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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들려준 미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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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들려준 미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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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idae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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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들려준 미국 이야기

지난 독립기념일, 오랜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빈손으로 가기 아쉬워 꽃 한 다발을 준비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독립기념일에 어울리는 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의 국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때 처음 미국 국화가 ‘장미’라는 사실을 알았다.

겉의 꽃잎에 파란빛을 입힌 빨간 장미와 하얀 장미를 섞어 다발을 만들었다. 빨강, 하양, 파랑이 어우러지니 제법 성조기를 닮은 근사한 꽃다발이 되었다.

친구 집에 도착해 부인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남편들이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사이, 들고 간 장미를 정성껏 다듬어 두 개의 화병에 나누어 꽂았다. 그리고 식탁 한가운데에 화병을 올려놓고 네 부부가 둘러앉았다.

식사를 시작하며 내가 물었다. “미국의 국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타깝게도 정답을 맞힌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 역시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며 해마다 독립기념일을 맞았고, 장미를 선물로 주고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장미가 미국 국화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왜 하필 장미였을까, 궁금해졌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미국은 건국 후 200년이 넘도록 공식 국화가 없었다. 그러다 1986년 연방의회가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해 1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서명하면서 장미는 미국의 국화가 되었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맞이하고 중요한 발표를 하는 로즈가든에서 국화를 선포한 것도 상징적이다.

장미가 선택된 이유는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유럽 이민자들이 가져온 품종뿐 아니라 버지니아 로즈와 캐롤라이나 로즈 같은 야생 장미도 오래전부터 미국 땅에서 자생하고 있었다. 장미는 유럽의 문화와 북미의 자연이 어우러진 꽃이다. 오늘날에는 수천 품종으로 개량되어 알래스카에서 플로리다까지 미국 전역에서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미가 지닌 상징성이다. 당시 미국 의회는 장미를 가리켜 “사랑과 아름다움, 희망과 용기,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밝혔다.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정신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장미는 결혼식에서는 사랑을, 장례식에서는 추모를, 국가 기념식에서는 존경과 감사를 전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장미의 의미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의 피가 흰 장미를 붉게 물들여 영원한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 되었다고 전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회의장 천장에 장미를 매달아 두고 “장미 아래서(Sub Rosa) 나눈 이야기는 밖으로 새지 않는다”며 신의를 다졌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은 전장으로 떠나기 전, 장미를 건네며 충성과 용기를 맹세했다. 이처럼 장미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사랑과 희생, 신의와 용기, 충성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미국이 장미를 국화로 선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태극기를 보면 대한민국을 떠올리고, 7월부터 10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무궁화를 보며 우리 민족의 끈기와 강인함을 되새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에게는 성조기와 독수리, 그리고 장미가 나라의 정신을 대표하는 표상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오래 꽃을 피우는 장미의 강인함은 미국이 걸어온 개척의 역사와 닮았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미국을 상징하는 것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다. 독립기념일을 그저 불꽃놀이를 즐기는 휴일 정도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이 나라가 어떤 역사 속에서 세워졌고, 무엇을 소중한 가치로 삼아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날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뜻하고 정겨웠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음식을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었지만, 식탁 한가운데의 장미 다발은 우리의 대화를 미국의 역사와 정신으로 이끌었다.

꽃 한 다발에 이렇게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은 몰랐다. 내년 독립기념일에도 나는 식탁 위에 장미를 올려놓을 것이다. 식탁을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와 희생, 사랑과 희망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다.

​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나라의 역사와 상징을 아는 일이다. 그날 친구에게 건넨 장미 한 다발은 내게 미국을 다시 이해하게 해준 선물이었다.

타운뉴스       2026 July 20    발행인 안창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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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문병길


 
Posted : 20/07/2026 11:44 am