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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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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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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yungk
(@moonbyu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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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5.20. 화요일 맑음   고2

방과 후 오랫만에 동창 응용을 만났다. 참으로 반갑다. 미자하고 응용이하고 친척지간이라 한다. 그런데도 미자는 퍽 쌀쌀한 표정을 했다. 그가 그렇게 쌀쌀한지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응용과 과거의 회상에 감겨 지꺼리는 동안 어느덧 종로3가까지 걸었다. 거기서 뻐스 타고 집에 와 밥 해 먹고 놀다가 같이 잤다. 자는데 나는 침대에서 자고 웅용은 바닥에서 잤다. 지금도 가슴이 쓰리다. 남 대접을 너무 심하게 했으니 말이다.

 

1959. 5. 20. 고2 수요일 맑음

맑은 날씨다. 더운 날씨다.

응용과 함께 뻐스를 탔다.

방과 후 그(이름 기억 안난다)와 함께 하숙집을 갔다. 나의 기대에 완전히 어그러졌다. 그저 싼게 비지떡이라고 방도 혼자 겨우 쓸방에 둘이서 있으라니 말이 안된다. 다른데로 가야겠다.

실망된 마음으로 집에 왔다.

나의 요사이 생활은 어떠한가?

또 마음은 들뜨기 시작하는구나. 공연히 하숙 한다 하숙 한다 하니까 마음이 들떠서 안정할 수가 없구나.

내가 자취를 싫어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침에 뻐스를 한 번 타면 하루동안 쓸 에너지를 모두 써 없앤다. 그러기 때문에 첫 시간부터 졸기 시작한다. 둘째는 나의 허영심이다. 나는 이 집이 좀 집답게 치장되어 있고 또 담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자취 하겠다. 허나 이 집은 다 허물어져 외부에서 보면 꼭 외양간 같고 또 담도 없어 아침에 세수하려면 지나가는 여학생이라도 혹시 있는지 겁 내며 한다. 책가방 들고 길에 나설때도 내집이 여기라는 것을 알리기가 절대로 싫으니 말이다. 셋째 공부할 시간이 퍽 드물다. 사실 내가 죽자 사자 공부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시간 낼 수가 있다. 최소한도 5시간은 공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 보자. 학교에서 돌아오면 6시이다. 뭐좀 하다보면 6시반이고 8시쯤이면 어두어진다. 9시쯤해서 전기를 달고 11시까지 공부한다 해도 3시간 공부하는건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붙어앉아 공부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동안 식사하지, 세수하지…이것저것 시간보내게 되는 게 자꾸 생겨나니 말이다. 다섯째 요사이 주_이와 나와의 사이에 금이 가는 것 같다. 어쩐지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주_은 내가 나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섯째 이집 주위의 인간들은 나를 좀 깡패로 보나보다. 옆집 사람 하고 한바탕 싸웠기 때문이다. 이렇구 저렇구 하여튼 나는 나가고만 싶은 것이다. 형한테 승락얻어 명륜동에 정했다. 그런데 대학생이 와 있었는데 형이 반대하지 않는가? 자 그런데 마침 친구놈이 15000환짜리가 있다 하기에 얼씨구 좋다고 가 보았지. 아니 도대체 싼 게 비지떡이야. 방도 좁고 창도 하나 없고 한쪽 구석은 너덜너덜한 좁고 외딴 방을 둘이서 쓰라고 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자리서 당장 거절하고 싶다마는 15000환이라는게 구미가 당기는 걸…… 그러나 도저히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오히려 3000환 아끼느라고 그 야단을 어떻게 한단말이야? 이제는 형을 찾아가서 통사정을 하는 수밖엔 없어… 그러고 같이 있자는 놈이 좀 트릿한 것 같애. 만_이하고 똑같이 보여. 애가 박력이 없어 보여… 시골서 돈은 많은가 봐! 그런 애하고 나는 어울려선 안되지… 아니 안되는게 아니라 하지를 못할 것 같애. 복덕방엘 모두 돌아다녀도 하숙은 없는걸…

하숙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이큰 서울 바닥에 내 몸하다 붙일곳이 없단 말인가? 너무나 기막히는 사실이야. 치가 떨리고 슬퍼져. 그건 그렇구…

요전에, 시골 내려갔었을 때 영근이한테 놀러 갔었지. 12시경에. 춘자하고 극장 갔다 오는 길이라고 말해 주었지. 어떻게 생각할까? 얼굴은 왜 그리 시커머졌는지? 내가 빌려준(?) 문학전집을 으젓하게 제 책꽃이에 꽃아 놓았어. 꽃아 놓은것만은 고마워, 그런데 나에게 돌려주지 않아. 아마 내가 저한테 선사한건 줄 아나보지. 잘 됐지 뭐. 그렇지 않아도 뭐 선사하고 싶어진 참인걸……

바싹보면 얼굴이 그리 잘 생기진 못했는데 서울와서 생각하면 못내 보고 싶어 죽겠단 말야. 참 영근을 앞에 놓고 볼땐 내가 뭘 바라고 저애를 이렇게 좋아(?)하나 생각돼. 그건 다른 게 아니야. 영근이 마음씨가 좋아서 그런거야. 마음씨. 그 마음씨가 나는 좋아. 영근이가 서울오면 나는 놀 기회도 많아 질른지 모르지.

사실 영근네 식구중에서 제일 똑똑한건 영근이 밖에 없어.

시골 가서 느낀 또한가지는 병관형 말이야. 낼 모래면 장가들 양반이 도무지 어른티가 나질 않아. 그저 장난질을 하지 않나. 애들처럼 사진을 빼지 않나… 하여튼 유쾌한 형님이야. 그러나 박력이 없는 형님이라 할까? 뒷방도 근사하게 꾸며 놓았든 걸. 큰 어머님은 여전히 자화자찬이고 큰아버님은 여전히 태고쩍 스핑크스나 짠발짠 같고…

이제 병관형 결혼 후 새아줌마는 내가 한번 골려 주어야겠어.

또하나 느낀 건, 매형 말이야. 가 봤더니 퍽 반겨주던 걸, 그도 그럴테지… 식구들이 온통 대해주질 않으니 말야. 새로 얻은 마누라는 얼굴은 반반한데 꼭 어디서 식모살이로 굴러다니다 들어온 것 같애. 강한 적개심이 순간적으로 뻗혔으나 꾹 참았지.-

매형과 누님사이에 어찌하여 그런 영원한 금’이 갔을가? 누님이 아들을 못나서 그런것일까? 부부중에 누가 성적결함이 있을까? 누님일까? 작년에 얻은첩에서 새끼하나 난 걸 보면 매형은 결함이 없는 것 같아. 그러나 누가 아나. 첩이 들어오기전에 빼가지고 들어왔는지… 내가 언젠가는 권해보고 싶었어. 누님 좀 병원에 가 보라고., 아니 벌써 그런데 다녀 봤을 거야.「시원섭섭 잘못되기도 하고 잘된 것 같기도 한 것은」누님뿐이지…

글쎄 동대문 제식이네서 할머니한테 이 소리 했더니 금방 좋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어떠냐고, 그런 말을 꺼내시잖나? 누님한테는 얼마나 큰 모욕인가? 누구를 화류계 여성으로 아는가?

 

 

오늘(5월 21일)목요일 부터 하복착용인데 나는 손목에 털이 너무 많이 나서 좀 꺼려지긴 하지만 야성적이라서 좋다는 마음으로 합리화해 볼까나?

오늘 어머님한테, 병직형한테, 재식누나한테, 편지했다.

 

 

1959. 5월 22일 금요일  고2

이젠 나의 생활에도 희망이 싹트려나?

오늘 특활을 마친후 철진과 함께 하숙 치루겠다는 집으로 가 보았다. 하숙 치르겠다는 집엘 가 보니 조그만 깨끗한 집이었다. 집에는 방이 세개 있엇는데 방이 좁은 게 좀 흠이었다. 방은 깨끗했다. 창을 열면 비원이 보였다.

여기서 형하고 같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형하고 있는다고 막상 생각하니 꼭 무슨 테두리 안에 갇힌 그런 감이 없지 않다. 형하고 같이 있으면 이제 나는 염치도 있고 하니 놀지는 못할거다. 공부해야 할테지. 물론 나자신이 자각해서 할 일이지만 혹시나 억압적으로 공부를 강요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게 되면 나의 공부는 0 이니까 말이야.

하여튼 형하고 같이 있게 되었으니까 일종의 안도감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형도 벅찰게다 3만4천환이 하숙비로 들어가게 될테니 그런 고생이 또 어디있는가? 형은 한달에 이삼만원 밖에 쓰지 못할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나는 참 가혹한 놈이다.

이일기를 태워 버리든지 해야겠다. 과거에 내가 오해 했던 모든 생각이 못처럼 일기에 박혀 있으니 말이다.

형이 보면 괘씸함을 지나쳐 슬퍼할거다.

형한테 새삼스레 미안한 감이 든다. 저녁은 철진이네 집에서 먹고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주_이는 와서 벌써 전기를 매달아 놓고 자고 있었다. 밥을 조금 퍼 먹고(주_의 성의를 생각해서) 아이스 캔디 사 먹고 잠 들었다.

 

5월 23일 토요일(고 2)

학교가 파하자 즉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일찍 오니 어찌나 졸립든지 마루에서 한시간을 잤다.

나는 나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려 한다. 나라는 하나의 인간! 이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냐? 22억중의 나 하나! 이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게 존재하는 것이냐. 나는 지나치게 자만심이 크다. 물론 나는 행동으로는 별로 나타내지 않으나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자만심에 충만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요사이 주_에 대한 나의 태도다. 주_이 그 애가 사고방식이 경박한 건 그 애 자신도 아는바다. 나는 하여튼 그애 말이면 무조건 부정해 놓고 듣는 습관이 생겼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주_은 가당치도 않은 언어나 또는 논리를 전개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_이의 모든 생활이 그러한 결함으로 꽉 차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것이다. 그런데도 그 애 말이라면 무조건 부정하고 반박하게 되는 나다. 나는 이런 불행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나의 모든 생활이 그렇다. 내가 이렇게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이것이 아주 내가 못할 것을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어. 아니면 무슨 장난같이 한번쯤 해 보는 거’로 여기고 싶은 것이다. 왼 팔목에 걸친 HeSso시계와 쌀 씻는 바른손은 대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내가 자취한다 해서 내 환경과 모순되는 점이 털끝만치라도 있는냐?

자취 한다는 게 너무나 시시하다고 내 환경이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 얼굴이 좀 잘났다고 자처하고 있다. 이것도 자만이다. 어떤땐 거울을 앞에 놓고 유심히 나를 본다. 이것이 뭐 잘 생겼느냐 말이다. 하나 하나 뜯어 본다. 코는 끝이 빨갛고 코구명은 위로 향한체 크게 뚤렸다. 입은 웃을땐 괴상하게 벌려진다. 이는 송송 사이가 떳다. 눈은 조그만게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는 곱슬곱슬해서 이기적으로 생겼고 얼굴에는 살짝 곰보가 여럿 있다. 이러한 나의 얼굴이 뭐가 잘났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도무지 나다닐 맘이 나지를 않는구나.

_의 얼굴이나 나의 얼굴이나 못생긴긴 마찬가지다. 하여튼 나는 남자 새끼가 아니다. 도무지 이런 사소한데 관심을 잔뜩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내가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될것인고…………

뻐스를 타는 건 여학생 바라고 타는거지 여학생마저 없으면 아마 나는 뻐스 탈 맘이 나지를 않았을 것이다. 또 자취할 취미도 잃었을거다. 풍_이하고 만나면 맨 그런 얘기뿐이다. 풍_ 그놈도 객지에 나와 있는 놈이 큰 일이다.

지금 일기를 쓰는 도중에 웬 뚱뚱한 색씨가 하나 오기에 보았더니 앞집 식모다 아니 이 식모 왼일인지 자꾸 우리(나)를 피한다. 수집어서 인지 또는 나를 무시 보아서 인지 또는 나를 깡패로 보기 때문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런것 도외시하자.

 

5월 24일 일요일 (고 2)

오늘은 일요일. 즐거운 일요일 파라다이스!

아침에 일어나서 곧 목욕하고 돌아와 책을 읽었다. 몹시 심심했다. 4시쯤해서 한강에 가 보았다. 이제 내가 이렇게 한가로히 한강에 올 시간도 마지막이리라. 하숙을 옮기기 때문이다.

한강은 벌써 여름 맛을 노골적으로 풍기고 있었다. 뭍에는 장사치들, 벌거벗은 어린애, 채 검지 못한 살을 어서 태우려는듯 햍볓을 향해 누워있는 어른들…로 번잡을 이루었다. 신발코끝이 물에 달랑말랑하게 하여 들여놓으니 물결이 찰삭 때린다. 이것도 한강의 파도라면 파도다. 재작년인가 언제 안면도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 파도가 경이롭던 때가 생각난다. 올 해 들어 처음 보는것이니 이것도 경이롭다면 경이롭다.

그 파도는 몇 백 몇 천년의 역사를 먹고 되씹고 뱉고 하지 않았는가. 그 옛날 이도령이 이곳에 앉아 춘향 생각에 잠겼을지도 모를 이 모래 위에 내가 서 있고나… 으하하하

오.. 통쾌하다. 벌거벗고 난무하는 너희들 군상들아. 모두 나에게 절하라. 나는 이 도령이 선 자리에 지금 서 있노라.

수영빤스에 7세기 나막신을 신고 25세기 쪁트엔진을 달려므나. 아니 그럴 것 없다. 수영복도 귀찮고 신발도 필요 없지 않니. 이 무한정한 水下의 世界를 관찰 하고프거든! 옷을 벗고 조용히 영혼을 불러 일으키려므나…

털렁거리는 오줌 분사구에 화약을 넣고 터져보라. 그러면 27세기의 과학자들도 경탄할게다.

너희 군중들, 그 무리속의 문병길이라는, 동성고교 2학년생 이라는, 문영남씨과 김영예씨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이라는, 문병욱의 동생 이라는, 천안에 거주하며 서울서 하숙 한다는, 영근을 조금 좋아 한다는, 이런 사나이 문 병길! 네 인생의 종말은 어드메냐. 1967년이냐? 또는 1970년이냐?

내가 죽는 날, 그건 언제일까?

그것은 내 일생 어느날 보다도 중요한 날 이겠지.

이날은 매 해 365번 부디쳐도 아무런 기척도 없이 하고많은 날 들 속에 교묘하게 몰래 숨어있는, 그러나 틀림없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날 이겠지.

이 날이 지금 이 순간도 점이 찍혀 있을테지. 그리고 언젠가는 이 점 찍힌 날에 눈물 흘리며 저 세상으로 여행 할 저 무리들.. 그들은 삶을 위한 행동인가, 행동을 위한 삶인가?..... 모..르…겠…다!

오늘 한강에서 나는 친척누나 인숙이가 웬 청년하고 거니는것을 보았다. 하는 태도로보아 사랑하는 사이인가 보다. 그런데 만일 거기에 그쳤다면 그녀는 내 일기장에 오를 자격도 없어. 그런데 나를 보고 본척 만척 하지 않는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니 이 망할 년 연애한다고 사람 괄시 하랬나? 어디, 훗날 다시 보자! 그걸 생각하면 기분만 나쁘니 그만 두기로 한다.

인간은 괴상하다. 열 길 물속은 알기 쉬워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을 적용시켜 볼까? 나는 오늘에야 주_이가 첩의 아들임을 알았다. 옆 방 아줌마가 주책없이 나한테 얘기 해 주는것이 아닌가? 뭐 구지 듣지 못할것도 아니어서 모두 들어두었다.  자 이제 공부좀 하자. 병길의 그림자야!

 

1959.  5월 25일 월요일. 맑음

오늘 한 일은 없다.

 

5월 26일 고2 화요일

시험 시간 발표. 6월 1일부터 첫째날이 기하! 물리! 역사! 국어!

하필 하숙을 옮기겠다고 부산을 떠는 이때 시험을 닥치니 큰 일은 큰 일이다.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됬다고도 볼수있다.

오후에 하숙집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 학교에 갔더니 형은 안계시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차마 주_이 한테는 말하기가 곤란했으나 하숙 이야기를 어짜피 해야되겠기에 일찌감치 말 해 두었다. 하숙, 하숙 나는 주_한테 너무나 미안하다. 끝까지 고생 하자 해 놓고 이게 무슨 지랄이냐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개척 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5월 27일 화요일 맑음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 하숙집으로 곧장 갔다. 가서 책을 몇 권 가져다 놓고 형한테 찾아 갔다. 형은 퍽 피곤해 보였다. 집에서 보낸돈 2000환으로 학관 다닌다 말하니 형은 좋은 기색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 나는 타격이 컷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형한테 억지로 용돈을 타 쓰는거나 마찬가지라 형한테 죄송한데 형은 그만 나쁜 기색으로 대하니 몹시 기분이 우울했다. 내가 하숙을 하다니 내가 하숙 할 주제인가? 이 내가! 집에서는 하루 종일 하나도 안팔릴때가 허다한데 또 형은 기껏해서 월급이 얼마랴마는 거기서 하숙비 34000환 제하면 뭐가 남는다는 말인가? 그나마 초최한 형 그 꼴에 더 나빠지면 어쩌나? 나는 그 걱정이 많다. 더구나 오늘 형한테 그런 소리 듣고나니 그 동안 꿈꾸어 오든 모든 게 일시에 꺼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 하여튼 사람의 기분이란 한없이 무책임하게  기복이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런 말은 오히려 나갈은 인간한테 더욱 적용될지도 모른다. 기분이 이리도 쉽게 변하니 말이다. 엊저녁만 해도 이생각 저생각 좋은 plan 세우기에 눈붙이기가 아깝더니, 지금 펜을 들고 있는 이 순간은 왜 이리도 마음이 허탈한가? 너무나 변화가 많으나 그런 변덕을 만들어 논 이유를 나는 확실히 들 수가 있다. 인과율로 합리화 시켜보려 한다. 하여튼 형이 좀 반대하는 기색이 있거나 네가 좀 몇 달 참아라”고 말하면 나는 서슴치 않고 거기에 응하겠다. 오히려 그러면 나는 좀 고생 되드라도 정신적 부담은 적게 들지 모른다. 정신적 부담만 적게 든다면야 그보다 마음 편한 것이 또 무에 있으랴.. 지금 내 생활이 이걸 증명하지 않는가?

비록 자취하고 있는 집이 누추하긴 하나 학교에서 늦게 온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집에서 지랄발광을 한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건 일찍 일어나건 상관하는 자가 있나? 밥을 적게먹으라는 사람이 있나? 밥을 왜 험이 먹느냐는 사람이 있나? 그저 내 뱃장이 꼴린대로다. 그러나 이 생활은 단순히 무질서”그것이다. 무질서는 우리에게 이익이 없고 또한 그 생활은 발전성 없는 생활일것이다. 하여튼 지금의 내 심정은 무한히 낙망적이고 허탈하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웅용이 찾아왔다. 반갑긴 반가운데 지금 이러한 기분으로는 그저 마냥 반갑지는 않다.!

 

5월 31일(고 2)

시각은 6시 조금 넘었다. 기차의 요동에 펜 끝이 어지럽다. 정신만을 가다듬고 펜을 누른다. 마치 박자에 맞추어 반주하듯, 따그닥, 따그닥 하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그 소리가 아까는 아주 느릿느릿 했으나 지금은 무척 잽싸다. 고개를 내려가는가 보다. 멀리 있는 산은, 멀리 있어 안타까움인지 자꾸만 기차를 따라오나, 가까운 눈앞의 숲들은 시야에서 순간이다. 시골도 몇 주 만에 와 보는것인데 벌써 눈에 뛰게 보리가 익었다. 모 심는 농부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 보다. 벌써 줄 지어 심어논 모포는 마치 조회때 우로 나란히 한것처럼 질서가 정연하다. 아까는 붉으레 하던 해가 지금은 저 멀리 산봉우리에서 껑충 뛰어 올랐다. 붉게 보이는 빛은 따사로운듯 하나 그실 그렇지는 않다. 풀들마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빤짝인다. 토끼풀들은 멀리서 보니 그 꽃송이가 마치 큰 이슬덩어리같다. 지금은 역에 섰는지 따그닥 반주가 없다. 기적이 울린다. 치-익 하고 김빠지는 소리가 나고 삐드득 삐드득 소리가 나더니 떠나기 시작하는구나. 차창 바로 밑으로 두개의 선로가 달린다. 한참 보고 있자니 망막에 아로새겨져 눈을 감아도 새까만 세계에 무슨 투명한듯한 지렁이 같은 게 꿈틀거린다. 그게 아마도 선로의 유산인가보다. 농가가 또 한무리 지나간다. 연기가 오르는 굴뚝도 있고 그렇지 않는 굴뚝도 있다. 연기 오르는 굴뚝은 밥을하는 건 확실한데 연기 안오르는 굴뚝은? 아마 밥을 먹고 있을꺼야. 혹은 아직 먹지 않았을지도. 옆에서 빠짝 달라 붙어 지나가는 산엔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망막에 사로잡히는건 구름뿐이니! 아마 나무로 싸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리밭이 어떤데는 대패로 민듯 하다. 어느보리는 바람에 쓰러저 꼭 기계충이 파먹은 머리카락 같다. 너무 잘 되어서 그럴거다. 벼란간 햍볕이 논물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오늘의 찬란한 계획(?)은 나의 가슴을 들쳐 두드리건만, 한 둘 걱정은 그만 나를 짓누를듯 하다.

하숙을 형하고 하면 한 두 가지 곤란한 점은 있으나 뭐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지. 오늘 이 보따리는 우선 하숙에 갖다두고 상도동에 가서 또 책을 좀 가져가야 한다.

아침 일찍 서울 역에 도착했다. 보따리를 하숙에 가져다 놓고 다시 상도동을 갔다. 내가 애써 붙여 놓은 사진은 무참하게 찢겨 있었다. 주_이 그 놈 참 인간이 아니다. 왜 그렇게 끝까지 나한테 기분 나쁜 태도로 나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할 수 없이 거기서 이불보를 싸고 책 몇 가지 넣은 다음에 나왔다. 나올때 집을 한번 돌아다 보았다. 그래도 내가 석달을 두고 정들여 온 집이다. 한참 얼음이 풀릴 때 와서 이젠 싹들이 푸르둥둥할 때 떠난다. 저기 햍빛 속에 싸여 따스히 빛을 발하는 낡은 집. 이 집의, 그렇게도 마음에 꺼렸던 누추함이 이제는 제법 한폭의 그림인양 느껴지긴 했어도 어딘지 얼음같은 추억이 남아 있어 신경을 긁어내며 손톱질 한다. 아마도 주_이의 일 때문인가 보다. 아줌마한테 그동안 지낸 인사를 하며 그 동안의 나의 지각없었든 행동을 용서 빌었다. 아줌마는 비록 무식하고 단순하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원래는 악한사람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너무 타산적이긴 하지만, 아주머니는 너그럽게도(?) 나의 말을 받아 주었다. 저 다 찌그러져가는 집 한채가 그래도 이제 이 문병길이라는 인간의 인생항로에 몇분의일인지 모를 점을 찍어 놓았다. 여기서 지내며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추워서 걱정하든 일, 짐치독에서 아주머니네 김치 훔쳐 먹다 들켜 말 들은 일, 집에 울타리가 없어 지나는 여학생이 볼까봐 제대로 기를 못펴든 일 들. 전기를 처음엔 지선과 한 선 만을 쓰다가 나중엔 아주 완전 도둑으로 변해 두 선에 철사줄을 걸어 라디오까지 키며, 걸 때는 아줌마네 밭을 밟고서 걸어야 했기 때문에 말 듣던 일, 결국은 밭에 징검다리를 놓고 공사 하는데 편하게 한 일, 쌀을 씻을때 행여나 여학생이나 지나갈새라 조마조마 하던 일, 앞뜰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집은 비록 별 것 아니라도…하면서 뽐내든 일, 여기 와서 주_의 가난한 친구하나를 알게된 일, 처음에 왔을 땐 옆집 아주머니 딸 영자한테 말 한마디 못하다가 헤어질 때 시원스레 한바탕 이것저것 말했던 일, 상도동교회에서 믿음을 찾고 또 영근네 식구들한테 면목세우느라고 찬송가 옆에끼고 출석했지만 그실 여학생 궁둥이 감상하자는데 뜻을 두었던 일, 군인_ 침대에서 자고 공부하고 놀고 하여 침대가 아주 낡아진 일, 앞집 뚱뚱한 식모가 자꾸 나를 보면 피하기 때문에 정말 화가 나던 일, 그 옆집에는 무슨 의사 딸이 있었는데 마음이 조금 땡겼던 일, 내 성질이나 주_의 성질이나 똑같이 더러움을 발견한 일, 편지를 써서 우리 자작 별명의 세례를 받은 일명 너구리”에게 못생겼다고 편지를 보내며 장난했던 일, 아버님께서 올라오셔서 침대하나에 같이 잔 일, 여기서 형한테 시계를 선물받고 즐거웠던 일, 비록 조금이긴 하나 주_과 과자를 사다놓고 사먹던 일, 응용을 데려 와 재운 일 들, 해바라기 심든 일 들…………

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많은 추억들이 수박통만한 내 머리속에서 벅적거릴테니 그 속엔 x+y=z가 어찌 들어가며 sin 쎄타 제곱 + cos 자승 제곱=1 이 어떻게 자리잡고 f=ma라는게 어디서 맥을 춘단 말이냐?

해바라기만은 내손으로 직접 심어 놓은 것이다. 이 해바리기가 많이 자라 꽃으로 둘러싸일때 나는 꼭 가보고 추억에 잠기며 주_과 환담에 즐기리라 결심했다. 그렇게도 꺼림직했던 저 행인들에게 여보시오! 이집은 내가 석달간 자취하던 집이였소. 나는 여기서 내 인생의 숙련을 조금이나마 쌓았소! 앞마당의 능수버들은 100일간을 나와 함께 늙었고 벽 옆의 해바라기는 이 거칠은 내 손에 의해서 심어지고 자라는 바 되었소! 보시오 이제 나는 보따리를 들고 하숙을 찾아가오. 당신네들은 이 곳 상도동의 이 땅이 내 추억을 만들어 주었음을 모를것이오. 또 모르기를 바라오!” 라고 웨치고 싶어졌다. 주_이 엄마가 뭐 이집을 고쳐 200만환 짜리로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게 반갑지 않다. 이 집은 이 집 자체로 나에겐 회상꺼리다. 비록 쓰러져 무덤이 된다 해도 나는 좋다. 혹시 이 집 뒤의 썩은 기둥이나 그 썩은기둥에 입 맞추고 있는 주_은 나의 이 에고이즘 견해를 싫어하겠지.

-----그러나 내 주관은 이렇다는것 뿐이야-----

뻐스정유장까지 영희 엄마가 보따리를 이어다 주었다. 영희에게 과자를 사주고 뻐스에 올랐다. 서울역에서 갈아타고 하숙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부랴 부랴 내일 시험준비를 했다. 하숙집 주인은 과거에 국민학교 선생이었다고 한다. 남편은 조선호텔인가 어딘가에 전무라한다. 밥이 들어오는데 그릇 위에 그릇이 포개져 있다. 와 많다 마는 다 먹어치웠다. 좀 부끄러우나 처음부터 밥을 남기면 또 양이 적은 줄로 오해하고 밥을 적게 주겠기에 말이다. 철진과 공부하다가 자다.

 

1959  6월 1일  고2

오늘부터 시험이자 하숙생활이다. 일찌감치 철진과 등교하는데 김익중과 이상무를 만났다. 가는데 여학생이 무데기로 쏟아져 나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시험 엉망으로 치루었다. 그래도 기하시험은 좀 잘 치뤘다.

 

6일 2일

밤을 거의 새다싶이 공부했다.

오늘 시험에선 잘 치룬 게 하나도 없다.

 

6월 3일

시험은 더욱 엉망이다.

 

1959년   2   6월 4일

도의 시험하나 잘 치루고는 엉터리다.

마지막으로 컨닝하나 안하고(사실 도의는 컨닝했다) 깨끗히 치뤘다.

오랫만에 시험이 끝나고 나니 그 동안이 몇달의 세월이 흐른것 같다. 이영과 나와 정웅과 서울운동장 풀에 가서 오래들어 처음으로 수영했다. 물이 좀 더러웠다.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50m를 필사적으로 하여 수영했다. 참 기록이다. 50m나 갔다는것은!

이쯤되면 위급을 겨우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서 나와 나는 누님한테 갔더니 연옥이도 있었다. 누이와 함께 하숙집에 오다. 누이를 바래다 주고 집에 와 녹아 떨어져 자다.

 

6월 5일 금요일

내일은 현충일이기때문에 쉬고 모래는 휴일이니 어짜피 쉬고, 하여튼 쉰다는데야 기분 나쁠 필요가 없다. 매우 좋다는게 타당하다. 내일은 생물 실습 간다 한다 하는데 비가 오지 말아야 하겠다. 형하고 있으니 걱정 안되고 뭐 지긋지긋하게 걸리는 게 없고 하여 편하긴 편하나 어째 그렇게 늦게 들어오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러니 먼저 있던 하숙집에서 안좋아 했으리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오면 희망이 51%있다.

 

6월 6일 토요일 비

아침에 비가 좍좍 왔다. 실습 가기는 틀렸다. 아침에 형한테 1000환 주었다. 내가 긴히 쓸 돈이지만 형이 없다는데야 할 수 없다. 오히려 주머니에 있는것 다 털어주고 타 쓰는게 속 편할것이다. 오후에 철진과함께 사진을 만들었다. 나는 필림이 없어 형 명함사진만 여러장 해 두었다. 재미있었다. 담요를 가리니 빛은 여전히 들어와서 솜이불을 못을박아 매달아 놓고 했으니 이도 하나의 추억이 될려면 될게다. 식모는 참 빨래를 잘 해 준다. 미안해 못견디겠다. 그렇다고 내성미에 빨래감을 내놓지 않을수도 없고, 하여튼 한바탕 빨아 놓으면 그후엔 빨래감이 얼마 없을테니까 지금 내 놓는길에 내 놓으라 했다. 나는 오늘 결과적으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도 형이 저녁에 공부하라고 하는 건 좀 기분 나쁘게 들렸다. 형한텐 죄송하다. 저녁에 규_이네 집에 가서 놀다가 왔다.

죽은 병사들의 못 다 뿌린 눈물이 비가 되어 창밖을 두드리며 쏟아 내린다.

 

1959  6월 7일 일요일 비(고 2)

아침에 목욕 갔다 왔다. 욕탕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돈이 한 푼 없으니 도무지 기분이 나질 않았다.

4시에 진명여고 강당(삼일당)에서 대학생 주최로 함렡”을 공연하는데 가 보았다. 2회째 공연인데 1회보다 훨씬 우수했다 한다. 1회공연때는 함렡이 언덕에서 두번이나 떨어졌다 한다. 가장 슬프고 심각해야 할 비극이 웃음 바다가 되었다 하니 가히 장관이었을 게다. 하여튼 완전히 내 기대에 들어 맞았다. 또한 배우들이 기성배우들도 아닌데 그만큼 한다는것은 참으로 경이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함렡”을 연극으로도 보고 작품도 읽고 영화도 보았으니 함렡만은 완전히 이해하는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형을 보았다. 나는 그냥 집에와서 철진이, 택진이, 철진이 누나에게 초대권을 주고 표가 하나 남았다. 표 하나가 그대로 썩었다. 애석한 일이다.

공부 좀 해야겠다. 일기책을 덮어 두기로 했다.

 

6월 8일 월요일 (고 2)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렸다가 중량교로 식물 채집하러 갔다. 중량교는 너무도 적적했다. 나혼자 마음대로의 사색에 잠기며 언덕을 오르내리고 하며 채집했다. 어찌 생각하면 무한이 고독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뭔가 흐뭇한 심정이다. 비록 저 멀리로부터 벽돌 만드는 인부들의 목소리만 내귀를 간저럽게 하는데 그것마저 없으면 오히려 조용함이 지나친 적막만을 자아냈을지도 모른다. 깊진 못하지만 넓게 그리고 사이사이 흐르는 저 냇물. 가까이 가 보니 맑기도 하다.「맑은 것」, 약수터에서 나오는 그런 물. 귀찮게 크롤칼키니 뭐니하는, 인간의 손을 필요로하지 않는 그런 물.

풀포기라고 원 시원스레 생긴것은 별로 없고 그저 모두가 다 우중충한것 뿐이다. 하여튼 되는대로 스무가지만 하면 된다. 여기 온것은 뭐 내가 반드시 숙제 때문에 와서 한다는 그런 의무감은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시외에 혼자 나가 즐겨보자는 것 뿐이었다. 아주 무계획적으로 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와 보니 또 오고싶은 마음이다. 내가 혼자 와 이렇게 한다 해서 누가 알아나 줄까? 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창경원에 가서 꺾어왔다고 말할테지.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의 양심이 있으니까 괞찬다. 남이야 뭐라고 하건 나 혼자 이런 시간을 가져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채웠으니 결국 이 순간은 나를 위함인것이다. 비록 이 풀들이 학교에선 무시된다 하드라도 나는 좋다. 시험점수를 바라고 이짓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는길에 혜_한테 들릴려다 그만두었다. 꿰죄죄한 방에 더구나 삼수가 보기 싫었다.

 

1959년 6월 9일 화요일

오늘은 한 일이 없다.

독서카드의 글씨를 내가 썻다.

 

1959   6. 10. 수요일 맑음(고 2)

종로2가에서 내리다가 전에 규_이네 집에서(천안) 맞난적이 있는 풍문고 2학년 애(숙자라고 하던가?)를 뜻밖에도 만났다. 말은 하고 싶었으나 시간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내가 피하다 싶이 했다. 그 애를 보면 약간 미안하다. 요전에 언젠가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창피 주었다. 그 애 친구들이 잔뜩있는데 집이 어디냐는 등 그런 소릴 물었든것이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말 한것인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경솔하게 굴었나 보다. 혹시 그 애는 자기 동무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애에게 잊지 못할 못을 박아 줬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애가 얌전한 애라면 말야) 그래서 오늘은 나는 말 한마디 않고 집으로 왔다. 그 애가 청파동에 산다는 건 알았으니 이제 집을 좀 알아 두어야 하겠다. 오는 길에 구두약, 구둣솔, 옷걸이, 재털이, 게다 등을 사 가지고 왔다.

공부는 않했다. 형이 올 때 조금 했다.

형은 매일 늦게야 온다. 도대체 무얼 하느라고 그렇게 늦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형은 하루 종일 시달릴텐데 나는 형 시중을 잘 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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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노트 1권이 끝났습니다. 망설임과 함께 예까지 왔습니다만 엄청난 주저를

안고 연재 했습니다. 이 일기의 타이핑을 30년전에 부탁했을때 '두 눈 감고 쳐 달라'한 것 처럼

역시 읽는 분께도 '두 눈 감고 읽어 주십사' 는 모순되는 부탁의 심정으로 연재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분께는 고맙다는 말씀밖엔 드릴 말씀이 없지만 댓글(reply)을 달아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읽을 가치가 없고, 오히려 피로감을 유발한다 말씀 주셔도

고맙게 받아드리겠습니다. 주시는 말씀대로 다음 노트 이음에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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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계시자 문병길 드림 2026.4.16    


 
Posted : 16/04/2026 11:1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