 귀를 간지릴 뿐, 바람에 스치는 나뭇소리마저 고요하다.
하얗게 창문에 와 닿은 해는 온통 방으로 쏟아져 들어와 구석까지 환하다. 만지면 데일것같은 새하얀 빛이 창호지를 두들기고 있다. 들어오려 애쓰는 것 같다. 심심하다. 책상에 앉아 앞의 창을 통해 눈으로 달려오는 수많은 점들을 읽어본다. 높이 솟은 기와집 모퉁이 우로는 누구네집 정원의 것인지 모른 상록수와 프라다나스 나무가 바람에 까불거리고 있다. 가끔 가다간 마구 난무한다. 너흘대는 품이 마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곡을 반주나 하는 것 같다.
아… 왜 이리도 센티해진단 말인가? 쓸쓸한 마음. 한적한 마음. 파도치는 볏포기들 생각도 나고 흰 이를 들어내며 웃어대는 친구들 생각도 나고, 그리고 저 하늘 끝 어디 있을 그 무엇이 생각 나기도 한다.
오늘로써 학기는 끝났다. 이것이 지금의 내 심정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마는 그러나 이 하나의 사실도 센티해진 나의 심정엔 큰 쇼크를 주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눈물을 흘리며 땅을 치고 통곡하고도 싶고, 또 때굴때굴 굴며 고함이라도 치고 싶다
동창회 때 생각도 난다. 그때 왜 한마디도 못했는가? 내가 마땅히 몇 마디 해야 할 순간을 나는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최순_가 그 자리에 왔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5년이라는 세월이 나와 그와의 사이엔 바위만 한 틈을 주었던 것이니 이 또한 섭섭하고 기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겹쳐지는 생각(회상)속에서 나는 중요한 인생의 철학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만물의 섭리를 지금 이순간도 눈앞에 느껴가며 나는 인생을 조금 씩이나마 캐 가는 것이 아닐까? 고요하고 한가한 이 정적 속에서 나의 마음도 또한 진주홍의 회상에 물드는 게 아닐까?
언제까지나 회상하고 싶다. 비록 그것이 한낱 추억이 되었지만, 그러나 추억은 추억대로 또 의의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상복이 생각이 난다. 그 애 아버지가 거지가 됐다는 소리도 들었다. 절룩거리며 마르보시 공사를 맡아 하시든 생각이 되살곤 한다. 그때는 상_이나 나나 어렸을 때다. 상_이네는 어느 큰 철공장 속에 방하나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거기서 나는 상복이와 못치기를 했었다. 서로 못을 땅에 꽂으며 상대방의 못을 쳐서 넘어 뜨려 갖는 놀이이다. 얼마나 재미있게 그 장난을 했는지...국민학교 6학년 때 박금_와 눈쌈하든 생각도 난다. 그 땐 참 통쾌 했었디. 마구 눈으로 후려갈겼으니까 말야. 그리곤 맹장 걸렸을 때 생각도 났지. 그때 그 애들이 병문안 왔었어. 영근과 교회 가든 것이 생각난다. 마구 눈보라 치는 어느 날 밤, 나는 영근과 함께 교회에서 나오며 매우 기분이 언짢았었다. 어쩐지 나를 싫어하는 눈치 같아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추억을 어떻게 감당 해낸단 말이냐? 처음 서울 올라와서 나는 그만 어리둥절하였었다. 상당히! 아주 상당히 어리둥절했었다. 촌놈의 티를 여지없이 과시했나 보다. 이_이 말하는데 처음 출석 부를 때 내가 “야!” 하고 대답해서 애들이 웃었다고 한다. 나는 사실 그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가령 몇 년 전에 내가 누구한테 몹시 얻어 맞았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지금, 치가 떨리고 분노하진 못한다. 과거의 모든 잡된 일(즉 인간사)는 하나의 아름다운 스크랩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추억으로 물든 내 머리 속에 나는 그 어느 잡념의 침입도 용서치 않는다. 단연코 거절한다. 나의 보석 같은 회상의 시간을 놓칠까 두려워서. 이제 앞으로 또 한 학기 남았다. 이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외출을 금할 것. 지정 외출지- 만_형님댁. 무_이네 한 번 정도
숙장댁 한 번 정도, 임_이네집, 천안, 혜자네 두어 번 정도
- 교과서 외의 공부를 많이 할 것. 삼위일체 완전 마스터
- 독서에 열중할 것. 집에 있는 책 적어도 반 이상은 읽을 것
여지껏 읽은 것.
“벼랑에 피는 꽃”, “고개를 넘으면”, “순애보”, “사랑”, “이차돈의 사”
“삼대”, “만세”, “사람의 화첩”, “농민”, “삼년”, “백치아다다”, “장록수”
“영원한 미소”, “영원히 사는 것”, “무화과 그늘”, “전원교향악”
이외에도 단편은 많지만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
- 단 한 번! 혼자서 백운대 갔다 오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와 한번 갔
다 와야 되겠다. 길을 알기 위해서다.
- 천안엔 세 번 정도 내려 가겠다.
- ??와 세 번만 만나고 편지는 절대로 안겠다.
- 작품을 많이 써야 하겠다.
- 형과 의논해서 되도록이면 독어 학관에 나가겠다.
- 친구들(진정한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야 하겠다.
- 진정한 이성교제를 한번 하고 싶다. 그리고 뭘 하나, 일터면 로켓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이 십계명을 나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
4292년(1959년). 9. 27. 일요일 고2
늦게 일어났다. 날씨는 참으로 맑다. 즐거운 일요일의 저 푸른 하늘은 그대로 초록빛 파라다이스! 나 혼자 독점하고 싶은 저 하늘, 저 푸르디 푸른 하늘을 뚝 따다가 책상보를 하든지 옷을 만들든지 하고 싶구나!
가끔 흰 구름 조각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그리고 그 구석에서 해는 빛을 발한다. 오직 나의 머리 위에만 비추는 것처럼 착각하며 기뻐진다. 철저한 에고이스트의 망상이랄까?
오후 한식경 집을 나가 만_형님집을 찾아가다. 진_누나가 와 계셨다. 큰 형의 말을 전할까 말까 하다 한마디로 귀뜸해 주었으나 여기 혜화동에 들러 갈 의향은 없는 듯하다. 낯이 간지러운 일이다. 거기서 점심을 하고 청량리에 가서 혜자네를 들렸다. 혜자와 함께 누님을 찾아 뵙고 집에 왔다. 혜자한테 약도를 그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젠 혜자도 많이 컸다. 허기야 나보다 한 살 아래가 아닌가?
4292년(1959년). 9. 28. 월요일. 청
맑은 날씨다. 아침에 어머님 심부름으로 동대문 외조부댁에 찾아갔다. 여기서 또 외조부님 심부름으로 대법원의 종만형을 찾아갔다.
오늘 9월 28일 수복 기념일로 인해 국제마라톤 경기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중계방송을 듣고 있다가 2시 10분경 서울역을 통과한다는 소리를 듣고 시청 앞으로 나갔다. 인파로 휩싸인 뽀얀 거리는 그대로 사람바다이었다. 혹은 전신주에 혹은 가로수에 혹은 길가에 혹은 고층건물 옥상에 사람들은 총총히 늘어서서 우리 마라톤 한국의 건아 이창훈 선수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공군본부에서 호주 선수를 리드하여 일등의 영광을 안은 채 쟈토백과 같이 달려오는 이창훈 선수! 저만치 보이자 군중들은 일제히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마치 단거리 경기인양 달려 나가는 이창훈 선수! 삼천만의 대표가 되어 그 온 겨레의 명예를 두다리에 걸고 일로일로 중앙청 꼴을 향해 전진하는 한국의 쟈토백 이창훈 선수!
지금 이선수를 앞에 둔 모든 군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 이것이 곧 민족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 순간만은, 정말로 이 순간만은 돈 받지 못해 기분 나빴던 벗장이의 이맛살도 잠시나마 펴질 것이요, 돈 없음을 한탄하던 지게꾼도 좋아서 벙글거리며 어린애들은 그대로 분간하지도 못할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날 뛰는 것, 이것이 곧 민족의 상징이요 민족의 절규가 아니겠는가? 9. 28 수복을 상기하여 다시금 괴뢰의 만행을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민족의 무언의 약속이 아닌가!
다음에 오는 호주 선수에게도 전같이 영정적은 아니나 그대도 박수 갈채가 수없이 쏟아져 나옴은 이 또한 스포츠 한국의 신사적인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1등과 꼴찌의 간격이 너무 커서 그 사이에 길은 대 혼잡을 이루어 자동차들이 대 혼잡을 이루었다. 뒤에 선수가 올 때마다 교통순경들은 땀을 빼야만 했다.
섭섭한 일이 아니고 무어냐?
집에 오니 밥도 아닌 대낮에 밤손님이 들어왔다가 식구에게 들켜서 도망갔다고 한다. 9. 28 수복기념으로 옷가지나 도둑맞을 뻔 했다.
임_이 다녀갔다 한다. 나 없는 사이에! 미안한 일이다.
오늘 돌아다니며 나는 정말 나자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저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된다니까!
4292년(1959년). 9. 28 10시 17분
갖가지 추억. 그 중에도 동창회 추억이 나를 괴롭힌다.
4292년(1959년). 9. 29. 청.
아침에 화신백화점 가서 찾아왔다. 옷 맞추긴 처음 하는 일이다.
혹시 너무 속될 가 겁이 났다.
집에 와서 입어 보니 목이 너무 가늘었다.
4292년(1959년). 9. 30. 청. 고2
하루 종일 집에서 뭉게다. 오늘 내일 것을 대충 예습해 놓았다. 방학동안 나는 도무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 ‘테스’도 읽다 말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읽다 말았고 ‘굶주림’도 읽다 말았고, ‘지드의 뭣’도 읽다 말고, ‘해조음’도 읽다 말고 ‘천하태평’도 읽다 말았다. 이러면서 무슨 독서를 한답시고!
나는 지금 상상해 보았다. 몇 달 전 일이다. 내가 영_에게 놀러 갔을 때 나는 그의 일기장을 보고 뭐냐고 보려고 했다. 그때 영_은 당황해서 얼른 그걸 빼앗으며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나는 지금 그자의 읽기를 마음대로 상상해 본다.
그자의 일기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으리라.
“하늘은 너무나 맑고 그 가운데 해는 너무나 덥다. 햇님이 날 태우는가, 또는 그 누가 나의 가슴을 태우는 건가?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지 모르겠다. 오늘 병길이 놀러 왔다. 이곳 뒷집은 아무도 없어서 놀러 와도 괜찮다. 아니 뭐 누가 알면 어때? 나의 친구인데...... 그는 가끔 놀러 온다. 나는 그를 허물없이 대한다. 그도 또 나를 허물없이 대한다. 나는 항상 그가 올 때마다 꼭 동생을 대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나는 그를 어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사실 나보다 더욱 총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왔다 갈 때마다 어쩐지 조금 불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째서 인지 그 이유는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나와 허물없이 대한다 해도, 나의 체면은 차려 줘야 할게 아닌가? 내 친구가 와서 자고 있고 또 나는 시험공부 중인데 찾아오면 어찌한다 말인가? 물론 나야 반갑고 아무렇지도 않지만, 나의 친구는 어떻게 생각할 건가? 그로 인해 나는 학교에서 놀림을 받지 않았는가? 물론 나는 그에게 우리 친척이라고 속였지만 그 깜찍한 년이 내 말을 믿어나 줄까? 언젠가 눈보라 치던 날 그는 나에게 최동_이 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대단히 솔직한 태도다. 그렇지만 차마 나한테 그런 말이 나올까?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동_이 그 애를 더럽게 생각하게 하려함이 아닐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어쩐지 병길이가 무섭게도 느껴졌고 또 비겁하게 보이게 되기까지 되었다. 내가 그를 교회에 가자고 부른 것은 별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나를, 지나치게 큰 호의로써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춘자와 극장 갔다는 사실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개의하려 하지 않는다. 요전에 언젠가는 그가 나한테 편지를 몇 번 했다. 편지 받을 때마다 나는 기뻤다. 그러나 편지 속에 쓰여 있는 이야기엔 나는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병길이는 확실히 내 친구이고 또 그 한도를 벗어날 순 없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바라는 그 눈초리가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건 어쩐 까닭일까? 나는 그에게 내가 이화여대를 들어 갈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적이 있다. 만일 떨어지면? 아유. 그런 창피가 내 일신상에 두 번 다시 있을까? 요사이는 어머님께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것을 자꾸 생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아예 생각을 끊어 버려야 한다. 추석 때 내려 갔을 때도 나는 자꾸만 ´´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결심했다. 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문_가 문득 생각나다. 그가 만일 일기에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썼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오늘 병길이가 왔다. 나는 그에 대해서 전부터 오빠들한테서 들어왔다. 그러나 말 한마디 해 본적이 없다. 그를 보기는 퍽 오랜만이었으나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엉큼한 것 같았다. 그가 우리집을 올때마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만일 내가 이것을 읽었다면 나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아 주었을 게다. 뭐냐 말이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다. 또 그 집을 들릴 때마다 세심한 주의를 했음에 틀림없다. 또한 되도록이면 그와 가까이 있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집에 얼굴 반반한 계집애 하나 있더라 이 정도의 감정 밖에는 가져 본적이 결코 없다! 관심을 갖고 가까이 서고 싶은 마음. 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이것은 서울 그 어느 버스속에서도 일으켜지는 감정이다! 정말 그렇다. 나는 나의 이 “心” 만은 거짓말을 안 할 예정이다.
영_이도 나의 그 생각속의 인물에 모델로 되었었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 이것도 나에게는 보통이다. 왜냐하면 버스안에서 어느 다리가 미끈한 여학생을 보고서라도 그날 밤 이불 속에선 그녀의 그 통통한 다리를 다듬어 두 갈래로 갈라지게 하는 그 곳을 생각하며 몸부림쳐 베개를 껴안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것은 내가 영_이나 문_를 대상으로 그런 생각을 한때면 말할 수 없이 큰 수치감과 미안감에 사로 잡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집에 갈 때면 그는 생쥐처럼 숨는 것이다. 나는 그 곳을 갈 때마다 불안하게 되고, 또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조금도 남의 싫어하는 눈치를 제일 무서워하는 인간이니 만큼, 이제는 절대로 그 곳을 놀러 가지 않겠다는 것을 굳게, 굳게(?) 결심했다.
´´´이. ´´´이. ´´´이. ´´´이. 모두 추억에 새로운 인간들이다. 역사는 흐르고 역사를 구성하는 시간은 지나고 있다. 과거는 과거로 존재하고 미래는 미래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 학교로 나가면 나는 다시금 새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규_이네 집에 대해서도 이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
4292년(1959년). 10. 1. 비 고2.
오늘부터 동복을 착용했다.
오는 나는 작은형에게 편지했다. 책 좀 가져오라고 했다.
4292년(1959년). 10. 2. 우. 금요일
오늘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다. 오니 집에는 천안에서 온 식모가 방안에 있었다. 나는 저녁에 종_형한테 갔으나 바빠서 머리는 못깍고 상도동에 갔다. 상도동엔 마침 주_이가 와 있었다. 거기서 보따리 두개를 들고 혜화동에 돌아왔다.
나는 식모가 왔을 때 어쩐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어쩐지 불안하기까지 했다. 식모는 스물 몇 살이라는 데 결혼했다가 일년도 못살고 다시 헤어졌다 한다. 우선 얼굴이 내가 바라든 것과는 달리 못생긴데 대해 나는 기분이 잡쳤다. 이제 어머님이 내일 가시면 나는 저 식모하고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
아 생각만해도 갑갑하다. 왜 내가 식모를 두자고 제창했단 말인가? 응?!
이제 식모를 두었으니 내 맘대로도 못한다. 나에겐 또 하숙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 왜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단 말인가?
4292년(1959년). 10. 3. 우. 토요일
아침에 종_형 한테 가서 머리를 깎았다. 깎고 집에 오니 어머님께서 갈 차비를 하셨다. 주_이 와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5시 반차로 가시기 때문에 여기서 네 시경에 서울역에 나가야 했다. 어머님, 주_이, 형, 나 이렇게 넷이서 서울역을 닿았다. 거기서 차표를 사가지고 30분가량 기다리다가 이윽고 개찰이 시작되어 나는 어머님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님 편히 가십시오” 나는 서운하고 허전하기까지 했다.
집에 가면 이제 나는 식모와 둘이 있게 된다. 어쩐지 집에 가기가 싫었다. 주언과 함께 집에 와서 저녁식사 후 관이네 집에 갔다. 조금 놀다가 집에 와서 잤다.
오늘 하루 종일, 나는 얻은 것이라곤 “無” 이다.
뼈저리게 생각한 것은 많다. 개찰구서 앞에서 껌 씹고 있는 여학생이 상당히 예뻤는데 그러나 나보다 키가 커서 나는 섭섭했다. 버스속에서도 얼굴이 꽤 예쁜 여학생이 있었으나 눈초리가 매서운 게 나는 섭섭했다. 임_이는 여드름이 산더미처럼 낳아 있다.
주_은 여전히 말씨가 석연치 못하다. 임_이 누나는 불 밑에서 인지 퍽 아름답게 보였다. 식모의 얼굴은 졸음에 얼굴이 퉁퉁 부었다. 퍽 변통성이 부족한 식모다. 센스가 없다.
호리데이온 아이스는 어저께 갔으나 700환짜리는 어림도 없다.
2500환짜리만 어떻게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기가 막혔었지. 아 참! 오늘이 개천절. 라디오에선 같은 소리가 나왔다. “단군왕검은 홍익인간이란 이념 아래 나라를 세우셨다...... 일치단결하여 .... 남북통일의......용맹과 단결된 민족......해야 하겠다.
4292년(1959년). 10. 4.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큰형님이 와 계셨다. 대전에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님 심부름으로 문화동 엘 찾아 갔더니 거기엔 명__누나는 없고 어머님과 진_ 누님만이 계셨다. 진_누나는 어쩐지 더 미워 보였다. 사실상 얼굴을 바짝 들이대서 보면 정말이지 추한 얼굴인 것이다. 눈은 그저 억지로 조금 구멍을 뚫어 놓은 것 같고 코는 마치 서투른 석수장이가 엉터리로 깍아 부친 것 같고 턱은 또 메기처럼 네모난 게 억세게 생겼다.
이렇듯 생각하다가 나는 진_누나 모친과 진_누나와 함께 혜화동으로 왔다. 진_누나 어머님은 돈에 무척 인색 하셨다. 식사를 하시고 큰형님과 함께 다시 문화동으로 가셨는데 나는 집에서 굳기로 했다. 4시경 주_이 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시에 안_일과 주_과 만난다고 한 자리에 나도 간다고 했는데 빠졌다. 대단히 안됐다. 나는 안_일 조부님의 환갑잔치에 가서 떡을 못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주_은 곧 갔다.
나는 허전했다. 어쩐지 어머님 내려 가신게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식모가 보기 싫기도 했다. 아, 나는 언제나 이러려나? 이런 생각을 하면 금방 무서워 지기도 한다. 밤 2시까지 공부하다가 잠들었다.
4292년(1959년). 10. 7 수요일 고2
오랜만에 차분히 앉아 일기를 쓸 기회가 왔다. 예정표엔 지금이 “정리”이니 맘 놓고 일기나 붙들고 늘어지자는 지금의 내 심정이다.
그리고 또 무엇인가 불끈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인가 불쾌해지는 게 지금의 내 심정이기도 하다. 요사이 나는 공부를 좀 한다. 나 자신이 봐도 공부는 하루에 대여섯 시간 한다는 사실엔 흡족해지는 것이다. 12시 이전엔 잠이 통 안 오니 그때까진 죽 공부하는 참이다. 그러나 나의 큰 결점, '공상에 잠긴다' 하는 것이 이 다섯 시간의 공부 가치를 떨어지게 한다.
영어 해석에 고향 땅이라는 단어가 나와도 책을 덮어 버리고 고향을 그리며 아련한 향수에 눈을 지긋이 감은 후에야 비로써 다음 줄도 내려가고 수학에 어려운 문제에 부닥쳐도 멍하니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하지 않곤 도무지 뒤숭숭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자유낙하 연직 방향 등식만 공부할 때도 공연히 마음이 들떠 공상에 잠긴다. 공상이란 대개 다음과 같이 쓸데없는 생각이다.
[나는 몇 년을 두고 연구한 로케트를 나 자신 타고서 달나라로 간다. 긴장리에 나는 드디어 인간 최초의 우주여행을 감행한다. 떠날 때의 심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났을 때는 지구가 풋볼만하게 보였을 때고 한국은 파리 똥만 하게 보일 때이다. 주위는 고요한데 도무지 변화라는 게 없다. 이러고도 시속 몇 천만 마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손을 들어 전보를 쳐 본다. 여전히 연락이 오면서 나는 그 연락에 호응하며 이윽고 달의 인력권에 들어가 로케트는 급강하 밑으로 내리 꽂고 기체는 몇 천도 뜨거워져 기체 안에도 약간 더운기를 느끼게 된다. 이윽고 제1파라슛, 제2파라슛, 제3파라슛이 차례차례 퍼지며 그때마다 심한 충격으로 나가 떨어진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기체는 어느 고지에 틀어 박혀 있고 주위엔 크나큰 파로 슛으로 마치 치마 입고 유회하는 것 같다. 나는 우선 지구에 연락을 취한다. 여전히 연락은 온다.
우선 우주복을 입고 밖에 나간다. 거기다가 ´´´의 이름을 새기고, 이렇게 해 가자고 지구에 돌아온다. 지구의 인력권 내에 들자 다시 제1, 제2, 제3의 파라슛이 펴지며 나는 천안 역전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잠시 후 내가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미국에서 온 쥬피터씨. 벵가드호의 제작자, 독일의 누구, 수 없는 세계적 과학자가 모이고 또 이승만 할아버지도 오셨다. 바로 기체 옆에 어머니가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고 그 옆엔 ´´이가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다. 내가 문을 열자 (문은 안에서 열게 되어있다) 일제히 터져 나오는 환성! 환성! 회색이 만연해서 내 손을 굳게 잡아 주는 위대한 이승만! 그리고 옆에서 수줍게 서 있는 ´´이! 눈물이 글썽하신 어머니! 이렇게 해서 나는 서울로 올라가는 차에 올라타게 된다.]
이런 공상을 하자면 한 시간쯤 거뜬히 지나가고 그렇게 되면 먼저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래서 나는 공부의 능력이 오르지를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밤 세시 네 시까지 공부는 하나 그 실 뭣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또 내 구태여 말하고 싶진 않으나 옆방의 애기가 너무 시끄럽게 구는 것이다. 그제 공부하기 좋은 시간엔 꼭 울어 제치는 것이다. 어떤 땐 신경질이 나고 심하면 달려가서 때려 죽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도 어렸을 땐 저런 길을 밟아 왔지 아니한가? 아니 오히려 더했으면 했지 못하지는 아니했을 게 아닌가? 이런 걸 생각하면 그저 죽어라 악을 쓰며 참든지 밖으로 뛰어나가면 된다. 나는 요사이 글을 지어 보려 한다.
그러고 몇자 끼적거려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글이 너무나 졸렬하다는 것을 두시간 내에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큰 실망이다. 이런 것, 저런 것 깊이 생각할 때 나는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뭐하나 떳떳이 하는 게 없으니 말이다.
보라, 내 주위의 친구들은 적으나 크나 뭘 한가지씩 붙들고는 늘어진다. 그러나 나는 뭐 하는 게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먹을수록 나는 짜증만 나고 열등감에 젖어 숫제 누구와 상면하기조차 싫어 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사이 우울증이 더 심해졌는지 모른다. 공부하면서도, 지금 부 터 죽어라고 공부해야 내년에 우등 못 할건 뻔한 일. 왜냐고? 과거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면 읽던 책을 탁 덮어 버리고 싶도록 귀찮아지는 게 아닌가? 요컨대 나는 너무나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게 탈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가시가 되어 찔려오는 수많은 잡념을 일소에 물리치기엔 아직도 나는 달관 된 인간이 아님을 어찌하냐? 이렇게 지낸 것이 요사이엔 부쩍 더해 도무지 남과 대면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보자. 하여튼 보자. 나는 그저 내 주위의 모든 인간에게 “보자. 하여튼 보자” 이렇게 절규하는 수밖에 딴 방도가 없다! 없어!
4292년(1959년). 10. 8. 목요일. 청. 고2
목욕하고 집에 와 눕다. 작은형 와서 자다.
四二九二年 十月 九日 金曜日 晴 고2
오늘은 한글날. 세종께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자를 만드신 날이다. 다시금 한글의 가치와 역사를 알아 둘 기회는 왔다. 그러나 나에겐 이 날이 바로 낮잠 잘 기회다! 식전에 형은 시골 가고 나는 대한극장에 가서 “뇌격명령”을 감상했다. 과학영화였다. 집에 오니 골치가 아파 서 옆방 아줌마가 친절하게 해 주는 밥을 얻어먹고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한잠 자다가 송_목이 왔다. 그러나 이_은 내내 오지 않았다.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자” 로 나는 보고 싶다. 송_목이 가져온 사진기로 몇 장 찍고 보냈다. 나 혼자 남으니 또 할게 없다. 낮잠을 실컷 자다 보니 어두워졌다. 자 그러고 보니 또 할게 없다. 공부는 어쩐지 영 하기가 싫으니 말이다. 어쩐지 책 들기가 싫다. 그래서 나는 이 일기를 쓰는 것이다. 뭐 일기 쓰는 게 시간이 남아서 하는 건 아니지만.
4292년(1959년). 10. 10. 토요일. 晴(雲) 고2
학교를 파하고 청량리 혜_네 갔더니 아주머니는 오늘 내려 가셨다 한다. 혜_와 함께 왔다. 저녁 식사 후 이_네 집에 가서 놀다가 자고 가라는 것을 물리치고 집에 오니 집안 식구들은 한없이 자고 있다. 오늘 혜_와 함께 오면서 나는 혜_가 옷 좀 깨끗한 것을 입었으면…하고 바랬다. 그러나 나는 그런 차림으로 떳떳하게 활보할 수 있는 그의 초월에 그만 깊이 탄복했다. 그만두자. 내일 이-과 열두시에 파고다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4292년(1959년). 10. 11. 일요일. 운
아침에 혜_를 보내고 열두시에 파고다 공원 앞에서 이_을 만났다. 그 놈은 역시 약속 시간을 지키긴 지키는구나.
이_과 함께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화신 영화관에 가서 “젊은 사자들”을 감상했다. 독일군과 불란서군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남녀간의 묘한 관계를 복잡하게 얽어 놓은 명화! 몽고메리 크리프트의 호연이 지금도 눈에 기억된다. 독일인 들은 어찌 된 것이 키스를 식은죽 먹듯 하니 참 너무나 빠르다. 독일 여자들 입술은 언제나 부르터 있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저 정도로 키스를 해대니 부르트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네들은 또 그리 미인도 아니었다. 난 그것이 어쩐지 어색하게 보였다. 그러나 스릴이 있는 영화였다. 키스하는 횟수를 세다가 지루하여 그만 나와 버렸다. 두 번 보려 하다가 그만 포기한 것이다. 나와서 이_과 곧 헤어져 집에 오니 6시! 이제 부 터 공부 좀 해야 되겠다.
오늘 이렇게 서울 시내를 활보하며 나는 어쩐지 자꾸 나 자신이 비감에 쌓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허감에 잡히곤 했다.
4292년(1959년). 十月 十一 日. 日曜日 雲 고2
서울운동장에서 연합체조를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연_이 한 테 들려서 전할 말을 전하고 집에 돌아와서 놀았다. 연_이가 다녀갔다.
4292년(1959년). 10. 13. 화요일. 명.
학교 수업 끝남. 한 일 없음.
4292년(1959년). 10. 14. 수요일. 명.
연합체조에 참가했다. 저녁에 임_네 집에 다녀오며 나는 어쩐지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
임_네 학교는 17일 수학여행을 간다 하는데 우리 학교는 어떻게 된 놈의 것이 그것조차 포기했단 말인가?
교사진도 나쁘고 대학 입학률도 나쁘고… 내가 뭘 한다고 이 지랄이란 말인가? 그저 없어지고 싶구나.
4292년(1959년). 10. 15.
오늘도 서울운동장에 나가서 운동회 관람하고 돌아옴.
4292년(1959년). 10. 16.
오랬 만에 학교 수업을 함.
아----- 참.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심정이다.
4292년(1959년) 10. 17. 청.
지금은 새로 한시가 조금 넘었다. 문간방엔 큰형님이 자고 있고 지금 내가 일기를 쓰고 있는 방엔 어머님이 주무시고 계시다. 안방엔 은_이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참으로 주위는 고요한데 도무지 잠이 안 와 펜을 잡은 것이다. 요사이 나는 신경질이 하나 늘었다. 은_이 자꾸 우는 것이다. 공부하려는 책을 펴 들었을 때 은_이 울어 제치면 나는 또 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라디오를 아무리 크게 해 놓은들 내 신경질은 가셔지질 않았다. 화가 극도에 달하면 노트라도 빡 찢고야 만다. 결국 그런 다음엔 후회하고 마는 것이다. 내 신경질이 발작할 그 순간만은 위에 오는 모든 예측에서 멀리 떠나져 버리는 것이다. 황금찬 선생한테 “자취”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써 냈는데 이게 만일 동성지에 실리지 않는 날이면 난 그 보다 더 큰 창피는 없다. 하여튼 이게 실패하는 날엔 나는 모든 창작을 포기해 버려야 되겠다. 과거 국민학교 때 전국 소년 서울 신문사 주최 작문에 3등을 하고 중학교 때 교내에서 3등을 한 것이 내 작품이 겨우 뻗쳐 나가는 한계이다.
아… 지금 ´´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학교 시험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니! 기_엄마 말씀엔 대학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아주 대학을 포기 해 버렸는지도 몰라. 지금 이 시간에도 파고 들고 앉아 있는지. 나도 몰라!
그리고 문´도 지금쯤 뭘 할까? 그 애는 잠자고 있을 거야.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니까. 그래도 우등생인데 잠을 자고 있으려고!
나는 키가 자꾸 줄어 드는 것만 같다. 아니, 남에게 따라가질 못한다. 학교 친우들만 해도 그들은 부쩍부쩍 커 가는데 나는 이거 뭐 아주 굳어진 것 같다. 이게 나에겐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대학 시험에 도무지 붙을 것 같지가 않다. 지금 입시 문제를 보면 너무나 어마 어마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뭐 도무지 더 쓰고는 싶으나 졸음이 조금 오는구나.
4292년(1959년). 10. 18. 청. 고2
맑은 날씨만 계속된다. 아침에 종만한테 가서 머리 깍고 같이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 일로 연옥이 한 테 가서 집에 오라는 말을 전하고 집에 오니 4시 반! 어머님께서는 의외에도 오늘 가신다 한다. 5시 반차로 가시게 됐다. 서울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플레트 홈을 나가시는 것까지 보았다. 집에 오니 진복누나가 여지껏 안 가고 있다. 저녁에 연옥 오다.
4292년(1959년). 10. 20. 화요일 청.
무의미의 연속.
아 참! 오늘 처음으로 동전을 구경했다.
4292년(1959년). 10. 21. 수요일 청.
학교 수업 후 즉시 정_ 짐을 나르기로 했다. 나, 종_이, 구_이와 정_와 넷이셔 상도동으로 갔다. 거기 가서 짐을 꾸리니 어두워졌다. 노량진 역에까지 나와서 전차를 잡아타고 동대문까지 왔다. 동대문까지 오면서 정_와 옆의 여학생을 골려 주고 우리끼리 재미가 나서 히히덕거렸다.
동대문서 다시 정릉버스를 탔다. 종_이는 책상, 빽, 나는 책보따리, 구_은 이불보따리, 정_는 책, 이렇게 각각 들고 버스 차장이야 뭐라고 말하든 간에 무조건 가지고 올라탔다. 아이들과 함께 타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하지 못할 배짱이 생겼다. 정_ 자취하는 방에 다다라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짜장면 대접을 받았다. 그 놈,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오히려 택시로 운반하는 것 보다도 돈이 더 들은 모양이다. 대단히 미안하다. 그러나 정_ 이삿짐 날라주고 짜장면 얻어먹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있지 않으리... 미자네 집도 그 근처이기 때문에 알게 되었고. 종_과 함께 집에 와서 자다.
4292년(1959년) 10. 22. 목요일. 청.
내일은 소풍. 수원 농대로 간다고 했다. 난 도무지 흥이 나질 않는다. 여기 간다, 저기 간다, 하고 한참 떠버려 놓고는 겨우 간다는 게 남의 대학 구경 간다니.
하여튼 나는 수원에서 직접 천안 갈 예정이니까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그러나 소풍이라고 해서 하나 마음에 동요됨이 없는 건 정말 나 자신도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요_이 한 테 물건 사라고 500환 주었다.
4292년(1959년). 10. 23 금요일 청(운)
아침은 먹지도 못하고 용산 시외버스 정차장에 합승으로 달려가 보니 7시!! 아직도 30분이나 남았고 아이들은 극히 적게 왔다. 밥은 먹어야 하겠기에 옆에 오죽잖은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켜 먹었다. 비록 시설은 형편없어도 단골 손님만 다니는 곳이라 그런지 대단히 흡족하게 해 주었다.
한 그릇 100환 주고 배는 불렀으니 이제는 제법 기운이 솟았다.
버스는 다행히 창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 즐거운(?) 하루는 시작 되려는가 보다. 그러나 하도 웃어 싸서 그만 꼴딱 넘어간 껌이 목구멍에 붙어서 여간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서울을 벗어났다. 기차를 타고 수없이 왕래한 것이지만, 그러나 친구들과 흥얼대며 달리는 이 길은, 새로운 맛이 풍겼고, 즐거운 마음이 도로를 포장하고 달리는 버스속에서 부채질했다.
수원시를 가로 질러 농대에 도착, 하차해서 어쩐 일인지 두어 시간을 세워 놓고 종종 소식이 없었다. 이 무슨 크나큰 선생들의 실책이냐? 더구나 이런 데로 끌고 온 고병갑 선생이 얄미워 못 견디겠다.
결국 학교 주위를 한바퀴 돌기는 했으나 하여튼 인상이 남는 건 강당이고 식당이다. 강당은 5억대를 들여서 공사했다는데 어느 일류극장 못지 않았다. 식당도 설비가 최신식으로 되어 있어 서울의 어느 고급식당 못지 않았다. 기숙사는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산에 갔었는데 울창한 나무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무한히 아름다운 자연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인공적인 힘이 자연적인 힘에 가해지만 큰 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까?
자유시간에 이_과 나와 요_과 셋이 서 식사를 같이 했다. 사진도 잔뜩 찍었다. 즐거웠다. 요_이 놈이 버스 안에서 과자를 도둑 맞았다 했다. 대단히 애석했으나 나야 숫재 물건을 보지 않았으니 뱃속이 편하다. 소풍을 마치고 수원서 나는 내려 기차로 천안에 왔다. 오늘 저녁에 영근이도 어디 수학여행 갔다가 온다고 했다. 상당히 반가웠다. 얼굴을 씻는데 자기 수건을 내 주었다.
4292년(1959년). 10. 24. 토요일 청
대사도 며칠 남지 않았건만 어쩐지 집안은 괴괴하다. 퍽 심심하다. 집에 누워 책을 좀 읽다가 점심때 할아버님 댁으로 놀러 가서 감을 얻어먹었다. 할아버지는 예나 제나 좋으신 분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히는 교훈인 것이었다.
저녁에 영근과 한참 얘기했다. 자기 수학여행 갔다 온 이야기길 해 주었고 나도 소풍 갔다 온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오늘 처음 영근이 한테서 “너”라는 대명사로 불렸다. 퍽 반가운 소리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좀 괘씸하기도 하다. 같은 나이라도 여자는 남자를 거지 발싸개로 안다 하는데 영근이도 혹시 나를 거지 발싸개 정도는 아닐 지라도 어린애 취급하는 게 아닌 건가? 영근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유난히 얼굴을 붉힌다. 수학여행 갔다 오더니 얼굴이 검게 탔다. 대단히 섭섭한 현상이다.
4292년(1959년). 10. 25. 일요일. 청
어쩐지 심심해지기만 하고 짜증만 난다. 빨리 서울 가고 싶다. 영근이 영어책을 보니 알 듯한 단어에도 모두 뜻을 적어 놓았다.
3시 차로 상경 집에 와 보니 아무도 없고 방은 차갑다. 아--------- 내일 일이 걱정 되누나. 저녁에 형님께서 늦게야 오셨다.
4292년(1959년). 10. 26. 월요일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 밥을 했다. 썩 잘 되었다. 불현듯 몇 달 전에 상도동에서 주_과 자취하든 생각이 나며 다시금 그리워졌다. 그땐 정말 지긋지긋한 생활이었으나 역시 즐거웠던 석달 간이었다.
아침에 개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갑자기 흐려지고 후두둑 비가 내렸다. 또 우울하게 하루를 맞으려는가 보다. 비가 오면 어쩐지 기분이 언짢아진다.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옷이 젖고 둘째 비의 감촉이 시스럽고 셋째 우산이 없다. 집에 와선 그대로 아랫목에 주저 앉고 싶었다. 오늘 구_이 와서 자기 조부님이 별세 했음을 알려 주곤 곧 갔다. 퍽 슬퍼하는 기색이었다.
상공부는 문을 닫았고 그래서 종만형에게 갔다. 일본 여자에게서 난 자라 한다. 저 여자를 한번 누나로 삼고 싶다. 그러나 좀 놀아난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생겼다.
9시쯤 해서 큰형이 갑자기 들어와 1000환을 주고 나갔다. 시골 가는 길이란다. 자 이제 공부해야 되겠다. 그러나 공상해보고 싶다. 일본에서는 목욕탕에 남녀가 구별 없다 한다. 이 어찌 해괴한 풍속이랴마는 그네들은 그네들대로 마땅한 일일 것이니, 그래서 풍습이란 무서운 건가 보다. 나는 일본을 한번 가 봤으면 좋겠다. 일본에 건너가서는 제일 먼저 목욕탕엘 들어 가겠다.
아… 내일은 조퇴하고 시골간다? 자. 이젠 공부하자. 지금 9시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무_이 한테서 300환 꾸었다. 병직형이 왔다 하는데! 그런데 못 보았고. 형 쉐타는 작은형이 입고 가고. 참 주책이지. 점 쳐보니 영근은 과거의 사랑극(절연)이고 문_는 우정의 사랑이 나왔다. 허 ---- 참 기막힌 짓이지만 잠깐 흥겹게 놀만한 장난이다.
4292년(1959년) 10. 27 감격의 날! 우. 고2
오늘 병관형 결혼이다. 한 시간 조퇴하여 상공부에 가서 문서를 찾은 다음 서울역을 향했다. 차 안에서 이_호를 만나 옆의 대학생과 심심찮게 여행했다. 천안에 닿아 줄달음으로 들어가 보니 집안은 떠들썩 했다. 저녁에 영근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춘_도 와서 일해 주고 있었다.
4292년(1959년). 10. 28
오늘 결석이다라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다. 사실 그랬다. 7시간 수업을 고스란히 빼먹으니 말이다.
아침엔 별로 바쁘질 않더니 저녁이 되니 이건 뭐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 집안은 그대로 불이 난 중국 집이고, 정오쯤 해서 신랑신부가 들이 닥쳤다. 신부측에서 장농이니 옷이니 이불이니 하여 잔뜩 가져왔다. 신부는 내가 예상한 것만큼 그렇게 잘 생기진 못했다. 그러나 키도 큼직한 게 마음이 퍽 너그러워 보였다. 그러나 족두리 쓰고 앉아 있으며 흘끔 흘끔 위를 쳐다보는 것을 목도했을 때 나는 어쩐지 “저 양반이 참을성이 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잠시간 슬퍼졌다.
2층엔 손님이 여전히 득시글거렸다. 안면이 있는 어른도 많이 와 계셨다. 영대와 나와 연신 날라도 손이 모자랄 때도 있었다. 배고픈 줄 모르겠고 고단한 줄을 모르겠다. 우리 방엔 당숙 이하 여러 노인들이 죽치고 앉아 있다. 당숙을 보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가족사진은 찍지 못하게 되었다. 섭섭한 일이다.
어찌해서 어떻게 되돌아 간 줄도 모르게 어두워지고, 그래서 이내 잠들어 버렸다.
4292년(1959년). 10. 29 목요일. 청
식전 다섯시 차로 상경. 그런데 천안서 차가 떠나는 통에 차표도 사지 못하고 달리는 차에 매달렸다. 그래서 차장한테 말했더니 차표는 나중에 줄 테니 돈부터 내라 한다. 내가 어리석었다. 쑥맥처럼 돈을 주어 놓았으나 영 그 차장인가 뭔가 하는 놈이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니 3시간 동안 나는 그지없이 불쾌하고 불안한 여행을 한 셈이다. 서울역에서야 그 놈을 겨우 찾으니 차표를 주니 시흥부터 서울간의 차표를 준다. 개새끼다. 왜냐고? 나머지 400환은 자기가 먹고 떨어진 게 아닌가? 그러나 내가 지금 이런 걸 논 할 때가 아니다. 합승으로 혜화동까지 달려와 집에 왔다가 학교 가니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그러나 어쩐지 어저께 결석해서인지 며칠 결석한 것처럼 시스럽다.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점심땐 정말 골치가 아프고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조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학교를 파하곤 이_과 송_목을 끌고 와서 천안서 가져온 약식과 돼지고기와 또 뭐더라를 오손도손 먹었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않먹었다. 물도 안 먹었다. 단지 먹은 건 돼지고기 몇 점. 약밥 조금. 약과 몇 개 뿐이다.
4292년(1959년). 10. 30 금요일
내일은 운동회라 한다. 오후에 문리대 정구장에 가서 깜깜해지도록 까지 연습(정구)를 하고 거기서 조끼를 하나 주웠다. 철_이가 입겠다 하는 게 하도 얄미워서 내 것이라고 속여서 집에 가지고 왔다. 그러나 어쩐지 께름하기도 했다.
4292년(1959년). 10. 31. 토요일 청. 고2
운동회!
아침부터 문리대 정구장에 가서 정구를 했다. 개구멍으로 기어 들어 가서 12시까지 연습했다. 대학생들 한테 조끼에 대해서 물으니 모두가 모른다고 한다. 정구시합은 대번 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고삼들 중에도 제일 강 팀과 붙었으니, 그리고 원래 실력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당해 낸단 말인가? 그러나 지고 나니 기가 막히다. 여지껏 연습한 게 한낱 수포로 돌아갔다. 공_근 한테 담임한테 그리고 친구들한테 미안한 일이다. 폐회식에서의 성적 발표에 의해 우리반이 꼴찌만 겨우 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튼 내가 정구를 진 건 진 거다. 집에는 작은형이 와 있었다. 기분이 나질 않았다. 밥을 해 먹고 이_네 집에 갔다. 거기서 잤다.
4292년(1959년). 11. 1 일요일
이_과 함께 교회 가다. _이네 된장찌개가 퍽 맛이 있었다. 아침 11시경 해서 종만 형한테 왔더니 나갔다 한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와 찬 없는 밥을 억지로 먹었다.
요사이 특별히 하는 일이 도무지 없다. 거의 무의미하게 하루 하루를 채워 나가고 있다. 공부 좀 해야겠는데, 해야겠는데 하고 마음을 졸이며 먹으나 어쩐지 잘 되지를 않는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다섯시가 되고 뭐 좀 닦다 보면 6시고 밥 먹으면 7시, 자 그러니 사실 공부할 시간은 한 서너 시간 밖에 안된다. 그동안 뭐를 한단 말인가?
어물어물 하다가 그냥 하루가 지나 버린다. 변소 가서 한시간 앉아 있는 것도 이젠 고려해야 할 판이다. 11월 3일 나는 오늘 정_와 서울 학원에 가서 수강 신청을 했다.
영어 3위일체이었다. 좀 배우자는 학생들로만 차 있는 방의 분위기는 그대로 진리를 찾는 모습들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대부분이었고 고2가 좀 있고 심지어 고1까지 있었다. 나는 뭘 해야 하는가? 학관에 다니는데 걸리는 시간만 꼭 두시간을 소비했다.
4292년(1959년) 11. 12. 고2
시험이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