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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있었다는 건 오늘이 있음을 상징 함이요 오늘이 있음은 또한 내일을 예약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 이겠는가? 추억은 아름다우나 잊기 쉬운 것. 이십사 시간의 사건이 종이 위에 기록되면 그건 그것대로 아름다운 추억! 나의 일을 영원히 간직하여 백발이 성성할 때 꺼내 보고는 회상에 잠기겠노라.
4292년(1959년). 11. 17. 화요일 청 (고 2)
오늘로써 시험은 끝났다. 시험을 다 치르고 나니 시원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찜찜하기도 하다.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성적은 여전하다. 집에 와서 정리하다가 정_집을 찾아가니 정_ 누나만 계시다. 시간이 남으므로 제_이네를 들렸다. 수다스러운 할머님 입은 여전하셨다. 집안은 중국 집 불 난 것처럼 소란했다. 거기서 인_이와 함께 학원엘 왔다. 키는 조그만 게 재잘거리긴 참새 새끼 같다.
서울학원에서 삼위일체 강의를 듣고(너무 오래간만에 가 보는 것이기에 얼떨떨하다) 곧바로 종만형 한테 갔다. 마침 치우고 있는 중이어서 머리를 깎고 대법원을 나섰다. 올 땐 친절하게도 짜장면 값을 억지로 주므로 나는 감사히 받았다.
광화문에서 중앙청 쪽으로 어느 정도 가다가, 상일 형님이 있는 하숙이 있긴 있는데 해가며 무려 한시간가량 헤매 겨우 형님 하숙을 찾아 냈다. 방에 누워 있었다. 그 곳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주고받다 10시경에 나와 규_이를 찾아 갔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언짢은 소릴 들었다. 친구라는 게 뭐냐? 나는 하나의 헌 쪽박처럼 여지없이 그네들 한 테 배신당했다. 내자신 조금이라도 대범 했다면야 뭐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하나의 평범한 인간인지라 세_과 둘이서 나를 모임에서 빼 돌린걸 발견하고 분개해진 거다.
화도 나고 또 부끄럽기도 하여 무척 절망적인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학표 형님이 와 계셨다.
요컨대 나는 오늘 규_이 세_이 한 테 배신(?) 당한 거다.
4292년(1959년) 11. 18. 청 수요일
나에겐 오늘 같은 날도 있었으니!
오늘 학관에 갔으나 어쩐지 선생이 나오질 않아 수업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곧장 집에 가려 하는데 정_가 벼란 간 어느 여학생을 지적하면서 ‘저거 한 테 내가 창피를 톡톡히 당한 적이 있다. 때려 줘야 되겠다’ 라고 말하는 거였다. 나는 호기심이 부쩍 동했다. 결국 우리는 그 여학생의 뒤를 따라 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돈암교 거의 다 와서 내리므로 우리도 그 뒤를 따라 내렸다. 정_의 책가방을 내가 맡고 나는 그의 거동을 살펴보기로 했다.
한참 그 학생과 정_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자식은 맞대 놓고 몇 대 친다 하드니 웬 잔소리가 저리 심하노?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섰다. 계집애 치곤 퍽 딱딱 거리는 게 여니 물렁한 보통 것과는 달리 보였다. 정_ 그 놈은 계집애 앞에다 놓고 뭐 인간성이니 뭐니 하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나도 말 참견을 하게 되어 반말을 해 버렸더니 이 계집애가 핏대가 나서 지랄이다. 마침 민_기도 지나 가다가 이것을 목격하는 바람에 우리는 셋이 되었고 계집애는 혼자였다.
결국 동네 사람들이 나오고 하는 통에 우리는 할 수 없이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 오자니까 그 계집이 학생들 대 여섯 명을 끌고 왔다. 난 속으로 당황하면서 ‘어떤 놈 하날 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죽도록 얻어 맞는 구나’ 하고 생각 하니 좀 떨리긴 떨렸지만, 어디 까지나 동성고의 프라이드를, 그리고 사내 대장부의 긍지를 보이고자 태연한 척했다. 정_는 몇몇 동네 애들한테 끌려 가고 나는 그 여학생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 보고 초면에 왜 반말이냐고 질책했다. 옆엔 동네 애들 세 명이 잔뜩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아연 긴장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나에게 이것저것 훈계조로 역설하며 자기 한 테 반말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럽게 그녀에게 사과를 청했다. 내 자존심을 털 끝 만치도 챙기지 못하고 나는 그 앞에서 완전히 똥이 되어 버렸다.
하여튼 끝에 가서 나는 그 여학생에게 ‘나, 오늘 생면부지의 한 여자에게 지나친 실례를 해서 미안하다. 내 원래 나쁜 놈은 아니니 혹시 길에서 또 만나도 전적으로 나쁘게 보지는 말아달라’ 고 참 어설픈 말을 하고 헤어졌다. 정_도 다행히 아는 놈이 나타나서 일이 잘 해결되어 나는 정_와 함께 돈암동까지 걸어 왔다.
생각 할 수록 어이가 없었다.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하여 우리는 참으로 울적한 기분이었다. 오는 길에 물리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학관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속였다. 내가 한 여자 앞에서 이렇게 당해 보긴 생전 처음이다. 하여튼 퍽 기분이 나빴다. 삼선교 근처까지 왔는데 앞에 웬 여학생 둘이 나란히 가기에 우리는 기분 나쁘던 참에 잘 되었다 했다. 정_도 자기 실력을 보여 주겠다고 하기에 우리들은 그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학교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 가서는 나는 그만 멈추고 말았다. 정_가 끝까지 따라 가는 데는 나는 정말 두 손 다 들었다. 더구나 가서 몇 마디 하고는 나를 부르러 왔다. 나는 싱겁기도 하고 또 기분도 나질 않아 응하지를 않았다. 정_와 함께 만두 집에 가서 만두를 간장에 찍어 먹으며 우리는 참 어이가 없었다. 그래 계집 앞에서 이게 무슨 창피냔 말이냐!
정_는 삼선교에서 버스로 떠나고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집에 오니 어머님께서 몹시도 걱정하고 계셨다. 죄송한 짓을 했다. 만일 나의 이러한 행동을 부모님들이 아신다면? 학관에 다닌답시고 공연히 헛 짓만 하고 다니는 나의 비행을 부모나 형이 알게 된다면? 아! 나는 정말 정신 차려야 되겠다.
4292년(1959년). 11. 21. 토요일 청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과외 수업 때문에 한 시간 일찍 가기로 되어 있는 것이 좀 고되다.
오늘 학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정_가 왔다. 나가자 하기에 나가 보았더니 여섯 시에 단성사 앞에서 여학생과 만나기로 되었는데 나오라는 것이었다. 나오긴 했으나 어쩐지 마음이 내키질 않아 다시 학관으로 돌아가려 하고 보니 이미 시간도 지나고 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천천히 걸어 가 보니 놈은 극장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6시에 만나기로 했다는 놈이 6시 반이 되도록 계집애는 나타나질 않았다. 병신 같은 놈이다. 난 학관 공부 마치지 않은 게 제일 원통했다. 어떤 병신 같은 계집애 때문에 내 학관 공부는 고스란히 까먹고 만 것 아니냔 말이다. 문화동에 갔더니 명_이 누나와 형이 와 있었다. 가방을 받아 가지고 집에 왔다.
4292년(1959년). 11. 22. 일요일 청 고2
저녁에 영숙 조카가 왔다. 작은형은 곧 부대로 돌아 갔고, 학관에선 영작을 배웠고, 그것 밖엔 한 일이 없다.
4292년(1959년) 11. 24. 화요일 운
학관에 다녀오니 어머니께서 나를 꾸중하신다.
어느 놈이 나의 도시락 속에다 쪽지를 집어넣었든 것이다. 누군가 장난을 너무 심하게 했다. ‘벵길이 변도 싸 주시는 어머니한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런 내용의 쪽지였다. 이게 누구의 소행인가? 화가 울컥 치밀었다. 어떤 놈의 새끼가 이런 더러운 장난을 하였을까? 참으로 너무 심한 장난이다. 그야 뭐 나도 이_의 도시락에다 장난을 하긴 했어도 이렇게 심하게 하진 않았다. 그저 ‘이_ 도시락 반참 좀 잘 싸 주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장난은 악의에 찬 것은 아닐 지라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안정_ 한_원, 김_성, 이 세 놈 중에서 누가 써넣었음에 틀림 없다. 하여튼 내일 학교 가서 보자.
4292(1959) 11. 25. 수요일 청
열심히 탐색해서 그여 범인을 찾아 냈다. 정_다. 톡톡히 망신을 주었다.
5시 반 차로 영숙을 보내고 학관에 갔다. 학관에서 “view - point”를 묻는데 나는 대답하질 못했다. 창피한 노릇이다. 왜 자꾸 물어 보냔말이다.
4292년(1959년). 11. 26 목요일 청 고2
수업을 다 마쳤을 때 뜻밖에 순이 누나가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하도 오랜만에 보니 언뜻 보면 잘 알아보질 못하겠다. 위 아래 양단으로 쪽 뺀 것이 뉘 집 귀부인 족하다. 키는 내가 훨씬 큰 것을 보면 누나 키는 예전 그대론가 보다.
2, 3일 후에 간다고 했다. 나는 겉으론 퍽 서운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실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순이 누나는 이미 탁 터진, 교활한 일개 색씨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순이 누나가 있음은 나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고, 이는 곧 내 활동 범위의가 아닌가? 말끝마다 전엔 보지 못했던 어떤 교활성이 들어 나 보이는 게 난 서글펐다. 이리 저리 다녀 닳을 대로 닳은, 속된 여자가 되고 만 것 같이 생각되어 어쩐지 마음이 그렇게 즐겁진 못했다.
옛날, 명륜동에서 자취하고 있었을 때만 해도 정말 얌전한 여자였는데… 하여튼 2,3일간 있다가 간다는 데 뭐. 감기가 들어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다. 콧물 눈물이 한없이 나 신경질만 난다. 물리 94점 수학 95점인데 역사는 내가 적당히 채점하여 88점으로 해 놓고 큰형 앞에 디밀었다.
제 4기분 사친회비 고지서가 나왔다. 아직 3기분도 내지 않은 나에겐 그저 모든 게 암담할 뿐이다. 11900환 + 13,000환 = 2만 4,900환!
지금 라디오에선 ‘솔개 마을’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초침은 자꾸 흐른다. 오늘 수학 S와 log를 해야 한다. 앞이 캄캄하다.
4292년(1959년). 11. 27. 금요일 청
체육시간에 운동장 몇 바퀴 뛰는데도 몹시 지쳤다.
내 몸이 이렇게 허약한가? 걱정이 된다. 하필 고3때 무슨 병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다.
오늘 어머님과 누이가 개목 누님집에 갔었다 한다.
자! 학관에도 갔다 왔으니 이제 공부 좀 해야 되겠다.
4292년(1959년). 11. 29 토요일 청
학교에서 단체로 경복궁 과학 전람회를 갔다. 로켓트의 겉 모양은 번들하나, 한낱 모형에 불과하니 서운하기도 했다. 하여튼 모든 게 훌륭하게 되어 있었다.
4292년(1959년). 11. 9 일요일 청
아침에 어머님을 역에까지 모셔 드리고 동대문 할머니네 집엘 갔다. 거기서 돈 좀 얻어 가지고 혜화동에 가서 사친회비를 내고 집에 왔다. 오는 길에 한영 포켓 사전, 대학입시, 그리고 ‘Modern American stories’롤 샀다.
요즘처럼 일기를 쓰다가는 아무 가치도 없겠다. 도대체 길게 쓸 기분도 나지 않으려니와 또 일기만 붙잡고 늘어질 한가한 시간도 없다. 학관은 이제 그만 두어야 되겠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기 때문이다. 그 동안 딴 공부를 해야 되겠다.
작은형이 아직 오질 않았다
4292년(1959년) 12. 3
외사촌 종록 상경. 어머님께서도 상경.
4292년(1959년) 12. 5
종록이와 함께 우미관에 가 영화 ‘지옥의 전설’을 보았다. 보다 보니 몇 달 전에 본 것이었다.
4292년(1959년). 12. 6 청
종록이는 낮 차로 시골 내려 가다.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
- 12. 8 화요일 청
51 주년 기념식 교우지가 나왔는데 내가 쓴 꽁트 ‘자취’가 실려 있었다. 내가 쓴 게 활자화 된 건 생전 처음은 아니고 둘째 번이다.
6시 부 터 문학의 밤을 하는데 모든 게 마땅치 않았다. 내가 쓴 ‘어느날의 일기에서’ 라는 걸 낭독하면 자신이 있는데 그 작품을 오늘서야 겨우 가져왔으니 될 게 뭐 람! 참 분하고 원통한 마음!. 울고 싶구나.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없을 텐데.
행사 마무리를 한, 최정히 여사, 김목월 선생님의 강의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 문학의 밤에서 내 작품을 낭독 못 한 건 천추의 한이다.
- 12. 9 수요일 청(운)
아침 차로 어머님께서는 천안에 내려 가시고, 서울엔 순이 누나가 있게 되었다.
요사이 나의 심정이 왜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다 귀찮게만 보이고, 선생들이 모두 무슨 원수 같다. 집에 오면 옆방에서 은_이가 빽빽 울어 대고, 며칠 있으면 시험인데 제대로 해 놓은 게 하나도 없고.
에이. 쌍놈의 것. 모든 게 없어졌으면… 날 지금 괴롭히고 있는 것은 ?. 창피하지 않은가? 두고 보자. 하여튼 모든 게 귀찮다.
- 12. 16
오늘로 시험이 끝났다. 시험을 엉망으로 치렀다. 어제까지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20등 안에도 못 들겠다. 창피한 노릇이다.
4292년(1959년) 12. 18
요새 같은 심정만 몇 달 계속된다면 난 미쳐 환장할 것만 같다. 매사에 짜증부터 앞서고, 때로 명상에 잠기고 싶어도 잡념이 뒤통수를 내리쳐 어찌 할 수가 없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력한 인간이 되었고 비겁하게 삶의 투쟁에서 밀리고 있는가 고 스스로 물어보아도 눈만 껌벅거려 질뿐 할 말이 통 없다!
생에서 일절 retreat 한 자, 가장 up to date한 감정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자, 바로 내가 이렇게 모든 일에 실망부터 가져야 할 아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억지로 즐거운 마음을 유도하기 위해 방학이 가까워 온다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한다. 허나 그건, 이제 곧 성적표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우울로 헌신 짝처럼 짓 밟히고 다시 고민에 빠지고 만다. 아! 너무나 나에겐 맞지 않는 세상이고, 또 주위 환경이다. 누구 말마 따나 그야말로 죽고 싶고 사라지고 싶은 세상이다.
기초 실력이 없으니 고3에 올라가서 아무리 발버둥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등수가 20등 안에 들지 않는 한 나는 이 우울증을 도저히 버릴 수 가 없다.
겨울방학이 나에게 가져다 줄 아무런 끈덕지도 없는 거다. 삭으리 없다! 틀어 박혀 공부한다지만 계획이 이렇게 장황한만큼 또 실패는 폭풍노도처럼 들어 닥칠 것이고,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쓰라린 패배의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게 순조롭지 못한 요사이! 평소에 생각했던 그 어떤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음을 억제할 수 없다.
정말이다. 훨훨 어디로 날아 가, ‘경쟁이 없는 세계’, ‘눈치 볼게 없는 세계’, ‘부모 형제 일가 친척도, 이웃도 없는, 나 홀로의 세계’에 가 살고 싶다. 한낱 망상인가?! 그저 한낱 망상이라도 망상하는 힘마저 빼앗기긴 싫다.
졸음이 오지만 더 좀 써야겠다.
기철이 큰 누나로부터는 편지가 없다. 그야 말로 지독히 모욕당한 느낌이다. 이 모욕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여튼 두고 보자.
영_이, 그의 어머니 말씀으론 대학에 안 보낼 것 같은데 본인은 숙대에 가겠다 한다. 어쨌든 그녀는 지난날 나에게 수많은 공상과 상념의 대상이었다. 영_이! 잠자리에서 이성이 그리워져 모든 추잡한 짓을 할 때면 영_이가 가상의 표적으로 올라 무참히 희생당했다. 번번히 영_의 그것을 빼앗는 기분을 가졌으니 말이다! 번번히.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후회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그런 로맨스를 안겨준 영_에게 고마울 뿐. 할 말이 없어지는 나다. 영_의 동그럼한 얼굴, 올라간 눈썹, 포동포동한 발…이런 시적인 언어를 남용할 때는 이미 지나버렸다. 아주 영원히 지났다. 왜냐고? 나는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므로. 하여튼 나는 어느 누구 집에도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제한된 그 집을 빼 놓고는!
4292년(1959년) 2 20
이_네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중앙극장에 가서 ‘몬테크리스트 백작’을 감상했다. 세시간에 걸친 긴 상영의 영화에서 과거 어려서 이 책을 읽고 받은 감명 못지않게 감명을 받았다. 에드몽 단테스의 박력있는 연기!
22일 화
명_누나와 함께 중앙고교 ‘음악의 밤’ 행사장에 감
4292년(1959년) . 12 23. 수요일 고2
오늘 마지막 수업으로 이해도 한 해가 저뭄. 저녁에 아버님과 함께 우미관에 가서 서부활극을 감상했다. 오다머피가 나오는 영화다.그의 연기는 내 이미 ‘지옥의 전선’에서 감명 받은바 있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그리 큰 감명을 못 받았다. 하여튼 아버님은 몇십년만에 처음 처음 가 보시는 영화이시니 나는 흐뭇하다.
오늘 서울에 첫 눈이 오다.
4292년(1959년) 12. 24
오늘 부 터 싱거운 방학이다. 놀랍게도 석차가 4등이다. 오, 하느님 맙소사. 반가운 일이다.
계획 해 보자. 해석
1. 식의 계산 7-46 20p
- 1차 함수 52-91 20p
- 2차 함수 95-185 50p
- 대수 201-234 15p
- 수열 과 급수 310-367 25p
- 확률, 통계 537-638 50p
200 p 1日에 7p
- 12. 25
방학이 가져오는 무의미한 생활의 시작이다. 언제나 그러했듯 나에겐 방학처럼 따분한 건 없다.
왜? 고독하기 때문이다. 남달리 친구가 많은 내가 아니다. 혼자서 돌아다니는, 그런 식의 싱거운 멋에 흥겨움을 느끼는 괴벽도 없다. 그러니 아랫목에 죽치고 앉아 책이나 봐야 하는 게 방학 때면 으레 찾아오는 습관이고, 또 그게 나의 팔자인가 보다.
이번 방학이 마음 편안한 방학 치곤 마지막 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며칠을 맥없이 보내고 나니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 종일 수학 참고서만 들여 다 보고 싶지 삼위일체나 독어 문법은 쓴 약 만큼이나 싫다. 싫은 걸 어찌한다 말이냐? 그래도 이번 성적표엔 독일어성적이 반에서 몇째 안 가게 나온걸 보면 내가 원래 잘 하는 게 아닐까? 아--니다. 왜? 나의 독일어 공부라는 게 참 걸작이다. 해석을 소설 읽듯 자꾸 되풀이해 읽어서 그 순서까지 외어 두는 것이다. 이런 실력이 무슨 놈의 실력이람!
지금 나는 결심을 새롭게 해, der des dem den 부터 공부는 하고 있지만 하여튼 한심한 노릇이다. 2년간 배운 게 비록 소 귀에 경 읽기였지만 그래도 무언가 밑 바탕이 되어 주었는지 참고서를 이해하기엔 훨씬 쉽다.
수학은 참 재미가 있다. 한 문제 한 문제 풀어 나갈 때 마다 통쾌감을 느낀다. 삼위일체는 너무나 어렵다. 그래도 하면 되겠지! 그런데 나에겐 단어 실력이 너무 부족한 게 탈이다.
학관엘 가야 겠는데 큰형님은 돈이 여의치 않은가 보다. 그렇다고 아버님께 돈 달랠 염치가 없다.
4292년(1959년). 12. 26 고2
영_ 한 테서 카드가 왔다. 미안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한 일이다. 부랴부랴 카드를 사서 나도 부쳤다. 얌체머리 없는 행동이지만 할 수 있나 뭐! 히히.
- 12. 30
저녁 차로 귀향. 오랜만에 가 보는 고향이다. 시간이 지나며 고향 땅에 가까워 온다는 게 나를 즐겁게 할 만도 하건만 도무지 감회가 솟지 않는 건 어쩐 이유인가?
사실 이제 나에게 고향이라는 말은 어색하게 들리기도 한다.
나는 고향이 없는 인간이 되었다. 기쁨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악한 자, 가난한 자, 악랄한 자일지라도 고향 땅에 들어서면 그 땅에서 죄를 짓지 아니한 이상 감회가 솟는 법이다. 하다 못해 단 몇 분간이라도 감회에 젖은 얼굴로 낮 익은 들과 산을 둘러 볼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고향에 가면서도 한 가닥 기쁨도 가질 수 없음은 마음이 악 한 탓으로 고향에서 어떤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것이 있다는 말인가? 어! 그건 아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을 만한 그런 죄는 지어 본적이 없다. 혹시 장차 성인이 되어서야 그 무엇이 될지 예언할 수는 없다. 그 누구나 나쁜 놈 되기 원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만 인생 행로라는 것 자체가 미지수의 연속일 진대 장래를 말 할 수 있는 건 공자나 예수가 아닌 담에야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고향이 가까워 오는데 단지 쓸쓸한 기분만이 솟구치는 건 정말 울고 싶도록 처량하다. 지금의 내 심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단지 나의 이 펜, 이 정다운 일기장만이 알아주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은 건방지고 하찮은 지껄임 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에이 뒈지고 싶다’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오는 것은 어찌 된 까닭인가? 뚜가닥 뚜가닥 규칙적인 레일의 소음이 나를 점점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만 같다.
사실 나는 천안이 나의 고향인 것에 슬픔을 느낀다. 나는 왜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뒷동산이 마을을 아담하게 품고 있으며, 어느 양지 바른 마루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을 수 있는 시골에서 태어나질 못했는지… 너무나 쓸쓸하고 적막한 마음에 울고 싶다. 쓰고 있는 이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지금의 내 심정!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넓은 터를 남 다 주고, 요리 조리 뜯어 먹혀 이제는 방 한 칸 만을 겨우 유지한 우리집, 들어서면 우선 압박감부터 엄습해 와 마음 둘 곳 없는 우리집. 안에는 불평만이 있는 우리집. 즐거워질 수가 없는 우리집… 아 당장 없어지고 싶다.
시골 가면 친척이 있다는 걸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이것조차 나에겐 해당이 없다. 백부 댁이라 해야 찬 바람만 일 뿐 가족적인 분위기는 도무지 없고 작은 아버지 네를 가야 모두 식충이 같고 또 역시 살벌한 분위기다. 할아버지야 내가 기막히게 좋아하는 어른 이시지만 거길 가면 꼭 빈곤의 심부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여하튼 이제 난 고향이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고향이 없는 놈으로! 국_이도, 임_도, 규_이도, 세_이도, 이젠 모두 떨어져 나간 살벌한 고향, 나에겐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고향이다. 슬픈 마음만 갖다 주는 무미한 고향! 나는 이런 고향으로 지금 레일 위를 따라 달려 가고 있다.
왜 나는 지금 슬픔을 찾아 가는가?
지금 나는 삭막한 고향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 가고 있다. 아니 나는 지금 허무한 걸 한 시라도 어서 맛보려고 서두르고 있다. 마치 죄수가 고문을 일찍 당해 버리려고 서두르고 있는 것처럼.
삭막함을 기다린다는 건 확실히 고통이다. 나는 어찌 이렇게 불행한가? 누가 들으면 욕 할지도 모른다. 조그만 자식이 벌써부터 불행을 얘기하는가 하고. 불행을 말 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힐책 할 거다. 그러나 나는 지금 참말로 슬픈데 뭘! 누가 돌아 가신 것도 아니다. 신상에 크게 슬픔을 줄 만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여튼 슬프다.
4292년(1959년). 12. 31 목요일 청 고2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열 시다. 국민학교 은사를 찾아가려다 임_과 세_이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들이다.
밤에 영_한테 놀러 갔다. 얼굴이 왜 그리 탔는지....
화투를 하고 있었다. 기철이, 영애, 기철이 할머니, 영_, 나 이렇게 모여 앉아 새해 영시를 맞고 있었다. 경자년이 가까워 올 때마다 아쉬운 병자년은 자꾸만 없어져 갔다. 안타까운 몇 분이 지나고 드디어 시침은 열 두시 정각을 넘어섰다. 이제 속절 없이 경자의 해는 다가왔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가 또 훌떡 넘어가 버렸다.
이제는 감성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앞으로의 일년은 나에게 그지없이 중요한 시기다. 입시 준비의 해, 내 운명을 결정하는 해이다. 영_에게는 입시를 치르는 운명의 해이기도 하고.
화투 놀이는 밤 네 시까지 계속되었다. 뭐 먹기도 아니고 단순히 얻어 맞는 것이었으나 지루하진 않았다. 기철이는 자꾸 지는 게 화 나는지 나중엔 마구 울어 댔다. 놈, 참 기가차다.
이제 한 해를 보냄에 있어 영_와 화투하며 보냈다는 게 기억에 영원히 남을까? 밤 네 시경 집에 가려 했으나 기철이 할머니가 자고 가라 하기에 그냥 거기서 잤다. 영_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두시간 남짓 잤을까? 번득 깨어보니 환하다. 부랴부랴 뛰어왔다.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나는 어째서 이렇게 기분이 불쾌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자고 왔다고 아버님께서 꾸중하시니 더욱 기분이 우울하다. 영_네서 잤다는 게 나 자신 어째서 이렇게 불쾌해지는지 모르겠다. 마치 소설처럼 그 어떤 연남들이 끙끙이 수작을 한 뒤의 불쾌감 같은 그런 기분이다. 영_의 아버지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그렇지만 할머니하고 같이 잤는데 뭘, 그래도 하여튼 불쾌한 일이다. 영_ 역시 기분 나빠 할지 그 누가 알랴? 내가. 어리석었다. 밤 네 시 아니라 천하 없는 네 시 일지라도 나는 와야만 했었다. 집 담을 뛰어 넘어서라도 나는 와야만 했었다. 그런데 나는 넉살 좋게 거기서 자고 왔다. 내가 좀 더 냉철한 사람이었다면 영_가 자는 방에서 잘 수 있었을까? 절대로 그렇겐 못한다. 그러나 난 의젓하게 자고 오지 않았는가? 나처럼 비겁한 놈은 세상에도 없을 게다. 밤을 새웠지 사실은 잔게 아니라고 자위하려 했던 나! 보잘 것 없이 썩어 문드러진 나의 정신상태! 아…나는 왜 시골 와 이렇게 못난 짓만 할까? 불쾌한 짓만 할까? 하여튼 앞으로 1년간은 천안에 안 올 작정이고, 또 그래야만 되는 고3의 해니까. 나는 영_를 일년간 앞으로 못 보는 셈이다. 그러니 나는 이 부끄러움을 영_와 안 만나는 것으로 씻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어젯밤의 일이 너무나 불쾌하고 또 영_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녀가 조금도 욕먹지 않게 되기를!
4293(1960). 1. 1 金曜日 晴 庚子年 고2
새해의 아침은 싱겁고 불쾌하게 맞았다. 영_에 대한 불쾌감을 영 씻지 못한 채 나는 또 저녁에 불쾌한 일을 당했다.
하여튼 오늘 두시 차나 여섯시 차로 서울 안간 게 한이다. 정말 한이다. 할아버지네 가서 애들과 눈 싸움만 하지 않았던들 나는 꼭 서울 갈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 한들 소용없다. 고향 같지도 않은 천안에 한시라도 머물기가 짜증나고 귀찮다. 이젠 영_과의 밤샘도 불쾌한 추억이 되어 버렸고 도무지 집에선 유쾌하질 못한데 한시라도 빨리 서울 가지 않은 게 생각 할 수록 분하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이곳에서 꺼져야 한다.
그런데 저녁에 불쾌한 일이 또 하나 일어났다. 명_ 누나가 찾아왔는데 도무지 불쾌해서 견딜 수 없다.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나한테도 화를 내고 갔다. 진_이 형님은 뭐 또 신이 나서 술 먹고 와서는 으르렁 대는지… 하여튼 세상엔 온통 찌그러진 깡통만 굴러다니는가 보다. 명_누나가 날 기분 나쁘게 하니 영_ 일에 겹쳐 불쾌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후딱 옷을 걸치고 극장엘 갔다. 무료한건 둘째 치고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
“구름은 흘러가도”인데 극장은 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 나오는 말숙이라는 애가 참 잘 도 생겨 먹었다. 조런 것하고 결혼하고 싶다. 히히.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니 잊었던 불쾌감이 또 고개를 든다. 저녁에 종만형이 서울서 내려왔다. 서산에서는 영대조카가 오고.
뜻 있는 하루를 제일 불쾌하게 지냈다. 아-주 제일 불쾌하게...
4293(1960). 1. 2 토요일 구름
아침 여덟시 반 차로 천안을 떠났다. 섭섭하기는커녕 시원한 감정이 머릴 새롭게 해 주었다. 3시간의 지루한 여행이 있은 다음 집 문턱에 닿았을 땐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역시 쉴 곳은 이곳뿐!
4293(1960). 1. 6 청 고2
날씨가 좀 차가워 오는 것 같다.
겨울인데 봄 날씨 같으니 싱겁기 짝이 없다.
봄이면 꽃 피길 기대하고, 가을이면 열매 맺길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라면 겨울에 눈 오고 물 얼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람들의 바람일지 모른다. 하여튼 눈 없고 고드름 없는 겨울이란 꽃 송이 없는 국화나 열매 없는 감나무와 다를 바 없지 않는가? 눈이나 펑펑 쏟아 졌으면 그 속으로 마치 뭘 쫓듯 마구 뛰고도 싶은데, 눈은 안 오고...... 무 계획의 매일 매일 24시간이 지루하게 이어져 가고 있다.
요사이는 정말 하는 게 통 없다. 단지 공부나 한다고 할까? 하여튼 오늘도 아침 아홉시에 일어나는 길로 바로 책상 머리에 붙어 앉아서 공부하고 종일 밖에 나간 거라곤 걸섭이와 선생님께 편지 써 부친 것밖에 없으니, 가만 있자 꼭 15시간 공부한 셈인데 거기서 이것 저것 빼면 적어도 열 시간은 공부한 셈이다. 그런데 고작 수학 참고서 7장, 영어 참고서 두어 장 밖에 한 게 없다. 하여튼 방학이 한 두어 달만 더 있다면 좋겠다. 이런 속력으로 참고서를 보면 두 달이면 능히 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좀 쓰려고 계획하였었는데 영 쓸 시간이 없구나. 공부란 게 참 괴상한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 사람 변한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그걸 느끼고 있다. 공부를 좀 했더니 이젠 제법 시야가 넓어졌고 또 꼬장꼬장한 성격 모서리가 좀 없어진 것 같다. 하여튼 병자년의 새해와 함께 좀 잠잖아져야 되겠다.
한국 문학상 수상 작품 전집을 읽어 보았는데 표현이 입이 벌어질 만큼 좋은 구절이 많다.
“민이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이 벌떡 일어 서며 권총을 빼어 들었다. 순간 긴장이 물결처럼 쪽 깔렸다. 그러나 민은 한 점 표정의 동요도 없이 침착한 태도로 돌아서서 문쪽으로 걸어 나갔다. 문을 열고 나서려는 찰라 총성이 요란하게 주위를 뒤 흔들었다. 민은 멈칫 했다. 머리가 갈래 갈래 부서져서 공중으로 휙 날라 가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총성이 까마득히 외부의 세계의 일만 같이 사라져 버리자 다시금 부서졌던 머리 조각들이 제 자리로 모여 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잠시 그대로 문간에 서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걸어 나갔다. 긴장이 아직 풀리지 않은 동료들의 시선은 천천히 걸어 나가는 민의 뒷 그림자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1957년에 수상한 오상원씨의 “모반” 중 한 구절이다.
아찔한 순간을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하게 표현했을까?!
“물줄기가 그 곳에서 휘면서 소용돌이 치는 바람에 한 오륙 메터나 간격을 가졌던 지붕과 지붕의 거리는 갑자기 접근해 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박이 열린 지붕이 핑그르르 맴을 돌면서 강아지를 태운 처마 끝을 슬쩍 스치자 두개의 지붕은 꼭 같은 시각에 파삭 아사져 버렸다. 그것은 흡사 뜰 앞에 생긴 물 방울과 물 방울이 서로 스치는 찰라 깜빡 스려져 버리는 것처럼 허망했다.
1958 受賞作, 柳周鉉씨의 “언덕을 향하여” 에서의 한 구절이다. 홍수에 떠 내려가는 집들이 부딪쳐 부서지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도 잘 그려 냈을까?
4293(1960) . 1. 8 木曜日 晴 고2
무질서의 一日 24 시간. 그저 지나가고 말았다. 하루 종일 방에 쭈그려 박혀 있었는데 겨우 삼위일체 7장! 한심할 노릇이다. 주_은 놀러 온다면서 오질 않고. 오버는 세탁소에서 아주 버려 놓았다. 실망이 크다. 매일은 무한이 반복하는 궤도지만 권태를 느껴야만 하는 궤도는 아니겠지. 그 어디인가 굴곡은 존재하겠지! 나는 지금 그 굴곡을 못 찾아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한테 주어진 레일이 원래 모래 한 알 없이 매끈한 것인가?
하여튼 스물 네 시간이 권태로울 뿐! 그러기에 답지 않은 한숨만 나오는가 보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여기 저기 있긴 하다. 그러나 공부해야 된다는 그 무엇이 등덜미를 꽉 누른다. 다음 순간 맘 속엔 “야 임마 이번 방학이 너의 고교 마지막 방학인 줄 모르니? 실컷 놀아야 돼!” 하고 유혹이 온다. 그러면 또 이렇게 해서 물리친다.
“야 임마, 경자년은 대학 입시의 해야. 너 그걸 알고 까부니? 이제 방에 죽치고 들어 앉아 공부하는 거야, 공부! 그리고 앞날의 찬란한 꿈을 꾸어 보는 거야”
하여튼 규_이 놈을 한번 만나 보아야 되겠다. 이 놈의 낯짝을 똑똑히 보아야만 속이 시원 하겠기에! 세_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도 퍽 잘난 체하지만 이 놈은 나 보다 단수가 센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다 무관한 탓이겠지. 또 상대편이 바늘 끝 같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이겠거니 하고 자위도 해 본다. 국_인 지금 어느 방에 틀어 박혀 수학 문젤 풀고 있는지 규_은 또 지금 무슨 역사 참고설 갖다 놓고 읽어 대는지? 임_은 지금도 공부 못 할거다. 그 애의 환경이 그렇게 된걸 뭐!
아……. 그 긴 24시간도 어찌 된 셈인지 후딱 지나고 지금은 밤 세시이니 벌써 1월 9일 금요일이다. 아마 이런 것에서 세월이 빠르다고 하는가 보다. 중얼 중얼 중얼 중얼. 아…… 경전에선 밤 한시부터 정전이라 하더니 불이 왜 안 나갈까? 갑갑하게! 불이나 빨리 나가면 그걸 구실 삼아 잠이나 잘 텐데 불이 왜 안 나가느냐 말이다! 속이 상하는구나!
옛날 일기를 읽어 보면 지금도 약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구절이 있다.
하여튼 지금은 이 정도로 발전했으니 어른이 다 되었는가 보다. 남자와 여자의 육체 관계에 세상 어느 것보다 흥미를 가졌던 옛적이 다시금 생각되어진다. 아. 지금 이순간 불이 나갔다. 그래도 나는 이것을 계속해서 쓰고자 한다.
잉크병이 어디쯤 있느냐? 찾다가 볼 일 못 보겠다. 내 글씨가 어찌 되었을까? 아침에 일어나 엉망인 내글씨 보면 참 우스울 게다. 공불 해야 할 텐데.
4293(1960) 1. 9 金曜日 雲
변화 없는 24시간 또 연장 되려는가? 무한의 탈피 에로 달려 가고 싶은 심정! 이 고리타분한 아랫목을 탈출하고 싶은 혈기!
확실히 나에겐 뛰는 “피”가 있다. 그리고 “멋”이 있다!
오늘 은 어쩐지 자꾸만 나가고 싶은 심정으로 더 이상 못 참겠다. 12시 조금 지나 규_이넬 오랜만에 가 보았더니 자식은 도서관에 갔다 한다. 규_이네 식구는 다 모여 있었다. 뚱뚱이, 홀쭉이, 건달, 왈패(석만). . ..
그리곤 웬 낯선 식모! 어디들 나가는 길이라 기에 나도 같이 나왔다. 점심을 같이 하자는 데 응할 마음 없어 거절했다.
거기서 화신까지 걸어와 이_이네를 갔더니 이 자식도 또 어디 나갔다 한다. 재수가 통 없다. 터덜거리고 집에 올 수 밖에! 하여튼 또 나가고 싶다!
일곱시경에 우미관에 “형제는 용감했다”를 보려고 갔더니 들어 가는 놈도 없고 쓸쓸했다. 문전에 서서 서성대자니 어쩐지 떨린다. 저 안엔 마두(송석일 선생)가 들어 앉아 그 곰팡이 낀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음침한 기분이 들어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서 아카데미까지 걸어왔다. 아카데미에선 “아가씨와 건달들”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매표구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학생이라곤 씨알머리도 없다. 여기서도 어쩐지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속에 액쿠스 (신용태 선생)라도 들어 앉아 있어 그 고양이 같은 눈으로 노려보는 듯싶다. 시네마 코리아를 돌아보니 “파라다인 부인의 사랑”을 하고 있다. 한데, 이곳은 너무 음산해서 도무지 들어 갈 마음이 않나 고 또 마음도 떨렸다. 나는 이리저리 다니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하는 영화관에 발길이 닿는데 앗! 학생이 하나 있다. 나는 무슨 구원자나 얻은 듯 얼른 매표구에 가 표를 사 가지고 의젓하게 들어 갔다. 앞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스토리는 극히 단순 했으나 장면 장면에 묘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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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엔 때에 맞지 않게 부슬비가 내리더니 이젠 하늘이 제법 맑다. 구름이 간혹 붙어 있긴 해도. 그러나 청명한 하늘이다.
나는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문을 빠끔히 열어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저 하늘, 끝없는 하늘 속으로 날라가? 아 참 생각만 해도 시원한 노릇!
지상의 모든 잡물, 더러운 것을 떠나 오직 푸르기만 한 저기 옹기종기 붙어 있는 구름을 꿰뚫는 것도 재미 있겠지만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지구 덩어리를 마치 장난감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그 쾌감! 아이젠하워나 이승만이 어떻다 한들 제트기 파일럿만은 못하다. 그들은 이미 지구를 초를 다투는 선에서 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제압할 수 있는 힘… 이것은 정말 위대한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 푸른 하늘을 지금 25억, 아니 50억의 눈들이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이 시간에 나처럼 이렇게 이불을 목에까지 덮어쓰고 파일럿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만일 있다면 그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겠지.
지금 라디오에선 무슨 곡인지 이름도 모르는 음악이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있다……즐거운 봄, 리챠드 말트발트의 연주이었습니다…
저 하늘을 혹시 어머님께서나 아버님께서 보고 계실지도, 또 절에서 큰형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영_는 저 하늘을 보며 입시 걱정을 하고 있을 게다.
아니 이게 인생이냐? 참고서를 들여다보고, 그저 그거 하나 외우겠다고, 대학 시험지 넉 장을 위해서 요걸 외우겠다고 바둥바둥 악을 쓰는 것…이게 인생이냐?
10년이 눈 깜박 할 새에 지나 버렸으면 좋겠다. 어저께 석만형이 말 하든 것, 이제 1년은 후딱 지나간다. 두고 보렴!
4293(1960). 1. 10 일요일 운 고2
방학도 이제 열흘 밖에 남지 않았다.
1월 10일도 벌써 반이 지났다. 유쾌한 일요일? 흥! 라디오에선 왜 저렇게 뚱딴지 같은 소릴 할까? 유쾌하긴 뭐…가 유쾌해. 다… 지금의 나에겐 모순투성이다. 모처럼의 일요일에 이…게 다 뭐냐? 꾸구려 박혀서. 흥, 즐겁고 유쾌한 일요일이라니 말도 안 된다.
라디오에선 지금 송민도의 구렁이 같은 목소리가 발악을 하고 있지만 나와 상관이 없다. 귀찮기만 하다. 그러나 막상 라디오의 스위치를 끊을 생각은 또 전혀 없다. 그것 마저 없어지면 몇 배나 더 외로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한 10년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으면 참 좋겠다. 입학 시험도 안 치르고, 얼마나 좋으냐?! 대학 시험에 떨어지면?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노릇이다. 그러니 어디 뼈가 갈라지거나 해골이 바숴져서 입학 시험만 치루지 않게 된다면 참 좋겠다. 참 좋겠어.
친구들은 이제 정신 차렸는가 본데 나는 이거 뭐냐?
아! 지금 영_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 애도 지금 속 꽤나 타고 있을 게다. 입시에 떨어지면… 하고 그는 나 보다 두어 곱절은 더 애가 타고 있을 거다. 붙어라. 제발 붙어라. 붙어서 서울서 자주 좀 만나자. 제발 좀 붙어라. 네가 떨어지면 나에겐 나쁜 징조다.
온다던 주_이 놈은 영 안 오는 구나. 저 놈의 초침 좀 묶어 놓을 순 없나? 안타깝다…. 시간 가는 것이!
4293(1960) 1. 11
레일은 일정해 있어 그 위로 달리는 차의 속도도 일정한가 보다. 뻗어 있는 두개의 평행선 위엔 무수한 역사의 줄기가 뻗쳐 있어 그 하나하나가 새겨 지겠지. 그러나 나의 24시간 반복되는 평탄한 레일 위엔 아로 새겨지는 게 하나도 없다.
매끈한 것, 그것뿐이다. 이젠 권태도 없고, 그렇다고 절대로 기쁜 것도 아니고.... 나의 요즘 생활은 그저 하루가 가면 가나보다, 오면 오나 보다 하는 식이다. 희망 없는 생활처럼 부담이 적은 것은 없다. 시간에 따라가는 것이지 결코 시간을 끌고 가는 생활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요리할 줄 모르는 인간처럼 슬픈 인간은 없지만 또 너무 시간에 얽매어 그것을 요리하는 데에 급급하여 인생의 진짜 “참”을 모르는 인간도 또한 그에 못하지 않게 슬프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내 생활은 분명 앞의 경우인데 이 평탄하고 기복 없는 레일 위를 탈선하지 않는 게 너무나 의외일 뿐이다. 극장 가는 것을 탈선이라 한다면 그게 곧 위선이지 결코 시간을 요리할 줄 안다는 얘기는 못 된다. 그것 또한 시간에 쫓아 가는 것이며, 시간이 빚어 내는 공백을 메우자는 것뿐이지 결코 네가 이룬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감상적이 되어 인생에 필요한 무얼 얻자고? 흥!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그런 썩어 빠진 허영이 나에겐 이제 없다. 스물 네 시간을 어떻게 메꾸어 나가느냐가 시급한 문제인 나에게는……
어제는 참 무_이가 왔었지. 그도 한 두어 시간 나와 함께 공백을 채우고 지나 갔다. 그의 24시간이 어떻든 간에, 그 두어 시간 그는 나와 같이 앉아서 그 공백을 메운 것이다. 그가 가고 남은 자리엔 시간의 쓰레기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머리가 지끈거리며 참고서를 가리고 마구 눈을 아리게 한다. 결국 그가 간 뒤 두시간 또 그 찌꺼기 시간을 소화하느라고 앉아서 천정만 처다 보고 있었다. 이로써 나는 네 시간이나 시간을 쫓아 공백을 메운 셈이다.
돈 250환! 이걸 가지고 열흘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큰일 아닌가?
4293.1
아까부터 참으려 해도 눈물이 자꾸 난다. 누나도 내가 우는 게 청승 맞아서인지 또는 자기도 울음이 왈칵 솟아서인지 윗방으로 올라가 버리고 나 혼자서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다. 왜 울음이 나오는지 나도 모른다. 그저 자꾸만 울고 싶어진다. 불현듯 어머님이 보고 싶어지고 아까 받은 걸_이 편지도 생각난다. 울어 선 안 된다. 울어선 안된다. 우는 건 바보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의 나의 서울 생활을 돌아보면 어쩐지 마구 눈물을 쏟고 싶은 것들뿐이다. 울어도 울어도 시원치 않은 것들 뿐이다. 그렇게 뼈 저리게 슬픈 것도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나와 쓰고 있는 글자가 두자 세자로 겹쳐 보인다. 왜 이렇게 슬퍼 지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에 명_이네 가서 문_하고 논 것도 불쾌하게 되살아나 마구 울고 싶다. 바보 같은 놈이다…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4293(1960). 1. 12 고2
무의미한 24시간은 또 덧없이 흘렀다.
김경한 선생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편지 받아 기쁘다. 그 희망을, 그 태도를, 그 정력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이어 나가거라.... 고 말씀하셨다. 읽고 나서 선생님의 말씀에 뼈저리게 감동했지만 그 만큼 어깨가 몇 근 더 무거워진 것 같다.
하여튼 해야 된다. 공부를.
요사이 내가 왜 이렇게 감상적으로 흐르는지 모르겠다. 참 더럽게 센티 해지고 있다. 잉크 병 하날 봐도 센티 해질 정도니까. 뭔지 몹시 그립다. 당장 편지라도 하고 싶어 종이위에 펜대를 붙잡았으나 보낼 곳이 없다. 하늘로나 보낼까? 책상위에 있는 아무것이나 잡히는 대로 콱 던지고 싶다. 문_ 생각을 하면서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하여 그저 잉크병을 번쩍 든다, 그러나 금방 던질 것 같았던 나의 기세는 사라지고 만다. 잉크병을 제자리에 놓으면서 나는 혼자 실소하고 만다. 흥! 제기랄, 이게 뭐냐? 미친 지랄이다.
콱! 라디오 스위치를 튼다. 아까부터 안방 아기 은_이가 쨍알쨍알 울더니 이제는 막 악을 쓰며 운다. 신경질이 콸콸 솟는다. 아… 라디오에선 지금 재즈가 찢어져라 울려 나온다. 귀를 막는다. 받친 팔꿈치로 책상이 떠는 것을 느낀다. 하여튼 은_이가 우는 소리, 그, 골을 박박 긁는 울음소리 보다는 차라리 이 요란한 재즈가 좋다. 이렇게 한차례 하고 나면 나 자신이 부끄럽다. 참을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할 수 없다.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작은형이 가죽 장갑을 빌려 달란다. 그러나 나는 거절한다. 왜? 나는 모른다. 순간적으로 울컥 치미는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만 딱 짤라 말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분도 못 가서 나는 후회한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 인걸!!
“내일은 좀 부드럽게 대하자”고 결심한다. 그러나 허사다. 하루만 지나면 그 건 다 사라지고 다시 차디차게 대해지고 싶어진다.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영영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