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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Young Pak <youngpak2006@yahoo.com>
Date: June 11, 2026 at 12:51:00 PM PDT
To: byeongk@gmail.com
박용필의 미국인 이야기
한탄강에서 에볼라 강까지
얼마 전 남극 크루즈선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해 승객 3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문득 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가 복무했던 곳은 한탄강 인근이었다. 한타바이러스의 이름이 탄생한 그곳이다.
한탄강은 강원도 철원을 지나 휴전선을 따라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절벽과 협곡이 빚어내는 풍광은 웅장하면서도 처연하다. 당시 젊은 병사의 눈에는 사진으로만 보던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축소해 놓은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분단의 상처와 전쟁의 비극이 흐르는 강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이 바이러스를 ‘한타(Hanta)’ 바이러스라 부른다. 그 이름의 유래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공군 참전 이후 전세가 급변하자 미군은 한탄강 일대 ‘철의 삼각지’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병사들이 원인 모를 괴질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고열과 급성 출혈 증세를 동반한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감염자는 수천 명에 달했고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전투보다 질병이 더 무서웠던 순간이었다.
당시 미군 수뇌부는 처음에 이를 중국의 생물무기로 의심했다. 만약 사실로 확인될 경우 원자폭탄 투하까지 검토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중공군 역시 같은 괴질로 피해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만든 무기가 아니라 자연 속 바이러스의 공격이었다. 자칫 한반도가 또 다른 참화를 맞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은 무려 25년 뒤였다. 이호왕 교수(의대 48)는 한탄강 주변 들쥐를 연구한 끝에 바이러스의 숙주를 찾아냈다. 세계 의학계가 깜짝 놀랄 발견이었다. 그는 이 바이러스를 ‘한탄 바이러스’라 명명했지만, 미국에서는 발음의 편의 때문인지 ‘한타 바이러스’로 불리게 됐다.
이 교수는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면역학 연구에 매진했고, 결국 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이어 백신 개발까지 성공했다. 이 업적으로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랐지만, 당시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과학계 환경은 세계 최고 권위를 차지하기엔 아직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한타 바이러스는 한국만의 질병이 아니었다. 1990년대 콜로라도·유타·애리조나·뉴멕시코 등 4개 주가 만나는 이른바 ‘포 코너스’(Four Corners)에서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감염이 급속히 확산되며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방역당국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한탄강 못지않게 공포의 상징이 된 강이 또 있다. 바로 아프리카 콩고의 에볼라 강이다. 에볼라 강에서 이름을 딴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매우 높아 ‘현대판 흑사병’으로 불린다. 치료제와 백신이 거의 없던 시절에는 감염 자체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출혈과 고열 등 증상 또한 한타바이러스와 닮아 있다.
10여 년 전 에볼라가 창궐했을 당시에는 “미국이 인구를 줄이기 위해 만든 생물무기”라는 음모론까지 퍼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에볼라와의 전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나라는 미국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고, 감염위험에도 불구하고 서아프리카에 수천 명 규모의 병력과 의료진을 보내 방역 지원에 나섰다.
한국 역시 의료진을 현지에 파견했다. 어쩌면 한탄강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연구와 국제사회의 도움에 대한 작은 보은이었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남극 크루즈선의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 소식과 거의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또다시 에볼라가 확산되고 있다. 벌써 25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무장 반군의 폭력 사태와 대규모 난민 발생까지 겹치며 환자 격리와 감염 경로 추적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언제나 인간 사회의 가장 약한 틈을 파고든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역사이기도 하다. 천연두와 흑사병, 스페인독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그리고 한타와 에볼라까지. 인간은 과학과 의학으로 맞서 싸우지만 바이러스 역시 끊임없이 변이하며 살아남는다.
그러나 역사는 또 하나의 사실도 증명해 왔다. 결국 인류는 협력과 연대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점이다. 한탄강의 작은 들쥐에서 시작된 연구가 세계인의 생명을 구했듯,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인류는 두려움만이 아니라 과학의 힘, 연대의 가치,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 또한 함께 배워가고 있다.
미주 동창회보 2026.6.1 제 385호 박용필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